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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끝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 19일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그 이튿날 첫 공식일정으로 안철수 후보는 서울 동작동 현충원(옛 국립묘지)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일제하 항일 애국선열들과 한국전, 월남전 등에서 전사한 호국용사들의 충혼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우리 민족의 성지(聖地) 가운데 하나랄 수 있습니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앞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도 후보로 선출된 뒤 각각 이곳을 참배한 바 있습니다.

이날 안 후보는 첫 일정으로 이곳 현충원의 상징물인 현충탑에 참배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 현충문 왼쪽에 있는 '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을 참배했는데요, 그간 현충원을 찾은 고위인사들이 이곳을 참배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참고로 이 탑에는 6·25 당시 포항지구에서 전사한 학도의용군 김춘식 등 48위의 무명용사 유해가 반구형 석함분묘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무명용사탑 참배를 마친 안 후보가 찾은 곳은 전직 대통령 묘소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현충탑 바로 뒤쪽에 있는 사병묘역을 찾았는데요, 이는 앞서 월남전에서 전사한 병사의 묘소를 참배한 문재인 후보를 의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무명용사탑에 이어 사병묘역 참배를 마친 안 후보는 이번에는 사병묘역(서편) 위쪽에 있는 '국가유공자 제3묘역'을 찾았습니다. 유가족이나 지인 등의 개인적 참배가 아닌, 의례(儀禮) 목적의 참배자가 이곳을 찾은 경우도 그리 흔치 않은 일입니다. 이곳엔 1968년 1월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기습사건, 소위 '1·21사태' 당시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당시 종로경찰서장)을 비롯해 여군 창설의 주역이자 초대 여군처장을 역임한 김숙현 전 의원, 한국전쟁 당시 '배티고지 전투의 영웅' 김만술 대위, 그리고 박태준 전 국무총리(포스코 명예회장) 등이 안장돼 있습니다. 안 후보는 이들 가운데 박 전 총리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서울 현충원 묘역 및 시설 안내도
 서울 현충원 묘역 및 시설 안내도
ⓒ 서울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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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비로소 안 후보는 세 전직 대통령의 묘소로 향했습니다. 그는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순으로 묘소를 참배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동선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서편 사병묘역에서 나와 언덕길을 오르면 이승만 대통령 묘소가 있고, 다시 장군제1묘역을 우측으로 돌아 언덕을 오르면 서울 현충원 경내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박정희 대통령 묘소에 다다릅니다. 김대중 대통령 묘소는 장군제1묘역 오른쪽으로 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왼편 길가에 마련돼 있습니다. 세 전직 대통령 묘소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작고 소박한 편입니다.

