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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의 비극적인 죽음. 그 후 첫 공식 행보에 나섰던 1974년 9월부터 10.26 직전까지, 박근혜 대선 후보의 퍼스트레이디 활동 기간은 현 대통령 임기와 맞먹는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 만큼, 박 후보의 당시 행적은 중요한 검증 대상이다. 그러나 이 기간에 대한 평가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과거 청와대 안주인에서 미래 청와대 새 주인을 꿈꾸는 최초의 대선 후보, 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 기간 모습을 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말]
지난 2월 서울 상암동에 개관한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을 방문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지난 2월 서울 상암동에 개관한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을 방문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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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어린이날에 공원에서, 그것도 부인과 신사들이 어쩌면 손에는 울긋불긋한 금반지, 루비, 다이아몬드를 끼고, 귀는 뚫어서 귀고리를 걸고, 목에는 주렁주렁 목걸이를 달고, 옷은 이상한 것을 입고, 남자들은 신사복을 입고 어찌 그럴 수 있나? 자식들은 걸레조각처럼 팽개쳐 버리고 자기들만 빠져나와 춤이나 추고, 그것도 다름 아닌 어린이날에..."

먼저 퀴즈 하나. 위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힌트, 1979년 7월 한 신문에 실렸던 글이다. ① 교사 ② 논설위원 ③ 학부모 ④ 어린이단체 관계자... 정답은 ⑤번,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의 글이다. 독자 투고란에 실렸던 이 글의 제목은 '새마음을 갖자'. "범국민적으로 새마음갖기운동을 벌여 정신순화를 하자"는 퍼스트 레이디 박근혜의 뜻에 따르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는 글이다.

그 각오, 어린이만의 것이라 보기 어렵다. "요즈음 새마음, 새마음하고 외치며 궐기대회도 하고 노래도 지어 부르는데 어른들의 그런 낡아빠진 헌 마음으로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갈 것인가?"라며 호통을 치는가 하면, "새마음이란 것이 극히 어려운 것이 아니다"며 "옛날의 낡고 묵은 마음을 버리고, 깨끗하고 하얀 마음으로 살아가면 된다"고 '가르치기'까지 한다.

아무래도 어른의 '손'을 타지 않았을까. 또 다른 어른은 이 글을 실으면서 아마도 '큰 영애'님이 흐뭇하게 신문을 바라보는 얼굴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언제나 용비어천가는 '먹물'을 먹고산다. "박정희는 천상에서 인혁당 8인에게 사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막걸리를 마시며 조국을 얘기하고 있을 것"이라고 '소∼설' 박비어천가를 부르는 '어른'은 지금도 있다.

[퍼스트레이디 박근혜①] 박근혜에겐 감추고 싶은 '20대'가 있다?
[퍼스트레이디 박근혜②] 박근혜의 '새마음'에 쌍용·두산·현대도 떨었다
[퍼스트레이디 박근혜③] 박근혜 언론자유 '침묵' 이유, 사장님은 알고 있다

1979년, '박비어천가' 절정에 이르다

1979년 7월 4일자 <경향신문> 어린이 페이지에 실린 '새마음을 갖자'
 1979년 7월 4일자 <경향신문> 어린이 페이지에 실린 '새마음을 갖자'
ⓒ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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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레이디 '박비어천가'가 절정을 이룬 해는 1979년이었다. 그 해 새마음봉사단이 전국 각 도 단위는 물론 각 면에까지 지부 단위로 구축됐으며, 그 조직은 다시 불교계, 중·고·대학생, '구로공단'이나 버스안내원 등 노동자, 두산·현대 등 재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핏줄'에 침투를 끝냈다.

동시에 1979년은 언론사 사장들이 청와대에서 박근혜의 새마음운동에 대한 협조를 '다짐'한 해이기도 했다. MBC·KBS·TBC 등 방송사는 물론 <경향> <조선> <중앙> <동아> 등 서울 일간지, <합동통신> <동양통신> 등 통신사, 전국 지방지 등 새마음봉사단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사장님 숫자는 무려 27명에 이른다. 이렇듯 1979년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박비어천가'가 절정에 이를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그 조짐은 그 해 2월 새마음갖기 범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한 물가안정 범국민대회를 통해 나타났다. '소비자들이 힘을 합쳐 근검·절약·저축으로 물가 안정을 위해 노력하자'는 이 대회를 두고, 신문들은 앞다퉈 사설을 통해 사실상 박근혜를 찬양했다.

