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계열분리 명령제', 늦었지만 안철수 후보가 말하다

대선 공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정책이 있지만, 막상 대선 후보들은 입을 닫고 있는 정책들이 많이 있다. 경제 민주화와 관련해서는 '계열분리 명령제'가 그렇다. 그런데 얼마 전 안철수 후보 측에서 재벌개혁 정책을 발표하면서 전격적으로 계열분리 명령제를 포함시켰다. 대선이 7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늦게나마 후보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안철수 후보가 발표한 7대 재벌개혁과제(2012.10.14 발표)
1) 재벌 총수의 편법 상속·증여, 일감 몰아주기, 골목상권 침해 등 각종 불법 행위를 철저히 방지.
2) 총수 및 임직원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히 법을 집행하여 법 앞의 평등을 실현.
3) 재벌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시스템 리스크를 관리하여 국민경제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해 계열분리명령제 도입을 검토.
4) 재벌이 계열 금융기관을 이용하여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금융과 산업이 결합되어 경제의 위험요인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산분리 규제를 강화.
5) 작은 돈으로 그룹 전체를 손쉽게 지배하는 대표적 수단인 순환출자를 금지.
6) 지주회사에 대한 부채비율을 축소하고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상향조정.
7) 다중대표소송 제도 도입, 집중투표제 강화 및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통해 소수주주를 보호하고 재벌 총수의 전횡을 견제.

안철수 후보는 재벌개혁 7대 과제 중에서 세 번째 과제로서 재벌이라는 거대 집단이 국민경제에 미칠 '시스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계열분리 명령제'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안철수 캠프 경제 민주화 책임자인 전성인 교수가 "계열분리 명령제는 이미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미국에서 도입된 것"이라는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아 상당히 높은 위상과 무게의 정책수단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점을 분해하는 최후 수단, '계열분리 명령제'

그렇다면 계열분리 명령제는 왜 중요한 정책일까?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에 있어서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과도한 수준으로 커져버린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것이다. 독점을 방지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미 발생한 독점을 분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이미 존재해왔던 사전 규제 장치만 관례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순환출자 금지 도입, 지주회사 지분요건 강화 등이 그것이다. 이들 기존 규제 장치들은 지금 시점에서 여러 제한성을 갖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적용 대상이 포괄적이지 않다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출총액제한제도를 부활하면 삼성의 경우 출자 총액이 10% 남짓 밖에 되지 않으므로 해당사항이 없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마지막으로 출자총액 비율을 공시했던 2007년 자료를 보면, 삼성과 현대차를 포함한 주요 상위재벌들의 경우, 삼성그룹 11%를 포함하여 대체로 순자산 대비 출자 총액이 30%를 넘지 않았고 지금도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 출자총액 비율이 30%를 넘어갔던 금호아시아나, 두산, 한화 등은 무리한 인수합병의 영향으로 출자 비율이 일시적으로 급등한 것이다.

또한 순환출자를 규제하면 삼성이나 현대차 등 15개 내외의 재벌은 대상이 되지만 지주회사들은 제외된다. 반대로 지주회사 지분요건 강화 규제를 하면 SK나 엘지와 같은 지주회사에게만 해당사항이 있는 등 대단히 복잡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수단은 재벌 집단이 주로 자금 여력이 부족했던 과거에 설계되었고 유효했던 수단들이다. 또한 사전 규제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이미 기업결합이 과도하게 되어 있는 상태에서 독과점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할 경우에 막을 방법이 없다. 사후적으로 단순히 가격규제와 같은 '행태 규제'만으로는 실효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를 구조적으로 되돌리는 수단과 장치가 있어야 한다. 바로 '계열분리 명령제'와 '기업 분할 명령제'를 공정거래법 안에 신규로 포함시켜 개정하는 것이 그 수단과 장치다.

독점 예방하는 잠재적 규율 효과도 기대

매우 직접적으로 기업집단의 경제 집중도를 분산시키는 과감한 방법이라고 할 계열분리 명령제나 기업분할 명령제는, 한국에서는 재벌집단이라는 존재의 특수성 때문에 하나의 맥락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이미 너무 높은 수준으로 진행된 독점화와 집중화를 구조적으로 완화하는 방법으로는 거의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반독점법처럼 비록 명령제 자체가 실제 시행되는 것이 매우 드물다 하더라도 이 법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재벌 집단이 규율되는 "잠재적 규율 효과"가 매우 중요하다.

