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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추석 이맘때였습니다. <남자의 자격>에서 시작된 '이경규표 꼬꼬면' 열풍이 라면 시장을 강타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그 진원지를 찾아 대형마트와 분식집 골목을 누볐고 꼬꼬면 개발자와 라면 공장까지 직접 찾아갔습니다. 그로부터 1년, 한때 '나가사끼 짬뽕', '기스면' 등과 함께 '하얀 국물' 시대를 열었지만 그 기세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과연 지난 1년 라면 시장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꼬꼬면과 함께 '하얀 국물' 시대도 이대로 사라지는 것인지 돌아봤습니다. [편집자말]
추석을 앞둔 지난 26일 오후 서울 무교동 한 분식점. 메뉴판엔 여전히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 등 '하얀 국물' 라면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지만 위태위태한 처지였다.
 추석을 앞둔 지난 26일 오후 서울 무교동 한 분식점. 메뉴판엔 여전히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 등 '하얀 국물' 라면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지만 위태위태한 처지였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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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의 안 팔려요. 어쩌다 하루에 한두 그릇 나갈까."

추석을 앞둔 지난 26일 오후 서울 무교동 한 분식점. 지난해 이맘때 '꼬꼬면'을 팔아 화제가 된 바로 그 곳이다. 메뉴판엔 여전히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 등 '하얀 국물' 라면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지만 위태위태한 처지였다.

"작년까진 잘 나갔죠. 우리 집 라면 매상이 하루 50~60개 정도인데 많을 때는 (하얀 국물 라면이) 40~50개도 나갔어요. 올해 들어 조금씩 줄더니 지금은 다시 신라면이 90% 정도 차지해요. 메뉴판에서 내릴까도 고민 중이에요."

분식집 경력 10년 베테랑인 사장님의 냉정한 평가가 이어졌다.

"TV에도 나오고 마트에서 품절된다니까 호기심에 사먹기도 했지만 '빨간 국물'에 길들여진 입맛 바꾸기가 어디 쉽나. 요즘도 신제품 많이 나오는데 다들 반짝하고 사라져."

한풀 꺾인 '하얀 국물'... 꼬꼬면 판매량 1년 만에 1/10로

지난해 8월 KBS 2TV <남자의 자격> 이경규씨가 개발해 '하얀 국물' 신드롬을 일으킨 꼬꼬면 체면이 요즘 말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한 달에 2000만 개까지 팔리던 팔도 꼬꼬면 판매량은 요즘 월 150만~200만 개로 줄었다. 1/10 토막이 난 것이다. 그마나 꼬꼬면을 대신해 '하얀 국물' 시대를 이끌었던 삼양 나가사끼 짬뽕도 최근 주춤하고 있다.

때마침 라면업계 1위인 농심에서 지난 25일 재밌는 보도자료를 냈다. 시장 조사 기관 AC닐슨 자료를 인용해 "라면시장 점유율이 하얀 국물 없던 때로 복귀"했고 "사실상 하얀 국물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선언했다. 과연 '하얀 국물' 시대는 이대로 끝나고 마는 걸까?

AC 닐슨의 8월 라면 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꼬꼬면, 나가사끼 짬뽕, 기스면 등 하얀 국물 라면 3종의 시장점유율(봉지라면 기준)은 7월 3.3%에서 8월 2.7%로 떨어졌고 월 매출도 43억 원으로 전달보다 10억 원 가량 줄었다. 특히 '하얀 국물' 하향세에도 꾸준히 10위권을 유지했던 나가사끼 짬뽕이 처음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꼬꼬면, 기스면은 아예 3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꼬꼬면 1년, 하얀국물은 끝났다?
 꼬꼬면 1년, 하얀국물은 끝났다?
ⓒ 이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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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라면시장 톱10도 신라면을 필두로 너구리, 짜파게티, 안성탕면 등 나온 지 수십 년 된 농심 장수 상품들이 8개나 이름을 올렸다. 삼양라면과 팔도 비빔면이 그나마 5위와 7위로 체면치레를 했을 뿐 신제품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덩달아 농심의 라면 시장 점유율(4대 브랜드 기준)도 67.9%로 1년 전 수준을 되찾았다. 지난해 7월 70%에 달했던 농심 시장 점유율은 8월 꼬꼬면 등장과 더불어 줄어들기 시작해 그해 12월에는 59.5%까지 20%포인트나 떨어졌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다시 회복하기 시작해 1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반면 꼬꼬면 인기에 힘입어 라면업계 만년 4위에서 3위로 올라섰던 팔도라면(한국야쿠르트에서 분사)는 다시 4위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7월 8.8%에서 12월 12.9%로 껑충 뛰었지만 올해 들어 다시 오뚜기에게 3위 자리를 내줬다. 삼양도 나가사끼 인기 덕에 11%에서 16%대까지 치솟았지만 올해 4월 이후 하향 곡선을 그리며 12%대로 다시 내려앉았다.

