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실시간뉴스 가수 '아웃사이더', 25일 오후 진주서 강연-공연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8월 21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분향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대선 D-100일, 박근혜 후보의 행보가 요즘 화제다. 박근혜는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김대중 노무현 묘소를 거쳐 전태일 동상까지, 그리고 홍대 거리와 수해지역을 휘저으며 거침없는 '통합행보'를 내딛었다.

'뉴DJ 플랜' 연상시키는 박근혜의 광폭행보

다소 파격적으로 보이는 박근혜 후보의 행보는 1997년 대선에 나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이른바 '뉴 DJ 플랜'을 연상시킨다. 실제 박근혜 캠프에서는 DJ의 선거운동을 참고했다고 한다. 당시 네 번째로 대권에 도전하던 김대중 후보에게는 '대통령병 환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중간층을 끌어안으려는 '뉴DJ 플랜'은 '대통령병 환자'와 결합되면서 오히려 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었다.

1971년, 그런 '미래의 대통령병 환자' 김대중을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는 이듬해 10월 유신을 단행해 철권통치의 길을 열었다. 1971년 대선에 박정희 대통령이 다시 출마할 수 있었던 것은 1969년 이른바 3선 개헌으로 대통령이 세 번 연임할 수 있게끔 헌법을 바꿔 놓은 덕분이었다. 대통령이 되려고 군사 쿠데타에 3선 개헌과 유신개헌까지 저지른 박정희에게는 '대통령병 환자'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았다. 그랬던 부친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고 대통령이 되려는 박근혜 후보가 1997년의 김대중 후보를 벤치마킹하는 현실은 어쩌면 역사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르겠다.

박근혜의 변신은 당내 경선에 출마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예고되었다. '국가'보다 '국민'을 앞세운 그의 출마선언문부터 화제였다. 보수언론이 친절하게 세어 본 바에 따르면 '국민'이라는 단어는 5년 전 17차례 나왔으나 이번에는 80회나 등장했다. 실제 내용도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개인의 삶과 행복 중심으로 확 바꿔야 한다"며 뉴DJ 플랜 못지않은 이미지 변화를 꾀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지금까지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해왔던 박근혜로서는 상전벽해가 따로 없는 변신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외고 다니며 박정희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여전히 암암리에 나의 세대가 그런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대목을 욀 때면 어린 마음에도 '왜 나는 나라의 융성을 나의 발전보다 먼저 생각하지 못하는 나쁜 어린이일까'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는 명제를 여전히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해 온 우리의 역사도 아마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가난하고 저학력인 사람일수록 상대적으로 박근혜 지지율이 높은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금 먹고 살기가 좀 힘들어도 나라가 잘 되고 나랏님이 잘 사는 것이 결국 나도 잘 사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당장의 고통은 버틸 수 있다는 민초들의 갸륵한 마음씨가, 악한 마음을 먹은 독재자에게는 더없이 강력한 정치적 밑바탕이 된 셈이다.

박근혜의 대변신?

국민교육헌장의 가르침은 대기업이 잘 돼야 서민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마당이라, 근거 없는 이 낙수효과론도 그 생을 다한 것 같다. 박근혜는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후보수락연설에서 "국가의 성장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 중심으로 바꾸겠습니다"라고까지 했다.

 8월 20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자로 선출된 박근혜 후보가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나라의 융성을 위해서는 나의 발전이나 행복도 잠시 포기할 수 있는 보수 지지층의 입장에서는 박근혜의 이런 대변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박근혜는 진심으로 대변신을 감행한 것일까?

