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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광해>의 한 장면
 영화 <광해>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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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조선의 스물일곱 임금 가운데 연산군과 더불어 죽은 뒤에도 묘호를 받지 못한 두 번째이자 마지막 임금. 그는 어렵게 왕위에 올랐으나 15년의 짧은 치세 끝에 쫓겨난 뒤, 무려 18년이란 긴 시간을 강화도로, 제주도로 끌려다니다 치욕 속에서 죽음을 맞아야 했다. 하여 <광해군일기>에는 연산군처럼 살육과 폭정을 일삼은 임금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훗날 그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는 갈렸다. 영화 <광해>(2012)는 바로 이 부분을 파고 들었다.

그는 어떤 임금이었을까

그는 서출이었다. 만백성의 지아비인 임금에게 그깟 서출인 게 무어 그리 대수냐고 여길지 모르지만, 서출에겐 임금의 자리가 쉽게 허락되지도 않았고, 설사 그 자리에 오른다 해도 그것을 지켜내기란 쉽지 않았다. 광해의 아비인 선조 임금이 마지막 순간까지 적자에 대한 기대를 놓지 못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자신 조선의 첫 방계 혈통으로서 평생 떨치지 못했던 쓰린 한을 자식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나서야 어렵게 세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고, 또 몇 번의 고비를 넘긴 끝에 겨우 왕위를 물려받게 되지만, 그 뒤로도 끊임없이 조정 내 반대 세력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그뿐이 아니다. 조선의 주군 노릇을 하던 명나라는 그의 세자 책봉을 못 마땅하게 여기더니 선위(왕위를 물려줌)가 이루어진 뒤에도 끝내 서출임을 문제 삼아 조사단을 파견하기에 이른다. 조선의 15대 임금으로서 그의 앞에 놓인 운명은 이토록 가혹했다.

안팎의 위협에 맞닥뜨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그는 그 시대를 살았던 대개의 절대권력자들이 그랬듯 정적들을 가두거나 죽였다. 그 가운데는 자신과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난 형도 있었고, 아비인 선조가 그토록 아끼던 적자이자 배다른 어린 동생 그리고 그 어미도 포함돼 있었다. 하물며 피가 섞이지 않은 자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임금으로서 그가 보여준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때 몸을 피한 임금을 대신해 세자로서 분조(임시 조정)를 훌륭하게 이끌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임금으로서 황폐해진 민심을 어루만지며 바닥난 나라살림을 일으키고자 무던히도 애썼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가 첫 번째로 한 일은 경기도 일대에 대동법을 실시한 것이다. 이는 땅을 가진 자들에게 그 땅의 크기에 따라 쌀을 세금으로 걷도록 한 것으로, 공납의 온갖 폐해를 없애고, 땅을 가지지 못했던 가난한 농민들에게 세금 부담을 줄여주고자 내린 조치였다.

역사는 이렇듯 그를 다른 모습으로 기록하고 있다. 권력을 탐하며 피붙이들마저 잔인하게 죽인 폭군 광해, 그리고 백성의 어려움에 더불어 아파하던 자애로운 군주 광해.

두 명의 광해, 누가 진짜인가

영화 <광해>에서 진짜와 가짜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
 영화 <광해>에서 진짜와 가짜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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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해>는 그의 두 가지 모습을 담아내고자 서로 다른 두 명의 임금을 내세운다. 물론 한 명만이 진짜다. 하루하루 엄습해오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점점 그 눈빛에 살기가 더해가는 진짜 광해와 처음 본 어린 소녀의 딱한 사정에 귀 기울이며 따뜻한 눈물을 흘리는 가짜 광해. 그리고 영화는 묻는다. 당신에겐 어느 쪽이 진짜 임금인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영화가 끝나기 전에 당신은 답을 내려야 한다.

