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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부실 초동수사' 순천서장 이어 전남경찰청장도 직위해제

육영수 여사의 비극적인 죽음. 그 후 첫 공식 행보에 나섰던 1974년 9월부터 10.26 직전까지, 박근혜 대선 후보의 퍼스트레이디 활동 기간은 현 대통령 임기와 맞먹는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 만큼, 박 후보의 당시 행적은 중요한 검증 대상이다. 그러나 이 기간에 대한 평가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과거 청와대 안주인에서 미래 청와대 새 주인을 꿈꾸는 최초의 대선 후보, 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 기간 모습을 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말]
 재벌들마저 퍼스트레이디 박근혜 앞에서 '새마음'을 다짐하던 그 때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게 달아오르던 시기였다. 사진은 YH 투쟁 당시 마포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하다가 경찰의 강제 해산으로 끌려 나오는 여공의 모습
ⓒ 1993 <한국현대사 119 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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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음운동'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학생 조직이다. 젊은 퍼스트 레이디의 '시행착오' 혹은 '잠깐의 일탈'로 보기에는 어려운, 이 운동의 지속성을 담보하고자 하는 그 의도와 치밀함이 학생 조직 구성 과정에서 읽히기 때문이다.

새마음운동 학생 조직의 탄생은 1977년 11월 26일 열린 '대통령 영애컵 쟁탈 새마음갖기 전국 남녀학생 웅변대회'가 그 시발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시상식에는 박근혜와 당시 내무부장관 또 문교부차관도 배석하는데, 문교부 역할이 단순히 '자리 보전'이 아니었음이 그 후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약 4개월이 지난 1978년 3월, 구국여성봉사단이 간행한 '충효례' 책자 16만5000부, 다시 8월에는 '새마음의 결의 실천'이란 책자 19만6300부가 문교부를 통해 전국 학교에 배포된다. '새마음갖기운동의 횃불'이란 박근혜의 친필 휘호가 실린 월간지 <새마음> 창간호도 그해 7월 첫 선을 보인다.

'충효예'라며... 박근혜에게 90도 인사 '연습'

 박근혜 후보의 친필, 새마음갖기운동의 횃불
ⓒ 2007년 박근혜 후보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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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학생단위 조직이 본격 건설되기 시작한다.

1978년 6월 시장, 시교육감, 중고등학교 교장, 교사, 학생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 중고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 및 중·고교생 새마음연합회 합동발대식'이 열린다. 이어 서울, 경기, 강원, 경북, 충북, 전남, 충남, 경남, 전북 등 순으로 학생 단위 조직이 차례차례 만들어진다. 박근혜의 '등판' 역시 꾸준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8년 11월 26일 '전국 새마음 중·고·대학생 총연합회 발대식'을 통해 '새마음 전국구' 학생 조직이 탄생한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목숨을 지키려는 애착만큼이나" 또는 "충효예를 실천하지 않고는 도저히 마음이 편치 않은 풍토" 등 표현으로 새마음운동에 매진할 것을 강조한다.

그와 같은 풍토가 실제 어떠했는지는 2011년 6월 8일자 <한겨레>에 잘 나타난다. 1978년 광주 북성중학교에 교사로 근무하던 정해숙(전 전교조 위원장)씨는 기고문에서 교육청에서 참가 교사를 지명했으며, 이를 정식 공문 형태로 하달했을 뿐만 아니라 예행 연습까지 있었다며 이렇게 전하고 있다.

"예행연습에 갔던 직원이 언제 경례를 하고, 언제 자리에 앉는지 등등 예행연습한 내용도 알려줬다. 충효예를 내세운 행사에서 27살(박근혜 후보는 1952년생이다. 한국 나이로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의 젊은 총재가 퇴장할 때 환갑을 바라보거나 넘은 교장·교감·교사·교수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서서 90도로 절을 하도록 예행연습했다니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대학생 새마음 요원 "중고등학교에서 형님 누이처럼 지도하라"

 새마음운동은 '새마음요원' 양성 등 학생 단위 조직에도 깊숙이 '침투했다'. 1979년 8월 21일자 <경향신문>
ⓒ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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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이해 불가' 상황은 1979년에 이르러 더욱 심화된다. '새마음갖기운동본부'가 출범하고, 또 그해는 '새마음갖기운동 학생의 해'로 규정된다. 이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마음운동은 선도사업이나 장학사업, 그리고 문화행사로까지 확대된다. 대표적인 예가 그해 6월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제전이다.