국가에서 국민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려면 무엇보다 우선 '국민'이라는 단어가 목적어에서 주어로 바뀌어야만 한다. 민주주의는 누군가가 '국민을' 위해서 뭔가를 해주는 제도가 아니라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 나서는 제도이다. 그런데 박근혜의 출마선언문이나 후보수락연설문을 보면 분명 '국가'보다 '국민'이 더 많이 언급되었지만, 이것은 예전에 '국가가 무엇을 해 주겠다'는 것이 '국민을 위해서' 박근혜가 무엇을 해 주겠다는 시혜적 어법으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보통의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서' 일을 하겠다고 하면 그저 흔해 빠진 정치적 수사로 치부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평생 스스로를 국가와 동일시하며 유신의 퍼스트레이디를 지낸 박근혜가 이제 와서 패러다임까지 바꾼다면서 전면에 내세운 '국민'이 겨우 통치의 대상으로 타자화되어 버릴 뿐이라면, '국민을 위해서' 쿠데타를 일으키고 '국민을 위해서' 3선 개헌과 유신 개헌을 했던 박정희의 그림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진정성 의심 받는 역사관

나의 걱정이 기우로 그치려면 적어도 박근혜가 박정희의 5.16 군사반란이나 유신체제를 반성과 사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역사관을 가져야만 한다. 안타깝게도 박근혜 후보는 여전히 그 반대의 길을 고집하고 있다. 박근혜의 이런 역사관은 그가 내세운 국민대통합의 진의마저 의심스럽게 만든다. 지금 일본이 독도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전된 입장도 없이 한국과 새로운 우호의 길을 걷자고 하면 그 말의 진정성을 누가 믿겠는가. 똑같은 이유 때문에, 만약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면 5.16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역사관으로 어떻게 대일외교를 펼쳐 나갈지도 무척 의심스럽다. 틈만 나면 동아시아 고대사를 왜곡하는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불과 50년 전의 역사문제를 놓고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얼버무린다면, 100년 전, 1000년 전의 역사는 모두 다 덮고 대일 대중외교를 하자는 것인가?

누구나 다 아는 교과서적인 말을 하자면, 역사는 죽어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원인이며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유력한 열쇠이다. "내가 네 아버지다"라는 다스베이더의 한마디가 영화 <스타워즈> 전체의 스토리를 뒤흔든 것도 그 때문이다.

역사관도 없으면서 '국민'을 통치대상으로 타자화시켜 버린 탓에 박근혜의 변신은 그저 산토끼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그날 전태일 동상 앞에서 있었던 헌화 퍼포먼스, 그러니까 죽은 전태일에 헌화하려고 산 전태일을 끌어냈던 그 사건은 박근혜 변신의 본질을 보여주는 아주 극적인 사례였다. 아무리 강남대로에서 요즘 대유행하는 말춤을 춘다고 한들, '그네스타일'은 여전히 '70스타일' 혹은 '유신스타일'일 뿐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8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를 찾아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고 있는 도중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바닥에 누워 헌화를 막자, 경찰이 김 지부장의 멱살을 잡고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5년 전 국민성공시대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5년 임기 동안 권력을 사유화해서 국부를 유출해 자신과 일가의 배만 불리는 일에 열심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국민성공시대'에서 가장 성공한 국민인 셈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신의 위법행위가 범죄라는 인식이 결여된 탓도 클 것이다. '전과 14범'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5년 전에 주장했던 박근혜는 이런 맥락에서 정확하게 옳았다. 이번 정권의 장관이나 고위 공무원들이 하나같이 위장전입을 밥 먹듯이 하고 부동산 투기에 열심이었던 전력을 훈장처럼 자랑하고 다닌 것도 그 때문이다. 아마 이명박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문제나 민간인 사찰 문제를 대단한 범죄행위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권력자라면 누구나 하는 일인데 자기만 재수 없게 걸렸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로부터 5년 뒤인 지금 국민행복시대를 들고 나온 박근혜는 어떨까? 만약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면, MB와 마찬가지로 5년이 지난 뒤에 박근혜만 가장 행복한 국민이 되어 있는 건 아닐까?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비극적인 죽음은 제외하고) 말이다. MB에게 위법행위에 대한 범죄의식이 없었다면 박근혜는 여전히 스스로를 국가와 동일시하며 초월적인 위치에서 국민과 국가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후보수락연설문에서 "저의 삶은 대한민국이었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진심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가 국가와 동일시한 자신의 모습은 절대적 혹은 전지적 지위의 존재이기 때문에 속세의 율법기준이 그대로 자신에게 적용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의 입장에서는 그의 아버지에게 5.16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듯이 자신의 어떤 결단도 속세의 율법으로 판단할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에게는 MB와는  다른 차원에서 범죄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박근혜, MB와는 다르겠지만...

