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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서울 서교동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홍현진, 박소희 기자가 최근 이슈로 떠오른 아동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이희동, 한진숙, 이규정, 김지수 시민기자와 함께 좌담회를 하고 있다.
 5일 오후 서울 서교동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홍현진, 박소희 기자가 최근 이슈로 떠오른 아동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이희동, 한진숙, 이규정, 김지수 시민기자와 함께 좌담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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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성징 이후 한 번도 밤길에 누가 갑자기 나를 공격하거나 추근덕대면 어떻게 할까 걱정 안 해본 적이 없다."

스물세 살 대학생 김지수씨의 '고백'에 두 아이의 아빠 이희동(35)씨와 '건축학과 5학년' 이규정(27)씨는 놀라는 듯 했다.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이 뉴스를 타고 전해지던 날, 김지수씨는 아침 밥상에서 "일찍 들어와라, 몸 조심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딸 셋을 둔 한진숙(42)씨에게는 이번 '나주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성범죄 사건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왔다. 자신을 "범죄 위험의 최전선에 있다"고 표현한 한씨는 사형제 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가 셋째 아이를 임신중인 이희동씨는 "뱃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라 다행"이라고 말했다.

'미혼남성'의 체감도는 조금 달랐다.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이규정씨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택배기사 왔다, 칼 준비중' 인증샷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한다.

20대 대학생, 30대 아빠, 40대 엄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네 명이 서교동 <오마이뉴스> 사옥에 모였다. 김지수·이규정 시민기자는 각각 <오마이뉴스> 15기, 16기 인턴기자 활동을 했고, 정치·사회·문화 다방면의 분야에서 글을 써온 이희동 시민기자는 '육아일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성미산 마을 '공동주택'에서 살고 있는 한진숙 시민기자는 '마을살이'의 즐거움을 기사로 전해주고 있다.

좌담회는 길가에 어둡이 짙게 깔린 5일 오후 8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다음은 '성범죄'에 대한 20대~40대 '흔남흔녀'의 '솔직토크'다.

"세상이 이렇게 험한데, 셋째가 아들이라서 그나마 다행"

김지수 시민기자가 "성폭력 범죄에 대해 '욕구를 참지 못해서 그랬다'거나 '술김에 그랬다'는 피의자의 해명은 폭력을 당연시하는 구조를 만든다"며 지적했다.
 김지수 시민기자가 "성폭력 범죄에 대해 '욕구를 참지 못해서 그랬다'거나 '술김에 그랬다'는 피의자의 해명은 폭력을 당연시하는 구조를 만든다"며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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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이하 오) : 지난주 나주 초등생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후 언론이 상당히 시끄럽다. 뉴스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생활의 변화는 없었나?

김지수(여, 23, 이하 김) : '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밥 먹을 때 부모님은 '일찍 들어와라, 몸 조심해라'고 하시고. '내가 피해 다녀야 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 건가' 싶어서 막막하다.

한진숙(여, 42, 이하 한) : 집안에서 부모와 자고 있는 아이를 데려갔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안전지대가 없구나' 절박한 심정이 들었다. 딸만 셋인데, 둘째 딸이 8살이다. '내가 자고 있을 때 우리 딸이…' 굉장히 아찔한 공포다. 이후에 피의자가 '술김에 그랬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사형 제도를 유지해야 할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술김에'라고 쉽게 말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 딸들을 키우고 싶지 않다. 

이희동(남, 35, 이하 동) : 저는 '셋째가 아들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지금 아들 하나, 딸 하나인데 뱃속 아이가 아들이라는 말에 와이프가 처음에는 '아들 키우기 힘들다'고 울다가, '그래도 세상이 이렇게 험한데 아들이 낫지 않을까' 하더라.

이규정(남, 27, 이하 규) : 저는 사실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보도되지 않아도 이런 일이 항상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 : 여성분들의 경우에는, 이런 강력 성범죄가 한 번 발생하면 당장 집에 가는 길이 무섭다. 어제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살인의 추억>이 생각나더라. 남성분들은 어떤가.

규: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다. 남자는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동 : 저도 밤거리는 염두에 안 둔다. 술 먹고 퍽치기 걱정하는 정도?

김 : 2차 성징 끝나고 나서부터 항상 '밤길 조심하라'는 얘기를 듣고 다녔다. 한번은 남자인 친구에게 '나는 한 번도 밤길에 누가 갑자기 나를 공격하거나 추근덕대면 어떻게 할까 걱정 안 해본 적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동 :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치안이 잘 되어 있는 나라 아닌가. 그럼 다른 나라 여성분들도 밤길을 걸을 때 공포심을 가질까?

