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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어느날. '서울 가는 날'이다.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로 간다. 가방을 최대한 가볍게 들고 가야 한다. 서울 사는 친구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거다. 서울 가는 일 자체가 지방 사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여정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서울역으로 가려면 조치원역을 이용해야 한다. 일단 학교에서 미호삼거리 정류장으로 간다. 여기에서 다시 조치원까지 가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 학교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놓치면 30분가량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

조치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다. 승하차 시간이 그만큼 길어진다. 기차시간은 다가오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오늘따라 여유가 넘치신다. 결국 기차를 놓쳐 40분 후에 출발하는 다음 기차를 탔다. 과제가 많아 기차 안에서 책을 꺼내 들었지만, 끊임없이 "일초, 일초"라는 뜻 모를 소리를 쉴 새 없이 내지르는 뒷좌석 꼬마 녀석 때문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서울역에 내렸다. 어느덧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정신 차릴 틈도 없이 공항철도를 타러 세 번의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공항철도를 타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내렸다.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에 내린 후 버스나 택시를 타야 한다. 아까 조치원역에서 기차를 아슬아슬하게 놓친 죄로 택시를 타야했다.

"이번에 용돈 많이 썼네."

서울에 다녀온 후 엄마가 무심한 듯 뼈있는 한 마디를 던지신다. 서울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활동을 하며 보람을 느껴도 늘 마음이 불편하다. 돈 때문이다. 차비는 물론이고 회식이나 뒤풀이가 있으면 추가 비용이 든다.

활동비를 지급받는 모임이면 교통비라도 내 힘으로 충당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가끔 인턴이라는 이유로 '무급 봉사'를 하면, 이후 얻을 스펙의 무게와 비용, 시간의 무게를 재봐야 한다. 돈과 시간은의 무게는 서울 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더욱 무겁다. 

지역의 대학생들, 뭘 좀 하려면 무조건 서울로?

'서울에서의 대외활동'을 통해 만난 대학생 오아무개(한동대, 23)씨는 경북 포항에서 학교를 다닌다. 나처럼 4학년 졸업반이다.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과 취업준비생들에게 공공연하게 퍼진 '정보'가 있다. 토익 등 어학 점수는 서울에 있는 어학원에 다녀야 금방 점수가 오른다고. 정보대로 오씨는 지난 여름방학 때 서울에서 '취업유학'을 했다.  

"주변에 몇몇 친구들은 토익 때문에 아예 휴학하고 서울에서 고시원 얻어 공부해요. 저는 방학 때만 올라와 자취하며 학원에서 종일 공부했어요. 서울에 온 김에 스터디 모임도 하려했는데, 모임에서는 장기적으로 함께 공부할 사람을 찾으니까, (모임) 구하기도 쉽지 않더라고요."

고려대, 강남, 신촌, 광화문등 중심으로 주로 서울에서 언론사 입사 준비 스터디가 진행된다. 간간이 부산, 광주 등 광역시에서도 스터디 모집 공고가 올라오지만, 찾아보기 쉽지 않다.
▲ 언론사 입사 준비 스터디 모집공고 고려대, 강남, 신촌, 광화문등 중심으로 주로 서울에서 언론사 입사 준비 스터디가 진행된다. 간간이 부산, 광주 등 광역시에서도 스터디 모집 공고가 올라오지만, 찾아보기 쉽지 않다.
ⓒ 차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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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취업을 희망하는 취업 준비생들은 필기 및 면접 시험을 위한 스터디 모임을 주로 한다. 함께 준비해야 많은 정보를 얻고 공부의 시너지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웬만한 스터디 모임이 대부분 신촌, 강남, 종로 등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내가 이용하는 언론사 입시관련 사이트의 경우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청주 지역에는 올해 들어 단 한 건의 스터디 모임 모집 공고도 뜨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선택은 하나다. 매주 서울로 가서 스터디 모임을 하고 돌아오는 것. 서울에서 학교까지 왕복 5시간과 차비 2만 원은 내가 매주 꿈을 위해 투자해야 하는 비용이다. 

봉사활동은 '스펙'을 구성하는 것 중 그나마 장소 제약을 덜 받는다. 지역별로 크고 작은 복지단체가 있는데, 젊은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영세한 곳이 외외로 많다. 교육봉사, 의료봉사, 급식봉사 등 마음만 있다면 어느 지역에서든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봉사활동마저 지역 '차별'이 존재한다. '봉사활동의 장르'가 서울은 훨씬 다양하다. 해외 봉사활동 신청, 영화제나 공연 행사 지원 등은 대체로 수도권에서 할 수 있다. 

한 유명한 카페에 올라온 봉사활동 모집 공고다. 수도권 봉사활동이 눈에 많이 띄지만 대체로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는 않았다.
▲ 봉사활동 목록 한 유명한 카페에 올라온 봉사활동 모집 공고다. 수도권 봉사활동이 눈에 많이 띄지만 대체로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는 않았다.
ⓒ 차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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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까지 서울로 올라가야만 할까?

해외봉사는 대부분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로 파견돼 교육 활동과 문화교류 활동을 하는데,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외국에 나가 짧게는 1주일, 길게는 몇 개월 동안 활동을 하기에 사전에 모여 준비할 게 많다.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태권도나 부채춤 등의 공연도 준비해야 한다. 가끔 K-POP 가수들의 인기곡에 맞춰 춤 연습도 해야 한다. 이런 모임 역시 서울에서 열린다. 방학 때 해외로 파견된다면 학기중에 서울을 오가며 준비해야 한다. 

청주에 거주하는 언론사 입사 지망생인 내가 스펙을 쌓으려면 더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 지역에 거주하면서 돈과 시간마저 없다면, '스펙 쌓기'는 먼나라 이야기다. 지역에 인맥과 정보가 부족하다는 건 이제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한국은 '서울공화국'이고, 여러 일들이 서울에서 시작해 서울에서 끝난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내게 "스펙이 필요하다"는 말만 한다. 나는 언제까지 서울을 오가야만 하는 걸까?

덧붙이는 글 | 오마이프리덤 3기입니다.



태그:#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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