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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자신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사과를 한 지 24일로 꼭 한 달이 됐다. 이때까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선 언급을 회피하거나 비교적 완고한 입장을 취해온 박 후보가 공식적인 사과를 표명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사실 박 후보의 역사인식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논란이 되어왔고, 올해 대선국면에선 새누리당 경선 무렵부터 다시 한 번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7월, 박 후보가 "5.16은 아버지의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 발언해 새삼 5.16을 둘러싼 논쟁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이후 박 후보는 역사인식 문제와 관련해 명쾌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어물쩍 넘어갔다. 그러면서 "정치권이 민생을 제쳐놓고 (과거사) 문제를 갖고 싸우고 옳고 그르니 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히며 정치권과 언론에 '훈수'를 두었다. 민생을 내세우는 화법을 통해 이 문제에 있어 결코 수세에 몰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박 후보 본인의 이러한 입장 탓에 논란은 여전히 잠재된 불씨로 가라앉은 채 지속되었다.

그런데 정작 이 '잠재된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것은 의외로 박근혜 본인이었다. 9월 10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박 후보가 "유신에 대해서도 많은 평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아버지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이렇게까지 하면서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 말 속에 모든 것이 다 함축돼 있다. … (인혁당 사건은)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답을 제가 한 적이 있다"고 발언했던 것이다. 이날의 인터뷰 전문을 확인해보면, 박 후보는 아버지의 행적에 대해 거듭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인혁당사건마저도 판결이 두 가지이니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식으로 답변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발언이 알려지자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당장 박 후보의 지지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박 후보의 역사인식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어오긴 했지만 인혁당사건'마저' '아버지의 책임'을 물타기하는 모습을 보며 인혁당 사건을 기억하는 많은 시민들이 그야말로 '분노'를 느꼈던 것이다.

다 알다시피 74년 2차 인혁당 사건은 국가폭력의 차원을 넘어 박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야수적 학살만행'이었다. 일단 이 사건 자체가 처음부터 날조된 것이었고(그래서 지난 2007년 무죄가 선고된 바 있다), 주모자로 구속된 이들 가운데 8명이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18시간 뒤 전격적으로 사형에 처해졌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 전무후무한 비극이 이 땅에서 펼쳐진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으로 구속된 이들에게 "창자가 다 빠져버릴 정도"의 극심한 고문이 가해진 사실이 뒤에 밝혀졌다.

