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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네 명의 젊은이가 테이블에 둘러앉아 불판에 고기를 구우며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나는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어. 요요로 먹고살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중요한 건 돈을 버느냐 마느냐 이거잖아. 판단 기준이 항상 그렇잖아."

"대회 나갔을 때도 상금 물어보잖아. 요요대회 1등 한 것까지는 기분이 좋아. 그런데 상금 얘기가 나와. 없다고 얘기를 해. 그다음부터 변명을 꺼내기 시작을 해. 상금이 없는 것에 대한 변명 말이야. 우리가 왜 상금을 못 받느냐, 우리가 상금이 없는 이유가 뭐 이렇고, 그러면 사람이 주눅이 드는 거야. 나는 그냥 대회 나가서 1등 해서 사람들이 박수 쳐주고 공연하고 그걸로 충분히 만족하고 상금 안 줘도 되는데... 사람들이 상금 얼마냐고 물어봤을 때 거기서 갑자기 주눅이 드는 거야."

<요즘을 묻는 당신에게>라는 제목의 영상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EBS <지식채널e> 시청자참여 UCC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인데요. 요요 거리공연을 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대학생 대상으로 강연을 하러 갔다가 우연히 이 영상을 봤는데 대사 하나하나가 잊히지 않아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서 다시 찬찬히 봤지요.

당신 앞에 놓인 '두 가지 시간'

<요즘을 묻는 당신에게> 갈무리 화면
 <요즘을 묻는 당신에게> 갈무리 화면
ⓒ 요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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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TV에서 방영했던 만화 <이상한 나라의 폴>의 주인공인 폴은 딱부리라는 요요를 사용해서 악당들을 무찔렀습니다. 그래서 당시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요요가 무척 유행했는데요. 그냥 모래(?)가 차 있는 말랑말랑한 플라스틱 공을 고무줄에 달아놓은 '짝퉁' 요요도 있었지만 정말 충격적인 것은 진짜 요요였습니다. 우리 반의 어떤 아이가 진짜 요요를 가져왔는데 이 신기한 물건은 손에 쥐고 힘껏 내던지면 손가락에 걸린 줄에 매달려 허공에서 빠른 속도로 회전합니다. 희한하게도 줄에 매달려 공중에서 회전을 하고 있지만 줄이 감기거나 풀려서 위나 아래로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지요. 그러다가 줄이 연결된 손가락을 살짝 들어 올리면 요요가 줄을 감으며 올라옵니다. 신기한 마음에 친구 요요를 빌려 따라 해봤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영상에 나오는 청년들은 마치 <용쟁호투>에서 이소룡이 쌍절곤을 돌리듯 요요를 어깨 너머로 겨드랑이 사이로 돌려가며 기기묘묘한 기술들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요요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을 토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척 행복하고 고양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길 가던 사람을 세워서 30초, 1분, 5분만 보여 주더라도 어떤 마음에 조그만 감동, 그런 거라도 줄 수 있는 것이 이것(요요)의 장점인데. 무아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느낌이 너무 좋은 거야."
"내가 좋아하면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내가 신나면 그 공연이 더 잘 돼."
"언제 그런 느낌을 느껴보겠으며 몇 명이나 그런 느낌을 느끼면서 살까."

그들이 요요를 돌리는 모습, 그리고 그들의 대화 내용을 영상으로 보다가 불현듯 사람의 삶에는 '두 가지 시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폐와 교환되는 시간, 그리고 화폐와 교환되지 않는 시간, 이렇게 두 가지 시간 말이죠. 요요 거리공연팀 요앤조이(yo&joy)를 결성한 곽동건·문현웅·이대열·이동훈, 이 네 청년이 요요를 하는 시간은, 그들의 대화 내용으로 짐작건대 대부분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 시간임에 분명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 시간은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시간이라고들 얘기합니다. 요요를 좋아하는 이 청년들을 포함해, 자신만의 꿈을 가진 21세기 대한민국 청년 상당수는 그런 이유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거 해서 얼마 버는데?'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그 시간이 얼마만큼의 화폐와 교환되는지를 묻는 것이죠. 사실 남들이 따라 하기 힘든 그 어려운 요요 기술을 연마한 시간, 그리고 거리에서 공연하면서 관객들과 유쾌하고 행복한 감정들을 나눴던 시간은 화폐로 잘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요요의 달인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이내 주눅이 들곤 합니다. 자신들이 요요를 하는 행복한 시간이 화폐로 잘 바뀌지 않는다는 단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말이죠.

결국 이 요요 청년들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세상 사람들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마음 한 편에 묻어두고 취직해 직장을 다니며 자신의 시간을 화폐와 바꿉니다. 어쨌든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내 시간을 화폐로 바꿔서 옷도 사야 하고 세탁기나 냉장고도 장만해야 하고, 집도 구해야죠.

확실한 한 가지... "절대 굶어 죽지 않아요"

<요즘을 묻는 당신에게> 갈무리 화면
 <요즘을 묻는 당신에게> 갈무리 화면
ⓒ 요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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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포기해선 안 된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런 종류의 말을 무심코 내뱉기에는 솔직히 현실의 무게라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굶어 죽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라는 항의의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 울리는 것 같군요. 당연히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겠지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꿈을 포기하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혹시 정말로 '굶어 죽을까봐' 두려워서 꿈을 포기하려는 것인가요? 굶어 죽을까봐?

제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꿈과 직업에 대해 강의할 때 항상 얘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까지 살면서 주변에서 굶어 죽은 사람을 본 적 있나요?"
"아니요. 없는데요?"
"그래요. 저도 40년 가까이 살았지만 그동안 주변에서 굶어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여러분은 굶어 죽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두려움에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있죠?"

"........!!"
"오히려 맹목적인 돈 욕심에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가 쫄딱 망하는 경우는 봤어요.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하면서 사는 사람 중에 쫄딱 망한 경우는 별로 못 본 것 같습니다. 서점에 깔려 있는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성공하고 부자 될 수 있다'는 뻔한 거짓말은 양심상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절대 안 굶어 죽습니다. 그러니까 쫀쫀하게 살지 마세요!"

이 요요 청년들이 앞으로 요요를 계속할지 아니면 젊은 날의 추억으로 묻어둘지는 솔직히 알 수 없습니다. 되레 젊은 날의 추억으로 묻어둘 가능성이 크겠죠. 하지만 그들의 인생에서 요요공연을 했던 시간은 단지 화폐와 교환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의미한 시간으로 남을까요? 영상 속 그들은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거랑 다른 행동을 하면 '철이 없다' '비현실적이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는데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이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사는 게 더 비현실적인 것 같아요. (요요를 하는 것이) 너무 좋아요. 정말 재미있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즐겁고, 얼마나 재미있냐고 물어보면 딱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어쨌든 그들은 아직 굶어죽지 않고 요요공연을 계속 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저도 아직 굶어죽지 않고 글을 쓰고 있고요. 어쩌면 저나 요요공연을 하는 청년들이 더 현실적인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요요 한 번 해볼까요?


태그:#인생관, #세계관, #요요, #요앤조이,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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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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