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실시간뉴스 누리과정 보육료, 정부가 책임지고 보장하라

▲ 작가 안재성 작가 안재성. 그가 첫 산문집 <따뜻한 사람과의 대화>(푸른사상)를 펴냈다
ⓒ 안재성

관련사진보기

수배된 몸으로 구로공단의 월 8만 원짜리 지하방을 얻어 혼자 살게 된 것이 1989년,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맡겨졌고 하루하루 라면 끓여먹기도 어려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지하방에서 라면 먹고 살며 쓴 첫 장편소설 <파업>이며 잇달아 나온 <사랑의 조건>이 제법 팔렸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돈이 되지 않았다. - 179쪽, '나의 전성시대' 몇 토막

광주민주화운동에서부터 노동운동에 이르기까지 두 번에 걸친 감옥살이와 5년여에 걸쳐 잠수(수배생활)를 했던 작가 안재성. 그가 첫 산문집 <따뜻한 사람과의 대화>(푸른사상)를 펴냈다. 이 산문집에는 가투현장과 노동현장, 농성장 등에서 지내며, 피붙이나 살붙이보다 더 살갑게 지냈던 벗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가슴 깊숙이 박혔던 생각들, 인간과 역사를 향해 던지는 쓴소리들이 피멍으로 박혀 있다.

이 산문집은 모두 3부에 산문 24편이 때론 눈을 감았다가 때론 실눈을 떴다가 때론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다. '내 인생의 글쓰기', '대한민국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 '호랑이를 잡으러 떠난 김문수 형, 이제 그만 돌아오시지요?',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아무 잘못이 없다?', '소설을 싫어하게 된 소설가의 변명', '소설을 통해 본 한국의 역사' 등이 그것.

작가 안재성은 '작가의 말'에서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와 비정규직의 폭증을 보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가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노비가 존재했던 백 년 전 세상보다, 군사독재가 횡행하던 사십 년 전보다 지금이 더 자유롭고 풍요로워진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입을 뗀다.

그는 "내놓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미미한 역할을 했지만, 내 생애 많은 시간은 인간 평등과 민주주의,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바쳐졌다"라며 "덕분에 참으로 우여곡절 많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오히려 더 열심히 싸우고 더 많은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지 못한 게 부끄러울 뿐"이라고 적었다.

박노해도 김문수가 '넌 시를 써라' 해서 썼다!

글을 갖다 줬더니 김문수가 너무 좋아하면서 "너는 앞으로 글을 쓰면 좋겠다. 소설을 써라" 그러면서 그 글을 실어주고는 저를 돌베개 출판사에 데려가서, 소설을 계약시켜 줬어요. 그때 제가 200만 원짜리 전세에 살고 있었는데 70만 원이라는 거액을 계약금으로 받게 해줬어요. 박노해도 김문수가 "넌 시를 써라" 해서 썼고 저도 "소설을 써봐라" 해서 쓰게 됐죠. 그때만 해도 김문수는 그렇게 열심히 싸웠어요. 이제는 극우보수파로 변신했지만. - 26쪽, '내 인생의 글쓰기' 몇 토막

작가 안재성이 김문수에게 갖다 준 그 글은 어떤 것일까? 그는 그때 일 년 넘게 구로공단에 있는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김문수는 이때 몇몇 해고자들과 함께 노동단체인 노동자복지회를 만들었고, 잡지까지 펴내고 있었다. 그가 찾아갔을 때 김문수가 글을 쓸 수 있으면 써 달라 부탁했다. 그때 낸 글이 공장에서 하루 동안 일했던 이야기가 담긴 <어느 탁상드릴공의 하루>다.     

돌베개에서 70만 원이라는 큰 계약금을 받고 안재성이 쓴 글은 첫 장편소설 <파업>이다. 그가 <파업>을 쓰게 된 까닭은 글을 쓰는 사람은 문학가나 작가라기보다 '선전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사람들을 조직하거나 선동하는 걸 잘 못하기 때문에 선전물 써내는 일, 선전의 임무로써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글쓴이도 그랬다. 그때는 시인이나 소설가는 총칼을 든 군사독재정권에 글로 맞서는 전사쯤으로 여겼다. 시인은 시를 무기로 삼았고, 소설가는 소설을 무기창고로 생각했다. 선전 선동으로는 시가 특히 잘 맞아 떨어졌다. 1980년대를 '시의 시대'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때보다 크게 나아진 것은 없지만 '시의 시대'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안타깝다.  

