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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우리는 거대자본에 공생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맞습니다.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비단 거대자본만의 의무일까요?

몇 해 전인가 파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언덕 길 옆에 자리한 카페에서 빵 서너 점을 산 적이 있습니다. 빵을 고르고 계산을 하기위해 카운터로 가져갔죠. 계산을 하는 친구에게 '조금 불편한 곳'이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청결한 카페도, 먹음직스러운 빵도 나에게 조금의 단서도 주지 않을 만큼 완벽했기 때문일까요? 카페를 나서서야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짧지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WE CAN(우리는 할 수 있다)'이라는 한 마디. 그 말이 새겨진 빨간 벽돌의 건물. 머릿속에 얽혀 있던 실타래들이 아련하게나마 풀려가더군요.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탄생한 중증 지적장애인들의 공동체 위캔. 11년째를 맞는 위캔에 근무하는 장애근로인들의 성실하고 정직한 열정은 변함이 없다. 멀리서도 보이는 '위캔'이라는 단어.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탄생한 중증 지적장애인들의 공동체 위캔. 11년째를 맞는 위캔에 근무하는 장애근로인들의 성실하고 정직한 열정은 변함이 없다. 멀리서도 보이는 '위캔'이라는 단어.
ⓒ 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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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몰랐지만, 위캔은 쿠키를 만드는 곳이고 카페에서 내가 구입한 빵은 옆에 위치한 '애덕의 집'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현재 카페는 운영하고 있지 않는 상태입니다. 들은 얘기로는 더 이상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았답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 있는 '위캔센터'는 2001년 겨울, 중증 지적장애인들에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고자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탄생했습니다. 가파른 언덕 위 덩그러니 서 있던 건물 한 채. 위기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성실하고 정직하게 쿠키를 만들어가는 '장애근로인'들의 열정만큼은 변함이 없습니다.

위캔은 2007년 사회적기업 최초 모집시 선정된 50여 기업 중 한 곳입니다. 2001년 설립 당시에는 천주교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서울관구의 지원을 받았지만, 현재는 사회복지법인으로 독립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수녀회 측에서는 사무국장과 시설장(센터장)을 파견합니다. 현재 생산직 34명 전원이 중증 지적장애인이고 시설장을 포함한 비장애인 직원(관리직)은 18명입니다. 생산직원이 가장 많았을 때는 38명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탄생한 중증 지적장애인들의 공동체 위캔. 11년째를 맞는 위캔에 근무하는 장애근로인들의 성실하고 정직한 열정은 변함이 없다. 현재 위캔을 이끄는 이수경(마리아) 수녀님.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탄생한 중증 지적장애인들의 공동체 위캔. 11년째를 맞는 위캔에 근무하는 장애근로인들의 성실하고 정직한 열정은 변함이 없다. 현재 위캔을 이끄는 이수경(마리아)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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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캔센터를 이끌고 계시는 분이 현 센터장 이수경(마리아) 수녀님입니다. 이수경 수녀님은 2009년에 사무국장으로 취임하셨다가 2011년 센터장이 되셨습니다. 6일 위캔센터를 찾아갔을 때, 수녀님은 "<오마이뉴스>를 즐겨본다"며 환하게 웃는 낯으로 반겨주셨습니다. 사실 위캔에 '성공한 사회적 기업'이라는 수식이 붙으면서 진의를 왜곡하는 언론들이 부담스러워 취재를 사양해오셨다고 합니다.

"위캔이라는 단어에 중증지적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다는 희망과 염원을 담았습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왜 '아이캔'이 아니고 '위캔'이냐고 물으십니다. 그들의 개별화가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립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위캔'입니다. 저희는 직업만 제공해도 되는 근로사업장으로 분류되지만, 근로인들의 실질적인 자활을 위해서 여러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이죠."

대화 중 "장애인들이 일방적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을 통해 사회에 참여하는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길 바란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신 수녀님은 시종일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이끄셨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탄생한 중증 지적장애인들의 공동체 위캔. 11년째를 맞는 위캔에 근무하는 장애근로인들의 성실하고 정직한 열정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탄생한 중증 지적장애인들의 공동체 위캔. 11년째를 맞는 위캔에 근무하는 장애근로인들의 성실하고 정직한 열정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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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람들은 이윤을 창출하는 경영마인드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경영의 어두운 면을 알지 못해요. 너무나 투명하게 운영해요. 쿠키의 가격책정부터 난항이었죠. 과포장을 하지 않고, 환경오염물질을 줄이고, 국산제품만 사용해요. 하지만 이익이나 마진율을 생각하지 않고 가격책정을 했지요. 유통마진을 남기거나 홍보비용을 쓸 여력이 없어요. 미숙의 극치를 보이고 있답니다. 장점이자 단점이죠.(웃음)"

열아홉 살에 위캔에 들어와서 지금 서른이 된 근로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청춘을 보낸 위캔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겠죠. 그래서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답니다.