단적인 예를 들면 지난 4.11 총선 과정에서 있었던 부산 사상을에서의 이른바 카퍼레이드 선거운동 사건이 있다. 당시 이 지역구의 손수조 후보와 함께 차량의 선루프 밖으로 몸을 내밀고 퍼레이드를 벌인 행위는 명백한 선거법 위반사항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비교적 '사소한' 위법사항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평소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박근혜가 사과나 유감표명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박근혜는 이렇다 할만한 해명 하나 하지 않았다. 아마도 박근혜는 차량 밖으로 몸을 내밀고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든 것이 무슨 잘못인가, 부산 선관위가 알아서 위법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걸로 끝난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적어도 국가와 동일한 자신 같은 존재에게 그런 '사소한' 시비 따위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런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더라도 MB처럼 개인이나 일가의 착복을 위해 권력을 사유화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국가가 곧 나 자신이고 나의 것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유신체제처럼은 아니겠지만,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자신만의 왕국으로 둔갑시켜버릴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MB 5년은 한국사회의 그런 취약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그 자체도 문제일뿐더러, 불행히도 박근혜가 그리는 국가상은 아직도 자신이 퍼스트레이디를 했던 7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최근 성폭력 등 강력범죄가 큰 이슈가 되자 100일 동안 '범국민특별안전기간'을 정하자고 한 것이나(100일 뒤에는 어쩌자는 것인지 무척 궁금하다. 이 100일은 대략 대선기간과 겹친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기 위해 '국민행복추진위원회'를 만들겠다(후보수락연설문)고 한 것은 박근혜의 '70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반적인 인식의 수준이 5년 전 MB의 한반도 대운하에 맞서 이른바 '열차 페리'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던 수준에서 아직은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국민들은 박근혜의 이런 모습에 대체로 호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은 박근혜의 위장변신을 전혀 모르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지난 총선 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분칠이라도 하는 그 모습 자체에 나름 점수를 주고 있다. 그것이 일종의 정치적인 '쇼'인 것을 알면서도, 그런 '쇼'라도 하는 정성을 평가한다는 말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100% 국민행복 실천본부의 '총선 공약 법안실천 국민보고'에 참석해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이주영 대선기획단장과 함께 공약이 적힌 피켓을 들어보이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야권후보들 그 뻔한 '쇼'라도 좀 보여줘야  

그렇기 때문에 지금 야당이 박근혜의 이른바 '대통합 행보'에 대해 일일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오히려 '박근혜 쇼'의 노이즈 마케팅을 도와줄 뿐이다. 특히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가장 유력한 문재인 후보가 경선 TV 토론회에서 박근혜를 공격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선거전략으로 보인다. 문재인이 하는 말의 주어에 '나(문재인)'보다 '박근혜'가 더 많은 것은 박근혜에게 이로울 뿐이다. 유권자의 눈에는 자신의 이야기는 없고 남의 말꼬리만 잡는다고 비춰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재인에게서 문재인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어 하지 박근혜의 이야기를 굳이 그에게서 많이 들을 이유는 없다.

국민들은 야권후보들도 그 뻔한 '쇼'라도 좀 해 주는 정성을 보고 싶어 한다. 그것이 옳은 현상이냐 아니냐는 따져 볼 여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국민들이 기대하는 소통의 프로토콜이 그런 성의와 정성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는 있다.

앞으로 대선까지 꼭 100일 남았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변수라는 안철수도 조만간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박근혜는 가장 유력하고도 강력한 대선후보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근혜라는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가 여전히 '70스타일'에 머물러 있는 현실은 무척 안타깝다. 100% 본심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쇼'가 가미되더라도 한국의 보수가 새 시대에 맞게 진화하는 것은 우리 국민모두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지금 우리는 이미 21세기의 '강남스타일'로 살고 있지 않은가. 박근혜에게서 "그런 반전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볼 수는 없을까?  물론 난 아직도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의 범주에는 확실히 속하는 것 같다.

시민기자 가입하기

© 2014 OhmyNews오탈자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