당시 <경향신문>은 '소비자 운동의 새 차원'이란 제목으로 "새마음갖기 범국민운동본부가 구체적인 소비자보호 운동의 밑바탕이 되는 소비자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새로운 결의를 촉구한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했으며, <매일경제> 역시 "물가고는 소비자에게도 책임 있다"면서 "(이들 단체가) 물가 안정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고 나선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라고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형광등 100개 켜 놓은 듯한 아우라"에 비견할만한 '박비어천가'

작년 12월 1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MB 정권의 언론장악을 심판하겠다"며 총파업을 선언했다. 같은 날 TV조선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인터뷰를 내보내면서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이를 두고 다음날 <한겨레>는 "이 자막은 낯 뜨거운 '박비어천가'로 한국 언론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고 적었다
 작년 12월 1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MB 정권의 언론장악을 심판하겠다"며 총파업을 선언했다. 같은 날 TV조선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인터뷰를 내보내면서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이를 두고 다음날 <한겨레>는 "이 자막은 낯 뜨거운 '박비어천가'로 한국 언론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고 적었다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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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용비어천가에서 언론은 '총대'를 메고, '총알' 노릇은 지식인이 한다. 퍼스트 레이디 박근혜의 첫 저서 <새마음의 길>, 각종 새마음갖기대회 격려사를 묶은 이 책을 대하는 당시 언론의 모습이 꼭 그러했다. 그야말로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에 비견할 만한 '박비어천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큰 영애가 최근 펴낸 <새마음의 길>은 모두 스물 한 편의 구슬 같은 글로 편마다 넘치는 애국의 정열과 끓어오르는 인간애의 의지를 바탕으로 하여 새마음이 무엇임을 누구나 알기 쉽게 밝혔을 뿐 아니라 새마음을 실천하는 방향까지도 자상하게 풀어주고 있다. 편마다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이지와 정감을 펼쳐 격조 높은 문장으로 엮은 것이 모두 한 줄기의 원류에서 뿜어나 여러 갈래의 강하를 이루고 있다." (1979년 3월 10일자 경향신문)

이 글을 쓴 사람은 당시 송지영 문예진흥원장(1989년 사망). <동아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 대표적인 우익신문 <한성일보> 편집부장을 거쳐 <조선일보> 논설위원에 편집국장까지 역임한 언론인이자 문인이었다. 그 이력에 걸맞은 화려한 수사는 1980년 8월 13일자 <조선일보> '정로가 눈앞에 있다. 머뭇거리지 말자'는 시론을 통해 다시 한 번 빛난다.

"혹자는 아직도 구구한 억측에 사로잡혀 눈앞의 대로가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모양들이다. 다시금 솔직히 한 마디 털어놔야 겠다. 방종과 무질서가 판을 치던 엊그제의 일들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들 눈앞에 팽배한 물결로 넘쳐나고 있는 정화조의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밀어내는 그 엄청난 힘의 작용을 한 두 달 전까지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 아닌가."

그 표현 그대로 '눈앞의 대로'를 질주한 덕분일까. '박비어천가'에 이어 '전비어천가'까지 완벽히 소화한 그는 다음 해 민정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다시 그로부터 3년 후에는 KBS 이사장으로 '영전'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용비어천가란 이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많은 후배 언론인에게 '한 수'를 보여준 셈이다.

