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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십수 년 전에는 원룸이 흔하지 않았다. 나는 대학교 앞 자취방을 알아보았고, 새로운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물론 현실은 냉장고와 책장, 몇 가지 잡동사니가 전부인 남루한 이삿짐이었다. 또한, 내 처지는 과외비로 월세와 밥값을 모두 해결해야 했지만 나는 두 발이 공중에 붕 뜬 것처럼 그렇게 들떠 있었다.

2층으로 된 단독 주택에 1층 중 방 한 칸을 월세로 들어갔다. 1층에는 큰방이 한 칸 더 있었고 그 방은 집주인이 다른 학생에게 월세를 주었다. 좁은 거실은 냉장고를 따로 두고 사용할 수 있었고, 작은 싱크대도 따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한없이 게으른 내가 자취의 고단함을 처음 느낀 건 그 싱크대를 닦으면서였던 것 같다. 생각과 달리 낭만적이지 않았고 궁상스럽기까지 했다.

2층에 살던 집주인은 처음 본 나에게 반말을 했다. 그 반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안 좋고, 이상한 생각이 스쳤지만, 어른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애써 무시했다.

작은 방에서의 자취생활은 한 달 한 달 과외 벌이만큼 남루했다. 사교성이 없던 나는 거실을 나눠 쓰는 옆 방의 다른 여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어느 날 옆방에 살던 학생들은 이사 나갔으며, 나는 혼자서 방 한 칸을 사용하게 되었다.

내 방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집주인... "참, 무례하네요"

그때 집주인이 1층에 들이닥쳤다. 집주인은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온다며, 내 방 안으로 들어와 내가 사용하고 있는 전기제품들을 살펴보았다. 집주인이 남의 방에 그렇게 들이닥치는 건 말할 수 없이 무례한 일이었지만, 어리석었던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가만히 있었다. 전기제품은 냉장고 말고는 사용하는 것이 없다고. 나는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구차하게 설명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주인은 '이상하다, 이상하다', '전기요금이 그렇게 많이 나올 수가 없다'며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방을 나갔다. 

옆방은 계속 비어 있었다. 나는 1층의 작은 방 한 칸에서 아침에 눈을 뜨고, 낮 시간에 방황하며 저녁에 과외를 갔다가 늦은 밤에 귀가하는 그렇게 무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무력한 청춘을 보내고 있었다.

세입자가 무력하고 어리석다는 걸 집주인은 무의식적으로 알았나 보다. 나는 후배 녀석과 길을 가는 중에 집주인을 만났다. 집주인은 불쑥 생각났다는 듯 "옆 방이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옆 방을 포함하여 일층 전부를 사용하는 셈이니 돈을 더 내라'고 했다. 나는 속에서 불이 치솟았다.

무력한 청춘인 내 몸은 '치솟는 불'이 무슨 의미인지, 집주인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치솟는 불을 어떻게든 누르기 위해,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 내 속의 불을 다스리기 위해서 지갑 안에 있는 몇만 원을 꺼내서 그 집주인에게 주었다. 집주인과 헤어져 길을 걷던 중, 후배 녀석이 문득 물었다.

"왜, 돈을 더 줘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고, 내 속에서 치솟은 불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일렁거리더니 결국 화상 자국을 남겼다.

어리석은 나는 새로운 방을 구했다. 마지막까지 집주인은 나에게 반말을 했고, 마지막까지 보증금에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차감했다. 나는 겨우 한마디만 할 수밖에 없었다.

"방이 차가워요. 친구가 방 밑으로 물이 지나가지 않고서야 그렇게 차가울 수는 없데요."

집주인은 극구 아니라며 방 장판을 뒤집었다. 장판을 걷어낸 방바닥은 습기에 젖어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 응모글



태그:#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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