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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1500만 원에 월세 150만 원. 서울 영등포역 앞 허름한 건물 4층의 30여 평 공간이 지난 3월 4일 대한민국 최초로 출범한 녹색당 산실이다. 가난한 살림살이처럼 총선 결과 득표율은 0.48%. 10만3811표에 그쳤다. 2% 득표를 못하면 간판을 내려야 하는 정당법 규정에 따라 총선이 끝난 뒤 사흘 만에 해산했다. 우리나라 녹색당 정치 실험은 이 정도에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총선 때 당비를 내는 당원은 4500여 명. 지금은 5000여 명으로 되레 늘었다. 당원 중 여성 비율이 50%가 넘는다. 서울 지역 당원 42%가 35세 이하다. 그간 뜨고 진 정당들과 다르다. 이들은 오는 13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환경농업교육관에서 재창당한다. 돈을 펑펑 써가며 버스를 대절해 당원들을 서울로 모시는 게 아니다. 성인 참가자는 1만 원을 내야 한다. 개인 준비물도 있다. 손수건과 개인 컵, 개인 수저다.

정당 명칭을 '녹색당+'로 지은 까닭

한 번 등록 취소된 정당 명칭은 4년 이내에는 다시 사용할 수 없다는 정당법에 따라 당명은 '녹색당+'로 정했다. 사령탑은 하승수(44) 전 녹색당 사무처장. 그는 지난 11일에 끝난 2기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에서 공동운영위원장(여성공동운영위원장 이현주)을 맡았다. 지난 9일 녹색 니트를 입고 배낭을 둘러멘 채 <오마이뉴스> 상암동 사무실을 찾은 그를 만났다.

하승수 녹색당+ 신임 공동운영위원장.
 하승수 녹색당+ 신임 공동운영위원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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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명이 '녹색당 더하기(+)'인데, 생소하다. '+'를 뺄 계획이 있나?
"득표율 2% 미만이면 등록 취소하고, 동일한 명칭을 4년간 사용하지 못하게 한 정당법 조항은 위헌이다. 전두환 정권의 국가보위입법회의라는 불법기구가 이 조항을 만들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조항에 대해 헌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 지방선거 전에 더하기(+)를 떼는 게 목표다."

그는 활짝 웃었다. 그런데 '0.48%'의 성적표로는 지속가능한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지 않다. 그도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수치보다는 의미 있는 성과에 방점을 찍었다. "총선을 거치면서 정당으로 자리잡았고 정치적으로 단련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 또 "총선 뒤에도 당비 내는 당원이 늘었고 '글로벌그린스'라는 90개국 녹색당 네트워크에 정식 멤버로 가입하는 등 국제적인 네트워크도 구축했다"고 한다.

하지만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던가? 지방선거가 끝난 뒤 진보정당이 진통을 겪고 있는데, 사실 녹색당이 추구하는 원전반대 이슈와 반토건 등 녹색정치 골자는 진보정당의 정책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다른 당을 만들어 진보진영을 잘게 쪼개면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하지 않을까?

"진보정당의 중심적인 고민에는 생태 위기나 자원고갈,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위기가 들어 있지 않다. 또 이들은 성장담론을 부인하지 않는다. 성장을 기반으로 세금을 거둬서 복지를 충당하자는 입장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성장 패러다임은 한계에 부딪쳤다. 경제 성장을 계속 추구하면 지구가 위기에 처한다. 무한 성장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에 기초한 정당이 필요하다."

정당 대의원을 제비뽑기 방식으로 선출한다?

- 그럼에도 유권자들이 그런 차별성을 느낄 수 있을까?
"녹색당이라는 정당 명칭은 다른 진보정당과 뉘앙스부터 다르다. 생태와 환경 위기에 대안을 찾으려는 정당이다. 기존 정당은 남성 중심이다. 그런데 우리는 당원 중 여성 비율이 50%가 넘고 여/남 동수대표제다. 진보정당도 중앙집중적 구조를 갖고 있는데 내부 권력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대의원도 추첨으로 뽑는다."

정당 대의원을 제비뽑기 방식으로 선출한다? 광주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의 운영위원장은 제비뽑기를 해서 만19세의 청년이 맡았다? 하 운영위원장의 말을 듣다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격을 갖춘 사람 중에서 제비뽑기를 하는 것이다. 대의원 숫자로 지분싸움을 하면서 사람들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유럽 일부 국가들은 지역의 중요 현안을 결정할 때 시민패널을 추첨으로 뽑아서 그들에게 맡긴다. 선거제도 개혁도 정치인들에 맡기면 좋은 답이 안 나온다. 무작위로 뽑힌 시민들이 결정한다. 그런데 정당이 이런 제도를 채택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실험이다."

녹색당의 이색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녹색당 서울시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역 명칭을 앞에 내세워 '서울 녹색당' '대구 녹색당'이다. 기초 자치단체 단위에서도 '마포 녹색당' '홍성 녹색당'이라고 한다. 지역분권적인 풀뿌리 정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말로만 지역분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당비를 받으면 60%를 지역으로 보낸다. 서울, 경기 등 광역 단위는 그중 절반을 시군구로 보낸다. 그리고 다른 당처럼 지역별 당원모임도 있는 데, 의제(관심사)별 모임도 있다. 가령 동물권에 관심 있는 모임의 이름은 '개나 소나'이다. 이런 모임 활동에도 재정을 지원한다.

