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이 존재할까? 설령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법행위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 해묵은 논쟁이 다시금 불거진 데에는 물론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루가 멀다고 보도되는 잔혹한 강력범죄를 접할 때면 나 또한 피가 끓는다. 하지만 사형이 흉악범죄에 대한 유일한 해법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성숙한 고민이 필요하다.

흉악범죄에 대한 단죄로써의 사형은 가장 원시적 형태의 형벌이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서 제시했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정책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감수해야만 하는 반작용의 해악이 훨씬 커 보인다. 범죄론이나 교정론, 형사정책연구 따위의 머리 아픈 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된다. 사형을 집행한다고 범죄가 줄어든다면, 최대 사형 집행국인 중국의 치안상황은 세계 일류가 되었어야 한다.

겉표지
 겉표지
ⓒ 문학수첩

관련사진보기

자,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지금의 감정적인 주장으로 인간의 목숨을 볼모로 삼아 사형집행을 재개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말이다. 각자의 생각이 다를 것은 당연하다. 단순히 사형에 대한 찬반논쟁을 벌이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은 만들지 말라'는 보편타당한 법언을 상기시켜주는 소설이 있다. 존그리샴의 <고백>으로 들어가보자.

소설은 자신이 오래전에 저지른 범죄를 목사에게 '고백'하는 한 부랑자로부터 시작한다. 지병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이 사내는 자신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사형을 앞둔 젊은 청년이 있다는 고해성사를 한다. 졸지에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목사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청년의 사형집행을 저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차라리 사형을 앞둔 청년은 담담하다. 오히려 피해자의 가족들과 정치인(미국은 판사도 선거로 선출된다)들은 광기에 가까운 연출을 통해 대중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 딸을 강간하고 죽인 범인을 이 세상에 살려둘 수는 없어요', '텍사스의 보수주의자들이여! 우리는 당신들의 뜻에 충실히 엄격한 법치를 세우겠어요' 물론 지역 방송사를 비롯한 미디어의 조력은 빠지지 않는다.

두 번의 재심요구와 한 번의 증언번복서는 당연히 거부당한다. 치정에 얽혀 거짓 증언을 했던 유일한 목격자의 번복서였다. 심지어 마지막의 재심요구는 퇴근시간을 8분 넘겼다는 이유로 채택이 거부된다. 전화를 통해 한 사람의 목숨이 걸린 사안임을  알렸음에도 가차가 없었다. 다분히 고의적인 면도 엿보인다. 픽션임을 감안하더라도 상황은 상당히 안타깝다. 어느 나라에서나 공무원들의 유연성은 부족한가보다.

'사법적 폭력'을 주장하며 청년의 사형을 막기 위해 운집한 시위대는 힘이 없다. 다수의 요구는 한 사람의 결정권자에 의해 묵살된다. 주지사에게로 향한 시위대에게는 그 상황마저도  이용하는 뼛속까지 정치적인(?) 정치인이 기다리고 있다. 시위대 앞에선 주지사는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주라는 텍사스의 주지사 자리에 걸맞는 상황을 연출한다.

"주 법원과 연방 법원에서 수십 명의 판사들이 그 사건을 재검토했고, 만장일치로 그의 유죄를 확정지었습니다."
군중의 야유와 고함 소리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게 된 뉴턴은 그 자에 선 채 그들을 바라보며 능글맞은 웃음 지었다. 힘없는 군중을 비웃은 강자의 여유였다.
...중략
주지사가 다시 한번 완벽한 드라마를 완성해 냈다는 만족감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앞으로 어떤 선거에서든 승리할 것이다! (340쪽)

많은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형은 서둘러 집행된다. 마침내 정의가 실현된 것이라 믿었던 피해자의 가족들은 만족한다. 하지만 부랑자의 자백에 따라 피해자의 시체가 외딴 곳에서 발견된다. 무고하게 사형당한 청년의 억울함이 명백해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사형을 결정하고 집행했던 자들에게서 망자에 대한 예의와 잘못된 결정에 대한 자성은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결국 그 일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사형 제도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사형을 반대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는 날을 오래전부터 두려워했습니다. 우리가 결백한 사람을 사형시켰다는 끔찍한 사실을 깨닫게 될 날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을 명백하고 확고한 증거로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이전에도 결백한 사람들이 사형을 당했지만 명백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돈테의 사건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488쪽)

누구의 대사일까? 사형을 판결한 판사? 사형을 집행한 주지사? 아니다. "난 처음부터 당신을 믿었고, 지금까지도 그 마음은 변함없어요. 내게 있어서 당신은 언제나 무죄에요"라고 사형을 앞둔 청년을 위로했던 변호사다. 따끔하다. 결국 소설은 사형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아닌 억울한 이를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했던 이의 목소리를 빌려 자성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작가는 서류뭉치를 앞에 두고 인간의 숭고한 목숨을 좌지우지했던 자들의 뉘우침은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씁쓸한 부분이다.

소설이 주는 깊은 울림은 돌이킬 수 없는 사형이라는 원시적 형벌에 대한 성찰에 국한되지 않는다. 억울하게 사형을 당했던 청년은 흑인이었다. 청년의 사형을 막고자 했던 시위대 또한 대부분이 미국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흑인으로 그려진다. 그렇다. 사형을 결정하고 집행했던 주지사나 판사들은 백인이었다. 작가가 던지고자 했던 진정한 메시지는 그 부분까지 고려해야 보이지 않을까?

한국의 역대 정권별 사형 집행 현황
이승만 335 / 윤보선 14 / 박정희 414 / 전두환 76 / 노태우 60 / 김영삼 12
1997년 12월30일 이후 집행없음
(출처: 법무부)

국제앰네스티가 발표한 연례사형현황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세계 198개국 중 20개국이 사형을 집행했으며 최소 676명이 처형됐다고 한다. 수천 건의 사형을 집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은 수치를 공개하지 않아 통계에서 빠져있다.

덧붙이는 글 | <고백> 존그리샴 지음. 신윤경 옮김. 문학수첩, 2011.6. 14,000원



고백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비채(2018)


태그:#존그리샴, #고백, #사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