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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이집트 국립박물관, 1902년에 만들어진 카이로 국립박물관은 낡고 볼품이 없으나 소장품은 이집트문명의 정수를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카이로 이집트 국립박물관, 1902년에 만들어진 카이로 국립박물관은 낡고 볼품이 없으나 소장품은 이집트문명의 정수를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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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카이로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카이로 도심 한 가운데 엘-타흐리히 광장 북쪽에 위치한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기자 피라미드를 보고, 박물관으로 오는 길에 구시가지에 들려 곱트교회(예수피난교회)와 모세회당을 둘러본 다음 마지막 코스로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몸은 피곤하다. 그러나 카이로에 와서 나일문명의 정수를 보지 않을 수야 없지 않은가.

첫 외관은 실망스럽다. 어울리지 않게 분홍색 도색을 한 그리 크지 않은 박물관이다. 나일문명의 정수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질 것 같기도 하다. 더욱 실망스런 것은 관람객은 예외 없이 입장 전에 카메라를 맡겨야 한다. 내부에서는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다는 것이다(이런 이유로 이 부분 사진은 위키피디아에서 신세를 졌다).

참, 이런 일이….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박물관 소장품을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이런 불만을 갖고 내부로 입장했다. 세계 각처에서 온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다. 들어가는 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4천년 넘긴 조각상이 저렇게 늠름할 수 있을까

이집트 박물관 내부 전경,
 이집트 박물관 내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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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서 있는 고대 파라오의 입상과 좌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4000년을 넘긴 조각상이 저렇게 늠름할 수 있을까. 이 박물관이 개관된 것은 한 고고학자의 공이 컸다고 한다. 그 이름은 오귀스트 마리에트. 프랑스 출신의 고고학자이다. 이 사람은 19세기 중반 이집트에서 고고학 발굴을 하면서 그 귀중한 유물들이 해외로 반출되는 것을 보고 박물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1858년 블라크라는 곳에 박물관을 개관하였다. 그러나 1878년 대홍수가 일어나 이 박물관이 물에 잠겨 많은 유물들이 유실되었다. 그래서 새로이 박물관을 연 것이 바로 현재의 이 박물관이다. 그것이 1902년의 일이다. 이집트인들은 마리에트의 이런 노력을 박물관 왼쪽 뜰에 동상을 세워줌으로써 보상을 하였다.

이집트 박물관은 외국인에게는 참으로 불편하다. 그 수많은 유물들, 모든 유물들이 교과서에 실려도 좋을 만한 것들이지만 어느 것 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놓은 것이 없다. 어디에서 언제 발굴된 것인지, 고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 도대체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저 시대별로 모아 놓고 해석은 관람객이 알아서 하라는 태도다.

내가 가지고 간 <크리스티앙 자크의 이집트여행>은 이런 상황에서 하나의 조언을 해준다. 우선 박물관 입구 근처에서 가장 오래된 시기의 작품들을 둘러보는 것을 시작으로 1층 방을 시계 방향으로 돌라는 것이다. 그러면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 순으로 유물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다 보면 다시 원 위치로 돌아 오게된다. 그런 다음 2층으로 올라가 투탕카멘(Tutankhamen)을 중심으로 몇 몇 방을 둘러 본 다음 중앙계단으로 내려 오라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했다.

1층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 오는 몇 점을 자료와 내 기억에 따라 열거해 보자. 먼저 고왕국 시기의 작품으로는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3인조 멘카우레 석상과 멘카우레 좌상, 카프라 좌상, 목조로 된 카-아퍼 입상, 라호테프와 노프레트 부부 좌상 등이 눈길을 끈다. 이미 이 시기에 청동 유물이 나온 것을 보면 이 지역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500년 이전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중왕국 시기의 작품으로는 맨투호테프 2세의 검은색 칠을 한 좌상, 아메네마트 3세 좌상 및 스핑크스, 세누스레트 1세의 석조 좌상 및 목조 입상, 세누스레트 3세 입상 등이 눈에 들어 온다.

이어서 1층 전시의 꽃인 신왕국 시기의 작품을 보면 화려하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품이 많다. 대표적 작품 몇 개만 보면, 투트모시스 3세 좌상과 스핑크스, 아멘호테프 2세와 함께 서있는 하토르(소)상, 하트셉수트 채색 두상과 스핑크스, 네페리티티를 새긴 부조와 미완의 두상, 아멘호테프 4세의 거상, 람세스 2세 흉상, 입상 등이 볼만하다.

투탕카멘의 발굴, '20세기 세계 고고학 발굴의 백미'로 손꼽히는 사건

이집트 박물관 내 미이라의 방
 이집트 박물관 내 미이라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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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층에 올라가 투탕카멘(Tutankhamen)의 유물을 보자. 투탕카멘의 발굴은 20세기 세계 고고학 발굴에서 백미로 손꼽히는 일대 사건이었다. 영국의 고고학자 에드워드 카터가 룩소르의 왕들의 계곡에서 1922년 11월 4일 발굴허가 기한을 며칠 앞두고 발견한 것이다.

카터는 당시 투탕카멘의 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파 들어 갔지만 몇 년 동안 헛수고만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인부들 천막 아래에서 투탕카멘의 묘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하였다. 그렇게 해서 이제까지 발견된 파라오 무덤에서 유일하게 도굴된 흔적이 없는 완전한 형태의 묘를 발굴할 수 있었다.

