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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판결 31번째 이야기다. 이번엔 생명과 관련된 판결들이다. 먼저 어머니와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선 자식들의 슬픈 이야기다. 어떤 사연이 있었고, 어떤 판결이 내렸는지 수원지법과 서울고법 사건 속으로 들어가본다. 또 사회적으로 찬반 논란이 뜨거운 낙태죄 처벌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소개한다. 

① 상습폭행 아버지 살해 사건, 배심원의 판단은(수원지법 9. 4. 판결)
② 성적 향상 강요, 가혹하게 체벌한 어머니를 아들이… (서울고법 9. 6. 항소심 판결)
③ [낙태죄] 태아의 생명권 Vs 임산부의 자기결정권(헌법재판소 8. 23. 결정)


[판결①] 20년간 상습 가정폭력한 가장


 가정폭력은 가족들의 일상을 파괴하고, 상대방에게 저항감을 더욱 키울 수 있다.
 가정폭력은 가족들의 일상을 파괴하고, 상대방에게 저항감을 더욱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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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피고인이 되어 법정에 섰다. 남편이자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였는데, 법원은 이들에게 집행유예의 형을 선고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A씨(40대 여성)의 남편 B씨는 1984년 결혼 직후부터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해왔다. 별다른 이유도 없었다. 2세가 태어나자 가정폭력은 세 딸과 아직 어린 막내아들에게까지 이어졌다. B씨는 급기야 가족들을 상대로 칼을 들이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첫째 딸은 뇌병변 장애인이 되었고 셋째 딸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A씨와 둘째딸 C씨(20대 여성)를 포함한 자녀 4명은 20여 년간 술 취한 가장의 폭력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공포심을 느끼며 살아왔다. 

지난 4월 11일 저녁, 사건은 벌어졌다. 밀린 임금을 받지 못했던 B씨는 술에 취해 가족들에게 분풀이를 해댔다. 장애인 첫째딸의 머리를 벽에 찧고, 나머지 자녀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이에 셋째 딸이 도망가자 B씨는 "오늘 너네 다 죽었다"고 하면서 칼을 찾기 시작했다.
              
다급한 가족들이 B씨를 붙잡고 말리는 과정에서 B씨가 쓰러졌다. 그러자 이들은 줄넘기와 케이블선 등을 이용하여 B씨를 묶었다. B씨가 "안 풀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계속 소리를 지르자 청테이프로 입을 막고 안대로 눈을 가렸다. 발버둥치던 B씨는 몇 시간 후 질식사 하고 말았다.

검찰은 모녀 A씨와 C씨를 살인죄로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살인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죽이려는 뜻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 B씨가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하려고 입 등을 청테이프로 붙인 점 ▲ 피고인들이 건넌방에 모여 언제 풀어줄 것인지 논의한 점 ▲ B씨의 상태가 이상하자 인공호흡을 실시하면서 119에 신고한 점 ▲피해자에게 외상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보면 살인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만약 B씨가 결박이 풀려 자유롭게 될 경우 다시 폭력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일어난 일"로 보았다.

하지만 검찰이 무죄에 대비해 예비로 기소한 (존속)폭행치사죄에 대해서는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살인은 아니지만 폭행으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법정형은 A씨에 적용된 폭행치사죄가 3년 이상의 징역, C씨의 존속폭행치사죄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하지만 피고인들에겐 과잉방위가 인정돼 형이 깎였다. 과잉방위란 정당방위(생명 또는 신체에 부당한 침해가 있을 때 이를 벗어나기 위한 행동)가 그 정도를 초과한 상태를 말한다. 이때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수원지법은 4일 두 사람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A씨와 자녀들은 가장이 세상을 떠나서야 가정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배심원 9명이 참가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배심원들도 만장일치로 살인죄는 무죄, 폭행치사에 대해서는 유죄 의견을 냈다.

[판결②] 어머니 살해, 10대에 실형 선고한 재판장의 눈물

6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에선 어머니를 살해한 D군(18세 남자)의 선고공판이 열렸다. 사연인즉 이렇다.   

2006년 아버지가 가출한 이후 D군은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왔다. 어머니는 학교성적이 비교적 우수한 D군에게 끊임없이 성적향상을 강요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김없이 체벌이 이어졌다. 체벌의 강도도 갈수록 높아져서 골프채로 폭행하거나 잠 안재우기, 금식 등의 가혹한 방식이 동원됐다.

