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신의>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MBC <골든타임>에 줄곧 동 시간대 1위를 내주더니, 지난주에는 KBS 2TV <울랄라 부부>와 MBC <마의>의 첫 방송에 밀려 동시간대 꼴찌로 주저앉았다. 다행히 8일 방송에서 다시 시청률 10%대로 진입했지만, 100억 대작으로서는 시원찮은 수치다.  

100억 대작 <신의>의 예상치 못한 부진에 가장 심란할 사람은 김희선이다. 6년 만에 선택한 브라운관 컴백작이 신통치 않은 반응을 얻으면서 2000년대 들어서 지겹게 이어져 온 '시청률 잔혹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최고의 히트메이커였던 배우 김희선

90년대 최고의 히트메이커였던 배우 김희선 ⓒ 각 방송사


1990년대 김희선은 '흥행 보증 수표'

김희선은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약 4년 동안 <공룡선생> <컬러> <목욕탕집 남자들> <프로포즈> <해바라기> <세상 끝까지> <미스터 큐> <토마토> <안녕 내사랑> 등에 출연했다. 일명 '김희선 드라마'로 통칭된 이 작품들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으며 김희선 시대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최고 시청률 53.4%를 기록한 <목욕탕집 남자들>을 필두로 <토마토>(53%), <미스터 Q>(43%) 등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김희선이 드라마에 들고 나온 머리띠, X자 핀, 요요 등은 다음날이면 전국적인 유행 아이템이 됐다.

김희선은 이 기세를 몰아 1998년 SBS 연기대상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22살이었다. 방송 3사 역대 최연소 연기대상 수상자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은 2008년 문근영이 <바람의 화원>으로 연기대상을 받기 전까지 장장 10여 년간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았다.

이처럼 199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만들었던 김희선이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격한 하락세를 맞이했다. 2000년 TV 드라마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스크린 도전에 나선 것이 주된 원인이었을까. 아쉽게도 <카라> <자귀모> <비천무> <와니와 준하> <화성으로 간 사나이> 등 김희선이 출연한 영화 대부분은 평단의 혹평을 받거나 흥행에 실패했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김희선의 영화 출연은 실패한 도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가까운' TV 스타였던 그녀가 영화관에 '찾아가서' 봐야 하는 영화배우로 변신하는 것은 그리 좋은 전략이 아니었다. 게다가 영화 출연에서 비롯된 4년여 간의 TV 공백기는 오히려 드라마에서의 영향력 약화라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가져다줬다.

<요조숙녀>부터 <스마일 어게인>까지, 김희선 드라마의 '시청률 잔혹사'

 MBC <슬픈연가>(2005) 속 한 장면

MBC <슬픈연가>(2005) 속 한 장면 ⓒ MBC

충무로에서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받아든 김희선은 2003년 <요조숙녀>로 드라마 컴백을 전격 결정했다. <안녕 내사랑> 이후 4년 만의 컴백이었다. <미스터 큐> <토마토>로 김희선에게 전성기를 안겨다 준 이희명 작가가 집필을 맡았고 전형적인 1990년대 '김희선 드라마'를 따른 트렌디 물이었기에 성공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요조숙녀>는 경쟁작이었던 <장희빈>에 밀려 10% 초중반의 시청률에 머무르며 고전했다. 드라마 복귀를 통해 자존심 회복에 나섰던 김희선으로선 상당히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녀는 절치부심 끝에 2005년 <슬픈연가>로 안방극장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 신통치 않았다. 10% 초중반을 맴돌던 시청률은 한때 19.7%를 기록하며 20% 문턱에 다다르기도 했지만 경쟁작인 <해신>이 분위기를 타면서 시청률이 곤두박질쳤고 결국 15% 수준에서 만족해야 했다.

2006년 <스마일 어게인>의 시청률은 더욱 심각했다. 첫 회 12.2%로 시작한 이 드라마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등락을 거듭하며 10% 초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했고, 심지어 한 자릿수 시청률로 떨어진 날도 부지기수였다. 2000년대 이후 '김희선 드라마'가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스마일 어게인>이 처음이었다.

이처럼 2000년대 김희선이 도전한 드라마들은 모두 10% 초중반, 심하게는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는 '김희선 드라마'의 브랜드 가치 하락을 의미하는 동시에 김희선이 더 이상 흥행 보증 수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었다. 1990년대 최고의 히트 메이커 김희선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SBS <신의>(2012)

SBS <신의>(2012) ⓒ SBS


6년만의 컴백작 <신의>마저 부진, 해결책은?

2000년대 시청률 부진에 시달렸던 김희선이기에 6년 만에 컴백을 결정한 드라마 <신의>의 성적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신의>가 흥행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김희선의 위상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의>마저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김희선의 고민 역시 깊어지게 됐다. <골든타임>에 줄곧 주도권을 뺏긴 것은 물론, 이제 막 첫 주 방송을 끝낸 <울랄라 부부>와 <마의>에게도 밀리면서 시청률 대박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 남아있는 3분의 1가량의 스토리를 잘 정리해 시청률을 회복하는 것이 과제다.

그렇다면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차기작이 어떤 것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김희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파격'과 '혁신'이다. 1990년대 커리어우먼의 대명사였던 김남주가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아줌마 배우'로의 변신을 택했듯, 김희선 역시 마냥 '청순가련 캔디 스타일'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 나이에 걸맞은 캐릭터 선정으로 친근함을 강조하는 것은 아주 좋은 전략이다.

 배우 김희선

배우 김희선 ⓒ SBS

굳이 미니 시리즈의 여주인공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초심으로 돌아가 예전의 <목욕탕집 남자들>처럼 홈드라마에 출연하는 것도 좋다. 주말 홈드라마만큼 대중성 회복에 적합한 장르도 드물다.

방법이 무엇이 됐든 김희선의 차기작은 지금까지 그녀가 고수해 온 스타일, 캐릭터, 장르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어야 한다. 과거 최진실이 <장밋빛 인생>에서 연기 변신을 시도해 재기에 성공했던 사례를 거울삼아 김희선 역시 '37살의 김희선'답게 변신하는 것이 맞다. 배우라면 변신과 도전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오랜 시간 연기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확실히' 변해야 한다.

김희선이 <신의>의 시청률 부진에 주눅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랜 공백기를 가지기보다는 하루빨리 차기작을 결정해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하고 부딪히길 바란다. 1990년대 누구보다 다작했던 그녀다. 그때처럼 시청자 곁에서 호흡하고 평가받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진정 사랑받는 배우로 거듭날 수 있다.

17살 어린 나이에 데뷔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김희선은 여전히 김희선이다. 영광과 그림자가 혼재했던 그동안 김희선을 수식하는 단어는 끝까지 '배우'다. 연기와 작품으로 승부하는 '배우 김희선'이 오랜 시간 팬들 곁에서 좋은 작품으로 머무르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김희선 신의 마의 울랄라부부 시청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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