그래서 이 사건은 한국 사법부 역사의 치명적인 오점으로 기록되었고, 국제법학자협회에서도 이 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정했다. 엄청난 충격과 고통 속에 빠진 유족들에게 박 정권은 고문의 흔적을 지우고자 시신을 화장해서 내주거나 유족들이 화장을 원치 않을 경우 시신조차 내주지 않는 야만성을 보였다. 이처럼 인혁당 사건은 박 정권의 비인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박 후보가 단지 박정희가 '아버지'라는 이유로, 분명하게 객관적 사실이 밝혀진 이 사건마저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많은 사람들이 '심정적'으로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잊혀지고 죽어있다고 여겨진 역사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다시금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박 후보의 인혁당 관련 발언은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5.16이나 유신을 둘러싼 인식과는 결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 사건은 비록 대중들이 '박정희 향수'에 젖어있고, 또 그에 기대어 박 후보의 지지가 유지될 수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이 땅 위에 박정희식의 비인간적이고 야수적인 폭압통치가 재현되는 것마저 용납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런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상황에 떠밀려 마침내 9월 24일 박 후보가 사과를 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찌 보면 박 후보의 사과는 본인이 자초한 일인 셈이다. '정치 9단'인 박 후보가 어찌하다 이런 '자업자득'의 결과를 초래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박 후보가 박정희의 비인간적 폭압정치를 정서적, 심정적으로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인혁당 사건 같은 경우 분명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박 후보가 그와 같은 식으로 발언한 건 박 후보 스스로가 이 사건이 주는 분노감에 심정적으로 공감하고 있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비록 박 후보가 박정희의 통치시대를 최측근에서 겪었다 할지라도, 그 시절 폭압적 독재에 대해 느꼈던 다중의 감각에 대해선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9월 24일에 발표된 박 후보의 사과문에서도 이런 점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사과문을 읽어 보면, 박 후보의 개인적인 슬픔이 오히려 유신독재로 고통 받았던 이들의 아픔을 감지하는 잣대가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피해자의 입장에서 아픔과 고통을 생각해보는 사고가 결여되어 있고, 오직 자기중심의 기준만이 담겨있는 것이다. 또 이 사과문에선 아버지의 독재가 오히려 아버지 개인의 삶으로는 '불행한 것'이었음이 강조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아버지는 '불행하게도' 국가 안보와 경제발전을 위해 독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고, 그런 관점에서 아버지도 피해자라는 투이다. 이러한 논법에선 자연히 박정희의 폭압정치가 자신의 영구집권 보장을 위한 것이었음이 빠질 수밖에 없고, 또 안보를 빌미 삼아 수많은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고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며 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사실들이 빠질 수밖에 없다. 정권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박정희가 저질렀던 수많은 인권유린 사태들이 '경제 발전'과 '국가 안보'를 위한 일로 '둔갑'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사과문이 발표된 직후 인혁당 사건 유가족들은 오히려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시절 정권에 의해 직접적인 피해와 고통을 지낸 분들이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내용으로 채워진 이 사과문을 두고, 언론과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이전보다 진전된 입장'이라 평가했다. 하지만 이 사과문의 본질은 '사과 아닌 사과'로 볼 수밖에 없다. 사과의 직접적인 대상자들에게 전혀 위로가 될 수도 없고, 되지도 못한 사과가 무슨 사과란 말인가?

인혁당 사건 피해자(김용원) 유족 가운데 한 분인 김재열씨는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 후보의 사과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치 (이게) 일본 왕이 말이지, 무슨 금석의 어쩌고 하는 그런 말처럼. 일본 천황이. 그러니까 당사자에게 직접적인 사과, 직접적인 사죄를 해야지, 무슨 뭐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 발언은 박 후보 사과문이 지닌 본질에 대해 그 정곡을 정확히 찌른 것이었다.

2.

아무튼 박 후보의 사과 표명 이후 그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더 이상 언론에서도, 역사학계에서도, 야당에서도, 박 후보의 역사인식을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신 박 후보 측은 다시 대선 정국에서 공세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른바 '신북풍'을 일으키며 대선 정국의 이슈 주도권 잡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새삼 한 달이 지난 이 시점에서 박 후보의 사과를 거론해야 하는가. 그것은 이 시점에 와서 박 후보의 사과에 담긴 진정성을 따져보려는 의도가 아니다. 사실 애초부터 진정성을 따지는 그런 식의 논의는 무의미했다. 그리고 그 진정성은 이미 지난 한 달 동안 박 후보가 보여준 행보로도 충분히 입증됐다. 박 후보는 이 사과 발표 후 지난 한 달 동안 사과에 걸맞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행동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과 표명 직후 박 후보가 말춤을 따라 추었다는 황당한 소식만이 언론에 보도되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진정성 문제보다 중요한 점은, 박근혜 후보의 현대사를 보는 시선이 오늘의 대선 국면에서, 특히 지난 한 달 동안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진단해보는 작업일 것이다.

앞에서 글쓴이는 정치 9단인 박 후보가 왜 인혁당 사건 관련 발언으로 물의를 초래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이유로 박 후보 스스로가 박정희 시기 폭압정치의 희생자와 그 희생자들을 바라보는 수많은 국민들의 심정에 대해 가슴으로 공감하지 못한다는 점을 든 바 있다. 하지만 이 점만이 그 이유의 전부라 볼 수 없다.

