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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판결 32번째 이야기다.

① 거짓 112신고자, 형사처벌에 손해배상까지
   (수원지법 안양지원 10.18. 판결, 부산지법 10.11. 판결)
② 낙지 질식사, 1심 법원 "살인사건" 판단(인천지법 10.11. 판결)
③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 시작(대법원 10.19. 결정) 

[판결 ①] 거짓 112신고자, 형사처벌에 손해배상까지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1년 10,861건을 비롯, 해마다 1만 건 이상의 거짓신고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장난전화, 그냥 장난에 불과할까. 불행하게도 최근엔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1년 10,861건을 비롯, 해마다 1만 건 이상의 거짓신고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장난전화, 그냥 장난에 불과할까. 불행하게도 최근엔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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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죠? 저 지금 납치되었어요. 모르는 아저씨가 검정색 승용차에 저를 잡아넣었다고요. 빨리 좀 구해주세요!"

지난 4월 저녁 112에 다급한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지는 안양의 한 공중전화 부스. 경찰은 인력 50명을 비상소집하여 일대를 샅샅이 수색했다. 약 3시간에 걸쳐 범죄용의차량과 신고자를 찾아 헤맨 경찰, 헛수고만 했다. 애초에 납치범은 없었다. 알고보니 김아무개(21, 남)씨가 장난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1년 1만861건을 비롯, 해마다 1만 건 이상의 거짓신고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장난전화, 그냥 장난에 불과할까. 불행하게도 최근엔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먼저 형사사건이다. 김씨는 공무집행방해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보통 공무원을 폭행, 협박하는 방법이 사용되지만 법에서는 거짓(위계)으로 공무를 방해할 때도 처벌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형법 제137조(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위계로써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방해한 자는 5년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형법 137조)

법원은 "허위신고를 하여 경찰이 비상출동하고 주변을 수색하는 등 경찰력의 낭비를 가져온 점은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징역 6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우발적인 범행인 점을 참작"하여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함으로써 김씨는 가까스로 교도소행을 면했다(지난 8월 수원지법 안양지원이 내린 판결에 대해 김씨가 항소하여 이 사건의 2심은 수원지법에서 심리중이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김씨는 민사상 책임도 지게 생겼다. 국가와 경찰들은 김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8일 법원(수원지법 안양지원)은 "김씨의 허위신고 때문에 차량 유류비와 경찰들의 시간외수당이 지출되었으며, 출동경찰들은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우선 유류비와 공무원의 시간외 수당으로 지출한 50여 만원을 김씨가 국가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한 법원은 "경찰들이 본연의 업무를 중단하거나 비번이나 휴무 상태에서 비상이 걸려 수색작업에 투입된 뒤 고도의 긴장상태에서 탐문수사 및 검거활동을 실시함으로써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출동 경찰 50명에게는 개인당 10만~30만원까지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결국 김씨가 국가와 경찰들에게 손해배상으로 물어줘야 할 돈은 800여만 원이나 되었다.

지난 11일에도 유사한 판결이 있었다. 부산에 사는 최아무개씨는 "부산 앞바다에 잠수함이 나타났다"고 112에 허위신고를 했다가 들통나고 말았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했다. 또 120시간의 사회봉사명령도 함께 내렸다. 장난 신고전화, 처벌은 장난이 아니다.

[판결 ②] "낙지질식사 아닌 살인사건" 무기징역 선고

낙지를 먹다 질식사한 사고사건인가, 아니면 보험금을 노린 애인의 살인사건인가.

2010년 20대 여성이 사망했다. 죽음의 원인을 두고 피고인과 수사기관, 법원은 2년 넘게 공방을 벌였다. 1심 법원은 질식사가 아닌 살인사건이라고 판단했다.

결혼을 앞둔 연인 사이인 A씨(남성)와 B씨는 2010년 4월 주점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 새벽 3시경 모텔에 들어갔다. 그들의 손에는 산낙지 4마리와 술이 들려 있었다. 1시간이 지났을 무렵 A씨는 객실 프론트로 전화해 "여자친구가 낙지를 먹다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신고 후 모텔 직원이 방에 들어갔을 때 B씨는 평온한 표정으로 잠을 자듯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B씨는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숨지고 말았다. 의료진은 호흡곤란으로 인한 질식사로 보았다.

마지막 순간 B씨와 함께 있었던 A씨는 "함께 산낙지를 먹다가 질식사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사건은 사고사로 결론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A씨가 보험수익자로 거액의 보험금을 지급받은 사실 등을 알게 된 B씨 유족들의 문제제기와 수사기관의 재조사로 A씨가 다시 용의선상에 올랐다. 검찰이 올해 4월 A씨를 살인죄 등으로 기소하면서 법정공방은 시작됐다.

