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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사전적 의미는 여러사람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인데, 친구들과 여럿이 먹는 걸 회식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회사 사람들과 모여서 먹는 걸 회식이라고 쓴다. 그렇다고 친한 동료끼리 밥 먹은걸 회식했다고 칭하지 않는다. 내게 회식의 의미는 '직장 상사의 부름으로 부서원들이 모여서 먹는 식사' 다.

"네 돈으로 친척들 식사를 했으면 그렇게 대충했겠냐"

신입사원 시절엔 회식에 대해 좋다 싫다 말할 처지도 엄두도 못 냈는데, 지금은 막내 직원이 당당하게 "전 오늘 약속 있어서 참석 못합니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신입사원 시절 회식 참가보다 더 힘들었던 기억은 회식 장소를 정하는 임무였다. 어디가 맛있고 장소가 적당한지는 고참들이 백배는 더 잘 알 텐데 굳이 신참을 시키는 이유는 젊은 취향을 더해 참신한 장소를 발굴해내라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장소를 구한다고 가까운 교외로 나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2차를 가려니 택시를 열대 가까이 불러야 하는 바람에 이동하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려 시내에 도착했고, 그 사이 직원들은 대부분 집에 가버리고만 적이 있었다. 애초에 교외로 나가자는 의견에 대해 부서장이 돌아오는 교통편에 대해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담당자는 별일 없겠거니 대충 듣고 넘어간 괘씸죄까지 걸려 부서장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다음날 회식 담당과 그 직원의 팀장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영화 <쏜다>에 등장하는 회식 장면.
▲ 최악의 직장상사? 영화 <쏜다>에 등장하는 회식 장면.
ⓒ 영화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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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돈으로 집안 친척들 식사를 했으면 그렇게 대충했겠냐? 업무 외에 이런 일로 돌아가며 스트레스 받는 거 나도 잘 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스트레스 받아 여러 사람이 행복하다면 이것도 업무 못지 않은 중요한 일이라는 걸 꼭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런 철학을 가지고 회식을 주관하는 상사를 겪은 기억은 거의 없다. 부하직원 입장에서 가장 힘든 회식은 기러기 아빠 팀장의 저녁 식사 파트너가 될 때다. 일찍 퇴근해 봐야 혼자 외로움을 달래야 하고 그렇다고 마땅한 취미도 없으니, 거의 매일같이 회사 일을 핑계로 팀원들을 붙잡고서는 술자리에 이어 당구나 스크린 골프까지 치자고 하니 죽을 맛이다. 회사 감사실에다가 '회사 돈으로 이렇게 해도 되냐'고 소원수리를 쓸 맘도 가끔 들지만 자포자기하고 만다. 어쨌거나 직원들간엔 이미 소문이 다 나서 다 기피하는데 본인만 그걸 모르는 것 같다.

회식의 공통점 중 하나는 참 많이 먹는다는 것이다. 술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다. 부서 예산으로 잡혀있는 회식비를 다 안 쓰고 아낀 금액을 부서원들에게 인센티브로 주는 것도 아니니 아낄 이유가 없다. 음식이야 많이 먹고 남기는 게 아까운 정도지만, 술 많이 먹어서 일어난 사고를 기억하려니 너무 많아서 어떤 얘기를 골라야 할지 고민될 지경이다. 사장님이 영업성과를 치하하며 하사한 30년산 양주를 빈속에 원샷하고 시작한 망년회에서 초반부터 다들 취해서는 나중엔 소주 1병을 대접에 담아 원샷하는 파도타기를 하는 등 엄청나게 마셔댔다.

결국 대부분 인사불성이 돼서 추운 겨울에 택시 승차도 거부당하고, 단체로 찜질방에 갔지만 이마저도 입장 거부를 당해서 추운 겨울 밤새 고생을 했던 기억도 있다. 그 와중에 간판을 차서 부수고 경찰서에 간 직원도 있었고, 자기 차에서 히터를 틀고 잤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한 직원도 있었다. 다음날 출근해서 보니 기가 막히고 부끄러운 지경의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아직도 이런 일이... 경악할 만한 사례들

필자가 대학교에서 채용관련 강의를 하는 탓에 여러 대기업의 신입사원이 된 제자들에게 듣는 얘기 중에는 '설마 아직도 이런 일이 존재할까? 하는 경악할 만한 이야기들도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여직원들과 함께 2차로 노래방에 가서 도우미들을 부른 실장님. 워낙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는 실장님이라고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날은 좀 심해 보였단다. 완전 취해 노래방 도우미랑 격렬한 스킨십 이후  "야, 그럼 이제 하러 가자!" 이러더니 도우미랑 부둥켜 안고 나가더라는 것이다. 여직원들은 쇼크를 먹었고, 그 뒤로는 그 실장님만 보면 울렁거린다고 했다.