한 : 치안상태가 양호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는 가부장 문화가 있지 않나. 제 친구들 중에 결혼 안 한 친구가 있다. 생활수칙 중 하나가 짜장면 1인분 배달을 시켜 먹지 않는 것이다. 집을 얻을 때도 외진 곳에 있거나 골목길 돌아서 있는 곳은 피한다. 가능한 큰길가에 있는 집을 찾는다. 제 친구니까 40대다. 그런데도 생활 속에서 수칙을 세워서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한다.

동 : 그 얘기 들으니까, 저도 와이프가 택배를 많이 시키니까 한 번쯤 물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겁나지 않냐'. 와이프는 무덤덤하게 넘어갔는데, 택배기사가 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많아서 물어봤던 것 같다.

한 : 택배, 사실 무섭다. 낮에 주로 오니까 그냥 '네'하고 쓱 나가서 문 열어준다. 그런데 최근 택배 왔을 때 조심하라는 내용의 방송을 봤다. 저는 공동주택에 살아서 서로서로 받아주기도 하는 편이라 무신경했는데 '택배도 (위험성을) 생각해봐야겠다' 싶었다.

오 : 이러한 여자들의 일상적 공포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

규 : 페북(페이스북)에 '택배 기사 왔다, 칼 준비중'하며 인증샷이 올라온 것을 본 적이 있다. 선량한 배달원이 대다수일텐데, 그 사람들 입장에선 얼마나 상처겠나. 이런 방식이 맞을까. 

동 : 그런데 남자들도 많이 경험하는 것 같다. 밤길에 (모르는) 여자와 단둘이면, 나는 그냥 걷는데 (그 여성의) 발걸음이 빨라지거나, 갑자기 멈춰서서 내가 지나가길 기다리거나.

한 : 엘리베이터 탈 때 남자랑 여자랑 같이 타면 여자들이 보통 뒤쪽에 선다. 아니면 남자들이 알아서 앞으로 간다.

동 : 아, 그런 것도 의식해야 하는구나. 무조건 문 앞쪽으로 가야하는구나. 오늘 배워가네(웃음).

"PC방 간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다면?" 

이규정 시민기자가 "사형제 같은 이야기들도 여과 없이 보도되고 있는데 '이 사람만 없으면 행복한 사회 된다'. 성범죄는 권력, 구조의 문제인데 처방이 잘못 됐다"고 지적했다.
 이규정 시민기자가 "사형제 같은 이야기들도 여과 없이 보도되고 있는데 '이 사람만 없으면 행복한 사회 된다'. 성범죄는 권력, 구조의 문제인데 처방이 잘못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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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 성범죄가 이전에 비해 많이 늘어났다고 느끼나.

동 : 정치적인 필요로 많이 부각시키는 것 같긴 하지만, 세상이 (살기) 어려워지는 것과 범죄율 늘어나는 게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성범죄의 경우, 어쨌든 성에 관련된 매체나 환경에 예전보다 더 쉽게 노출되는 건 사실이다. 또 사회가 어려워지면서 한계에 부딪치는 걸 성적으로 풀려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많이 늘어난 것 같지는 않다. 

한 : 범죄율은 모르겠지만 강력범죄, 특히 약자에 대한 범죄는 훨씬 늘었다고 느낀다. 중간층에 존재하는 젊은이들이나 울타리가 있는 사람들에 대해선 모르겠지만, 그 울타리 밖에 있는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범죄율은 훨씬 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범죄의 표적은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다. 범죄의 강도도 강해졌다. 그동안 내장기관을 상하게 할 만큼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이 있었냐. 나영이(가명) 사건이 사실은 처음 아니었나. 제가 느끼기로는 그런 식의 성폭행 사건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지? 상상이 안 될 정도였다.

김 : 사실 성범죄는 예전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요즘에는 피해자 신고가 늘었다고 하는데, 전보다 훨씬 더 언론이 주목하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방향에 문제가 있다. 사실 성 욕구를 자극하는 문화는 개방되어 있지 않나. 그러면서 성에 대한 개념들도 발전해왔고. 성애랑, 성폭력은 다르게 봐야 하는데 이 문제를 '욕구를 참지 못해서 그랬다'거나 '술김에 그랬다'고 보도한다. 그보다는 폭력을 당연시하는 구조를 문제 삼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한 : 그래서 황우여 대표가 결혼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성폭력을 욕구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순수하신 분이다(일동웃음).

오 : 언론보도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보도됐던 것 중에서 이런 접근 방식은 정말 아닌 것 같다고 느낀 건?