지금 카이로 박물관에는 그 대부분 유물이 보관되거나 전시되어 있다. 다만 최근에 투탕카멘의 미라는 룩소르 왕들의 계곡 제62호 묘로 옮겨졌다. 따라서 투탕카멘의 미라를 보기 위해서는 이제 박물관이 아닌 룩소르의 왕들의 계곡으로 가야 한다.

여하튼 카이로 박물관 2층의 한 쪽은 모두 투탕카멘의 유물로 덮여 있다. 먼저 그의 미라가 나온 관을 둘러싼 나무관들이 일렬로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미라는 금박의 미라관을 포함하여 그 밖으로 나무관들이 몇 겹으로 둘러싸여 있다. 조그만 나무관을 좀 더 큰 나무관이 싸고 있고, 그것은 더 큰 나무관으로 싸여 있었던 것이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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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실로 들어가면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를 비롯한 금제 부장품들이 따로 전시되어 있다. 수많은 유물을 보다 보면 지금으로부터 3000년이 넘은 시절의 생활상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그 시절의 복식이나 생활용품도 다량 발굴되어 있어 음미할수록 대단함을 느낀다.

이집트 국립박물관에서 꼭 보고자 했던 한 가지

나는 그 중에서 한 가지를 보고자 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그것은 꼭 봐야지 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투탕카멘의 어린 아내가 젊은 파라오가 죽었을 때 미라 머리맡에 놓아 주었던 수레국화꽃 다발이다. 수년 전 최영도 변호사님으로부터 카이로 박물관 이야기를 들을 때 귀담아 들었던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을 가지만 그것은 보지 않는다고. 보아도 왜 이런 것을 여기다 전시해 놓았는지 알지를 못한다고.

그랬다. 그 유물은 박물관 한쪽 끄트머리에 소리 없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러나 꽃다발의 형태 그대로 3000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을 수만 있었다면 이것을 꼭 찍어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박물관에서 산 두꺼운 도록에도 그것은 없었다. 더욱 아쉬웠다.

몇 년 후에는 이집트 박물관을 카이로 외곽으로 이전한다는 이야기를 가이드로부터 들었다. 지금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박물관 앞에 서 있던 람세스 2세의 입상이 그곳 새로운 박물관 부지로 옮겨졌고, 이것이 생방송 되었다고 한다. 다음에 기회가 있어 한 번 이집트를 가는 길이 있다면 새 박물관에 가서 적어도 하루 정도는 시간을 투자하고 싶다. 천천히 유물들을 보면서 4000년 전의 파라오를 만나고 올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신들 ②
고대 이집트의 신은 나일강 전역에서 섬겨지는 신과 작은 지역 단위에서 섬겨지는 신들이 있었다. 그들 신들 중 유명한 신들 몇몇을 정리해 보자.

이집트의 신들.
 이집트의 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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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리스(OSIRIS) 세트와 형제지간이지만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하나 부활한 신이다. 왕홀과 편모를 들고서 관을 쓴 미라의 형상으로 표현된다. 오시리스는 인간 행위의 판관이요 저승의 왕이다. 나일강 변 신전 여기저기에 오시리스가 넘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었기 때문에 오시리스는 가장 유명한 신 중의 한 명이 된다. 그의 아내가 바로 이시스다.

이시스(ISIS) 이시스는 머리에 옥좌를 이고 나타난다. 그녀는 파라오들을 창출하는 옥좌이다. 남편 오시리스가 형제인 세트에 의해 살해되자 그의 시신 조각을 찾아 내 육신을 재구성하고 다시 생명을 불러 넣어 부활시킨다.

케페르(KHEPER) 풍뎅이 머리를 가진 이 신은 변형과 변화를 상징하는 신이다. 부활한 태양은 새벽에 풍뎅이의 형상을 취한다. 카르나크 신전에 가면 풍뎅이 신을 볼 수 있다. 풍뎅이 신을 사람들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크눔(KHNOUM) 숫양의 머리를 가진 도기 신으로 녹로 위에서 인간을 빚어낸다. 아스완의 엘레판티네 지역을 통치하며 나일강의 수량을 관장한다.

토트(THOT) 따오기 모양의 이비스새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 '신들의 말씀'인 상형문자의 신이다. 라 신의 조력자로 통한다. 그리스인들은 이 신을 올림포스의 신들의 전령사인 헤르메스와 동일시하였다.

하피(HAPY) 나일강의 수량을 관장하는 신이다. 이 신은 배가 둥글고 젖가슴이 늘어진 양성이다. 파피루스 관을 쓰고 봉헌물을 끊임없이 신전으로 나른다.

호루스(HORUS) 매의 머리를 가진 신이다. 호루스는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이다. 이 신은 파라오의 화신이며 왕권을 돕는다. 따라서 호루스는 파라오에게는 가장 중요한 신이다. 이집트인들은 이 신을 특별히 좋아한다. 현재 이집트 국기에도 호루스가 있으며 이집트 국영항공사의 잡지도 호루스다.


태그:#나일문명기행, #카이로, #고고학, #이집트국립박물관,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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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로스쿨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30년 이상 법률가로 살아오면서(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여러 인권분야를 개척해 왔습니다. 인권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문, 사회, 과학,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의 명저들을 독서해 왔고 틈나는 대로 여행을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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