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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영화제 '피움'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여성폭력의 현실과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자의 생존과 치유를 지지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2006년에 시작된 영화제입니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여성인권영화제 '탐정'(9월 20일~23일)을 통해 가정폭력과 성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과 그 폭력이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점을 나누고자 합니다. 국내외 영화들과 함께 자신의 삶과 인권을 찾아가는 용감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활짝 피어나길 소망합니다.... <기자말>

 제6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방관자들' 장면
ⓒ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에 대해 우리사회는 왜 이렇게 관대할까?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하기는커녕 다시 전화를 걸어 그 집안에 있는 남성에게 그런 사실이 있느냐고 되묻는 경찰이 기가 막히다는 분노에 찬 대중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격하다.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공분을 듣고 있자면, 이런 정의감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에서 어찌 성폭력과 가정폭력이 사소하거나 관대하게 다루어지는지 의문마저 생긴다.

그야말로 사람들은 저렇게 분노하는데, 왜 이를 대하는 사회적 인식과 법집행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이러한 불일치에는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양가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피해 여성의 처참한 사진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분노한다. 그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좀 더 들여다보게 되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먹은, 사장의 못된 버릇을 알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은, 끝까지 참아내지 못하고 맞상대를 한, 그리고 남성의 화를 돋구었을지 모를 여성에게도 폭력을 유발하거나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말에 솔깃하게 된다. '아주 순진하고 불쌍하고 연약한 피해자'와 '악마같이 악랄한 가해자'의 전형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사건을 취재하는 언론 매체들이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평범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말수는 적었지만 성실한 사람이었는데...'라는 가해자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내보내면, 분노에 찼던 사람들은 또 다시 흔들리게 된다. 그러면서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피해 여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슬그머니 바꾸어버린다.

여성에 대한 폭력범죄, 이중잣대 적용하는 사회

 제6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장면
ⓒ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에 대한 폭력 범죄에 대한 우리사회의 분노와 사회적 대응의 불일치가 설명되는 지점이다.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폭력 범죄의 경우, 우리사회는 범죄발생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논보다는 여성이 "진짜" 피해자였는지에 관심을 둔다. "진짜"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 여성들은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폭력성을 증명해야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순종적이고 무력함을 입증해야 하는 혼란스러운 위치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성폭력 범죄의 경우 성폭력인지 합의에 따른 성관계인지를 판단하는데 있어 피해 여성이 얼마나 격렬히 저항했는지가 주요기준이 된다. 그렇게 때문에 여성은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폭력을 불사하는 저항이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반면, 가정폭력 범죄의 경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피해자의 최소한의 방어조차 즉각 '상호폭력' 내지는 '부부싸움'으로 명명되기 때문에, 폭력에 저항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사실을 의심받는다.

성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의 폭력성은 정조를 지키려는 여성다움으로, 가정폭력에 저항하는 여성의 폭력성은 더 많은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여성답지 못한 행동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범죄에 대한 우리들의 양가감정은 이처럼 해묵어 오래됐지만 공기처럼 익숙한 성차별적 편견을 내면화 한 결과이다.

'여자다운지' '어떤 관계인지'를 판단의 기준으로 한 검열은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법 판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작동한다. 평소 성폭력과 가정폭력을 혐오하지만 애인으로부터의 폭력과 통제를 연애사의 일부로 애써 합리화하며, 주변의 충고대로 그를 화나게 한 원인을 찾는데 몰두한다. 그것(폭력)만 빼고는 평소에는 너무도 좋은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 애쓰면서 말이다.

이웃의 아내학대를 모른척 해야 하는 이유들 역시 모두 그럴듯하다. 사적인 일이기 때문에, 남의 일에 개입하는게 아니어서, 경찰이 신고자의 신분을 쉽게 노출해 버리기 때문에, 나중에 피해자로부터 원망을 듣기 때문에, 가해자가 보복할 것이 두려워서, 신고해도 별 소용이 없기 때문에 등 우리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드러나지 말아야 할 더 많은 이유를 알고 있다.

폭력의 피해자인지에 대한 사법기관의 모욕에 가까운 의심과 심문은 피해 여성으로 하여금 그들의 개입을 스스로 차단하게 한다.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귀찮은 듯 몇 가지 충고를 하고 돌아가는 경찰의 태도는 신고자와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보복을 강화한다. 합의하거나 서로 화해하라는 법원의 판결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사사롭게 대하는 경찰의 태도를 유지시킨다.

여성에 대한 폭력 범죄는 나쁘지만, 사실 알고 보면 가해자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라는 대중들의 이중적 태도에서 정치인들은 왜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이쯤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일까? 누구를 겨냥해야 하는 일일까? 여성에 대한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정치인, 언론, 경찰, 법관들은 다른 곳에서 오지 않았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기에 문제를 방관하는 그들의 태도는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평소 해오던 생각이고, 익히 마주쳤던 광경이지 않은가. 어떻게 이 지루하고도 집요한 익숙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여성이 당한 잔인한 폭력, 그 뒤에 자리잡은 공포

 제6회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열정의 기준'의 한 장면
ⓒ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에 대한 폭력은 '착하고 연약한 여성이 잔인하고 악랄한 악마에 의해 희생된 잔혹사'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의 본질은 차별에 관한 것이며 젠더 권력에 관한 것이다. 마르고 가녀림을 여성성으로 칭송하고, 여성에 대한 통제와 지배가 로맨스로 가장되며, 남성에게 의존해야 생계와 안전을 보장받는 사회적 맥락에서, 바로 그 남성과 친밀한 관계의 여성이 폭력의 대상일 때, 모두가 침묵하며 외면하는 일은 암묵적인 규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여성이 당한 끔찍하고 잔인한 폭력에 대한 분노 뒤에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으며, 적어도 나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안도감이 교차한다. 여성들이 섣불리 나서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차별적인 사회에 사는 이상, 여성에 대한 폭력은 한순간에 크게 올 수도 있고, 서서히 다가올 수도 있다.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현관에 남자 구두를 가져다 두라던가 변기 뚜껑을 올려놓고 외출하라는 조언을 하거나, 그런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는가.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위층 집 현관에 메모를 남기기 위해, 주변 남성에게 '힘찬 남자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하거나, 무언가를 정당하게 항의하기 위해 남자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일상의 번거로움과 약간의 두려움은 누군가 당하는 그 엄청난 폭력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침묵은, 누군가의 비명과 절규에 은밀하지만 너무도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방관자이지만 동시에 당사자이고, 목격자이면서도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내가 직접 당하지 않아도 내 일이며,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내 일일 수 있는 이유이다. 우리가 나설 수 없었던, 나서지 않았던 이유는 용기가 없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방관할 수밖에 없도록 너무도 촘촘히 짜인 권력의 그물망에 나도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선명하게 꿰뚫어 보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자. 지금 안전하다는 이유로 성별권력이 만들어낸 편견을 비판 없이 되뇌임으로써 누군가를 침묵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 그것이 내 일상에 드리워진 그 그물들을 잘라내는 일이며, 거기에 나와 다른 여성의 평온함이 그리고 운명이 걸려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허민숙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박사후 연구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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