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형제가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4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사형제 존속' 입장을 밝힌 이후부터다. 이 날 박 후보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 (사형제가) 필요하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박 후보의 '사형제 존속' 발언과 관련하여 민주통합당 측에서는 반대입장을 내놓았다. 사형제의 효과에 대한 논란과 과거 유신정권 당시 벌어졌던 '인혁당 법정살인' 사건 등을 예로 들면서 '되돌이킬 수 없는 억울한 죽음'을 낳을 수 있다며 박 후보의 사형재개 검토철회를 촉구했다.

누리꾼들의 토론도 이어지고 있다. 각 포털 게시판과 트위터 등의 SNS 공간에서는, "잔인한 범죄자의 처벌과 범죄예방을 위해 사형이 필요하다"는 사형 찬성에 대한 의견과 동시에 "악질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극단적 처벌로 다스림으로써 지지율 상승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반대의견도 분분하다.

이처럼 사형제가 보수성향의 여당소속 대선 후보의 발언으로 화제가 된만큼, 한번쯤은 각자 생각해보고 여러 사람들과 토론해 볼 소재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과연 대한민국에 사형제가 필요할까? 1997년 이후 지난 15년간 한국에서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고, 세계 각국에서도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는 추세라면, 사형제에 논란의 여지가 있어서는 아닐까?

무거운 주제라서 깊게 생각해보기 꺼려진다면, 이와 관련된 영화들을 통해 사형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사형에 대한 논쟁이 직·간접적으로 다루어진 영화 두 편, <데이비드 게일>과 <그린마일>을 소개한다.

만약 무고한 사람이 사형을 당하게 된다면?

 영화 <데이비드 게일>의 한 장면.

영화 <데이비드 게일>의 한 장면. ⓒ UIP코리아


영화 <데이비드 게일>의 주인공 데이비드 게일(캐빈 스페이시)은 텍사스 오스턴 대학의 교수로서, 사형폐지론을 주장하는 단체인 '데스와치(Death watch)'에 소속되어 있다. 텍사스는 미국 내에서 매우 보수적이라 일컬어지고, 사형제도 또한 가장 활발하게 집행되고 있는 지역이다(미국은 주마다 정책에 차이가 있으며, 사형제의 집행 또한 지역에 따라 폐지된 곳도 있다). 그래서 데이비드 교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지사는 높은 지지율을 받으며 사형제도를 굳건히 이어간다.

데이비드 게일은 TV토론회에서 사형제도가 범죄억제 효과가 없음을 논거로 "사형은 또 다른 살인"이라 주장하지만, "그래서, 사형이 집행되어 사망한 사람들 중 무고한 사람이 있었습니까?"라는 텍사스 주지사의 말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한다. 사형당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흑인, 빈민계층 등 힘없는 사람들이었다는 반박도 결국 그들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 앞에선 힘을 잃은 것이다.

유능한 대학교수였지만 알콜중독 증상에 시달리던 데이비드 게일은 퇴학당한 여학생과 술김에 성관계를 가진 뒤에 그녀로부터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한다. 이에 데이비드 게일은 여학생이 퇴학 처분을 받은 것에 대한 보복이라 주장하지만, 그는 결국 일자리를 잃고 아내마저 떠나버리고 만다.

삶이 망가진 데이비드 게일은 '데스와치'에서 알고 지내던 여자 동료인 콘스탄스와 가까이 지내게 되고, 그녀와 잠자리를 가진 다음날 그녀가 참혹하게 살해되면서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당한다. 범죄의 잔혹성을 이유로 데이비드 게일은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데, 사형선고가 이루어지기 3일 전에 잡지사의 기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자신은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데이비드 게일은 기자에게 자신은 콘스탄스를 죽이지 않았으며, 그동안 사형폐지를 주장하며 주지사와 설전을 벌인 것에 보수 지지자 층의 누군가가 자신을 음모에 빠트린 것이라고 잡지사 기자에게 주장한다. 주어진 시간은 단 3일, 그 뒤에 그는 사형대 위에 오르게 될 신세이다. 사형폐지론자가 누명을 써서 사형을 당하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 과연 데이비드 게일은 억울하게 죽어서 사형제의 문제점을 세상에 알리는 또 다른 사례가 될 것인가?