매 맞고 감옥에 간 것은 국회의원 되려고 한 일 아니다

▲ 안재성 첫 산문집 이 산문집은 모두 3부에 산문 24편이 때론 눈을 감았다가 때론 실눈을 떴다가 때론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다
ⓒ 푸른사상

관련사진보기

김문수 형, 이제 그만 돌아오세요.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가 영혼마저 호랑이에게 먹혀버린 비극의 주인공인 당신, 더 이상 역사의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안들을 다 놔두더라도 4대강 죽이기를 강행하는 것만으로도, 제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동네 여주 이천의 강들을 흉측하게 파헤쳐 놓은 오늘의 죄업만으로도 역사의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 108쪽, '호랑이를 잡으러 떠난 김문수 형, 이제 그만 돌아오시지요?' 몇 토막

이 글은 작가 안재성이 지난 2010년 5월 <오마이뉴스>에 실은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김문수가 호랑이 굴(?)로 들어가면서 한 언론과 했던 인터뷰를 차분하게 떠올린다. 김문수는 인터뷰에서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면, 그런 점에서는 맞다. 그때 나이는 들어가고 현실적으로 하는 것마다 깨졌다. 만약 현실이 성공했다면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내뱉었다.

작가 안재성은 이에 대해 "실패했기 때문에 부자들에게 갔다? 그들이 당신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에? 당신을 출세시켰기 때문에?"란 물음표를 세 개나 매단다. 그는 "우리가 민주화니 노동운동을 한다고 굶주리고 매 맞고 감옥에 간 것은 결코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이 말은 재야운동이나 노동운동, 시민운동 등을 하다가 국회의원 배지를 단 분들이 들으면 가슴이 뜨끔할 말이다. 그는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한 까닭에 대해 이렇게 못 박는다. "세상이 좋아져 국민들이 누구나 자유롭게 정치적 의견을 말하고 두려움 없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집단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그 보상을 받은 것"이라고.

"나 자신이 투사로서 헌신적이지 못한 대신, 글 속에서는 가장 투쟁적인 인물들을 그렸다. 그 주인공의 다수가 사회주의자들이었다"고 말하는 작가 안재성. 그는 '작가의 말'에서 "내가 그리려던 것은 어떤 특정 이념을 가진 혁명가라기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라며 "나의 주인공들은 마음이 따뜻하기에 이웃의 아픔을 참지 못하고, 동포들의 고통을 눈감지 못하고 불의와 싸웠을 뿐"이라고 못 박았다.

빽(?)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앙칼진 악다구니

사실, 농사 경력 7년 만에 맞이한 위기는 나의 미숙함 때문에 생긴 게 아니다. 나는 대부부분 농민들이 겪어온 실패를 경험했을 뿐이다. 복숭아나 배를 심었다가 고생만 하고 뽑아 버리는 이도 많고, 대파가 괜찮다는 소문에 밭마다 대파를 심었다가 본전도 못 뽑고 뒤집어엎기도 하고, 가지를 심어보기도 하고 오이나 수박을 해서 한두 해 돈을 벌지만 다음 해에 몽땅 날리기도 한다. - 226쪽, '내가 복숭아 농사를 포기한 이유는?' 몇 토막   

작가 안재성이 경기도 이천에 내려가 복숭아 농사를 짓다가 몽땅 뽑아 불태운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복숭아 묘목을 심은 지 3년 만에 달고 맛이 좋은 황도복숭아를 거두기 시작한다. 그 황도복숭아는 일반 복숭아가 과잉생산으로 한 상자에 3000원 할 때도, 최하품이 꾸준히 1만 원 이상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잘 나갔다.

문제는 2004년이다. 그해 황도복숭아 매출은 450만 원이었지만 포장비와 농약값 등이 230만 원이나 들었다. 여기에 거름값과 저울과 분무기 등 기계값, 가지치기와 봉지 씌우기에 들어간 인건비 등을 더하면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더욱 속이 쓰린 것은 그가 복숭아나무를 몽땅 뽑아 불태우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정부에서 복숭아가 과잉생산되니 복숭아나무를 뽑아버리는 사람에게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으니.          

작가 안재성 첫 산문집 <따뜻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날이 갈수록 모순덩어리만 덩치가 점점 커져 끙끙 앓고 있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뼈아픈 목소리다. 이 책은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가난하고 아프게 살아가는 빽(?) 없는 사람들이 빽(?)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앙칼진 악다구니이자 거친 몸부림이다. 

작가 안재성은 196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에 다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 제적되었다. 1983년부터 10여 년 동안 구로공단과 청계피복노동조합, 강원도 탄광지대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1993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또 다시 구속되었다.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뒤 장편소설 <사랑의 조건> <황금이삭>과 역사 다큐멘터리 <경성트로이카> <청계피복노동조합사> <청계 내 청춘>, 역사인물평전 <이관술> <이현상 평전> <박헌영 평전> 등을 펴냈다. 지금은 경기도 이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글쓰기에 매달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따뜻한 사람들과의 대화> 안재성 씀, 푸른사상 펴냄, 2012년 6월, 264쪽, 1만3800원
* <문학in>에도 이 기사를 보냅니다.


모바일앱 홍보 배너

이종찬(필명 이소리) 기자는 1959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1980년 <씨알의 소리>에 "개마고원" 13월의 바다" 등 발표. 시집으로 <노동의 불꽃으로> <홀로 빛나는 눈동자> <어머니, 누가 저 흔들리는 강물을 잠재웁니...더보기

시민기자 가입하기

© 2014 OhmyNews오탈자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