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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오마이포토] 'SBS가요대전' 오렌지캬라멜 리지, 산타할아버지 조심조심

▲ 창성사지 잡초가 우거져 걷기조차 힘든 창성사지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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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성사지, 수원 광교산에 있는 옛날 창성사라는 절터 이름이다. 이곳을 찾으러 9월 10일 산행을 시작했다. 창성사지를 찾기 위해 벌써 3번째 산을 오르는 길이다. 광교산 입구에 있는 안내판을 보고 길을 들었다가, 엉뚱한 곳을 헤매기를 두 번. 이번에는 제대로 설명을 듣고 찾아가기 시작했다.

입구 어느 곳 한 군데 하다못해 나무 판에 화살표라도 하나 해놓았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숲속에 들어가 모기와 전쟁을 하면서 찾아들어간 창성사지. 천천히 걸어 30~40분 정도면 찾을 수 있는 곳을 찾느라 그동안 그렇게 고생을 했다. 안내판 없는 문화재 하나를 찾으려면,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한다. 문화재 안내판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 석축 창성사지 안에 있는 석축. 막쌓기를 한 석축으로 보아, 그리 크지 않은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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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창성사지라니... 해도 너무한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안내판이 보인다. 수원시 상광교동 산41에 소재한 수원시 향토유적 제4호인 창성사지. 창성사는 고려 말의 국사인 화엄종사였던 진각국사(1305~1382)의 사리탑과 함께 조성이 된, 보물 제14호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가 있던 곳이다. 진각국사의 탑비는 현재는 수원 화성 안 방화수류정 길 위편으로 옮겨져 있다.

그런데 이 창성사지를 보고 그 자리에 털벅 주저앉고 말았다. 세 번씩이나 찾아서 겨우 올라 온 곳인데, 절터라고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잡초더미에 묻혀있다. 아무리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향토유적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이런 꼴을 보면, 정말 부아가 치밀기 이전에 먼저 눈물이 난다.

도대체 이 창성사라는 곳의 가치는 알고 있는 것일까? 축대와 우물, 그리고 기단석과 주춧돌. 그 안에는 과거 창성사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잡초더미가 쌓여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 움막 석축 밑에 누군가 움막을 짓고 생활을 한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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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숲을 헤집고 창성사지를 돌아보다

창성사지 안으로 풀숲을 헤치고 들어섰다. 옛 축대가 보인다. 높이 4~5m 정도의 축대로 보아, 이곳을 기점으로 아래 위에 전각이 들어서 있었을 것이다. 잡초 속에서 꽃 한 송이가 아름답게 피어있다. 그런 모습이 더욱 눈물겹게 만든다. 축대 밑으로는 누군가 이곳에서 기도라도 한 것일까? 다 찢어져 가는 움막이 있다.

이렇게 방치된 몰골로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아예 한 번도 정비를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더럽혀진 옷가지며 그릇들이 널브러져 있는 움막, 무엇을 하던 곳일까? 조금만 걸으려고 해도 풀이 발에 감겨 걷기조차 힘들다. 풀이 워낙 우거지다 보니,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가늠하기가 어렵다.

▲ 소나무 창성사지 안에 서 있는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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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석축은 약 50m 정도가 남아 있다. 석축으로 쌓은 기단은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층 기단의 위로 또 2m 정도의 석축의 흔적이 보인다. 이 위층 석축은 다 무너져내린 형태이다. 그런 것 하나를 알아보는 것도 쉽지가 않다. 온통 풀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석축으로 쌓은 우물, 맑은 물이 고여 있어

맨 위로 올라갔다. 200년은 됨직한 소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뻗고 서 있다. 사지 안으로 들어가니 돌로 쌓은 우물터가 보인다. 밑에는 흙이 쌓여 앙금이 졌지만, 지금도 맑은 물이 고여 있다. 아마도 이 터에 남아 있었던 진각국사의 사리탑과 비 등으로 유추할 때, 창성사는 고려 초에 창건된 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 우물터 사지 안에는 아직도 석축으로 쌓은 우물 터 안에 물이 고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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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국사의 비에는 국사가 13세에 입문한 뒤 여러 절을 다니며 수행하고, 부석사를 중수하는 등 소백산에서 76세에 입적하기까지의 행적이 실려 있다. 입적한 다음 해인 우왕 12년인 1386년에 광교산 창성사 경내에 이 비가 세워졌다. 이 비의 내력만으로도 창성사는 625년이 지난 절이었으니, 아마 그 이전에 지어졌다고 보면 그 역사가 상당한 절이었을 것이다.

약 500평 정도의 규모를 가졌을 창성사지. 그 안 서북쪽의 대웅전지에는 장대석으로 조성한 기단석과 여기저기 주초로 사용했던 돌들이 보인다. 이곳에는 탑재편과 기단의 갑석 등도 보이는데, 어느 것 하나 잡초더미 때문에 제대로 알아보기가 힘들다. 위편 석축 끝으로 가서 산 아래를 바라다본다. 이곳에 절을 지은 이유를 알 만하다. 저 멀리 아름다운 산의 능선이며 수원 시가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 석재 기단석과 주초 등이 사지 안에 있지만 풀로 인해 알아보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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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재 대웅전 터에서 보이는 장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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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안내하는 표시판 하나 없이, 잡초에 묻혀있는 고려 때의 절터인 창성사지. 이렇게 내버려둘 것 같으면 왜 향토유적 지정은 한 것일까? 돌아서는 내내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가슴이 미어지는 문화재 답사는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리포트와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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