박 후보는 그동안 과거사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라는 말을 애용해왔다. 그리고 지난 9월 4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후보는 "역사인식이 현재 결정이나 미래 행보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그것은 어거지"라고 답한 바 있다(사실 현재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글쓴이는 개인적으로 이 사실을 접하고 나서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여기서 박 후보의 역사를 바라보고자 하는 시선과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들 발언 속에서 일관되게 엿볼 수 있는 점은 박 후보가 역사를 마치 '박제화', '화석화'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동시에 '역사의 판단'을 '절대적 소비처'로 만들어 버리고 있음도 엿볼 수 있다. 여기에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차단하려는 전략이 담겨있다. 즉 절대적인 가치인 역사의 판단을―물론 박 후보의 화법 속에서만 그렇다― 내세워 자신을 둘러싼 과거사 논란, 특히 '아버지 시대'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고자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아버지 시대의 잘못된 일도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된다는 식으로 넘어감으로써 자신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물론 박 후보 본인도 유신시절에 유신체제 홍보에 적극 나섰던 게 사실이기에 이러한 화법은 박 후보 개인의 역사적 행적을 감추는 데도 효과적이다. 또한 아버지 시대를 논쟁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은 최소한 많은 이들의 아버지 시대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을 막을 수 있고, 더 나아가 그것을 미화하는 데까지 미칠 수 있다. 한마디로 역사를 화석화시킨다는 것은 역사를 죽이겠다는 의미다. 즉, 역사의 현재적 영향력을 부정하고 차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역사의 현재적 영향력을 부채질하고 불러일으키는 자는 바로 박 후보 본인이다. 박정희 시대를 내면화하고, 그 시대의 야만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못하는박 후보 스스로가 과거사에 대한 인식 논란을 촉발하는 장본인인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그래서 과거는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고 현재와 미래가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박 후보의 논법이 항상 이런 식이다. 하지만 역사와 현실은 그렇게 단절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분명하게 말해 박 후보의 역사인식은 현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 후보의 역사인식은 그의 민주의식이나 정치의식과도 연관된다. 오늘날 왜 많은 이들이 역사를 읽고 공부하는가. 박 후보의 논리대로라면 역사는 골동품일 뿐이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삼엽충 화석에 불과한 것인데도 말이다.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박 후보는 역사를 화석화시킴으로써 대권을 잡으려는 자에 지나지 않다. 그리고 박 후보가 역사를 화석화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 자체가 역사의 현재성을 적나라하게 말해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지난 한 달 동안 대선국면에서 박 후보 측이 보여준 여러 행태들은 역사가 결코 화석화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점을 이어 살펴보자.

3.

잘 알다시피 박정희가 권력 강화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곧잘 써먹은 수법이 있다. 바로 '북풍'이다. 박 정권은 재임 기간 내내 끊임없이 북한 남침 위협론을 설파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병영국가 체제를 강화하며 박 정권 체제를 강화해나갔다. 교련과목 도입, 주민등록제도 실시 등도 모두 그 일환이었다. 그리고 한일회담 반대투쟁이나 유신 반대투쟁으로 정권이 위기에 몰렸을때 어김없이 간첩단 사건을 조작했다. 1, 2차 인혁당사건, 동백림사건, 민비연사건 등등.. 그리고 유신체제를 수립할 때는 북한 위협론만으로도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이른바 '데탕트 위기론'까지 들먹였다.