"상오 10시 30분 예고 없이 박 총재가 식장에 들어서자 젊은 학생들은 "새마음"이란 힘찬 구호를 외쳤으며 박 총재는 손을 흔들어 이들의 환호에 답했다... (중략) ... 찌푸린 날씨에도 1천5백여명의 새마음봉사단원,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원, 연예인봉사대원 등이 참석, 젊음과 패기로 온통 새마음으로 물결 쳤다." (1979년 6월 11일자 <경향신문>)

또한 당시 <경향신문>은 서울 시내 33개 대학교 새마음봉사단원 750여 명이 참석했다고 전하고 있다. 대학교마다 20여 명 이상의 '박근혜 단원'이 존재했던 셈이다. 실제 박근혜는 대학생 조직에 특히 더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두 달 후 나타나는 '새마음요원'들이 그 단적인 예다.

1979년 8월 21일자 <경향신문>은 "전국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 제10기 새마음요원 수료식이 거행됐다"면서 "새마음요원 양성은 새마음갖기운동을 더욱 심화하고 이들 요원들로 하여금 새마음정신을 각 시도에 널리 확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그 목적까지 자세히 전하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 개조'가 상당히 치밀하게 시도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당시 수료식에서 박근혜는 "교육원에서 교육받은 대학생 중 뛰어난 학생들이 각 중·고등학교에 나가 형님이나 누이처럼 중고등학생들에게 새마음 지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일종의 활용 방안까지 제시한다.

박근혜의 새마음... 쌍용, 두산, 현대도 '떨었다'

 1979년은 재벌들의 새마음운동 러시가 이뤄진 해이기도 했다.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 대회 및 직장봉사대 발대식'이란 이름의 행사에 그룹 임직원들은 대규모로 참가해 '새마음'을 다짐해야 했다. 현대그룹 대회에서 그룹 임직원들을 격려하는 박근혜(위 왼쪽), 동아그룹 대회 후 그룹 간부들과의 간담회 모습(위 오른쪽), 두산그룹 행사에서 새마음갖기에 앞장설 것을 다짐받는 박근혜(아래 왼쪽), 쌍용그룹 대회에서 '우수 대원'에게 표창장을 수여하는 박근혜(아래 오른쪽)
ⓒ <경향신문> <매일경제>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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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978년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새마음운동 조직 건설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다. 전국 각 지역은 물론 중·고·대학생, 교사, 불교계, 직능단체 등 부문별로 방대한 규모의 조직이 구축된 것이다. 이제 '마지막' 조직 구축 대상은 재벌, 그들의 충성도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새마음을 다짐한 곳은 태평양그룹이었다. 1978년 11월 태평양은 새마음 결의 실천대회를 열고 직장봉사대를 출범시킨다. 그 다음은 현대그룹. 1979년 2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대회에는 정주영 회장을 비롯한 현대그룹 14개 기업체 임직원 6100여 명이 참가했다고 전한다. 상공부 장관, 건설부 장관, 동자부 장관도 참석한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의미심장한 축사를 한다. "사회의 잘못된 점, 불편한 점, 어두운 면들을 불평하고 한탄하기에 앞서 그 어두움을 환하게 하는데 한 몫의 책임을 진 내 마음의 불은 잘 들어오고 있는지 살펴보는 자세가 새마음갖기의 첫 걸음"이라고 한 것이다.

1978년 3월,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이 똥물을 얻어맞으며 공장 밖으로 강제로 쫓겨났다. 72명의 여성 노동자가 연행됐으며, 그 과정에서 50여 명이 졸도했다. 현대그룹이 새마음을 '다짐'한 6개월 후에는 YH 투쟁이 일어난다. 그만큼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게 달아오르던 시기였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사실상 '불평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은 박근혜의 '새마음'을 재벌들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새마음 러시'가 이어졌다. 1979년 5월 동아그룹이 현대그룹의 길을 따랐고, 1주일 후에는 역시 두산그룹이 새마음직장봉사대를 띄운다. 10.26 사건 직전에는 대농그룹과 쌍용그룹이 각각 새마음갖기결의실천대회를 연다. 그야말로 새마음으로 '정경유착'이었던 셈이다.

새마음운동, 만약 10.26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1977년 육사에 재학중이던 박지만 생도를 박 대통령 가족이 면회하던 날 기념사진. 당시 육사 교장이었던 정승화 장군(오른쪽), 경호실 작전차장보였던 전두환 장군(왼쪽에서 세 번째), 차지철 경호실장(박 대통령 오른쪽) 등이 눈길을 끈다
ⓒ 1992년 <남산의 부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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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레이디 박근혜의 새마음운동은 매우 거대한 규모로, 동시에 아주 치밀하게 이뤄졌다. 1977년부터 전국에 지역 단위 조직이 만들어졌고, 새마음대회가 열릴 때마다 수만 명의 시민이 연도에서 박근혜를 맞았다. 다음해인 1978년에는 학생 단위 조직이 구축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대학생들에게는 '새마음요원'이란 '중책'을 맡겼다.