한편, 이들 세 후보의 '3인 3색' 현충원 참배를 놓고 뒷말이 많았습니다. 말하자면 이들 3인의 참배 방식이 각자의 정치적 성향이나 의도들 잘 드러냈다고나 할까요? 우선 제일 먼저 참배한 박근혜 후보는 전직 대통령 묘소 세 곳을 전부 참배했습니다. 이는 '국민 대통합'을 내건 박 후보의 '광폭행보'를 반영한 것이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참배한 문재인 후보는 '독재통치'의 역사적 과오가 있는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지 않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만 참배했습니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과 보수 일각에서는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이는 문 후보 나름의 역사관이 반영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지막 참배자인 안철수 후보는 세 전직 대통령 묘소는 물론 학도의용군무명용사탑, 사병묘역, 박태준 전 총리 묘소도 참배했습니다. 일종의 '종합판'이랄 수 있는데요, 이 역시 안 후보 나름의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안 후보가 이-박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것은 보수진영의 표를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중론입니다. 안 후보가 전반적으로는 개혁성향을 띠고 있어 진보진영과 젊은층을 공략하면서도 중도성향의 무당파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보수적 행보'도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 후보를 포함해 대선후보 3인이 애국지사 묘역 및 임정요인 묘역을 참배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런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현충원 여러 총리 묘소 가운데 박태준 찾은 안철수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20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20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박태준 전 국무총리(포스코 명예회장)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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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안 후보의 현충원 참배에서 유달리 눈길을 끈 것은 박태준 전 총리 묘소를 참배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 후보는 특히 박 전 총리 묘소에서 무릎을 꿇고 분향을 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의례 목적으로 현충원을 찾은 고위인사들이 전직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는 경우는 흔히 있었지만 전직 국무총리 묘소를 참배한 경우는 별로 알려진 바 없습니다. 참고로 서울 현충원에는 박 전 총리 말고도 진의종, 백두진(이상 국가유공자 제1묘역), 정일권(제3장군묘역) 전 총리 등도 묻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 후보가 여러 전직 총리 가운데 유독 박태준 전 총리 묘소를 참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안 후보와 박 전 총리 두 사람 간의 '인연'을 들 수 있습니다. 안 후보는 2005년 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만 6년간 포스코의 사외이사 및 이사회 의장을 지냈으니 그 인연이 결코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박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을 받아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을 세운 주인공입니다. 포철은 박정희 시대 경제건설의 상징과도 같은 것으로, 중화학공업과 함께 양대 축이랄 수 있습니다. '철강왕'으로 불리는 박 전 총리의 삶을 두고도 다양한 평가가 있겠지만 그가 포스코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5·16 후 박정희 인맥 가운데 드물게 산업계로 진출한 박 전 총리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국보위 경제 제1위원장 취임을 계기로 뒤늦게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그는 이듬해 민정당 전국구로 당선돼 국회 재무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88년에는 노태우에 이어 민주정의당 대표를 지내기도 했는데 그 시절 그는 김종필(JP)와 함께 3공 정치인을 대표했습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 최고위원이 된 그는 YS와의 불화로 정계를 떠났으며 1992년 10월 포철 회장직도 그만두었습니다. 이후 한동안 칩거생활을 한 그는 지난해 12월 84세로 타계해 서울 현충원 국가유공자묘역(제3유공자 6번)에 묻혔습니다.

박 전 총리가 타계했을 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그의 빈소를 찾은 안 후보는 "포스코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정말 큰 기여를 한 의미있는 기업으로, 그 초석을 닦은 분이 박 명예회장"이라며 박 전 회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두 사람은 생전에 이렇다 할 교분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안 후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포스코의 기업문화와 이같은 터전을 일군 '선배 기업인' 박 전 총리에 대해 남다른 존경심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특히 박 전 총리가 박정희 시대의 상징적 인물인데다 보수성향이어서 박 전 총리 묘소 참배는 다각적인 포석이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안 후보가 박 전 총리 묘소를 참배한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어 보입니다. 바로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 선생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 안 후보 캠프의 대표적 원로인사로 꼽히는 데 두 사람 모두 19일 안 후보의 대선출마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출마선언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캠프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고 묻자 안 후보는 "(앞으로) 같이 할 분들은 이 자리에 참석했다"며 조 선생 등을 지목했습니다. 또 출마선언 때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성장 동력을 가진 상태에서만 가능하다"고 한 것도 박 전 회장의 영향을 받은 경제관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조 선생은 <태백산맥><아리랑><한강> 등 우리 근현대사를 아우른 대하소설 작가로, 작품 속에서는 물론 평소 언행으로도 진보를 표방해 왔습니다. 그런 조 선생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역사관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박근혜 후보를 두고 "겉은 육영수, 속은 박정희"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반면 박원순 변호사의 서울시장 당선과 안철수 후보의 부상에 대해서는 "그들이 평생 삶을 통해 진정성, 헌신성, 실천성을 충분히 보여줬기 때문에 신뢰하는 것"이라며 "그들의 부상은 국민의 선택이고 시대의 요구이자 역사의 부름"이라고 호평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작가인 조 선생은 박태준 전 총리와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요?