재정분할 정신과 원칙은 훌륭해 보이지만, 액수로 치면 큰돈은 아니다. 녹색당 당원들은 대부분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이지만 이들이 매달 내는 액수는 3000원 이상으로 소액이다. 이 때문에 월세 150만 원짜리 사무실도 이들에게는 벅차다. 전국적으로 상근자가 15명 정도인데 이들의 월급 역시 120만~150만 원 선으로 '생계비'에 가깝다.

이 정도의 인력과 재정, 규모로 대선을 치를 수 있을까? 하 운영위원장은 "독자 후보를 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면서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정책 의제를 중심으로 대선을 치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원 여론조사를 했는데, 이번 대선에서 관철시켜야 하는 문제로 '탈핵' '탈토건'을 꼽았다. 원전과 4대강 등 토건 사업을 막거나 방향을 전환하도록 하겠다. 유력후보 캠프에 정책 제안을 하고 이를 반영하라고 압박할 예정이다. 우리는 대통령과 같은 권력보다 '탈핵' 등 변화가 필요하다."

권력이 필요하지 않고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탈핵'이라는 주장에 어느 후보, 어느 정도의 유권자가 찬성할지 의문이다. 일본 원전 사고로 경각심이 높아지고, 최근 국내 원전사고로 논란이 일고 있는데 우리나라 현실에서 가능한 정책이냐는 것이다.

"사례가 없으면 불안한데 탈핵의 사례는 많다. 독일은 우리보다 먼저 산업화됐고 원전 의존도도 우리처럼 30%였다. 이들은 2020년까지 원전을 줄이면서 '탈핵'을 한다. 벨기에와 스위스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가까운 일본도 54개 원전 중에 2대만 가동하면서 전기를 쓰고 있다. 경로는 정해졌다. 그 사례를 연구하고 따라가면 된다."

하승수 녹색당+ 신임 공동운영위원장.
 하승수 녹색당+ 신임 공동운영위원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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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 핵 시설을 설치하자"

그는 이어 "탈핵을 주장하면 가정용 전기를 못 쓰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데 10대 기업이 에너지 전체 소비량의 10%를 쓴다"면서 "기업용 전기 소비를 줄이려면 '원전 마피아' 등 이해관계 집단의 반발을 제압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강남스타일'이 뜨는데 강남에 핵발전소를 지으면 어떨까? 입에 침이 마르게 원자력발전소 자랑을 늘어놓는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청와대에 핵 시설을 설치하면 어떨까? 이건 내 주장이 아니라 원전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정말로 안전하고 원전이 불가피하다는 게 소신이라면 '내 집 앞'에 지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원전  지역 주민들의 반대 운동을 '님비 현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정치인은 비양심적이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떠오른 화두 중의 하나인 정치개혁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박근혜 후보는 기득권 정치인이다. 그는 정치개혁을 못한다. 리더십도 독단적이어서 위험하다.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정치혁신을 부르짖는데 알맹이가 부족하다. 선거제도와 정당제도 개혁을 주장해야 한다. 요즘 투표시간 연장 문제가 이슈로 떴는데, 당연히 필요하고 사전투표제도 도입해야 한다. 비례대표제를 전면 확대하고, 정당기호부여제도를 개선하면 다양한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 있다."

그는 이어 지방분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치권의 관심사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대통령과 국회,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어떻게 나누느냐에 있었다. 그런데 차원을 넓혀서 중앙 권력을 지역으로 분산하고 시민들과 어떻게 나눌건지를 고민해야 한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하고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이런 논점을 말하지 않으면서 정치를 개혁하자는 것은 중앙 집중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떡갈나무 혁명을 꿈꾸는 '농부 정치인'
하승수 '녹색당+' 신임 운영위원장은 변호사이며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제주대 법학부 교수를 지냈다. 또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을 맡아서 지역운동도 벌였다. 기존 정치권으로 들어간 그의 선후배들처럼 이 정도면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특채할 만한 이력이다. 하지만 다른 길을 택했다. 그간 환경운동판에서 활동하지 않았던 그가 왜 녹색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인지, 그 이유도 궁금했다.

"이번 선거 때 출마의 변에서도 밝혔는데 제 삶과 활동은 작년 3월 11일 후쿠시마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내 딸이 살아갈 30년 후의 세상은 암담할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로 재앙이다. 지역운동과 동네운동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큰 틀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대안정당 말고는 답이 없다.

그런데 막상 중학교 2학년인 제 딸은 아버지가 택한 길을 싫어한다. 같이 보낼 시간이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하지만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갈 세대에게 미안하다. 후쿠시마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하 운영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녹색당 정신을 강조했다. 그와 헤어진 뒤에 녹색당 강령을 들춰봤다. 정당의 강령치고는 소박하지만 인상적이어서 앞 부분을 소개한다.

"우리는 '녹색당'이라는 작은 씨앗입니다. 이 씨앗이 싹을 틔워 인류가 지구별의 들숨날숨을 쉬는 뭇 생명들과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초록빛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우리는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들어낼 떡갈나무 혁명이며, 여러 무늬와 색깔을 가진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입니다. 지구별은 오랫동안 생명을 품어 왔습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지키기 위한 지구의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나침반이자 등대이며, 생명과 자연 사이에서 녹색전환의 씨앗을 심는 농부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함께 공기의 순환이나 생명의 고동, 그리고 에너지의 흐름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변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태그:#녹색당, #하승수, #탈핵, #녹색당+,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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