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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구미 계곡으로 가을여행을 떠났다.
 비수구미 계곡으로 가을여행을 떠났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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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5일, 강원도 화천 비수구미 계곡으로 가을여행을 떠났다. 비수구미로 가려면 배를 타야한다. 구만리 선착장에서 비수구미까지는 물길로 대략 24km. (120명이 정원인)카페리호로 1시간 30분 소요된다. 

산속의 바다로 불리는 파로호
 산속의 바다로 불리는 파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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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리호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하루 두 번(오전 9시30분, 오후 2시) 정기적으로 뜨지만, 평일에는 30명 이상의 단체 관광객 수요가 있을 때만 운항한다. 요금은 1인 기준 편도 8000원, 왕복 1만5000원이다.

"사실 행정에서 파로호 뱃길을 알리기 위함이 목적이다 보니 관광객들로부터 받는 요금으로는 적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적자를 줄이기 위해 평일에는 30명 이상의 수요가 있을 때만 운항을 하고 있습니다"

'물빛누리호' 라고 이름 붙여진 카페리호 선장인 이용백씨의 말이다. 재미있는 건 화천군청에서 선박을 운영하다보니 선장도 공무원이다. 그것도 기능직이나 일용직이 아닌 선박직 7급 공무원이다. 평소 배에 관심이 있어 틈나는 대로 공부를 했던 것이 팔자에도 없는 선장이 되었다고 이용백 선장은 말했다. "남들 다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배를 운항해야 할 줄 알았다면 괜히 면허증을 땄어요." 선장을 그렇게 농담을 하면서도 보람과 긍지를 갖는다는 표정이다.

물길에도 삼거리가 있다 

다람쥐 섬
 다람쥐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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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다람쥐 섬입니다. 이 섬 이름이 그렇게 붙여진 건 70년대 우리나라에서 외화벌이 정책으로 다람쥐를 일본으로 수출했었는데 어느 민간인이 다람쥐를 이곳에 임시로 보관했다는데서 유래되었습니다"

구만리 뱃터에서 출발해 10여분 가다보면, 소나무 숲으로 우거진 커다란 호수안의 섬을 만나게 된다. 선장의 말처럼 과거 어느 주민이 다람쥐를 대량으로 생포해 마땅히 가둘 곳이 없어 이 섬에 가두었다. 그런데 얼마 뒤 극심한 가뭄으로 섬과 육지가 맞닿아 다람쥐들이 모두 산속으로 탈출해 그 후로 사람들은 이 섬을 다람쥐 섬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 배가 지나가는 곳의 깊이는 50m가 좀 넘습니다. 1944년 일본에 의해 이 댐이 만들어지기전 이 호수의 바닥에는 면사무소가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시골마을 면사무소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위치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였을 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면사무소 주변에는 식당이나 상가들이 밀집하게 된다. 28.9㎢의 넓은 호수 바닥이 면소재지였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이곳은 삼거리라는 곳입니다"

보통 도로의 삼거리나 사거리라는 명칭은 들어봤어도 물위에서 삼거리라고 표현은 왠지 생소하다. 옛날 이 호수 바닥에는 골짜기가 있었고, 산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양구, 왼쪽으로 가면 (평화의 댐인) 수하리가 위치하고 있어 중간 지점인 그곳을 삼거리라 불렀는데, 화천댐이 건설되면서 커다란 호수가 생기고, 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을 삼거리라 부르는 모양이다.

파로호 사람들은 이 시기에 생필품을 미리 사 둔다

'저 집에서 예쁜 여자랑 한달만 살고 싶다'고 트위터에 올렸다가 집사람에게 들켜 두들겨 맞을뻔 했다.
 '저 집에서 예쁜 여자랑 한달만 살고 싶다'고 트위터에 올렸다가 집사람에게 들켜 두들겨 맞을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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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 주변에 듬성듬성 민가가 눈에 뜨인다. (물고기 잡이를 주업으로 삼는) 어가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파로호에는 어부들이 살지 않는다. 호수 주변에서 농사를 짓거나 별장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몇 년 전만해도 그곳엔 어부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많던 붕어, 잉어, 쏘가리 등의 토속어종들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부들 때문에 토속어종들이 줄어들 리는 없다. 배스가 문제였다.

파로호에 배스가 등장한 것은 70년대 말경이다. 누군가 어족자원 증식을 위해 배스를 가져다 넣은 것이 이곳을 배스천국으로 만들어, 결과는 토속어종 감소로 이어졌다.

이에 군은 토속어종 증식을 위한 방안으로 배스 수매와 동시에 (어부들로부터) 어업권을 모두 사 들였다. 그래서 지금 파로호에서는 낚시는 허용하지만, 투망이나 정치망 등 그물을 이용한 어업행위는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파로호수변에 사는 사람들의 필수 품목 중 하나는 배이다. (길이 없기 때문에) 배가 없으면 읍내로 나갈 수 없다. 또 한겨울 얼음이 얼게 되면 꼼짝없이 이듬해 봄까지 갇히게 된다. 따라서 얼음이 얼기 전, 연료나 식료품을 비롯해 생활용품을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중요한 월동준비이다.