불교계도 발벗고 나섰으며, 노동자들도 '새마음봉사대'로 귀속시켰다. 구로공단, 간호원, 버스 안내원 등이 '새마음 대열'에 합류했으며, 이에 재벌들도 수천 명의 임직원을 한 자리에 모아 '화답'했다. 그 대부분 출범 과정에 박근혜는 직접 참석했으며, 그로 인해 장관이나 도지사 등 지자체장의 '개근'도 따라붙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됐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따라서 새마음운동을 '유신 공주'가 벌인 '이미지 정치' 혹은 아버지를 조력하기 위한 새마을운동의 '2단계' 정도로 바라보는 것은 오히려 '퍼스트 레이디 박근혜'를 단순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비록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10.26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새마음운동은 새마을운동에 비견될 정도로 성장했을 수도 있다. 동시에 박근혜의 정치력 또한 커졌을 것은 자명하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10.26 사건의 동기 중 하나로 '구국여성봉사단과 연관한 큰 영애의 문제'를 지목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퍼스트 레이디 시절, 정치적 핵심 자산이 의료보험 도입?

 2007년 7월 16일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출판기념회 당시 박근혜 후보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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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음운동이 퍼스트 레이디 시절 박근혜 후보의 매우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었음은 분명하다. 동시에 당시 구축된 조직이 박 후보의 정치적 재기에 중요한 발판이 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1989년 10월 27일자 <한겨레>는 "지난 5월 박씨가 새마음봉사단의 후신인 '근화봉사단'을 재조직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했다"며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근화봉사단은 현재 회원이 20여만명이라고 밝히면서 연말까지 50만명을 목표로 조직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시도는 물론 일부 군단위까지 지부가 설치돼 있는데 서울에만도 22개가 있다. 매달 발행하고 있는 기관지 <근화보> 발행 부수는 10여만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새마음운동은 박 후보의 과거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키워드다. 그럼에도 그는 2007년 자서전에서 자신의 퍼스트 레이디 시절을 '관통'하는 새마음운동에 매우 박한 모습이다. 장학금 지급이나 무료 진료 등 긍정적으로 볼 만한 새마음운동 사례도 직접적인 '연결'만은 피하고 있다.

오히려 박 후보는 자서전에서 박정희 정권 시절 의료보험 도입 과정을 소개하면서 "퍼스트레이디로 있는 동안 내가 공을 들이고 열과 성을 다한 일이었으므로 내게도 큰 보람이었다"고 적고 있다. 새마음운동 대신 의료보험 도입을 정치적 자산으로 내세운 셈이다.

하지만 역시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에 실렸던 보도를 모두 살펴봐도 의료보험과 관련한 특기할 만한 행보를 확인할 수 없다. 특히 유신 정권의 '주구' 역할을 했던 <경향신문>에서조차 '큰 영애'의 의료보험 도입과 관련한 뚜렷한 '족적'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에 대한 약속"이란 그의 친필

 1977년 1월 1일, 신문 1면에 등장한 박근혜 후보
ⓒ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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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후보가 퍼스트 레이디로 보낸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유신 정권 18년이란 시간 탓에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지지만, 현직 대통령 임기와 맞먹는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이뤄진 가장 핵심적인 활동인 새마음운동이 '그의 과거'에서 거의 지워져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퍼스트 레이디 출신 대통령 후보 박근혜가 남긴 "이 책은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에 대한 약속"이란 뚜렷한 친필이 오히려 흐릿하게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음은 1975년부터 1979년 10.26 사건 전까지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이 박근혜 후보가 직접 참석한 것으로 보도한 최태민 목사 또는 새마음운동 관련 행보를 정리한 것이다. 청색 글씨는 청와대 일정.