조 선생의 대표작 <태백산맥><아리랑><한강> 속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는 실존인물을 가명으로 등장시키거나 아예 실명으로 박은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이는 작가 사회에서도 드문 일입니다. 우선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김범우는 자신의 실제 외삼촌(박순동)이고, 법일 스님은 자신의 부친(조종현, 승려)이며, 또 '소년 빨치산' 조원제는 경제학자 박현채가 그 모델입니다. 또 <한강>에 등장하는 퇴직기자들은 권근술 전 <한겨레> 사장과 그의 동료들을 간접 모델로 삼은 것입니다. 이밖에도 <한강>에는 실명이 더러 등장하기도 하는데 전태일 열사, 친일파 연구가 임종국 선생,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 등이 이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개인적 인연과 '조정래의 영향' 때문 아닐까?

 박태준(왼쪽) 전 총리와 조정래(가운데) 선생이 2008년 11월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박태준(왼쪽) 전 총리와 조정래(가운데) 선생이 2008년 11월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 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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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 선생은 <한강>을 집필하기 전에 취재차 박 전 회장과 여러 차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1980년대 당시 한국은 반독재 집회와 데모가 연일 이어졌습니다. 시위 때문에 나라가 망할 지경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나라가 망하기는커녕 1990년대 들어 한국은 GDP 1만 달러에 OECD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해 하며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던 조 선생은 포스코의 철강 생산과 중동에서 벌어들인 오일달러가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이룩해낸 주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조 선생은 '포철 신화'의 주역인 박 전 회장을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박 전 회장을 인터뷰한 후 조 선생은 이를 <한강>에 고스란히 녹여냈습니다. <한강>의 한 파트는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평균 120장 정도인데 포스코를 다룬 파트는 그 두 배에 이르는 220장 정도나 됩니다. 이는 우리 경제 발전사에서 포스코가 갖는 비중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은 세계 9위의 수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주요 수출 품목은 가전·자동차·조선·각종 기계 등인데 이 품목들은 모두 '쇠'를 재료로 하고 있습니다. 조 선생은 "포스코에서 철강을 싸게 생산해내서 각종 산업에 공급하지 않고 비싸게 수입해서 썼더라면 어찌 되었겠느냐"며 포철의 공로를 새삼 강조하였습니다.

조 선생은 지난 2007년부터 우리 역사 속의 위인 15명을 골라 아동용으로 <큰 작가 조정래의 인물 이야기> 시리즈를 펴내고 있는데 제5권이 바로 박태준 전 회장을 다룬 것입니다. 조 선생은 "20여 년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조국사랑의 변함없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며 "사욕·사심을 갖지 않는 그 청렴에 절로 존경이 우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 예로 박 전 회장이 집을 판 돈 14억 가운데 10억을 아름다운재단에 기증하고 자신은 전세살이를 했으며, 포철 창립자이면서도 퇴직금은 물론 주식 한 주도 받지 않았다고 소개했습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조 선생은 자신이 박 전 회장의 위인전을 쓰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KBS에서 대선을 앞두고 '강철왕'이라는 드라마를 만든다고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박태준 전 회장의 일대기를 그린 것이지만 사실상 '박정희 미화'가 예상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박-박 두 사람은 마치 '바늘과 실'과 같은 관계여서 한 사람을 거론하면 다른 한 사람은 자연히 따라 나오는 상황인 것입니다. 최근 박근혜 후보의 5·16쿠데타 및 10월 유신 미화발언이 논란이 일고 있는 와중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독재자' 이미지가 새삼 부각되고 있습니다. 반면 안철수 원장의 대선출마를 계기로 박태준 전 회장은 '애국적 기업인'의 면모로 돌연 언론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강철왕' 박태준, 유명작가 조정래와의 '3각 인연'을 맺은 안철수 후보가 향후 어떤 성적표를 얻을지 두고 볼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진실의 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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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언론사에서 근무했고, 친일청산 등 역사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평소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갈망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