사건이 나기 며칠 전부터 D군은 체벌에 시달려왔다. 사건 당일도 밤 11시부터 9시간 동안 골프채로 수백대를 맞아야 했다. 사흘동안 잠도 거의 자지 못한 D군은 잠이 든 어머니를 식칼로 잔인하게 살해했다.  

1심에서 존속살해로 징역형(장기 3년 6월 단기 3년)을 선고받은 D군은 자신의 행동이 어머니에게 받은 가혹한 체벌을 피하기 위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당방위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벗어나기 위한 행동일 때만 인정되는데 체벌이 끝난 뒤 3시간이 지난 후에 살해했기 때문이다. 다만 D군이 심신미약상태였다는 점은 인정됐다. 형법에 따르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한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되어 있다. 

법원은 "피고인이 2008년 이후 계속적, 반복적으로 가혹한 체벌을 받아왔고 그 후에도 반복될 것으로 보이더라도 학교나 상담소, 지인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D군의 절박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어머니의 생명을 앗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고법은 6일 "어머니를 식칼로 잔혹하게 살해한 사안으로 엄히 처벌함이 마땅하다"면서도 "1심 형량이 너무 약하다"는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법원은 "D군이 성적 향상을 강요받으며 가혹한 체벌을 반복적으로 받아왔고 범행 무렵에도 3일 정도 금식을 강요당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상태였다"며 "체벌을 받은 후에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점, 자백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점 등을 보면 1심의 형은 적정하다"고 판시했다. 

D군은 재판과정에서 "그때 잠만 잤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스무살도 채 되지 않은 청년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법원도 맘이 편했을 리 없다. 이 사건의 재판장(조경란 부장판사)도 법정에서 "사춘기 자녀를 둔 어미로서 죄책감과 고통을 가슴 깊이 공감하고 이해한다"면서 "D군의 장래를 위해 기도하겠다"며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판결③] 헌재, 태아의 생명권 > 산모의 자기결정권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 관련 산부인과 세 곳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낙태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사진은 SBS 드라마 <산부인과>.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 관련 산부인과 세 곳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낙태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사진은 SBS 드라마 <산부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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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의 생명권이 우선이냐,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하느냐.

그동안 법조계와 학계, 시민단체에서 공방을 벌여온 낙태 처벌에 대해 헌법재판소(헌재)가 합헌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생명권에 무게를 둔 결정을 내린 셈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며, 이러한 생명권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전제하면서 "태아의 생명권도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가 낙태 허용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헌법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으로 될 예정인 생명체라는 이유 때문이지, 독립하여 생존할 능력이 있다거나 사고능력, 자아인식 등 정신적 능력이 있는 생명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형법은 임산부의 낙태나 의사 등의 낙태를 모두 처벌한다. 다만 모자보건법 상에서 예외적으로 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법으로 낙태가 허용되는 경우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풍진, 톡소플라즈마증 등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성폭행으로 임신된 경우 ▲근친간에 임신된 경우 ▲산모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이다. 이때도 임신 24주 이내에만 가능하다.

헌재는 낙태를 처벌하지 않거나 지금보다 낙태 허용 사유를 넓힌다면 "낙태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인간생명에 대한 경시풍조가 확산될 우려마저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헌법재판관 8명 중 4명의 의견이다. 결정에 관여한 나머지 재판관 4명은 위헌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6인의 재판관이 필요하다.

이강국, 이동흡, 목영준, 송두환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태아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합병증 및 모성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지는 임신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낙태를 허용해 줄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반대의견은 현행 낙태죄 처벌조항이 거의 사문화되어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은 달성하기 어렵고, 임부의 자기결정권은 전혀 존중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위헌이라고 본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은 지울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공공연히 이뤄지는 낙태를 과연 법이 막을 수 있을까. 정치권, 학계, 법조계에서 낙태를 놓고 합리적인 토론으로 현실성 있는 대안을 내놓았으면 한다.    

기사 관련 법률
[판결①]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판결②]
형법 제10조(심신장애자)
①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판결③]
형법 제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270조(의사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법 제14조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서적 <생활법률상식사전>, <생활법률해법사전>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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