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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글이 '나는 세입자다' 공모의 성격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현 상황만 놓고 보면 우리는 대한민국 현형 법이 정한 정당한 세입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니까요. 그렇지만 어쨌든 우리는 세입자입니다. 대한민국의 공인 부동산 업체를 통해 정당한 임대차 계약을 맺고서 집에 들어왔고, 전세든 월세든 상당한 액수의 돈을 주고 집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그 누구보다도 심하게 세입자의 설움과 억울함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오든 간에 2012년 10월 중순, 이 시간 우리가 세입자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습니다. 법원에서 우리를 '불법 점유자'라고 낙인 찍고,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주지 않고 내쫓는다고 해도 말입니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귀향 선언

지난 8월 21일 오후 서울의 한 부동산 앞
 지난 8월 21일 오후 서울의 한 부동산 앞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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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은평구 응암동의 한 오피스텔에 들어온 날은 2010년 7월 29일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이야기할 복잡한 문제의 연원을 따져보자면 그 시작은 전라도 무안 출신인 홀어머니께서 갑작스럽게 귀향 선언을 하신 것부터겠지요. 그때까지 은평구 역촌동의 한 빌라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던 저는 어쩔 수 없이 동네 옆 골목에 살던 두 누나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저도 자주 놀러 가기도 했기에, 그다지 큰 문제가 없겠거니 생각하면서 보금자리를 옮겼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작은 언덕 위에 있는 그 집은 상당히 좁은 데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습니다. 게다가 모기와 바퀴벌레까지 많아 1년 정도 생활하고 나니 하루빨리 그 집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의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2010년 7월 전까지 대략 100가구 정도의 집을 둘러봤습니다.

서울에서도 전셋값이 가장 싸다는 은평구, 그중에서도 빌라나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불광·역촌동 등을 훑고 다녀도 마땅한 집이 없었습니다. 사실 까다로운 큰 누나의 안목을 만족시켜줄 만한 집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런 집조차도 누나네 집 전셋값으로는 값을 치르기 턱없이 부족해 마이너스 통장이나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급기야는 '둘이 갈라서고 한 명은 원룸 오피스텔에 들어가고, 다른 하나는 지방으로 가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생활비가 두 배로 는다는 계산이 서 갈라서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이사 예정일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서울을 벗어나 지방으로 가자'는 누나의 말에 따라 경기도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마지막으로 인터넷 부동산 카페를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네이버의 유명한 부동산 까페에 아주 싼 전셋값의 오피스텔이 떡 하니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진만 봐서는 알 수 없지만, 방도 크고 깨끗했으며 대형마트가 길 건너편에 있었습니다. 위치와 교통도 좋았습니다.

7000만 원 주고 들어간 전셋집, 후회가 시작되다

다음 날 아침, 부동산 업자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가서 봤더니 지금껏 봤던 집보다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하자 없이 싼 집이 있을 리가 없었죠. 이 오피스텔은 유치권자와 오피스텔을 경매로 낙찰받은 경매업자로부터 신탁 받은 제2금융권의 모 저축은행 간 소송이 진행 중인 곳이었습니다. 경매를 통해 오피스텔을 낙찰받은 A씨는 공사대금으로 유치권을 행사 중인 B씨에게 공사대금을 주고 '신탁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서는 바로 신탁을 맡겨버렸고, 이에 건설업자 B씨가 저축은행을 사해행위로 고소한 상태였습니다.

솔직히 꺼림칙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B씨가 고등법원에서 이긴 상황이라 '설마 대법원 가서 지겠어'라는 안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보자'는 심정으로 유치권자 B씨를 대리인으로 두고 계약을 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우리 말고도 계약하는 집들이 이어졌던 것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주신 1000만 원과 기존 집에서 가져온 전셋값 6000만 원을 합쳐 총 7000만 원을 주고 2011년 7월 말에 이사했습니다.

하지만 이 선택 때문에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유치권자 B씨와 저축은행의 사해행위 소송은 대법원에서 기각당해 고등법원으로 내려왔고, 유치권자 B씨는 고등법원에서 패소했습니다. 이후 이 오피스텔의 소유자가 된 저축은행은 우리 세입자 모두를 불법점유자로 정의했습니다. 2011년 11월, 저축은행은 모든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명도소송을 걸었습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보증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그동안 불법 점유했던 기간의 사용료·소송 비용까지 물고 집을 비워줘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황망한 우리는 보증금을 받아간 유치권자 B씨에게 '보증금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B씨는 "소송에 질 리 없다"면서도 "보증금이란 게 기존 세입자가 나가면 받아서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돈 한 푼 없다"고 펄쩍 뛰는 것이었습니다.

세입자들은 유치권자를 형사고발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명백한 피해 사실이 드러나지 않아 범행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설명해줬습니다. 세입자들이 억울하게 빈털터리가 돼 길바닥에 나앉게 된 막막한 상황에서 유치권자 B씨는 자신이 미회수한 공사대금 32억 원에 대한 확정판결을 받았으니, 경매를 신청해 팔면 배당금 받고 나가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절망적인 처지인지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세입자들은 그 이야기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습니다. 경매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습니다.

보증금도 못 받을 판에 항소? 무리였다

그러나 세입자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유치권자 B씨가 이미 A씨에게 경매로 나온 오피스텔을 낙찰받을 수 있도록 유치권 포기 각서를 써줬고, 그로 인해 유치권을 이미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B씨가 신청한 경매는 얼마 전 중단됐습니다.

그 와중에도 명도소송은 속속 진행돼 각 세입자들 중 몇몇 층은 1심에서 패소했습니다(오피스텔은 총 11개 층으로 돼 있는데, 2~3층씩 묶어 총 5개 조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세입자들이 항소를 한다고 해도 세대 당 1000만 원에 달하는 공탁금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고, 변호사 선임비도 만만치 않아 이미 패소한 세입자들은 그들대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직 공판 결과가 나오지 않은 저는 뒤늦게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고 있지만, 승소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 오피스텔에는 공실을 빼고 총 37세대가 살고 있습니다. 만약 모두 명도소송에서 패소하고 유치권자 B씨도 돈이 없다고 하면 세입자들은 보증금 한 푼 돌려받지 못하고 쫓겨나야 하는 것인가요.

법리적인 해석이 우선시된다는 말도 있지만, 100명도 넘는 서민들이 대낮에 아무런 구제책 없이 추운 서울 거리로 나오게 되는 게 사법정의고, 위민행정이고, 서울시의 시정인가요. 억울한 마음에 몇몇 언론사를 통해 기사화라도 해보려 했지만, '이보다 더한 사례도 수없이 많다'며 거절당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서민들이 근심에 떨며 대자본의 횡포 앞에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현장도 있습니다.

전세 보증금이 전 재산인 우리는 그저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입니다. 그저 법에 무지하고 돈이 없어서 선택을 잘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가 겪어야 하는 이 고통과 시련치고는 너무 가혹한 것 아닙니까. 우리는 그저 살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 세입자들은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고, 보증금을 온전히 찾고 싶고, 별 탈 없이 이 사태가 마무리되길 바랄 뿐입니다.


태그:#세입자, #불법점유자, #보증금, #유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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