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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상임이사와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강기훈의 쾌유와 진실을 위한 후원콘서트'에 참석해 강기훈씨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상임이사와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강기훈의 쾌유와 진실을 위한 후원콘서트'에 참석해 강기훈씨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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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수천 회의 쪼그려 뛰기를 시키더니 온몸에 뻘뻘 땀이 흐르자 바닥에 누우란다. 숨이 차고 목이 마른데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내려 붓는다. 눈, 코, 입에 쏟아져 내린다. 그리고는 시커멓게 때 절은 구두 밑창으로 얼굴을 짓이긴다. 얼굴에 시커먼 땟국물이 흐른다. 일어서라더니 거울 앞에 세워 놓는다. 눈을 크게 뜨고 너의 꼬라지를 보라고 한다." - 김영균 열사 추모사업회 누리집

경북 안동대에서 김영균이 분신한 얼마 뒤였다. 집에서 받은 용돈으로 후배들에게 밥이나 먹이자고 길을 나선 김영균의 한 선배는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들에 의해 차에 태워졌다. 그는 어딘가로 끌려 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왼쪽 뺨은 찐빵 두 개 붙여 놓은 것"처럼 맞아서 벌겋게 부었고, 온몸 구멍마다 물기가 스며나올 정도로 육체적 고통이 가해졌다고 한다. 그는 분신의 배후를 요구받았고, "너가 아니면 (분신한 사람에게) 라이터를 건넨 그 누군가의 이름을 대라"는 질문을 받았다.

분신배후자가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 친 시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20여 일. 그는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일 없습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는 분신 배후 대신 그들이 만든 이적단체 조직표에 친구, 동지 이름을 맞춰준 뒤에야 유치장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조직표에 이름이 오른 20여 명은 자취방에서, 병영의 내무반에서 줄줄이 기무사로 안기부로 잡혀갔다.

학교에서 도망치듯 탈출한 나는 오후 7시 뉴스에서 이적단체 수배자가 된 내 이름과 대면했다. 분신 배후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이적단체 구성원이 되었던 악마의 시간. 1991년의 봄은 그토록 처절하고 무서웠다.

1991년, 강경대의 타살로 몰아친 분신 정국. 전남대에서 박승희가, 안동대에서 김영균이, 경원대에서 천세용이 2~3일 사이를 두고 온몸에 시너를 붓고 몸을 불살랐다. 5월 8일에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했다. 총 11명의 젊음이 노태우 정권에 의해 타살되거나 분신 사망했다.

노태우 정권과 물러설 수 없는 투쟁. 학생들과 시민은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목놓아 불러가며 싸웠고, 위기에 몰린 정권의 탄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보수 언론의 왜곡보도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유서를 대필하고 혁명을 위해 동지 죽음을 모의했다는 말도 안 되는 분신배후 조작은 일찌감치 예견됐다. 그해 5월 5일 시인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으로 분신을 비판했다. 서강대 박홍 총장은 '죽음의 블랙리스트'를 거론하며 분신배후를 기정사실화했다.

5월 8일 검찰은 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기훈을 김기설 유서대필 등 자살 방조 혐의로 수사했다. 이제 존재하지 않은 '분신 모의'는 사법 심판 대상이 되었다.

강기훈이 아니어도 '먹잇감'은 필요했다

강기훈씨.
 강기훈씨.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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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엉터리 필적 감정은 강기훈의 유서대필, 분신배후의 확정적 증거로 받아 들여졌다. 6월 3일 한국외대에서 터진 '정원식 총리서리 밀가루 세례'는 유서대필 사건과 맞물려 민주진영을 '인륜을 저버린 패륜적인 범죄 집단'으로 낙인 찍었다. 6월 20일 시·도의회의원선거에서 민자당은 전국에서 564명의 당선자를 내 시도의회 2/3을 장악했다.

강기훈에게는 징역 3년이 확정되었다. 그해 11명의 분신·타살에는 '죽음의 배후' 의혹이 덧칠해졌다. 동지의 죽음에 분노했던 수많은 사람은 조직사건에 연루되거나 스승에게(외대 교수에서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된 정원식) 계란과 밀가루를 퍼부은 패륜아로 수배, 구속됐다.

분노는 넘쳐났으나 정권의 음모는 치밀했다. 유서대필과 분신배후 조작 음모는 다른 곳에서도 벌어졌다. 1991년 5월 10일 전남대에서 분신한 노동자 윤용하의 죽음을 두고도 당시 공안당국은 일을 꾸몄다.

윤용하의 형에게 접근해 "대학생들이 동생에게 술을 많이 먹여 만취하게 한 후 기름을 부어 죽이고 유서를 대신 써준 것으로 하자"고 회유했다. (관련 기사 - '유서대필' 낙인, 대법원 언제까지 외면할건가) 내 학교 동료가 20여 일 구타와 고문으로 유서대필과 분신배후자로 강요받은 것 또한 정권의 음모였다. 

당시 정권에게 분신배후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운동진영의 도덕성을 먹칠하고 정권의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먹잇감, 정권에게는 그것이 필요했다. 강기훈이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분신배후자가 되어야 했다. 또 누군가는 스승에게 밀가루와 계란을 던진 패륜아가 되어야만 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트라우마. 박래군 인권재단 상임이사는 한 강연에서 "1991년을 체험한 사람 누구나 하나같이 큰 트라우마를 지닌 채 살아간다"고 말했다.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당시 동지와 친구를 잃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고문받고 수배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고통이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군사정권의 희생양으로 동료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누명을 쓴 채 3년 옥살이한 강기훈은 어땠을까. 끔찍한 형벌이었으리라. 간암으로 투병중이라는 강기훈.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그에게 몹쓸 병을 안긴 건 아닐까?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에 딴지 거는 새누리당

대법원은 3년의 심리 끝에 지난 19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재심 결정을 내렸다. 더 끌지 않고 재심 결정을 내린 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 자체가 강기훈씨의 무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에 낙관할 일은 아니다. 하루빨리 재판이 속개되어 시시비비를 가리면 될 일이지만, 현실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당시 유서대필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 중 일부는 현재 새누리당으로 자리를 옮겨 박근혜 대선 후보를 돕고 있다. 

일단,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기춘은 현재 박근혜 후보 측근인 '7인회' 멤버다. 수사검사로 참여했던 남기춘은 현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부장검사로서 수사를 지휘했던 강신욱은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법률지원특보단장을 맡았다.

남기춘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 위원은 대법원의 재심 결정에 대해 최근 "당시 수사 팀의 면면으로 봐서 수사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올해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재심결정 대해 "소신 없는 결정" "사법부 자신들이 고생해서 내린 판결에 대한 자해행위" 운운하며 대법원을 비판했다. 여당이 사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은 너무 당연하다. 대선에 나서 대통합을 호소하는 박근혜 후보. 진실이 있어야 용서와 화해가 있고 대통합으로 갈 수 있다. 모처럼 이루어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재심결정. 딴지 걸며 막기보다는 진실로 가는 길에 힘을 보탤 일이다. 그게 대통합의 첫걸음이다.


태그:#강기훈, #유서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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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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