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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나에게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늘 일 때문에 내려갔다가 그 일의 종료와 함께 떠나서 정작 부산을 알지 못한다. 이번에도 영화관계자와의 미팅을 위해 내려간 일로 비롯된 노정이었지만 9월 24일 밤부터 25일 낮까지는 개인시간이 주어졌다.

부산의 해변과 언덕, 그리고 그곳의 맛집과 문화현장에 대해서도 탐하리라, 마음먹었다. 유럽여행 다녀 온 후, 그 여행의 효력이 점점 희박해지면서 계속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마음과 정작 내가 태어나고 발 딛고 살고 있는 땅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을 이번에 조금이라도 덜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여행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중에는 카메라도, 준비된 여정도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은 단지 여행자의 호기심과 낯선 시선뿐. 하지만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으니 그 만큼 더 비어있고 더 채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부산을 잘 알지 못함에도 해운대·달맞이고개·남포동·태종대 등 내게 익숙한 지명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부산에 발을 딛는 순간 이 이방인의 눈을 압도하는 것은 내 뇌리 속에서만 익숙한 그런 지명속의 상상한 이미지들이 아니라 웅장하고 위압적인 현대식 빌딩들이었다.

또한 중국어로 안내해주는 버스, 빌딩들을 보면서 '내 이미지속의 부산이 아니구나'라는 열패감이 다가왔다. 내 선입관보다 훨씬 국제화된 도시이며 거대도시라는... 

국밥과 밤바다

 친절한 역장님께서 추천해주셨던 국밥
 친절한 역장님께서 추천해주셨던 국밥
ⓒ 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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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끝난 후 제일 먼저 뭔가를 먹으러 떠났다. 원래도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라서 제일 신명이 묻어나는 발걸음이었다. 곧장 지하철 역무원실로 들어가 부산의 지도를 받아들고 역장님께 어디로 가야할지, 무었을 먹어야 할지 물었다.  

"국밥을 드세요!" 

역장님의 이 한마디가 나를 후련하게 해줬다. 또한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한 것도 꼼꼼히 들었다. 그 역장실을 나오면서 마음이 나비처럼 사뿐해졌는데 낯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역장님의 친절 때문이었다. 말씀해주셨던 국밥거리의 몇십 년 전통 국밥집에 들어갔다. 콩나물이 수북이 들어간 국밥을 혼자 '후루룩' 소리까지 내가며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낯선 곳에서의 국밥은 이탈리아나 프랑스 음식과는 달리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위로가 있다. 이것은 맛과 포만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갤러리와 카페가 늘어선 달맞이고개. 달맞이길은 해운대를 내려 보는 와우산을 거쳐 송정까지 해안절경이 이어지는, 열다섯 번 굽어지는 고갯길이라고 한다. 달맞이 고개에서 보는 달과 절경이 아름다워 드라이브나 산책으로 손꼽이는 곳이란다. 밤늦게 도착한 나는 갤러리들을 둘러보진 못했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경치가 좋은 카페에 들어가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길에서 한 분께 달맞이길을 물었는데 그 분이 자신이 일한다는 카페를 추천해줬다. 아마 자리가 모자랄 만큼 인기 있는 곳인가 보다. 퇴근길에 부러 카페에 전화까지 해서 자리를 만들어주셨다.  

 달맞이 고개에서 본 부산의 밤바다
 달맞이 고개에서 본 부산의 밤바다
ⓒ 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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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보이는 광안대교와 도시의 조명들도 아름다웠지만 도시를 비켜있는 곳의 캄캄한 바다와 그 밤바다위의 조업 중인 배의 불빛들이 더욱 아름다웠다. 바다위의 달빛 찰랑이는 수면과 만나 만들어내는 은은한 은물결에 나도 모르게 경탄이 나왔다. 귀한 보석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점점 쌀쌀해지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도시의 불빛과 캄캄한 바다에서 반짝이는 달빛, 멀리 펼쳐진 어선의 불빛을 번갈아 음미했다. 혼자 이었기에 더욱 로맨틱한 느낌이 온전하게 가슴에 담겼다.

실연 아니면 실직? 

 부산비엔날레의 일환인 달맞이길 갤러리들의 '갤러리 페스티벌'
 부산비엔날레의 일환인 달맞이길 갤러리들의 '갤러리 페스티벌'
ⓒ 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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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5일, 한창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준비되고 있었고, '2012 부산 비엔날레Busan Biennale 2012'가 시작된 뒤였다. 달맞이길에 모여 있는 갤러리들에서 비엔날레의 초청작가들 전시가 있었다. 19개의 갤러리들과 함께하는 갤러리 페스티벌(Gallery Festival)이었다.  

지도를 가지고 목적지를 찾으려니 마치 이국의 여행지에 온 것처럼 설레임이 있었다. 낯선 나라, 낯선 골목에서, 낯선 사람에게 길을 묻는 이방인이 되어보는 것이 익숙한 것의 나른함에서 나를 깨어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렇듯 달맞이길 갤러리 순례가 나를 깨운다. 

낮의 달맞이길은 갤러리가 아니라도 좋았다. 길 아래로 펼쳐진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 가슴을 시원하게하고 머리를 맑게 한다. 

