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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태 민주통합당 의원이 11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한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을 비판하다 울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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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관참시하면서 한다는 소리가…."

11일 오전 연단에 선 유인태 민주통합당 의원은 발언을 하다 갑작스레 말을 멈췄다. 울음을 삼킨 채 흐느낀 것이다. 37년 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민청학련 사건(이하 인혁당 사건)의 '사법 살인' 충격과 이후 유가족들이 느꼈을 고통이 머리에 스친 것이다. 당시 유인태 의원도 사형 선고를 받은 바 있다.

순간 당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되는 등 험악했던 민주통합당 의원총회장은 숙연해졌다. 유인태 의원은 가까스로 울음을 그친 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희생자들을) 부관참시하면서 '아버지 시대에 피해당한 분들에게 딸로서 죄송하다'는 얘기를 했다, 박근혜 후보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서는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유인태 의원의 눈물은 전날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한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 논란을 더욱 확산시켰다. 그의 발언에 2007년 1월 인혁당 사건에 대해 최종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의 판단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피해자의 눈물은 당시 박정희 정권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 후보에 대한 거센 비판은 이어졌다.

유인태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작심한 듯 박근혜 후보의 발언을 비판했다. 그는 "가해 당사자인 박근혜 후보가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에 대해 화가 치민다"면서 "유족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발적으로 돈벌이하러 갔다'라는 얘기를 듣는 고통스러움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잘못된 역사 의식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을 할 수 있겠느냐"며 "박근혜 후보의 등장은 유럽에서 신나치가 유력 집권세력으로 등장한 것과 같다,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극우적인 방식으로 이끌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한 사형이 집행된 날 새벽을 떠올리며 "'넥타이공장이 가동된다'는 말로 사형집행 소식을 접한 후, 창살 밖 눈에 비친 희생자들의 마지막 뒷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1974년 유신반대 투쟁을 하던 민청학련을 범죄단체로 지목하고 그 배후에 인혁당 재건위가 있다면서 관련자들을 구속한 것에서 비롯됐다. 유인태 의원 등 민청학련 관련자들은 같은 해 7월 1심(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곧 감형됐다.

하지만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은 1975년 4월 8일 오후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후 18시간 만인 이튿날 새벽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후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가 2002년 9월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조작한 것'이라고 발표했고, 이후 유가족들이 재심을 청구해 법원은 2007년 1월 무죄를 선고했다.

다음은 유인태 의원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박근혜 후보, 당연히 죽을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박근혜 후보가 10일 인혁당 사건과 관련, "두 개의 대법원 판결이 있다"고 한 발언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었다. 사형 선고가 내려진 1975년 4월의 잘못된 대법원 판결과 2007년 1월 법원이 재심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두고,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상식을 가진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초헌법적인 발상을 하는 것이다. 만약, 살인 누명을 받아 사형을 받은 후 뒤늦게 무죄 판결을 받은 경우에도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

- 박근혜 후보는 또한 "(유신) 당시에 피해를 입고 고초를 겪으신 분들에 대해 딸로서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예전에도 박근혜 캠프에서 인혁당 사건 유가족을 만나겠다는 얘기가 나온 바 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진심은 아닐지 모르지만 '형식적으로라도 사과와 화해를 시도하려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후 '두 개의 판결' 발언을 접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가슴이 갑갑해졌다.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면서 뭘 사과하겠다는 것이냐. 당연히 죽을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겠느냐."

- 희생자 유가족들과 관련 얘기를 나눴나?
"얘기는 못해봤다. 유족들이 내일(12일)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하더라. 억울한 죽음 이후 37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그동안 당한 고통이 얼마나 컸겠나. 근데 거기다가, 마치 찾아와서 사과라도 하고 할 것처럼 해놓고, 그런 발언으로 부관참시를 한 것 아니냐. (박 후보가) 유족들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다면 그런 말을 못했을 것이다."

- 오늘 의원총회에서 흐느꼈다.
"참 억울한데,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가해자인 박근혜 후보가 그런 얘기를 하니 화가 치밀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돈벌이 하러 갔다'라는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화가 치밀겠나. 희생자 유가족도 박근혜 후보의 말을 듣고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박근혜 후보의 등장은 유럽에서 신나치가 등장한 것과 같다"

- 당시의 일을 기억하나?
"(희생자들이) 잡혀갈 때 조사만 받고 몇 시간 만에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이후 모진 고문을 받았다. 가족들이 면회도 못했고, 곧 사형집행이 이뤄졌다. 우리나라처럼 유교적 전통이 강한 곳에서 유족들한테 시신조차 돌려주지 않고, 고문의 흔적으로 보여주지 않기 위해 시신을 화장했다. 이를 막으려 했던 문정현 신부는 영구차에 깔려 크게 다쳤다.

참 극악무도한 정권이었다. 또한 내가 4년 반을 복역한 후 1978년에 나와 '인혁당 사건이 조작됐다'고 하다가 다시 감옥에 갈 뻔했다. 박정희 정권은 인혁당 사건 얘기만 나오면 모질게 탄압했다."

- 희생자들 생각이 났겠다.
"1975년 4월 8일 오후 2시 대법원 판결을 3시간 앞두고 서울구치소에서 운동시간에 (희생자) 김용원씨를 만났다. '풀리지 않는 미제수갑을 채웠다, 곧 죽임을 당할 것 같다'고 하더라. 이튿날 새벽 기상 시간이 지났는데 조용했다. 같은 방에 있는 누군가 사형집행이 이뤄진다는 의미로 '넥타이공장이 가동한다'고 했다. 그때 머리가 쭈뼛 섰다. 바로 쇠창살 밖을 보니, 형장으로 끌려가는 (희생자) 여정남씨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 없다."

- 박근혜 후보는 11일에는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감안해 역사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인혁당 재건위의 실체가 없다. 이미 법원은 무죄 판결했다. 사건이 조작됐다고 내가 증언할 수 있다. 다만, 희생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박 후보가 죄를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21세기 민주시민의 상식을 갖지 못한 것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 발언 이후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을 두고 논란이 이어졌다.
"박근혜 후보의 등장은 유럽에서 신나치가 유력집권세력으로 등장한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위안부가 '돈벌이였다, 자발적이었다'라고 하면서 강제동원 흔적이 없으니 고노담화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작자들보다 더한 것이다. 그러한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을 할 수 있겠느냐.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극우적인 방식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또한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한다고 했고, 봉하마을과 전태일재단 방문의 이유로 국민대통합을 얘기했는데, 모두 허구였음이 증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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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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