하지만 당시 미국 측에서도 평가했듯 북이 곧 남침을 해올 것이라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한국군은 충분한 전쟁 억제력을 지니고 있었다. 생각해보라. 만일 북의 남침 위협이 그렇게 심각한 것이었다면 어떻게 베트남파병이 이루어질 수 있었겠는가. 또 당시 북은 막대한 군비 지출로 경제발전이 지체되고 있던 상황이었고, 그래서 72년 이후락 중정부장을 만난 김일성 수상은 북이 전쟁을 도발할 의도가 없음을 명확히했다. 그럼에도 박 정권은 전쟁의 위험을 들먹이며 뜬금없이 유신체제를 수립했다. 물론 박 정권만 그랬던 건 아니다. 한국의 수구세력들은 역사적으로 늘 그렇게 해왔다. 북한의 존재를 근거로, 조작된 안보위기론과 간첩단 사건을 내세우며 국내의 민주화 흐름을 차단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태의연한 수법이 지난 한 달 동안 박 후보 측에 의해 다시금 불붙고 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10.4정상회담 당시 NLL을 포기하는 식의 발언을 했다며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노 전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했다는 근거가 전혀 없고, 또 근거가 될 회담록 같은 것을 현재로선 공개하거나 찾을 수조차 없다는 점일 것이다. 심지어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 조차 뒤에 가선 교묘한 말바꾸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이 문제를 10.4선언이 발표된지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제기하는가. 이것은 누가보아도 정략적인 공세이고 거짓말이다. 어찌보면 근거를 논할 수 없기에 논란의 대상조차 될 수없는 문제인 것이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많은 사람들이 새누리당의 이런 공세를 진실로 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정략적 공세는 만일 박 후보가 당선될 경우 향후 남북관계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더구나 노 전대통령이 비극적인 선택을 하도록 몰아간 정치세력들이 그에 대해선 한점 사과나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고인을 정략적 공세의 대상으로 삼으며 욕되게 하는 것은 너무나 반인간적이고 반도덕적이다. 새누리당 사람들에게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언제든지 씹었다가 뱉을 수 있는, 껌과 같은 존재인가? 이 같은 작태는 봉하마을을 참배하며 국민대통합을 내세운 박 후보의 언행과 행적이 가증스러운 것에 지나지 않음을 웅변해줄 뿐이다. 국민대통합은 커녕 증오와 혐오의 정치판만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박 후보의 이런 모습을 보며 현대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들은, 자연스레 박정희 시대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도 정치적 이유로, 간첩이 아닌 사람을 간첩이라 조작하고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것은 분명 정치적 음모였다. 극우반공이데올로기와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특정인을 간첩이라 조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매장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수법 자체가 반인간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박 후보 측의 논법과 수법은 이와 전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정수장학회 문제도 그렇다. 다 알다시피 정수장학회는 박정희가 중심이 된 쿠데타 세력이 부산 지역 기업인 김지태의 부일장학회 재산을 강탈한 장물이다. 그런데 이 장학회를 장악한 인물이 박 후보의 최측근인 최필립이었다. 그리고 박 후보는 오랫동안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맡아 억대연봉을 챙겨왔다. 그래서 박 후보를 둘러싸고 정수장학회는 두고두고 논란이 되어왔다. 그런데 최근 정수장학회 측에서 그동안 보유해 온 문화방송 및 부산일보의 주식을 비밀리에 매각하려 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15일, "(정수장학회가 MBC 지분을 팔아서) 지역발전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는데 그것을 가지고 야당이나 저나 법인에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은 없다"고 말하며 정수장학회 측을 옹호했다. 그러나 장물을 마음대로 처분하는 것은 분명 범죄다. 정수장학회 주식 매각을 추진한 이들의 의도는 누가봐도 분명하다. 즉 이를 통해 박 후보가 이 문제로 겪는 정치적 부담을 덜게 하고, 부산 지역에서 박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려는 의도인 것이다. 더구나 왜 공영방송이 앞장서 박 후보를 지지하는가? 이처럼 정치적, 도의적으로 책임져야 될 일을 밀실에서 흑막처리 하며 범죄적 방법으로 덮어버리거나, 언론사를 종속시켜 홍보 도구로 삼는 수법도 박정희 독재정권의 수법을 쏙 빼닮았다.