1975년

05월 11일 기독교 초교파 구국기도대회 - 임진각
05월 24일 구국선교단 군사훈련 퇴소식 - 5019부대
06월 01일 구국선교단 구국연합기도대회 - 대구 제2교회
06월 21일 구국십자군 창군식 - 배재고등학교
06월 22일 나라의 영원한 보호와 발전을 기원하는 기도회 - 대전고교
09월 02일 구국선교단·서울의사회 자매결연식 - 야간진료센터

1976년

01월 27일 구국선교단 헌혈행사 - 헌혈운동본부
03월 24일 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 개원식
04월 29일 구국여성봉사단 발단식 - 유관순 기념관
06월 17일 구국선교단 불우노인 경로대잔치 - 유관순 기념관
09월 16일 구국여성봉사단 천안지부 창단식 - 천안 한일극장
09월 21일 구국단체결연단합대회 - 유관순 기념관
09월 22일 구국여성봉사단 수원·화성지부 창단식 - 수원시민회관
12월 10일 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 기념식
12월 12일 TBC 특별기자회견
12월 17일 KBS 송년특집대담

1977년

01월 03일 MBC 신년대담
01월 10일 일본 오사카 야마모토 병원장 접견
02월 25일 구국여성봉사단 양부모 결연식 - 유관순 기념관
03월 16일 구국봉사단 경로병원 개원식
03월 16일 새마음갖기 범국민 궐기대회 - 시민회관 별관
03월 25일 경기·인천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인천 선인체육관
04월 12일 경남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마산
04월 20일 충남·대전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대전 충무체육관
04월 28일 전북·전주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전주 실내체육관
05월 26일 전남·광주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광주 실내체육관
06월 03일 부산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부산 구덕체육관
07월 06일 새마음갖기 캠페인 유공자 접견
10월 18일 강원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춘천 강원체육관
10월 28일 충북 새마음갖기 궐기대회 - 청주 실내체육관
11월 26일 새마음갖기 전국 남녀학생 웅변대회 - 서울문화회관 별관
12월 29일 방송 3사 '영애 박근혜양과의 대화'

1978년

02월 22일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 전국대회 - 문화회관 별관
04월 21일 새마음학생회 발단식 - 경기여고
04월 25일 새마음갖기운동 솔선수범 낙도 노인 접견
04월 27일 새마음갖기 국민운동 불교본부 접견
06월 01일 공단 새마음갖기결의실천대회 - 구로공단 운동장
06월 09일 일본 오사카 야마모토 병원장 접견
06월 14일 전국 노인지도자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 세종문화회관 별관
06월 19일 부산 중·고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 부산 구덕체육관
06월 22일 서울 중·고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 잠실 학생체육관
06월 23일 제주도민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 제주시민회관
09월 01일 경기도민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 인천 선인체육관
09월 06일 새마음갖기국민운동 부산경남 대법회 - 부산 구덕체육관
09월 11일 경기 초·중·고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 인천 선인체육관
09월 21일 강원 새마음갖기 노인지도자 대회 - 춘천 강원체육관
09월 22일 한국간호원보조협회 새마음갖기 결의대회 - 어린이회관
10월 06일 경북 새마음 중·고 연합회 발대식 - 경북체육관
10월 23일 충북 새마음 중·고 연합회 발대식 - 충북 실내체육관
10월 27일 전남 새마음 중·고 연합회 발대식 - 광주 실내체육관
10월 28일 구국여성봉사단 주관 자연보호운동 - 관음사 계곡
10월 31일 충남 새마음 중·고 연합회 발대식 - 대전 충무체육관
11월 02일 경남 새마음 중·고 연합회 발대식 - 진주 공설운동장
11월 10일 전북 새마음 중·고 연합회 발대식 - 전주 실내체육관
11월 20일 자동차노조(버스 안내양) 새마음 직장봉사대 발대식 - 유관순 기념관
11월 26일 전국 새마음 중·고·대학생 연합 발대식 -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1979년

01월 09일 구국여성봉사단 운영위원 접견
01월 11일 구국여성봉사단 전국 시도단장 접견
02월 09일 새마음갖기범국민운동본부 주최 물가 안정 범국민대회 - 서울 문화체육관
02월 27일 현대그룹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 - 장충체육관
04월 06일 새마음장학결연대회 - 서울 문화체육관
05월 22일 새마음학교 수료식 - 새마음본부 강당
05월 25일 새마음갖기운동 자문위원 위촉식
05월 29일 동아그룹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 - 장충체육관
06월 05일 두산그룹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 - 세종문화회관
06월 10일 제1회 새마음제전 - 한양대 운동장
08월 20일 새마음대학생 수료식 - 새마음교육원
08월 23일 새마음종합병원 개원식
08월 24일 새마음갖기운동 자문위원 위촉식
08월 28일 서울시약사 새마음갖기 촉진대회 - 세종문화회관
09월 20일 새마음봉사단 임원반 제1기 수료식 - 새마음교육원
09월 21일 제1회 새마음봉사단 박근혜 총재컵 전국탁구대회 개회식 - 문화체육관
10월 18일 쌍용그룹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 - 세종문화회관

(*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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