노래방의 네온사인이 화려하다 (자료사진)
 노래방의 네온사인이 화려하다 (자료사진)
ⓒ 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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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회사는 노래방에서 여직원들이 노래 부르면 신난다고 같이 나와서 춤추면서 뒤에서 허리 감고 엉덩이 만지는 게 일상다반사라고 했다. 그렇다고 화난 듯 피곤한 듯 잘 놀지 않으면 해당 사업부장은 회식자리에서 업무 얘기로 한명씩 지목하며 평소 사무실에서 할 수 없었던 감정표현을 욕을 섞어 적나라하게 퍼붓는다고 한다.

그러고는 다시 분위기 좀 살려보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이후에는 중간 고참 격인 과장님이 시큰둥한 여직원에게 대뜸 소리를 친다고 한다. 음담패설에 준하는 반말을 섞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야! 여자처럼 제대로 놀란말야!"

그 회식자리를 파하고, 택시로 귀가 중 같이 탄 선배에게 성희롱 당한 여직원이 결국 회사에 신고를 했다. 회식을 가진 부서 윗사람은 난감해했고 쉬쉬하며 대충 넘어갔다. 가해자는 다른 부서로 보직변경을 했지만 다음해에 보란 듯이 승진을 했다. 피해자인 여직원도 앞으론 과음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다. 그러나  송년회 술자리에서 부장님은 그 여직원에게 한마디 했단다.

"너 그때 너무 경솔하지 않았니? 걔가 미안하다고 했으면 됐잖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알려지면서 최근 여러 기업에서  2차로 노래방을 갈 때 여직원과는 같이 못 가도록 회사 방침까지 내려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실제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반기에 한번씩 그룹에서 경영하는 호텔에 모여 CEO를 비롯한 전 임원들이 신임 임원 승진 축하 파티를 갖는 자리였다. 이사로 승진한 임원은 본래 술을 못하는데 워낙 어려운 자리라 무리하게 술을 마셨다가 그 다음날 사망하고만 것이다. 회사에서는 쉬쉬하고 넘어갔다는 이야기만 전해진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 그건 상사 입장이다

내가 겪은 미국 출장 중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영어를 거의 못하는 임원과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었다. 미국에 왔으니 같이 온 일행들에게 거하게 스테이크를 사고 싶다며 잘하는 집을 찾아 예약하라는 명령에 수소문을 해서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주문부터 심상치 않았다. 9명의 우리 일행 한명 한명에게 샐러드, 수프, 고기 익힘, 사이드 디시, 음료, 와인, 디저트를 일일이 물어보는데 영어를 대부분 못 알아들으니 각각에 대해 모든 종류를 다 나열하고 통역을 해서 고르느라 주문에만 1시간 가까이 걸렸다.

맨 먼저 주문을 한 임원은 계속 음식이 언제 나오냐며 재촉을 했다. 레스토랑 매니저는 처음에는 눈 하나 깜짝 않고 3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계속 임원에게 아래 직원이 혼나듯 독촉을 받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운 심정으로 곧 나올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결국 자리에 앉은 지 1시간 반이 넘어서야 음식이 나왔다. 음식을 직접 가져온 매니저에게 임원이 한 마디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임원이었지만 그의 한 마디에 매니저를 비롯한 모든 미국 직원이 빵 터지고 말았다.

"굿 모닝! (날 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며 구성원의 조직력과 소속감을 높여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윗사람의 입장이고 송년회, 승진축하 등 정례적인 경우에나 해당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주일에 몇 번씩 상사와 마주하고 술자리를 가져야 하는 회식은 역효과가 훨씬 더 크다. 길 막히는 퇴근길 러시아워도 피할 겸 회사 돈으로 밥 먹고 밥 먹었으니 한두 시간 일인지 노는 건지 모르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건 좀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태그:#회식 잔혹사, #대기업, #회사원, #성희롱, #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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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선수협의회 제1회 명예기자 가나안농군학교 전임강사 <저서>면접잔혹사(2012), 아프니까 격투기다(2012),사이버공간에서만난아버지(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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