농심 "하얀 국물은 끝났다" vs. 팔도 "꼬꼬면 죽지 않았다"

결국 '반짝 인기'였던 것일까? '하얀 국물' 퇴조를 보는 시각은 분분하다. 농심은 일단 최근 경기 불황에서 원인을 찾는다. 농심 홍보팀 관계자는 지난 27일 "올해 불황이 이어지면서 장수 브랜드 판매율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사람들이 모험보다는 자신에게 익숙한 맛을 찾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부동의 1위 신라면은 7월 240억 원에서 8월 250억 원으로 매출이 올랐고 런던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양학선 선수 덕에 관심(?)을 끈 너구리도 7월 77억 원에서 8월 103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하얀 국물' 퇴조에 대해 이 관계자는 "지난해 언론의 큰 관심 때문에 예외적으로 나타난 새로운 트렌드"라면서 "3년 전부터 용기면 비중이 30%까지 높아진 것 외에 라면 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장기적으로 가는 사례는 흔치 않다"고 밝혔다.

반면 팔도에선 하얀 국물은 물론 꼬꼬면도 아직 죽지않았다고 강변한다. 팔도 관계자는 "하얀 국물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는 지난 4월부터 계속 나왔다"면서 "농심의 '하얀 국물' 죽이기 전략"이라고 일축했다.

지난해 추석을 앞둔 9월 9일 오전 경기 이천시 부발읍 무촌리 한국야쿠르트 이천공장에서 꼬꼬면이 생산되고 있다.
 지난해 추석을 앞둔 9월 9일 오전 경기 이천시 부발읍 무촌리 한국야쿠르트 이천공장에서 꼬꼬면이 생산되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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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자는 "지난해엔 언론의 관심 덕에 가수요가 많았던 게 사실"이라면서 "여름 들어 판매량이 준 데다 보수적인 입맛 탓에 빨간 국물을 다시 찾기 시작했지만 싫증나면 다시 새로운 맛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꼬꼬면 인기에 힘입어 지난 1월 한국야쿠르트에서 분사한 팔도는 '남자라면', '앵그리 꼬꼬면' 등 '빨간 국물' 신제품을 앞세워 꼬꼬면 인기를 이어가려 애쓰고 있다. 이 관계자는 "하얀 국물 꼬꼬면보다 빨간 국물 꼬꼬면이 조금 더 잘 팔린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하얀 국물' 대세는 끝났지만... "하나의 트렌드로 살아남을 것"

지난해 이경규씨와 함께 꼬꼬면을 상품화한 장본인인 최용민 팔도 마케팅팀 차장은 "하얀 국물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하얀 국물 대세론'이 무색할 만큼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빨간 국물'과 대비되며 하나의 트렌드로 계속 남아있을 거라는 얘기다.

최용민 차장은 "꼬꼬면, 나가사끼 같은 신제품이 신라면 같은 메인 시장을 대체하긴 어렵지만 나름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판매 순위 20위 권 안에만 들면 라면시장에 오래 살아남으면서 10위권에도 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 차장 "농심에선 '하얀 국물' 시장이 끝났다고 하는데 큰 브랜드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면서 "하얀 국물 라면이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건 올 연말이나 내년 초쯤 되면 판가름이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하얀 국물' 1세대는 지난 1988년 농심에서 나온 사리곰탕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농심은 이번에도 '후루룩 칼국수'로 뒤늦게 하얀 국물 경쟁에 끼어들긴 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진 못 했다. 지난해 꼬꼬면 열풍 역시 농심 '신라면 블랙'의 몰락과 극적으로 대비되며 부각된 측면도 있다.

라면업계 1위 업체조차 새로운 맛으로 보수적인 소비자들 입맛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은 하얀 국물을 앞세워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고 하나의 트렌드로 인정받았다. 한때 유행에 휩쓸릴망정 소비자 입맛이나 취향도 그만큼 다양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태그:#꼬꼬면, #신라면, #나가사끼짬뽕, #농심,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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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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