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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산소 입구 황톳길. 고향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부모님 산소 입구 황톳길. 고향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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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명절 추석(秋夕)을 전후해서 찍은 사진을 일주일이 지난 어제(7일)야 정리했다. 추석날 아침 가족이 차례 지내는 모습, 아이들을 앞세우고 고향을 찾은 조카들이 성묘하는 모습, 보기만 해도 풍요로운 농촌 풍경 등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모두가 새롭기만 하다.

오성산(227m)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싼 '성덕마을'에서 황토냄새 구수한 황톳길과 밤나무가 우거진 오르막길을 지나 부모님 산소에 오르면 눈 아래로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이 펼쳐진다. 그래서 그런지 성묘길은 항상 어머니 품처럼 푸근하고 편하게 다가온다. 

항상 형제들이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오갔던 성묘길. 올 추석엔 누님들 셋이 모두 빠져 서운했다. 이웃하고 있던 큰 매형과 사돈댁 산소도 큰조카가 지난 한식날 수목장(樹木葬)을 하겠다며 이장해서 더욱 허전했는데, 객지에 사는 딸과 조카들이 많이 참석해서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산소도 있고, 사촌도 있는 너희들은 좋겠다"

자녀를 앞세우고 외할아버지·외할머니 산소를 찾은 조카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자녀를 앞세우고 외할아버지·외할머니 산소를 찾은 조카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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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에 도착해서 정성이 담긴 음식과 햇과일을 차려 놓고 큰절을 올렸다. 순간 지하에 묻힌 어머니·아버지가 잠시나마 자식과 손자들 기억에서 환생한다. 그래서 성묘는 생과 사의 공간을 넘나드는 초월적인 의식이며, 자식이 부모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겨있기도 하다.

딸과 조카 손녀들은 절을 하면서 "왜 우리는 네 번이나 해야 하나요?"라며 투덜댄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서 했던 아이들, 중고생이 되니까 이런저런 궁금한 점들을 자꾸 캐묻는다. 아이들 질문에 일일이 답변해주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재차 실감한다.

성묘를 마치고 시원한 그늘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성묘를 마치고 시원한 그늘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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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그늘에 둘러앉아 술잔을 나누면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대화의 시간에는 성묘도 부모님 제사처럼 조상숭배와 효(孝)사상에 기반을 두고, 죽은 자와 산 자, 헤어져 살던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의를 더욱 돈독히 다지는 신성한 행사임을 새삼 느낀다.

사촌끼리 어울려 다니면서 메뚜기도 잡고, 땅바닥에 떨어진 밤을 주우면서 마냥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는 순간 '산소도 있고, 사촌도 있는 너희는 좋겠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해마다 명절이 다가오면 임진각에 차례상을 차려놓고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키는 이산가족 자녀들과 비교되어서였다.  

"엄니~이, 우리는 왜 산소가 없어!"라며 펑펑 울던 코흘리개 시절 추석날 풍경도 떠올랐다. 아버지 고향이 황해도이고 3대 독자였으니 성묘할 산소가 없었던 것은 당연. 그때는 추석날 부모를 따라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가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38년 만에 산소에서 가족사진을 찍다

38년 만에 찍은 가족사진. 사진 속 인물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38년 만에 찍은 가족사진. 사진 속 인물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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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형님은 "오늘 처음으로 다 모인 것 같다. 오랜만에 가족사진이나 한 장 찍고 내려가자!"라고 했다. 형님 자녀(2남 1녀) 중에는 군인 장교도 있고 직장인도 있어 명절 때마다 한 명씩은 꼭 빠졌는데 이날은 모두 참석했다.

뜻밖의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억을 되살려 손을 꼽아보니 가족사진 얘기가 나올 만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1967년) 산소를 조성한 후 한 차례 이장했고, 1년에 2~·3회씩 다녔으면서 가족사진은 1974년 11월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밖에 없었다.

1974년 11월 같은 장소에서 찍은 가족사진. 어른 8명 중 4분은 돌아가셨다.
 1974년 11월 같은 장소에서 찍은 가족사진. 어른 8명 중 4분은 돌아가셨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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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의 제안이 떨어지기 무섭게 형수가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수를 세어보니 모두 24명으로 놀라운 숫자였다. 특히 38년 전에는 코흘리개 꼬마로 할머니 품에 안겨 사진을 찍었던 조카들이 중학생 자녀를 둘씩이나 둔 40대 학부모로 변해 있어 격세지감을 느꼈다.

형님 내외와 동생 내외, 조카 여섯, 조카 손자손녀 아홉, 조카며느리 둘, 조카사위 하나, 딸까지 스물세 명이 포즈를 취했다. 딸과 조카 손녀들은 서로 자신의 카메라와 휴대폰에도 저장해놓겠다며 나섰다. 따라서 이날 사진사는 네 명이나 되었고, 포즈도 네 번 넘게 잡아야 했다.

가족사진 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오늘 의미 있는 행사를 치렀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비록 산소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지만, 20년~30년 후에는 덧없이 흐르는 세월과 함께 23명의 사연도 켜켜이 쌓여 다음 세대에게 무수히 많은 얘깃거리를 제공해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가족사진, #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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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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