그런데 B씨의 주검은 2010년 부검도 하지 않은 채 화장을 해버린 뒤였다. 사건이 난관에 부딪히는 듯했으나 사건을 맡은 인천지법은 간접증거만으로도 유무죄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살인죄 등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의 경우에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도 유죄를 인정할 수 있고, 피해자의 사체가 멸실된 경우라 하더라도 간접증거를 상호관련 하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살인죄의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10번이 넘는 재판기일을 열고 20명이 넘는 증인들을 법정에 부르는 등 6개월간의 심리 끝에 법원은 A씨가 살인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법원은 우선 "B씨가 산낙지를 먹다 질식에 이를 정도로 호흡곤란을 느꼈다면 고통으로 강하게 몸부림쳤을 것"인데도 "B씨가 반듯하게 누워 있었고 술자리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상황은 A씨의 주장과 양립할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 B씨가 누워있던 곳이 모텔방 술자리와 상당이 떨어진 곳인 점 ▲ B씨가 통낙지를 먹었다고 하다가 낙지다리를 먹다가 질식했다고 하는 등 A씨가 말을 바꾼 점 ▲ 산낙지를 제대로 자르지도 않고 먹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정 등도 미심쩍다고 보았다.

법원은 "B씨가 질식에 이른 이유는 낙지로 인한 질식의 가능성을 제외하면 피고인의 행위 외에는 다른 원인을 상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서 "B씨의 신체나 사건 현장에는 당연히 나타나야 할 격렬한 몸부림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며 "결국 B씨는 만취 상태에서 타월 등으로 코와 입을 막는 등 호흡을 곤란하게 하는 A씨의 유형력 행사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심폐기능 정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리하자면 A씨가 술에 취한 B씨의 입과 코를 부드러운 천으로 막아 살해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사건 전후 A씨의 정황도 설명했다. 재판부는 ▲ 별다른 수입 없이 채무변제독촉까지 받으면서도 고급차를 구입하는 등 경제적 목적의 살해동기가 있었고 ▲ B씨가 월 13만원짜리 고액의 보험을 A씨를 통해 가입한 뒤 수익자를 A씨로 변경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 휴대전화가 있던 A씨가 모텔종업원에게 119신고를 부탁한 것은 시간을 끄는 동시에 목격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이 간다고 판단했다.

특히 ▲ B씨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보험설계사에게 사망보험금을 문의하고 다른 여성과 교제를 지속하였을 뿐 아니라 보험금 2억원을 수령한 뒤 B씨의 부모와 연락을 끊은 사실 등은 "결혼을 앞둔 연인을 갑작스런 사고로 잃은 사람의 처신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인천지법은 11일 "A씨는 보험금을 노리고 연인관계에 있던 B씨를 살해하였다"며 "A씨를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기로 한다"며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사건은 항소심인 서울고법으로 다시 올라갔다.

[판결 ③]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 개시...사건 발생 21년 만에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법원이 재심을 시작하게 됐다. 재심신청을 낸 지 4년만이자 사건 발생 21년 만이다.

대법원은 19일 서울고법의 재심개시결정에 대해 검찰이 낸 항고를 기각했다. 재심이란 유죄 확정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있을 경우 이를 바로잡기 위한 비상구제절차이다.

'유서대필 사건'은 1991년 5월 8일 당시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을 맡았던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 등을 외치며 분신한 것이 발단이 된 사건이다. 검찰은 전민련 동료인 강씨가 유서를 대필했다면서 그를 자살방조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법원은 국과수 등의 감정결과를 토대로 유서대필 혐의를 유죄로 인정,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선고, 확정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당시 2006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의 재조사를 의결하였고, 필적 재감정결과와 관련자 증언 등 1년여의 조사 끝에 2007년 11월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는 진실규명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당사자인 강씨는 2008년 서울고법에 재심청구를 했다.  

서울고법은 2009년 9월 15일 "재심사유가 인정된다"며 재심개시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검찰은 이에 불복, 항고하였으며 최종 판단을 맡은 대법원은 3년 넘게 결정을 미뤘다가 지난 19일에야 재심개시결정이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고법에서 재심재판이 진행될 전망이다.   

하지만 결정문에 나타난 2심(서울고법)과 대법원의 판단에는 약간 차이가 있다. 서울고법은 사망한 김씨의 제출한 필적이 담긴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 등 새로운 증거를 발견하여 국과수 등이 다시 감정을 한 결과에 주목했다. 특히 진실화해위의 재조사를 통해 국과수는 유서와 강씨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감정을 내렸던 1991년과 달리, 2007년 재감정에서는 유서가 고인의 필적임을 인정했다. 유죄인정의 결정적 근거가 됐던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뒤바뀌자 서울고법은 이를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진실화해위의 감정결과가 종전(1991년)의 국과수 감정결과보다 객관적으로 현저히 우월한 지위에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전대협 노트 등의 발견 및 보관경위에 의문이 남아있고 전대협 노트 등이 김기설의 필적이라는 예단 아래 대부분의 감정이 진행된 것으로 의심되는 이상, 섣불리 감정결과에 신빙성을 부여하거나 증거가치가 객관적으로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대법원은 과거 1991년 재판당시 국과수 등의 감정결과가 잘못됐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문서감정 결과를 둘러싸고 또다시 법정공방이 예고되는 부분이다. 

대법원은, 다만 국과수 문서감정인들의 법정증언 중 일부가 허위라고 본 서울고법의 판단은 타당하다고 밝혔다. 유서대필 재심사건은 우여곡절 끝에 사건 발생 21년이 지나서야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생활법률 책 <생활법률 상식사전>(2010)과 <생활법률 해법사전>(2011)을 썼습니다.



태그:#유서대필, #낙지질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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