"큰 영애가 보낸 준 비누로 몸도 마음도 씻었다"

1979년 3월 1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새마음의 길> 서평.
 1979년 3월 1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새마음의 길> 서평.
ⓒ <조선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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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979년 3월 10일로 돌아오면, <경향신문>의 '새마음의 길 서평'과 같은 글이 <조선일보>에도 실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나선 지식인은 당시 손인수 서울산업대 교수, 그는 퍼스트 레이디 박근혜를 국모로 격상시키는데 한 치의 주저함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

"본서에서는 저자 자신의 교육적인 수련과 인간미도 담뿍 담겨져 있다. 저자의 문장은 세련되어 있다. 저자의 화법은 우정의 대화와 같다. 전혀 구호나 이데올로기의 선전은 없다. 끝까지 낮은 민족적 모언(母言)으로서의 논리적 진술이다."

나아가 이 교수는 "이 책은 저자의 생의 수련을 통하여 나타난 저자 스스로의 산 정신을 담고 있기에 우리에게 더욱 값지게 나타난다"면서 "스스로 자신을 정신의 수련 위에 바탕을 둔 자기 형성의 모색으로서 이 저서를 내놓은 것"이란 표현으로 박근혜를 정신수련까지 완벽히 마스터한 '초인'의 반열에 올린다.

얼마 후 스물 다섯 살 퍼스트 레이디를 향한 '구애 경쟁'은 이성을 완벽히 마비시키는 수준에 이른다. "새마음결의 실천대회를 가진 교도소 수감자들이 큰 영애가 보내 준 비누로 몸도 마음도 씻었다", 1979년 5월 26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생생한 '간증'이었다.

'박비어천가'의 마지막 단계, 풍악을 울려라∼

연예인 새마음봉사대 활동을 소개한 1979년 8월 6일자 <매일경제>. "대가없는 자발적인 사회활동"은 생업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연예인 새마음봉사대 활동을 소개한 1979년 8월 6일자 <매일경제>. "대가없는 자발적인 사회활동"은 생업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 <매일경제>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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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용비어천가의 마지막 단계, '풍악을 울려라'. 언론의 '바람개비 도는 방향'에 민감한 연예인들이 처음 전면에 나선 것은 1978년 5월 14일, <매일경제> 보도를 보면 "서울운동장에서 박근혜 총재 주재 아래 국가관이 투철한 건전한 연예인으로 '연예인 새마음봉사대'를 조직했다"고 한다.

초대 대장은 코미디언으로 잘 알려진 심철호(2002년 사망)씨. 그 외 코미디언 A씨·배삼룡·이대성, 탤런트 이순재, 가수 김상희·선우혜경·최희준, 성우 고은정·송도순, 국악인 오갑순·이은관 등 이름이 눈에 띈다. 당초 취지는 다양한 봉사 활동을 통해 대중의 사랑에 보답하고 연예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보도를 보면 이들의 대부분 활동은 '새마음 관제 행사' 출연이었다. 1978년 7월 효창운동장에서 연예인 150명으로 구성된 '새마음갖기 다짐 및 시민 위안 대공연'을 연 것을 시작으로 11월에는 '자연보호 및 새마음갖기 다짐대회', 다음 해인 1979년에는 '물가안정 범국민대회', '식목일 국민 식수 행사', '소비절약 가두캠페인', '소비절약 결의 실천 및 새마음갖기 다짐대회' 등에 '동원'된다.

당시 보도를 보면 "아무런 보수나 대가없이 한 달에도 몇 번씩 행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니, 거의 생업을 위협하는 수준의 '봉사'였던 셈이다.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새마음 연예인'과 그렇지 않은 '헌마음 연예인' 사이의 갈등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내부고발이 잇따른다.

박비어천가 안 부른다고 '낙인' … 가수 L모양은 누구?

1980년 5월 새마음 연예인봉사대 기획국장이 폭력배를 사주하여 코미디언 심철호씨를 집단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박비어천가의 '부작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1980년 6월 7일자 <동아일보>
 1980년 5월 새마음 연예인봉사대 기획국장이 폭력배를 사주하여 코미디언 심철호씨를 집단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박비어천가의 '부작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1980년 6월 7일자 <동아일보>
ⓒ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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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8월, 당시 '새마음 연예인 봉사대'를 이끌던 A씨는 신문을 통해 "비협조적인 한 두 명의 인기인이 있어 애를 먹인다"며 "가수 L모양, 코미디언 L씨 등은 행사에 협조할 생각도 않는다. 예를 들면 가수 L모양의 경우는 이번 행사(송추 수도경비사령부 위문 공연)에도 협조를 요청했으나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농장 일을 이유로 한 마디로 거절하더라"고, 사실상 불순 연예인으로 '낙인'을 찍는다. 이 L모양은 누구일까.