이곳 사람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뗏목이었다

물길에도 삼거리가 있다. 우측으로 가면 양구, 좌측으로 가면 화천 수하리다.
 물길에도 삼거리가 있다. 우측으로 가면 양구, 좌측으로 가면 화천 수하리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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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파로호 여행을 하면서 호수변에 있는 예쁜 농가 사진을 찍어 '저 집에서 예쁜 여자랑 한달만 살고 싶다'고 아무 생각 없이 트위터에 올렸다. 그 내용을 본 아내의 친구가 아내에게 고자질 한게 문제였다. "집에 기어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라." 집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하게 될 줄 몰랐다. "그곳을 자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그런 거 뿐이지, 세상에 당신보다 이쁜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말도 안 되는) 아양을 떨어 겨우 위기를 모면한 이후부터 다시는 그런 모험을 하지 않는다.

비수구미에 가까워질수록 호수 주변엔 적송들이 많이 보인다. 소나무 줄기가 붉다고 해서 붉은 소나무 또는 적송으로 불리는 소나무다.

이곳엔 황장금표가 있다. 조선시대에 왕이 죽었을 때, 관을 만들기 위해 소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바위에 황장금표라는 표식을 해 두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어떻게 이런 산골에 있는 소나무를 한양까지 옮겼을까!

과거 북한강 수계에 댐이 생기기전 이곳 비수구미에서 서울까지의 교통수단은 뗏목이 유일했다. 따라서 뗏목을 이용해 임금의 관에 필요한 소나무를 옮겼을 거란 추측이다.    

아홉 가지 아름다움이 있다는 의미의 비수구미 마을

비수구미에서 만난 할아버지, 선글라스를 끼고 경운기를 타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비수구미에서 만난 할아버지, 선글라스를 끼고 경운기를 타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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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30분 정도를 달린 배는 목적지인 비수구미 입구에 도착했다. 10여 년 전 호랑이가 출몰했다고 메스컴에서 떠들썩했던 마을이다. 결국 고양이과의 다른 동물이었을 것이다 라는 애피소드로 끝났지만, 그 정도로 이곳은 전국 최고의 오지 마을로 꼽히는 곳이다. 말이 좋아 마을이지, 비수구미에는 딸랑 세 가구에 7명의 주민이 산다.

비수구미는 '신비한 물이 만들어 내는 아홉 가지의 아름다움'을 간직했다고 '秘水九美'라고 부른다. 파로호 뱃길에 이은 이날 투어는 이곳 비수구미에서 해산령까지 6km의 오르막길을 걷는 것이었다. 이 코스를 이용할 때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남자의 빠른 걸음으로 4km 평지를 워킹할 때 40분 정도 걸리니까 6km라면 계산상 1시간이면 된다. 그런데 아니다. 해발 100여 미터인 비수구미에서 702미터 높이인 해산령까지는 오르막이 계속되다 보니 대략 2시간여 소요된다.

다행인 것은 비수구미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계곡과 암벽 그리고 주변의 고목들이 어우러진 풍경에 힘들다는 생각을 잊게 된다는 것이다.

비수구미 계곡의 가을
 비수구미 계곡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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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구미 계곡은 어떤 가을풍경을 연출해 낼지 기대에 부풀었다.
계곡에 들어서자마자 기암괴석과 천연색 단풍으로 치장한 나무들이 반긴다. '붉은 잎은 모두 단풍나무일 것이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렸음도 알았다. 단풍나무처럼 붉게 물들인 복자기 나무는 경쟁이나 하듯 붉은 빛을 뿜어내고, 생강나무라 불리는 개동백 잎도 노란 물감을 뿌려놓은 듯 온통 노란색으로 분칠을 했다. 또 암벽사이로 흐르는 냇물은 가을 단풍과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해 낸다.

비수구미 계곡의 복자기 나무 단풍
 비수구미 계곡의 복자기 나무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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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비수구미라 했구나! 눈앞 그리고 주변에 펼쳐진 가을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앞에 펼쳐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멋진 장면을 놓칠 새라 뒤돌아서 카메라 셔터 누르길 수차례, 예정한 2시간 내에 해산령에 도달하기는 이미 글렀다.

산촌 사람들은 벌들이 소똥을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알았을까!

비수구미 사람들이 설치한 벌통
 비수구미 사람들이 설치한 벌통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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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옆 바위 밑에 원통 모양의 통나무가 보였다. 벌통이다. 산에 사는 토종벌은 봄이면 일제히 새끼를 부화한다. 그렇게 되면 여왕벌이 한집에 두 마리 내지는 세 마리가 생긴다. 벌집 하나에 여왕이 한 마리 이상 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따라서 새로 태어난 여왕은 자신을 따르는 일벌과 수벌을 데리고 미리 보아둔 새집으로 이사를 한다.

토종벌에 관심이 있는 산촌 사람들은 이 시기를 노려 빈 벌통을 고목나무 밑 또는 바위아래에 놓아둔다. 빈 나무통만 딸랑 놓아두는 것으로 벌들을 유인하긴 힘들다. 산촌 사람들은 자신이 가져다 놓은 벌통에 벌들의 출입구를 제외하고 빈틈없이 소똥을 발라둔다. 벌들이 소똥 냄새를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벌통을 놓아두고 벌이 들어간 것이 확인되면 한밤중 또는 새벽에 지개를 이용, 벌통을 가져다 자신의 집 앞에 놓아둔다. 그것이 토종벌을 키우는 산골 사람들만의 노하우다.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이면 도달할 해산령까지 오는데 세 시간이나 걸렸다. 빼어난 비수구미의 가을단풍에 넋을 잃기도 하고, 뒤돌아 지나쳐온 풍경이 아쉬워 올라오던 길을 다시 내려가길 수차례 반복했기 때문이다.

11월말이면 이곳 비수구미에는 눈이 내린다.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 트레킹 코스로 비수구미 계곡을 추천해 본다.


태그:#비수구미, #파로호, #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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