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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부추꽃이 끝물을 향해 가고 있는 중 비가 내려 빗방울을 머금고 있다.
▲ 부추꽃 부추꽃이 끝물을 향해 가고 있는 중 비가 내려 빗방울을 머금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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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듣는 말 중에 '자기만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남들과 달라야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색깔이라는 것이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자기만의 색깔이 갖는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제때 따먹지 못한 가지가 버려져 말라가고 있다. 그 안에 씨앗은 잘 여물고 있을 터이다.
▲ 가지 제때 따먹지 못한 가지가 버려져 말라가고 있다. 그 안에 씨앗은 잘 여물고 있을 터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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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스펙'은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기 위한 인간의 부단한 노력이다.
경쟁사회에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로 인해 이미 충만한 자신의 색깔을 살아가지 못하고, 가진 자들 혹은 기득권자들이 요구하는 색깔을 덧입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자기만의 색깔을 갖겠다고 하다가 자기만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현실, 강남에 가면 몇 종류의 얼굴만 있다는 말은 그만큼 자기만의 색깔인 '개성'이 사라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서진 시멘트 사이 드러난 흙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괭이밥의 생명력이 활기차다.
▲ 괭이밥 부서진 시멘트 사이 드러난 흙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괭이밥의 생명력이 활기차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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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꽃이라도 어디에 피어 있는가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고난의 상황이 깊을 수록 더 단단하고, 꽃은 더 진하게 피어나고, 향기도 더욱 짙다. 다른 꽃은 아니지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다름, 이런 색깔, 이런 향기…. 사람에게도 이 정도를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시멘트 계단 사이의 틈을 비집고 싹을 틔운 제비꽃이 강인해 보인다.
▲ 제비꽃 시멘트 계단 사이의 틈을 비집고 싹을 틔운 제비꽃이 강인해 보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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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은 황홀하다.
가을빛이 아니라도 자연의 빛은 달라서 황홀하다.
그 빛을 그냥 흑백의 두 가지 색깔로 들여다본다. 자연의 색을 전부 뺀 것이다.
컬러사진이 주는 느낌, 흑백사진이 주는 느낌은 다르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느끼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지만 색깔의 유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지하방에 유일하게 햇살을 비춰주는 창, 그 창을 열면 맨드라미가 보인다.
▲ 맨드라미와 창 지하방에 유일하게 햇살을 비춰주는 창, 그 창을 열면 맨드라미가 보인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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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서 색깔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그 모든 것들을 제외해도 결국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인간성'이라고 하자. 결국, 그 사람의 외피인 모든 스펙들을 다 빼고 나서 보이는 그 인간성이 그 사람의 진정한 색깔이 아닐까?

이것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자꾸만 드러나는 속성이 있어 숨길 수가 없다. 그것을 잘 보는 사람, 그 사람이 사람을 잘 보는 사람이다.

구기자꽃이 피었다. 보랏빛 구기자꽃, 그 보랏빛을 다 빼앗아가도 여전히 그모습이다.
▲ 구기자 구기자꽃이 피었다. 보랏빛 구기자꽃, 그 보랏빛을 다 빼앗아가도 여전히 그모습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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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원초적인 모습, 그것으로 "저 정도면 되었다" 할 수 있으면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들은 그 원초적인 모습엔 관심이 없고, 현란한 색깔로 포장한 상품처럼 자신을 포장하려고 한다.

화사한 포장지를 다 벗겨내고나서 허탈한 것처럼, 그렇게 겉모습에 혹하다가 실망하는 것이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한 반복, 그래서 또한 사람이다.

벽에 빨판을 붙이지 못하고 흔들리며 자라서인지, 이파리가 야물딱지다.
▲ 담쟁이덩굴 벽에 빨판을 붙이지 못하고 흔들리며 자라서인지, 이파리가 야물딱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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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덩굴이 바람에 시달리면서 벽에 '활짝'을 하지 못했다.
삶이 아직은 위태위태하기 때문일까? 그의 이파리는 이미 벽에 빨판을 붙이고 활착한 다른 덩굴의 이파리보다 단단하다. 그리고 조금은 작다.

그렇다고 예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것인데, 우리는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그것이 곧 실패한 삶인 것처럼 연약해진다. 그래서 또한 사람이다.

늦은 봄부터 끈질기게 피어나는 꽃, 질긴 잡초인생이다.
▲ 털별꽃아재비 늦은 봄부터 끈질기게 피어나는 꽃, 질긴 잡초인생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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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기 직전부터 잔디밭에 피어나는 잡초가 있었다.
털별꽃아재비라는 당당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꽃, 그러나 잡초의 개념이 '뭔가를 의도적으로 가꾸는데 자라나는 원하지 않는 식물'이니 그도 잡초인 것이다.

보이는 대로 뽑았지만, 가을의 초입에 결국은 손을 들고 말았다.
그렇게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데 조금은 남겨둬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바람에 아직은 약간 덜 익은 은행이 떨어졌다.
▲ 은행 바람에 아직은 약간 덜 익은 은행이 떨어졌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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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은 은행이 떨어졌다.
껍질은 삭지 못하고 썩어들어간다. 조금은 슬프다.
그러나 그 속내를 정성껏 까보니 제법 알차게 여물었다.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되지는 못할지언정 제삿상에 오르거나 심심풀이 안주로 사용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 정도면 되지 않겠는가? 모두가 다 나무가 될 것도 아닌데.

색깔을 다 빼고 바라본 가을, 색깔이 없어도 가을빛 충만하다.
진정한 색깔은 색깔을 다 빼고 나야 보이는 법인가 보다. 그 색깔 다 빼고, 사람을 보고 싶다.


태그:#부추, #배풍등, #털별꽃아재비, #제비꽃,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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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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