사형집행자들의 고뇌, "신이시여, 제가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겁니까?"

 영화 <그린 마일>의 한 장면. 간수 역의 톰 행크스와 죄수 역의 마이클 던컨(얼마전 타계했다)의 명연기를 볼 수 있다.

영화 <그린 마일>의 한 장면. 간수 역의 톰 행크스와 죄수 역의 마이클 던컨(얼마전 타계했다)의 명연기를 볼 수 있다. ⓒ 워너브라더스 픽쳐스


스티븐 킹의 소설 원작의 영화 <그린마일>은 조금 더 따스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직접적으로 사형이란 제도에 관한 문제를 지적하는 대신,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이 겪는 소소한 일상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린마일'은, 죄수의 감방에서 사형집행장까지 이어진 길의 이름이자 사형수 생애 마지막 걸음을 뜻한다. 교도관 폴(톰 행크스)은 오랜 경력만큼이나 인정 또한 많은 인물로, 질나쁜 범죄자에겐 따끔하게 벌을 주면서도 삶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참회한 사형수들에겐 법의 울타리 안에서 베풀 수 있는 작은 배려를 보여주기도 한다.

좌충우돌, 범죄자들의 난동과 진압 사이에서 바쁘지만 작은 일상의 행복을 찾던 교도관들의 삶에 작은 변화가 생겨난 것은 두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아 새로 들어온 죄수 존 코피(마이클 던컨)의 등장 때문이다. 존은 거대한 덩치 때문에 교도관들 사이에서도 처음엔 경계의 대상이었지만, 밤엔 불을 꺼서 어두워지는 것조차 무서워하고, 주위 사람들을 상대하는 착한 심성이 드러나면서 교도관들의 마음을 돌려놓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사형수인 존은 특별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병에 걸려 아프거나 다친 사람의 상처와 고통을 모두 흡수하여 날려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존은 교도관들과 그 가족들의 병을 고쳐주기도 하며, 그로 인해 몇몇 교도관들로부터 '혹시 천사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존이 소녀들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범인이 다녀간 뒤에 그 두 소녀를 초능력으로 살리려고 했던 사실을 뒤늦게서야 교도관들이 알게 된다. 그러나 소녀들을 발견한 때는 이미 늦어버렸고, 존은 고스란히 두 소녀의 살해 혐의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선고받은 것이었다.

"신이시여, 제가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겁니까?"

결국 존의 사형이 집행되던 날, 교도관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오판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사형시켜야만 했던 교도관들의 고통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논란의 대상에 오른 사형제... 효과는 미지수, 그리고 문제점들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무고한 사람이 사형대에 오르게 된다면?"이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실제로 오판으로 인해 사건의 범인이 아닌 무고한 사람이 사형당한 억울한 경우는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는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이 통치하던 유신정권에서는 조작된 간첩사건들에 의한 사형도 이루어진 경우도 있고, 최근에 와서 당사자들이 무죄로 밝혀진 바 있다. 무고한 사람들을 정치적 목적으로 제거하는데 사형제도가 이용되었던 당시의 잘못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또 다시 사형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더불어, 사형제도가 범죄 억제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은 사실이다. 사형제를 실시했던, 혹은 지금도 실행중인 국가들에서 범죄율이 줄어들지 않았음이 밝혀졌고 되레 그러한 점 때문에 세계 각국이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추세에 접어들고 있다. 효과는 분명하지 않은 반면, 문제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범죄자들에 대한 낮은 형량이 문제라 더욱 강한 처벌을 주장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장 극단적인 처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으며, 국가에 의한 또 다른 폭력이지는 않을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극대화에 앞서 필요한 것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노력일 것이다. 국민을 확실히 보호하기 위한 노력보다 처벌부터 강화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강력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라는 '사형제'가 정말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인지 깊게 생각해볼 일이다.

사형제 그린마일 데이비드 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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