"하루는 거래처에서 연락이 왔어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관리직원이나 (생산직) 근로인들이나 동일한 명찰을 착용하고 있어요. 거래처에 말하기를, 낯선 직원이 다녀갔다는 거예요. '마케팅팀에서는 나간 사람이 없는데' 하고 의아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언동이 뭔가 굉장히 어색했다고 하더라고요. '아, 이거 근로인이 다녀갔구나' 하고 알았죠.

그런데 그분이 가서는 '이게 우리 쿠키다. 얼마나 팔리나? 잘 좀 팔아달라' 하고 왔다는 거예요. 전 '근로인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구나. 위캔의 직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했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탄생한 중증 지적장애인들의 공동체 위캔. 11년째를 맞는 위캔에 근무하는 장애근로인들의 성실하고 정직한 열정은 변함이 없다. 완제품을 일일이 육안으로 검수하는 모습.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탄생한 중증 지적장애인들의 공동체 위캔. 11년째를 맞는 위캔에 근무하는 장애근로인들의 성실하고 정직한 열정은 변함이 없다. 완제품을 일일이 육안으로 검수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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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시의 지원만 기대고 있지는 않았는데요. 여러 가지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편견이라는 벽은 여전히 거대해보였습니다.

"재정상 100% 자립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출의 100%를 근로인들의 월급으로 지급합니다. 이곳의 근로인들은 모두가 정규직이에요. 훈련생들이 없어요. 그리고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우수 근로인들에게는 인센티브도 지급해오고 있답니다.

외국의 경우는 이런 기업이 매출처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지역사회 안에서 해결이 된다고 해요. 꼭 동정심에 기대는 판매가 아니라 더욱 열심히 만든다는 진심을 알아주기 때문이에요. 저희도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어요. ISO22000을 획득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죠. 지적장애인들의 제품이 국제기준을 달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일본의 교류기관에 방문을 위해 연락을 했더니 거래처가 늘어나서 너무 바쁘다며 다음에 방문해달라는 거에요. 우리도 매출이 늘어난다면 더욱 아름다운 일들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는 부러웠어요.

단순한 금전적인 도움도 감사하지만, 그것보다는 장애인들과 같이 가자는 마음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꼭 저희 위캔쿠키만이 아니라, 일하겠다는 장애인들의 제품을 사주시면 '1석3조'라고 생각해요. 훌륭한 제품을 얻으시고, 또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거고, 그 자체가 후원이잖아요. 그 긍정적인 파급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죠."

고용노동부가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들어오면서, 평가기준을 너무 산술적 수치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고용인원, 매출액 이런 숫자들 말이죠. 하지만 사회적 기업은 그 보다 큰 가치를 만들고 있는데 말이죠.

"사회적 기업을 연구하시는 어떤 분이 저에게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사회적 기업가가 아니고, 사회적 기업 마인드를 가지고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사회적 기업가다'란 말씀을 해주셨어요.

우리 사회에 사회적 기업이 도입된 지 5년이 지났는데요. 이 시점에서 사회적 기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어떤 변화를 원하는지'라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007년 사회적 기업이라는 감투를 쓴 '위캔'은 현재 2012년의 '위캔'과 다르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사회적 기업이라는 인증이 사라져도 저희는 바뀌는 점이 없을 거예요."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탄생한 중증 지적장애인들의 공동체 위캔. 11년째를 맞는 위캔에 근무하는 장애근로인들의 성실하고 정직한 열정은 변함이 없다. 작업장 앞에 전시된 위캔의 제품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탄생한 중증 지적장애인들의 공동체 위캔. 11년째를 맞는 위캔에 근무하는 장애근로인들의 성실하고 정직한 열정은 변함이 없다. 작업장 앞에 전시된 위캔의 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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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위해 제조시설에 들어섰습니다. 처음 보는 기자와 눈이 마주치는 모든 직원들이 먼저 목례를 건네 왔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각자의 파트에서 열심히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인상적인 부분은 완제품을 일일이 육안으로 검사하고 있었어요.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그냥 생겼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모자공장에 다니다 이곳으로 옮긴지 5년이 되었다는 장애근로인 한 분에게 전에 다니던 직장과 위캔에 차이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전에 다니던 곳은 너무 바쁘고 야근도 잦았어요. 배려를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정신이 없었죠. 하지만 이곳은 여유가 생겼어요. 목표도 생겼죠. 조그마한 제과점을 제 힘으로 열고 싶어요."

취재를 마치고 나오면서 제가 괜히 설렜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립하고 그것을 토대로 순환되는 기업. 우리 사회의 미래를 살짝 내다본 기분이랄까요. 가까운 마트만 가도 '착한'이라는 단어가 너무 가볍게 쓰이고 있습니다. 범람하는 '착한'이란 단어 속에 우리는 혜안을 지닐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위캔쿠키, 이만하면 '착한'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겠죠?


태그:#위캔, #쿠키, #사회적기업, #이수경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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