2003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발표한 보고서 'Antitrust정책으로서 기업분할, 계열분리와 관련한 주요 쟁점'에 의하면 분할분리 명령제도는 "비록 수십 년에 한두 차례의 조치가 발동된다 하더라도 '잠재적 규율효과'는 엄청날 것"인데, "미국에서도 법원에 의하여 실제로 기업분할 명령이 내려진 경우는 과거 1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몇 건에 불과하였지만 그 잠재적 규율효과는 매우 컸다"고 평가된다.

공정거래법 역사 31년이면 더 향상된 재벌규제 방안 나와야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미 10년 전부터 계열분리 명령제가 재벌개혁의 훌륭한 수단이라고 밝혀왔다.

공정거래법 제정 20주년을 기념하는 2001년 한국개발연구원(KDI) 논문에서 계열분리 명령(청구)제가 당시 시점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을 대체할 미래적인 재벌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 대안으로 제시된 바가 있다. 이는 논문의 다음 인용문에서 확인된다.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해 출자총액제한 등 총량적 규제가 행해지고 있지만 사실상 계열구조의 형성, 강화는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기업 집단은 계열회사를 취득하면서도 얼마든지 기업 결합 규제를 피할 수 있으며 기업 결합 규제는 다양한 정책적 고려로 인해 엄격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경쟁 정책적 기준에 따른 구조적 교정책으로서 장기간 독점력을 보유. 남용하는 기업을 분할할 수 있는 법적 절차를 마련하고, 계열구조를 이용한 시장 지배와 확장을 막기 위한 구조개선 수단으로 기업집단의 남용적 행위의 원천이 되는 기업의 계열분리를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안철수 캠프 경제민주화 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전성인 교수 역시 이미 9년 전인 2003년에 계열분리 명령제에 관한 상세한 논문을 발표한 바가 있으므로, 안철수 캠프의 계열분리 명령제 제안 역시 섣부르게 제시된 것으로 치부할 수 없다.

그리고 이후에도 공정거래법 등을 연구하는 법학계 등에서 계속 검토가 이어져왔다. 예를 들어 홍명수 교수는 2006년 글에서 "특히 개별 시장에서의 경쟁 제한성이 근본적으로 재벌 구조 및 집단적 행태에 기인하는 경우에, 개별 계열기업의 분리가 문제될 수 있으며, 재벌과의 관계를 차단하는 것만이 당해 시장에서 경쟁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계열분리 명령제가 도입되어 시행될 수 있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경제에서 계열분리 명령제는 특히 외환위기 이후 끊임없이 검토되고 고려되어왔던 재벌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의 하나였다. 1981년 공정거래법이 최초로 만들어져 발효된지 31년이 되는 2012년이면 이제 실효적인 규제 수단으로서 정책 테이블에 올라올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중소기업, 중소상인 보호 수단으로서 '계열분리 명령제'

계열분리 명령제를 안철수 후보의 제안처럼 '시스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검토하거나, 아니면 미국의 반독점법인 셔먼법(Sherman Act) 2조에 입각한 적극적인 독점 규제 수단으로서 도입할 수도 있지만, 이 보다 낮은 단계에서도 유용하게 도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재벌 계열사 중에서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 해당하는 소모성 자재구매대행(MRO) 계열 기업들이나 식자재 계열기업들 등을 재벌 집단에서 강제로 분리시키는 조치들이 그것이다.

경제민주화 국민운동본부는, 재벌들이 중소기업 영위업종에 진출하여 사후적으로 시장점유율이 5%를 넘어갔을 때에, "기업분리, 계열분리 명령을 통하여 해당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영위하던 시장에서 사업을 철수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계열분리 명령제를 적용할 수도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재벌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되는 계열분리 명령제라는 것이 단순히 다시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경제 권력의 분산을 통한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해, 그리고 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기능할 수 있다.

어떠한가? 계열분리 명령제는 출총제,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요건 강화와 같은 '사전적 규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때, '유일한 사후적 교정 수단'으로 기능하는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이다. 미국에서 100년이 넘게 존속되어 온 제도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새로운 규제 방안으로 지속적으로 검토되어온 대안이다.

그리고 중소기업과 중소상인 보호차원에서 볼 때에서 의미 있는 정책 수단이다. 당연히 재벌개혁 방안으로 충분히 능동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대선 후보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논의를 이끌어 가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태그:#2012 대선, #안철수, #재벌개혁, #계열분리명령제, #경제민주화
댓글

새사연은 현장 중심의 연구를 추구합니다. http://saesayon.org과 페이스북(www.facebook.com/saesayon.org)에서 더 많은 대안을 만나보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