한편, 지난 8월, 박 후보 측에서 안철수 무소속 후보를 사찰했다는 의혹이 언론에 의해 제기된 바 있었다. 이 시점은 안철수 후보가 아직 정식으로 대선 후보에 나오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래서 크게 논란이 되었으나 이후 박 후보 측과 새누리당은 흐지부지 넘어갔다. 여기에 더해 지난 9월 초에는 새누리당 정준길 공보위원이 안 후보를 협박했다는 폭로가 나왔고, 이에 정준길의 전화통화를 통한 협박을 직접 보고 들었다는 택시기사의 증언까지 이어졌다. 이런 의혹들은 아직도 명쾌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채 진행 중인 문제이다. 그럼에도 박 후보나 새누리당 측에선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으며 그냥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혹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박 후보 측의 사고나 행위가 박정희 시대에서 한 발 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일상적인 사찰과 감시, 협박 역시 역대 독재정권의 정권 유지 비법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정보 정권이라 불릴 정도로 재임기간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한 사찰과 감시를 행했다. 언론 등 사회 도처에 정보원, 감시원들을 깔아놓고 국민을 감시했다. 다 알다시피 여야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유신체제 아래에선 긴급조치 9호에 의해 일반 민간인들까지도 사찰과 감시의 대상이 됐다. 그 주체가 바로 악명높은 중앙정보부였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대통령을 욕하거나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반국가행위로 몰려 징역을 사는 시대가 됐다.

  4.

그러면 도대체 왜 21세기에 박 후보 측에선 이런 구태의연한 대선 전략들을 연이어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그 근본 원인가운데 하나가 바로 박 후보 및 새누리당의 역사인식이다. 박정희 시대의 반민주성과 야만성을 부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국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정도로 여기는 박 후보와 새누리당의 역사인식이 이런 식의 구태의연한 행보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정치인의 역사인식은 곧 현실인식에 다름아니다. 더구나 현대사는 현재사다. 참여정부시기,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모순들이 한국사회의 진보적 개혁을 가로막는 역사적 조건이 된다는 의식에서 과거사 청산을 도모했던 반면, 박 후보와 수구세력들은 과거사 청산은 사회통합과 안정을 저해하고 미래지향적이지 않다는 식으로 공세를 펴며 과거사 청산을 극렬하게 방해했다. 그들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 자체를 막으려 했고, 장막을 치려 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아픔은 치유해야 하는 것이고, 그 아픔을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성숙해질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아픔을 되돌아보지 말자고 했다. 아픔은 과거의 것이고, 과거를 되돌아보는 건 소모적일 뿐이라 주장했다. 그러면서 참여정부가 민생을 외면하고 있다고 공세를 폈다. 그러더니 그들은 조금 뒤부터 한국 현대사를 일본 제국주의와 이승만, 그리고 박정희에 의해 이끌어진 '성공의 역사'라 주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이 이런 식으로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한국현대사에 남겨진 수 많은 아픔과 상처의 가해자였고, 또 그것을 반성하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박 후보 측과 새누리당은 '범죄'도 선거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첨단시대를 달리고 있는 21세기의 정치판을 '음모'와 '술수'로 먹칠하는 작태는 우리 시대를 부정하는 것이자, '국민의 주권'을 부정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선거를 민중의 정직한 판단과 선택에 맡기지 않고, 자신들의 권력과 조직적 힘을 동원해 민중의 정직한 선택을 음모로 가로막으려 하는 작태는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헌법이 작동하는 우리 사회와 체제를 뒤엎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것. 이게 박정희 시대를 비롯한 역대 한국의 독재정권이 남긴 유산이다. 그리고 지금 박 후보의 발언과 행보들은 그 스스로가 여전히 이러한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와 같음에도 박 후보는 역사인식의 현재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어거지'라 뇌까릴 것인가.


태그:#박근혜 역사인식, #인혁당 사건, #아버지 박정희, #가해자와 피해자, #북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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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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