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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눈부신 억새밭.
 민둥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눈부신 억새밭.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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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군 민둥산 억새밭. 가을이 되면, 산마루가 억새로 뒤덮이는 장관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전국에 억새밭이 지천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이 먼 곳에 있는 민둥산까지 찾아오는 이유는 무얼까?

이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억새밭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을 보여준다. 1118미터 산 정상에서 바라다보는 은빛 억새밭이 마치 녹색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처럼 보인다. 산 밑에서 올려다봤을 때는 예상하기 힘들었던 풍경이다.

민둥산 산마루에 올라서면, 저 멀리 사방에서 녹색 숲으로 뒤덮인 산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걸 볼 수 있다. 그 한가운데 오로지 민둥산만이 하얀 빛을 띠고 있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민둥산의 그 높고 가파른 산비탈을 걸어 오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민둥산 정상 부근, 산비탈을 뒤덮은 억새
 민둥산 정상 부근, 산비탈을 뒤덮은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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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미터 산 정상, 제주도 초원 연상시키는 억새밭

민둥산 등산로 입구 안내소.
 민둥산 등산로 입구 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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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은 산 정상의 억새밭 아래로는 녹음이 짙은 숲이다. 억새밭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줄곧 그늘이 짙은 나무숲이다. 그 숲을 벗어나 억새밭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는 그때까지 보아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에 빠져든다. 그 풍경이 저절로 감탄사를 부른다.

민둥산은 생각 외로 가파른 산이다. 증산초교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는 초입에서부터 완경사와 급경사로 나뉜 두 갈래 길이 나온다. 급경사가 따로 있어, 완경사가 만만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완경사가 결코 완경사라 부를 만한 것이 아니다.

완경사는 그저 급경사에 비해 좀 더 완만하다는 걸 뜻할 뿐이다. 그러니 완경사 길을 택했다고 너무 자신만만해서는 안 된다. 급경사가 2.6km이고, 완경사가 3.2km이다. 600여 미터 정도 차이가 난다.

급경사는 그만큼 더 힘들다. 산을 타는 데 자신이 없으면 완경사로 돌아가는 게 좋다. 억새밭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해발 500여 미터 지점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를 따라 산 정상까지 2시간 가까이 걸어 올라야 한다.

민둥산 등산로는 의외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민둥산 등산로는 의외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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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경사 길을 택했는데도 사람들이 등산로 초입에서부터 비지땀을 흘린다. 가파른 비탈길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계속해서 이어진다. 중간에 두세 군데 내리막길은 더 길고 높은 오르막길을 예고할 뿐이다.

그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이만 하면 됐다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민둥산 억새밭은 좀처럼 그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억새밭은 사람들이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서 이제는 더 이상 산을 오를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쯤 갑자기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그 순간 억새밭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기까지 올라온 보람을 일시에 만끽하게 만든다. 아마도 여기에 민둥산 억새밭이 특별히 더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가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억새밭이 두 눈에 들어오는 순간, 배낭을 짊어맨 몸이 억새만큼이나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민둥산 산길이 가파르다고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제 각각 그 산을 오르는 등산법을 터득하게 돼 있다. 그 산을 누구는 뛰다시피 오르고, 또 누구는 기다시피 오른다. 결국엔 모두 정상에 가 닿는다.

억새밭이 나오기 직전, 나무 그늘을 벗어나는 등산객들.
 억새밭이 나오기 직전, 나무 그늘을 벗어나는 등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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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억새밭으로 들어서는 등산객들.
 민둥산 억새밭으로 들어서는 등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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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적 가치가 높은 민둥산, 민숭민숭 볼 산이 아니다

이 무렵 사람들이 민둥산을 오르는 이유는 대부분 억새를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민둥산에는 억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둥산에서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돌리네' 지형이다. 다른 산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민둥산 정상에 서서 화암약수터 방향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를 내려다보면, 발 아래로 화산 분화구처럼 움푹 들어간 커다란 구덩이가 눈에 들어온다. 한라산 백록담을 연상시키는 구덩이다. 이 구덩이는 석회암의 탄산칼슘 성분이 녹아내리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민둥산 돌리네 지형. 가운에 움푹 들어간 부분이 돌리네다.
 민둥산 돌리네 지형. 가운에 움푹 들어간 부분이 돌리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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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은 석회암 지대다. 오랜 세월 빗물에 녹아내리면서, 산 표면에 여기 저기 구덩이가 생겼다. 그런 구덩이가 모두 12개 가량 있다. 그 구덩이 아래로는 물과 진흙 뻘이 고인 석회암 동굴이다. 옛날에는 마을 주민들이 그 동굴을 드나들던 때도 있었다.

민둥산을 오르는 길에 '발구덕'이라는 지명이 눈에 띈다. 여덟 개의 돌리네 구덩이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곳에 사는 한 주민의 말에 따르면, 초겨울에는 그 구덩이로 동굴 안의 더운 공기가 수증기가 되어 피어오른다고 한다.

민둥산 정상 표지석을 안고 기념사진을 찍는 등산객들.
 민둥산 정상 표지석을 안고 기념사진을 찍는 등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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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은 결코 평범한 산이 아니다. 지질학적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산이다. 산 정상이 억새로 뒤덮여 있다고 해서,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지 않는 황무지나 다름이 없는 산이라고 지레짐작해서는 안 된다. 민둥산은 결코 민숭민숭 아무렇게나 볼 산이 아니다.

민둥산 억새밭은 화전민들이 산 정상에 불을 놓아 밭을 일군 결과 만들어졌다. 화전이 금지되고 나서 화전민들은 떠났지만 그 후로도 나무는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대신 억새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그 억새가 훗날 민둥산을 상징하는 효자 식물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민둥산 정상에서 내려가 본 억새밭. 왼쪽으로 남면 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민둥산 정상에서 내려가 본 억새밭. 왼쪽으로 남면 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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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을 올라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증산초교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산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 힘들 수 있다. 등산 코스가 짧다고 해서 여행 시간까지 너무 짧게 잡아서는 안 된다. 어느 정도 여유 시간을 갖고 떠나는 것이 좋다.

민둥산역. 2009년 9월, 민둥산 억새의 유명세에 힘입어 역 이름을 증산역에서 민둥산역으로 고쳤다.
 민둥산역. 2009년 9월, 민둥산 억새의 유명세에 힘입어 역 이름을 증산역에서 민둥산역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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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억새, #민둥산, #돌리네, #정선, #발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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