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영화의 전당에서 <남영동 1985> 상영이 끝난 직후 김근태 고문 역을 연기한 박원상을 안고 흐느끼고 있는 인재근 의원

6일 오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영화의 전당에서 <남영동 1985> 상영이 끝난 직후 김근태 고문 역을 연기한 박원상을 안고 흐느끼고 있는 인재근 의원 ⓒ 민원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남영동 1985> 상영 직후 울먹이고 있는 배우 명계남 이경영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남영동 1985> 상영 직후 울먹이고 있는 배우 명계남 이경영 ⓒ 민원기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화면 한쪽에서는 고문 피해자들의 육성 증언이 시작됐다. 영화는 무언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객석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극장 안의 불이 켜지자 인재근 민주당 의원과 주연을 맡은 박원상씨가 일어났다.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일부 관객들은 일어서서 거장 정지영 감독의 영화에 기립박수를 보냈다. 감독 등 영화 출연진과 함께 영화를 본 인재근 의원은 박원상씨를 안고 한동안 흐느꼈다. 남편 고 김근태 전 의원이 겪었던 아픔을 느꼈는지 쉽게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관객들도 객석 곳곳에서 눈물을 닦았다.

앞선 기자회견에서 장난치며 농담하던 배우들 역시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단상으로 나아갔다. 고문 주역으로 나온 명계남씨와 이경영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완성된 영화를 이날 처음 봤다는 주연 배우 박원상씨는 "(고문) 당하는 사람, 가해자, 방관자역 모두 (연기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며 "감독님이 의지할 수 있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경영씨는 앞선 기자회견에서 "촬영을 즐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영화를 본 뒤 "죄송합니다, 전부 죄송합니다"라며 울먹였다. 그는 영화에서 고문 경관 이두한 역을 맡았다. 이씨는 "왜 이리 가슴이 먹먹하고 아픈지 모르겠다"며 "새로운 시대에는 이런 아픔이 치료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지영 감독 "관객들을 아프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남영동 1985> 관객과의 대화에 나온 감독과 배우 등이 영화의 여운이 남은 듯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남영동 1985> 관객과의 대화에 나온 감독과 배우 등이 영화의 여운이 남은 듯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 민원기


부산국제영화제 최대의 화제작 <남영동 1985>가 6일 공개됐다. 고 김근태 전 의원이 겪은 고문을 소재로 했기에 제작 전부터 화제가 된 영화다.

이날 800석 좌석은 모두 찼다. 관객들은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고 인사하는 정지영 감독과 주연배우 박원상, 인재근 의원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정 감독은 관객들에게 "여러분을 아프게 하는 게 나의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가족들과 단란한 하루를 보내던 김종태씨는 어느날 경찰에 연행돼 '남영동'으로 끌려간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온갖 폭력은 시작된다. 집단폭행은 아주 단순하게 여겨질 정도다.  

김종태를 '빨갱이'이자 '폭력 혁명을 꾀하는 인물'로 만들고 싶은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문을 가한다. 쉴새 없이 구둣발로 짓이기고, 뺨을 때리고, 물이 가득한 욕조에 김종태를 쳐 박는다.

하지만 이후에 진행되는 고문기술자 이두한의 기술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약과다. '장의사'라 불리는 이두한은 김종태를 칠성판에 눕혀 온갖 고문을 가하며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 

김종태는 정신력으로 버티려 애쓰지만 고문 앞에서 무너진다. 원하는 대로, 부르는 대로, 시나리오에 따라 쓰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까지 기개를 잃지 않으려 애쓰지만 힘겹기만 하다. 고문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괴물이다. 

고문 실상을 정면으로 표현해 낸 충격적 작품

 <남영동 1985> 전기고문 장면

<남영동 1985> 전기고문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남영동 1985>는 김근태 전 의원이 22일간 겪은 고문을 통해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군사독재시절의 야만성을 고발한다. 두 시대의 미세한 차이는 영화에서 '남영동' 책임자 역을 맡은 문성근의 대사에서 드러난다.

"박정희 시대는 고문의 흔적이 남아도 상관없지만, 전두환 시대는 흔적이 남으면 시끄러울 수 있다."

영화는 고문 과정을 세세히 그리면서, 고통과 아픔의 시간들이 어땠을지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책으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 영화에서 부분적인 장면으로만 다뤄지던 고문의 실상에 정면으로 카메라를 들이댄 영화는 충격적이다.

고문 가해자들은 태연하게 가족, 프로야구, 애인과의 관계 등을 이야기하며 고문을 실행한다. 이들의 태도는 국가권력을 함부로 이용했던 자들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어떠한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시간 동안 끓어오르는 분노를 내내 참아낸 후유증 탓이었다. 뻔히 아는 80년대의 사실적인 이야기이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그 감정이 또 다르게 전달됐다.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지난 시절이 아니었다.

야만적 폭력과 고문을 일삼던 자들이 이제 와서 무릎 꿇는다고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그렇게 쉽고 간단한 문제일까? 정지영 감독의 신작 <남영동 1985>는 그런 의문을 전달해 준다. 

국민통합 외치는 박근혜 후보가 꼭 봐야할 영화 

 4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으로 입장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

4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으로 입장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 ⓒ 이정민

영화는 고문 장면 중간 중간에 신문 기록을 보여주며 당시의 떠들썩했던 이념사건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또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을 빨갱이로 만들고, 조직사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고문이 있었다는 걸 강조한다.

더불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역사 인식 탓에 논란이된 인혁당 사건과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여러 사건 피해자들의 증언도 담았다.

대선을 의식해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정지영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대선 후보들이 모두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참석 여부와 관계없이 대선 후보들을 영화 시사회에 초청할 생각"이라며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나라로 가기를 원한다면 (그들이) 꼭 봐야할 영화"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4일 부산영화제 개막식에서 레드카펫을 밟았다. 박 후보는 영화를 보지 않고 금방 자리를 떴다.

<남영동 1985>는 박근혜 후보를 위해 거장 감독이 만든 안성맞춤의 영화기도 하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박근혜 후보가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궁금하다. 그만큼 마지막 장면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최근 인혁당과 5.16 쿠데타, 유신 등 과거의 역사에 대해 사과했지만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있다.

영화를 본다면 가해자의 일원으로서 피해자의 마음이 들여다보일 것이다. 자신의 사과를 형식적으로 생각하는 시선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 후보가 생각하는 국민통합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 분명하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남영동 1985>를 강추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성하훈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 남영동 1985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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