이와 같은 '공적인 무대'를 둘러싼 갈등은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선 후에도 이어진다. 한국연예협회(당시 박일호 이사장)는 "연예인 봉사대가 과거 걸핏하면 '청와대' 운운하며 위협적인 언동을 일삼아왔을 뿐만 아니라 중상모략, 무고 등으로 연예인들의 분열을 조성하는 등의 불미스런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면서 연예인 봉사대 해체를 정부에 정식 건의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그 해 5월에는 폭력배까지 개입하는 사건까지 일어난다. 새마음 연예인 봉사대 초대 대장이었던 심철호씨를 당시 새마음 연예인 봉사대 기획국장이 3백만원을 주고 폭력배를 동원해 집단 린치를 가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그 배후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겁 없이 설치고 다녀 혼내주려고 때렸다"는 주범의 말만 듣고 수사를 서둘러 종결한다.

하지만 '박비어천가'의 추잡한 일면을 보여주는 사건임에는 분명했다. 퍼스트 레이디에 대한 '충성 풍악'으로 벌어진 주도권 다툼의 속살을 여지없이 드러낸 사건이자, 동시에 모두가 새롭게 하나가 되자는 '허상'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일이기도 했다.

새마을운동, 새마음운동, 새누리당 그리고 국민대통합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 모습. "국민이 하나 되는 새로운 세상"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퍼스트 레이디 시절 "국민 총화 단결의 첩경"이라며 벌였던 '새마음운동'과도 상통하는 말이다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 모습. "국민이 하나 되는 새로운 세상"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퍼스트 레이디 시절 "국민 총화 단결의 첩경"이라며 벌였던 '새마음운동'과도 상통하는 말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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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18일, 지금으로부터 꼭 33년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쌍용그룹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를 통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가장 훌륭한 한국인이 되는 길은 새마음의 길 뿐"이라며 이를 위해 전 국민이 노력하는 것이 국민총화단결의 첩경이라고 강조한다. 참 묘한 일이다.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새'마을운동이나 '새'마음운동, 한결같이 모두 새롭게 하나가 되자는 뜻을 담고 있다. 박근혜 체제 하에서 바뀐 당명 '새'누리당 역시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뜻한단다. 그러고 보니 박 후보가 요즘 늘 강조하는 '국민 대통합'이란 말에도 "국민이 하나 되는 새로운 세상"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무서운 말이다.

한 인터넷언론사가 진행한 정치 방담에서 박 후보의 학교 후배 대학생은 "국민 대통합이란 말이 가장 마음에 안 든다"며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다원화되고, 각자가 색깔이 다른데, 어떻게 통합하겠다는 것인가. 독재적인 발상이란 느낌이 든다"고 했다. 다른 대학생 역시 "되게 무서운 말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통합이란 말 자체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느낌이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안고 가는 거지, 갈등을 통합해서 없애는 게 아니지 않냐"고 되물었다.

이 물음에 언론은 과연 진지하게 답하고 있는가. MBC나 KBS 방송은 박 후보의 인생 역정을 찬양 일색으로 '노래'하고 있고, 조중동 등 '사주언론'은 그의 '무서운 말'을 과대 포장하기에 여념이 없다. 분명 어린이의 독자 투고를 '박비어천가'로 둔갑시킨 수준의 '용비어천가'와는 그 격이 다르다.

'박비어천가'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퍼스트 레이디 박근혜 시리즈를 마칩니다.
시원섭섭하네요. 읽어주신 독자님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특히 댓글로 새마음운동 관련 자신의 추억을 '증언'해주신 독자님들에게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태그:#박근혜, #박비어천가, #새마음운동, #용비어천가, #국민대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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