 달맞이길에서 본 낮의 부산 바다
 달맞이길에서 본 낮의 부산 바다
ⓒ 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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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비엔날레의 메인 전시가 치러지고 있는 시립미술관으로 향하다 식사를 위해 택시기사에게 인근 맛집을 물었다. 기사님은 내가 혼자 서울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물었다. 

"남자친구랑 헤어졌는교?"
"아니요!" 
"그럼 회사에 사표를 냈는교?"
"아니요, 다니는 회사가 없었던 걸요." 

기사님의 두 가지 짐작만으로도 속웃음이 나왔다. 여성 혼자의 여행은 이렇듯 남에게 정형적인 모습으로 치부된다. 실연 아니면 실직. 

사실이 그렇단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기 전에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오거나 연인과의 결별후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온다는 것이다. 

그 기사님은 "인천으로 가지 그랬느냐"고 물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바다를 접한 도시. 기사님은 부산과 공통적인 요소를 가진 도시로 인천을 떠올린 것이었다. 

2012 부산비엔날레, 배움의 정원

 미술관 외관 자체도 비계와 분진망을 씌워 공사장 분위기로 연출됐다.
 미술관 외관 자체도 비계와 분진망을 씌워 공사장 분위기로 연출됐다.
ⓒ 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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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 미술관에 도착했을 때 큐레이팅 시간이 딱 맞아서 큐레이트와 전시장을 돌았다. '배움의 정원(Garden of Learning)' 인 이번 전시는 소통이 중요한 코드로 이뤄져 있다. 이번 비엔날레의 기획을 맞은 독일의 전시감독 로저 M. 브뤼겔(Roger M. Buergel·카셀도큐멘타 예술감독)가 부산에 왔을 때 유난히 공사 중인 건물이 많다고 느꼈단다.

이번 비엔날레의 시립 미술관의 건물 외관도 비계에 검은색 분진망으로 덮어서 공사장의 이미지를 재현했다. 전시장 내부에도 비계나 철제 임시구조물에 작품을 설치하는 방법을 택했다. 바닥에도 카펫이 아닌, 고무매트가 깔렸다. 신축 공사장 부산의 이미지를 다양한 작품으로 해석했다.

'배움의 정원'이라는 주제에 맞게 여러 작가 들이 한국에서 부산에서 지내면서 작업을 한 작품들도 많았다. 여러 외국작가들이 한국, 부산이라는 도시에 와서 지내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작품으로 나타내거나 부산의 노동자들 혹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해 완성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큐레이터의 설명을 통해 전시 작품 이전의, 작가의 작품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들에 대해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미술관을 막 나오려는 때에 한 마을의 주민 분들이 오셨는데 그곳에 전시돼 있는 작품의 작업에 참여했던 분들이었다.

  ‘배움의 정원Garden of Learning’은 80여명의 배움위원회(Learning Council) 시민, 참여 작가, 그리고 총감독이 함께 참여하여 즉흥적인 전시 기획 과정으로 만들어졌다.
 ‘배움의 정원Garden of Learning’은 80여명의 배움위원회(Learning Council) 시민, 참여 작가, 그리고 총감독이 함께 참여하여 즉흥적인 전시 기획 과정으로 만들어졌다.
ⓒ 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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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비엔날레의 본 전시인 부산시립미술관의 '배움의 정원'은 80여 명의 배움위원회(Learning Council) 시민·참여 작가, 그리고 총감독이 함께 참여해 즉흥적인 전시 기획 과정으로 만들어졌단다. 외국 작가와 몇 개월을 함께 작업하면서 만들어낸 것은 전시된 작품만이 아니었다. 외국 작가와 언어 소통이 자유롭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미 이웃이 돼 있었다. 이번 비엔날레가 이뤄낸 또 다른 성과처럼 보였다.

2012 부산비엔날레
기간 : 2012년 9월 22일부터 11월 24일까지
* '배움의 정원(Garden of Learning)'을 주제로 22개국 107명의 작가가 참여, 385점의 작품 전시.

▲ 본전시 Garden of Learning (부산시립미술관)
- 10:00 – 20:00 / 휴일없음 / 유료 / 입장권 발권 19:00까지
80여명의 시민·참여 작가, 그리고 총감독이 함께 참여한 느리지만, 동시에 즉흥적인 전시 기획 과정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80여 명의 시민으로 구성된 배움위원회(Learning Council)와 긴밀하게 작업하며 전형적인 비엔날레형 전시에 대한 의구심을 공유하고, 전시를 통해 보다 폭넓은 공동체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했다.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예술적 접근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

▲ 특별전 Outside of Garden (부산문화회관, 부산진역사, 광안리 미월드)
- 10:00 – 18:00 / 휴일없음 / 무료
공모로 선정된 9명의 신진 큐레이터들이 기획한 9개의 전시로 구성된다. 본전시의 기획 의도를 확장해 부산의 특수성과 역사적 기억을 담고 있는 부산진역사·부산문화회관·광안리 미월드을 활용한다. 

▲ 비엔날레 어반 스퀘어 Biennale Urban Square
도심 내에서 열리는 다양한 페스티벌과 이벤트들 통해 기획자들, 참여 작가, 배움위원회 및 시민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장이다. 

▲ 갤러리 페스티발 Gallery Festival
부산 소재의 19개 갤러리들과 함께 부산비엔날레의 개막을 축하하는 행사를 연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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