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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저 계단 끝에 하얀 십자가가 보인다. 저 곳의 십자가는 이들을 위로해주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 계단 저 계단 끝에 하얀 십자가가 보인다. 저 곳의 십자가는 이들을 위로해주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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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가까운 동네, 달동네. 산등성이나 산비탈 따위의 높은 곳,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저런 안방 드라마에서는 달동네의 풍광을 감성적으로 그려내지만, 그곳에 서면 아릿한 마음에 눈가가 촉촉해진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변두리 지역에서 살았기에 사대문 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고작해야 학교나 직장 때문에 오가던 곳을 제외하면 어림짐작만 할 뿐이다.

전쟁이 끝나고, 갈 곳 없는 이들이 모였다

벽화 그렇게 겉만 살짝 예뻐진 것이 아니라, 벽화는 그 이상을 준 것이 아닐까 싶다.
▲ 벽화 그렇게 겉만 살짝 예뻐진 것이 아니라, 벽화는 그 이상을 준 것이 아닐까 싶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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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몇 남지 않은 달동네, 벽화가 그려진 홍제동 개미마을은 한국 전쟁 이후 갈 곳이 없는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형성된 마을이며, 1983년에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개미마을. 지금 5호선 거여역 주변에도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으로 쫓겨온 철거민들이 들어와 형성된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의 이름도 '개미마을'이었다. 달동네 혹은 철거민들이 모여 형성한 마을에는 으레 '개미마을'이 있는가 보다 했다.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도 늘 그 자리의 삶을 강요당하는 이들이 베짱이의 삶을 살아서 그런 것인 양 싶어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푯말 '쓰례기금지"라는 푯말이 정겨워 보이는 이유는 뭘까?
▲ 푯말 '쓰례기금지"라는 푯말이 정겨워 보이는 이유는 뭘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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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북했으면 고향을 등지고 산동네 달동네로 들어와 삶의 터전을 잡았을까.

그들의 고단한 삶은 술이 풀어주고, 고래고래 악이라도 써야 풀렸을 터이니 홍제동 개미마을의 본래 이름이 '인디언 마을'이라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단지 천막으로 집을 지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디언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이들이 많았다는 이야기. 그 소리는 아마도 세상을 향한 고함이었을 게다.

동래수퍼 개미마을에는 작은 가게들이 몇 있다. 그나마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이 좋은 이유기도 하다.
▲ 동래수퍼 개미마을에는 작은 가게들이 몇 있다. 그나마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이 좋은 이유기도 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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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수퍼'라고 페인트로 한껏 멋을 내어 쓴 작은 가게에 들렀다. 주인아저씨는 이곳에서 30여 년 살았다고 했다.

"맨 처음에 들어온 분들은 엄청나게 고생했지. 난 그래도 중간에 들어와서 그분들에게 비하면 고생을 덜 했지."
"벽화가 그려진 뒤 사람들이 많이 와서 귀찮지 않으세요?"
"뭐, 그런 거 없어,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우린 좋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 더 아린 마을

폐허 전에 화장실로 사용했던 곳이다.
▲ 폐허 전에 화장실로 사용했던 곳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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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주민 대부분은 일용직노동자로 살고 있으며, 홀몸노인도 많고, 국민기초생활수급자도 많단다. 주변이 온통 바위산이라 개발도 쉽지 않고, 개발이 된다고 해도 지금의 개발정책은 그들을 또 다른 사지로 몰아낼 뿐이다. 그냥저냥 체념하며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듯해 마음이 더 아리다.

개미마을 사람이 떠나난 집 지붕에 피어난 가을꽃, 자주꿩의비름. 그 꽃처럼 이들의 삶 피어나면 좋겠다.
▲ 개미마을 사람이 떠나난 집 지붕에 피어난 가을꽃, 자주꿩의비름. 그 꽃처럼 이들의 삶 피어나면 좋겠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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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례기 금지, 마을뻐쓰, 동래수퍼...'

사람 떠난 집, 슬레이트 지붕 위에 제철을 맞아 화들짝 피어난 자주 꿩의비름과 초록의 환삼덩굴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맞춤법 정확하게 글귀가 적혀 있고, 풀이라고는 살 수 없는 번듯한 집이 주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빨래 청명한 가을 하늘에 뽀송뽀송 말라가는 빨래, 저렇게 우리의 삶도 뽀송거렸으면 좋으련만.
▲ 빨래 청명한 가을 하늘에 뽀송뽀송 말라가는 빨래, 저렇게 우리의 삶도 뽀송거렸으면 좋으련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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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마을버스가 '그르릉' 묵직한 중저음의 쇳소리를 내며 위태위태 비탈길을 오르고, 승객들은 손잡이를 꼭 잡고 서 있다. 생소한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비탈이 심하오니 의자에서 일어나지 마시고 버스가 설 때까지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마을버스 정류장 마을버스 정류장 옆 간이 화장실, 마을뻐스, 오히려 정겹지 않은가?
▲ 마을버스 정류장 마을버스 정류장 옆 간이 화장실, 마을뻐스, 오히려 정겹지 않은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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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귀가 먹어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할머니 한 분이 "나, 이번에 내릴 건데"라며 기울어진 버스에서 주름진 여윈 손아귀에 힘을 잔뜩 주며 일어서려고 한다.

버스가 서기 전까지는 일어서지 못하고, 비스듬히 버스가 서자 힘겹게 일어서 버스에서 내린다. 저 비탈진 언덕길과 계단을 수도 없이 오로지 다리의 근력만으로 오르내렸을 것이다.

지붕 비가 새는 집...그렇게 한겹두겹 아픔의 세월이 쌓인 것이다.
▲ 지붕 비가 새는 집...그렇게 한겹두겹 아픔의 세월이 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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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소가 적힌 푯말을 보니 '세검정길'이란다.

홍제동이 세검정이었구나. 어릴 적 이모님이 세검정에 살았는데... 그러면 그 집이 여기 어디였던 것일까. 이모님 집에 놀러 왔다 올라간 야산이 혹시 지금의 인왕산 산책로일까. 아니, 아무리 어릴 적 기억이 흐릿해도 작은 집은 아니었고, 정원까지 딸린 제법 번듯한 집이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이모님 집은 개미마을 건너편이었다고 한다. 아침 햇살이 산등성이에 가려지는 개미마을이 아니라, 아침 햇살을 오롯이 맞이하는 개미마을 맞은 편이 낮은 산 근처 어디라고 한다. 그곳은 이미 오래전에 개발이 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빨래 가을마실을 나온 빨래들이 정겨워 보이기도 한다.
▲ 빨래 가을마실을 나온 빨래들이 정겨워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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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일까. 얼마만큼 무관심해질 수 있고,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일까.

세상이야 어떻든 그렁저렁 살아가는 이들의 그렁저렁한 삶의 흔적들, 집마다 경계가 모호한 지붕들처럼, 의미전달 하나는 확실한 오타 난 글자들에는 그들의 삶이 엉겨붙어 있는 듯하여 정겹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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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