영화 속에서 조정을 장악한 서인 세력의 대신들은 중전의 오라비를 역모죄로 몰아 죽이려 한다. 그들의 칼끝이 향하고 있는 곳은 중전이다. 진짜 광해는 중전에게도, 그녀의 오라비에게도 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성균관 유생들이 몰려와 임금의 가는 길까지 막아나서는 통에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다. 결국 그는 말한다. '그 정도는 내줘야 저들이 나를 믿지 않겠느냐'고. 하나를 얻기 위해서라면 하나를 내줘야 하는 것이 '정치'라는 사실을 어린 시절부터 정치를 익혀온 진짜 광해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치를 접해본 적이 없는 가짜 광해는 그런 것을 알리 없다. 조정 대신들과 마주한 그가 어설프게 주워들은 대로 하나를 내주고 하나를 얻어오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정치가 시전판의 흥정인줄 아느냐'는 꾸지람뿐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 하나를 내줘야 하지만 그렇다고 시전판의 흥정처럼 해서는 안 되는 그것, 그 '정치'란 것이 가짜 광해에게는 어렵기만 했다.

그런 그가 노회한 관료들 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어 보였다. 그저 '경들의 뜻대로 하시오'란 말이나 되뇌다 그칠 줄 알았건만 그렇지가 않았다. '정치'를 모르는 그였지만 그에게는 그들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눈물'이었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단 한 가지를 꼽으라면

진짜 광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임금의 자리에 앉은 가짜 광해는 많은 일들을 해낸다. 호된 문초를 당하던 중전의 오라비를 풀어주고, 지주·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혔던 대동법도 밀어붙인다. 늘 슬픔에 젖어있는 중전에게 환한 웃음을 선물해 주고 싶었고, 더 이상 어린 소녀들이 고리대에 시달리다 궁으로 끌려오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정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였지만 주변 사람들의 딱한 사정에 귀 기울이며 함께 아파하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치를 모르던 그의 선택은 결국 화를 부르고 만다. 후금의 성장에 위협을 느낀 명나라가 원병을 요청해오자, 그가 이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이번에도 그는 눈물을 흘린다. 전장으로 끌려가야 하는 2만 명 젊은이들의 생때같은 목숨이 안타까워서였다. 그리고는 원병을 보내되 후금에도 사신을 보내 싸울 의사가 없음을 전하라는 명을 내린다. 그러나 그것은 곧 대명 사대주의를 부정하고 오랑캐와 내통하려는 반역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조정 대신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이제 남은 것은 전쟁뿐이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자와 정치를 아는 자들 사이의 전쟁.

영화 속에서는 가짜 광해가 그저 내 나라 젊은이들을 염려하는 마음에 그 자리에서 내린 결정으로 그려지지만, 역사는 이를 탁월한 외교술로 기록하고 있다. 무너져가는 명나라와 새롭게 떠오르는 후금 사이에서 광해군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실리적 중립 노선을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가 쫓겨난 뒤 다시금 친명배금 노선으로 돌아선 조선 사회는 정묘·병자호란이라는 참혹한 재앙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이 영화가 역사 비틀기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려던 것은 단순히 사대주의에 젖어있던 당대 관료·정치인들의 썩어빠진 의식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의 명운을 가를지 모를 선택 앞에서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마는 가슴 따뜻한 지도자의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정치를 안다는 수십 명의 정치가들이 모여 내린 결정이 때로는 백성을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어느 한 사람의 선택을 따라갈 수 없다는 무거운 진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말이다.

눈물을 모르는 정치, 정치를 모르는 눈물

18대 대통령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오랜 시간 정치를 익혀온 후보가 있는가 하면, 정치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거리를 두고자 노력해온 후보가 있고, 평생을 정치를 모르고 살아왔을 법한 후보도 있다. 정치를 가까이 해온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기왕에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다면 무턱대고 거리를 두는 것도 박수 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정치 논리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그가 그 가치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가, 혹은 그것을 앞으로도 지켜낼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정치를 모르는 눈물과 눈물을 모르는 정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느 쪽에 서겠는가. 만일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 스산한 풍경이 결국 백성을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릴 줄 모르는 정치의 탓이라 여긴다면 답은 분명하다. 정치를 모르는 눈물은 불안하지만, 눈물을 모르는 정치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선거는 어디까지나 엄연한 현실이라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꿈을 주지 못하고, 또 그 꿈을 실현시켜주지 못할 바에야 선거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냉소가 세상을 바꿨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나는 아직 대한민국 선거가 국민을 설레게 해주길 바란다.

영화가 끝날 무렵 임금을 호위하던 도부장은 가짜 광해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그대들에겐 가짜일지 모르나 나에겐 진짜요."

가짜가 진짜가 되는 순간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당신은 어느 쪽을 고르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그를 고른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태그:#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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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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