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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돌아보니 올해에는 한국의 새로운 5년, 10년을 열어갈 일들이 있었다. 4월 총선이 있었고, 12월에 대선이 있을 예정이다. 4년마다 치러지는 총선과 5년마다 치러지는 대선이 한 해에 치러지기는 20년만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올해 총선과 대선은 '중대선거'의 성격을 갖는다. 통상적인 선거가 아닌, 국가의 미래를 정하고 사회의 틀을 잡는 선거라는 뜻이다. 중대선거의 대표적인 사례를 뽑자면, 루스벨트가 세계 대공황 속에서 '작은 정부론'을 버리고 '뉴딜 정책'을 내세워 1932년 대선에 승리해 미국 32대 대통령이 된 예를 들 수 있겠다. 즉, 올해의 총·대선은 차후 10년의 한국 '시대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가 되겠다. 뜨거운 논쟁과 담론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로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렸을 때까지(이에 대한 논쟁거리가 존재하지만) 40년 넘게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은 아무래도 모더니티의 중핵을 이루는 민주주의 탐구에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에는 현실참여가 수반된다. 이후 2002년에는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았고 2007년에는 보수세력이 10년 만에 정권을 잡게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1987년을 기점으로 사그라들었다고 생각했던 민주화 시대정신이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주요한 화두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1997년 IMF 이후 한국은 사실 경제불황의 긴 터널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듯 하다는 점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겉만 번지르르한 속 빈 강정 격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21세기의 10년대를 이끌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경제? 민주? 민생? 통일? 환경?

시대정신과 지식인

대선 즈음이 되면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 하나가 아마도 '시대정신'일 것이다. 대통령 후보 및 각 정당, 각 계층에서 '000'를 시대정신으로 제시하며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곤 하는 것이다.

지난 22일 문화계·영화계·미술계·종교계·학계 등 각계 인사 102명이 "정치개혁과 단일화가 곧 민주주의이자 시대정신"이라며 문·안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했다. '지식인' 인사들이 정치개혁과 정권교체의 기지를 내걸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의 심장에 화살을 겨눈 것이라 볼 수 있는 사례이다.

그렇다면 '시대정신'이란 무엇이고, 시대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 '지식인'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 이 책 <시대정신과 지식인>을 살펴보자. 우리 역사로 시야를 넓혀 지식인들이 어떤 시대정신의 토대 위에서 자기 시대에 맞서왔는지를.

<시대정신과 지식인>
 <시대정신과 지식인>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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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이란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와 양식 또는 이념을 말한다. 시대정신은 한 사회의 발전에서 북극성의 역할을 담당한다. (...) 이러한 시대정신을 주조하는 이들이 곧 지식인이다. 지식인은 지식 또는 진리 탐구를 자신의 직업으로 하는 이들이다.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를 독해하는,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게 지식인의 본분이며, 이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시대정신 탐구라 할 수 있다. (...) 인문·사회과학자들의 경우 그 탐구의 중대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자기 사회의 미래에 새로운 계몽의 빛을 비춰주는 것, 곧 시대정신의 모색에 있다." (본문 15~16쪽)

'시대정신'과 '지식인'에 대한 답이 되었는가? 시대정신이란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와 양식 또는 이념이며 지식인의 본분은 시대정신의 탐구이다.

이 책의 저자는, 지식인은 미래의 시대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시대와 불화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가진 존재일지도 모른다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즉, 지식인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가교가 되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의 지식인들

이 책에서는 24명의 한국 지식인들이 나온다. 그 기준은 자신이 속한 사회를 성찰하고 올바른 방향을 모색했는가, 자신의 시대가 주는 한계를 얼마나 극복하려 했는가 이다. 외국인이 아닌 순수 한국인 지식인들을 다뤘다는 점에서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순서대로 읊어보자면, 원효와 최치원, 김부식과 일연, 정몽주와 정도전, 이황과 이이, 박지원과 박제가, 정약전과 정약용, 이건창과 서재필, 최제우와 경허, 신채호와 이광수, 함석헌과 장일순, 황순원과 리영희, 박정희와 노무현.

리스트를 보다보면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테고, 이 사람이 왜 지식인이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테고, 왜 이 둘을 엮어 놓은거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요구하던 시기인 18세기, 조선시대 최고의 '문제적 지식인' 박제가와 박지원을 간략히 다뤄본다.

17세기는 새로운 철학과 사상이 대두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중세사회가 지나가고 근대사회가 대두되면서 새로운 시대정신이 요구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이때 조선은 아직도 이황과 이이로 대표되는 성리학을 송시열과 허목이 이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한계를 보였고 새로운 서양 문물과 사상이 들어와 실학파가 등장하는 조건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박지원과 박제가로 대표되는 실학의 이용후생파의 다른 이름은 북학파이다. 북쪽에 있는 청나라를 배움으로써 부국강병을 이룩하자는 것이 핵심. 박지원은 청나라 북경을 여행하고 '열하일기'를 내놓는다. 이 책은 문학을 넘어서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담고 있다. 청나라의 다양한 분야를 소개하고, 사회 전반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때 이미 '한국적 모더니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근대로 가는 길을 열어 젖힌 것이다. 박제가는 네 차례나 중국 연행을 다녀온 것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북학의'를 지었는데, 이 책에서 그는 청나라 문물을 소개하고 이를 과감히 수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즉각적이면서도 대범하게, 그리고 전방위적인 개혁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지원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지식을 탐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에 맞섰고 시대의 한계에 부딪혔으며 사회적인 실천에 앞장섰던 지식인의 모범이다. 그들의 글과 삶을 보며 질문을 던져 본다.

21세기의 첫 10년대를 이끌 시대정신은?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채 2달도 남지 않았다. 2012년 12월 19일에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는 현재(10월 26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3명이 등록된 상태이다.

지식인이라면 이번 대선에 누구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논쟁과 담론을 통해 새로운 시대정신을 모색하고 있을 줄 안다. 시대정신 탐구에서 꼭 필요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첫째, 생산적인 자기 부정이 필요하다. 둘째, 대안 모색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 셋째, 개혁과 혁신이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외치고 울부짖는 '개혁과 혁신'일까? 잘 모르겠다.

'시대정신'이라는게 특별한 건 아닐 것이다. 결국은 인간을 탐구하고 인간 사회의 발전을 위한 탐구를 하는 것이니까. 제일 중요한 건 '민생'이 아닐까. 거기에는 경제화와 민주화 가치가 모두 숨쉬고 있다. 원효대사와 경허대사의 삶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 한해서 지식인이 할 일이 비전을 제시하고 담론과 논쟁을 동반해 새로운 시대정신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지식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할 일은 '투표'이다. 어마어마한 비전과 담론, 논쟁의 홍수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 성심성의껏 투표를 하면 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시대정신과 지식인>, 김호기, 돌베개



시대정신과 지식인 - 원효에서 노무현까지

김호기 지음, 돌베개(2012)


태그:#지식인,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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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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