김 : 가장 큰 건 <조선> 1면 오보 같다. 생각없이 저널리즘을 수행한 것 아닐까. 정정보도도 1면 밑에 살짝.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건, 최근 보도 보며 느낀 건데 범죄자가 평소에 어떤 사람이고 어떤 식으로 극악한 행위를 했는지, 샅샅이, 토씨 하나 안 빠뜨리고 공개한다. 그건 '이 사람은 변태'라고 규정해서 '그 사람만 없애면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3차 가해도 발생할 수 있다.

한 : 엄마가 새벽까지 PC방에 있었고, 거기서 범인을 만났고, 아이가 없어진 줄도 몰랐다. 엄마가 '게임중독'이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런데 '엄마가 게임중독'이라는 말 뒤에는 '이 엄마가 아이를 방치했고, 범죄에 노출되도록 만들었다. 개념도 없고, 니가 당할 만했으니까 당했다'라는 건데, 이건 정말 최악의 선정보도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해결점을 찾을 수 없게 만드는 거다. 우리나라 성범죄 보도를 보면 '니가 뭐 잘못한 거 아냐?'라는 식으로 자꾸 혐의를 둔다.

김 : 비슷한 게 극대화된 사례가 성폭행 일어났을 때 피해자의 옷차림으로 이유를 돌리는 것이다. '니가 짧은 치마 입어서 그런 거다'. 저같은 경우에는 이에 반대해서 지난 7월 '슬럿워크' 취재를 다녀오기도 했다.

동 : 이번에 <조선>은 정확한 약도까지 그려서 내보냈다더라. 성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2차 피해인데, 그것 때문에 이 아이가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언론은 진실을 알린다고 하지만 피해자에게는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한 : 사실 이 사건이 잘 정리되고 해결되려면 이 가정이 깨지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저는 한 가지 다른 얘기도 하고 싶다. 만약 PC방 간 사람이 아빠였다면 이슈가 됐을까?

동 : 안 됐겠죠.

김 : 윤리는 없고 자극적인 심판만 많았다.

"내 자식이 범죄를 당한다면... 사생결단 볼 것" 

한진숙 시민기자가 "나주 초등학생 사건 피의자 고아무개씨도 마을에 공동체가 형성됐고 자신의 터전을 잡을 수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다"고 안타까워 했다.
 한진숙 시민기자가 "나주 초등학생 사건 피의자 고아무개씨도 마을에 공동체가 형성됐고 자신의 터전을 잡을 수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다"고 안타까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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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 : 사형제 같은 이야기들도 여과 없이 보도되고 있다. '이 사람만 없으면 행복한 사회 된다'. 성범죄는 권력, 구조의 문제인데 처방이 잘못 됐다.

한 : 화학적 거세를 해도 성욕구를 100% 없앤다는 확신이 없다더라. 사형제도 마찬가지다. 사형제가 유지될 때와 아닐 때의 범죄율이 현격한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심정적으로 부모 입장에서는, 제가 그런 일(성폭력 범죄)의 당사자가 되면 개인적으로 복수하고 싶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조두순이 석방돼 나왔을 때 내 딸이랑 부딪친다면? 내 딸이 중요하니까 사회정의, 윤리, 인생관 이런 게 필요없는 거다. 내가 가장 아끼고, 보호해야 할 사람이 위험에 처한다면.

동 : 저도 비슷하다. 영화 <모범시민>을 보면서 주인공의 개인적인 복수에 십분 공감 가더라. 사회적 논의라는 지점과 내가 막상 당했을 때는 전혀 다를 것 같다. 내 자식이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든 사생결단을 볼 것 같다.

오 : 강호순 사건 이후 일부 언론에서 강력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선> 오보처럼 애꿎은 사람 얼굴이 1면에 실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고 보나.

한 : 예전엔 범죄 저지르면 '조리돌림'이라고 해서 끌고 다니면서 마을을 돌게 했다. 얼굴 가려주지 않았다. 그 자체가 처단이었다. 실제로 길거리에 그 비슷한 사람이 지나가는 걸 보려는 게 아니라 '처단의 욕구'가 있어서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범죄 예방 차원은 전혀 아니다. 길 가면서 '어? 강호순 닮았네?' 이러지 않는다. 위험상황 처했을 때 '어, 거기 나온 그 사람 아냐' 이렇게 되지 않는다. 그 사람 얼굴 기억하느냐 마느냐는 범죄 예방과 상관없다.

동 : 나주의 고아무개씨는 '도시 빈민'으로 있다가 고향에 왔는데, 고향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범죄를 저질렀다. 조리돌림을 한다는 것은 '이 동네에서 못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문에 얼굴이 공개되면 다른 곳에서라도 갱생할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을까. 더 극악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김 : 범죄 보도는 항상 '그가 불우하게 살아왔다'고 한다. 그걸 보는 우리는 '나랑 다르네, 나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제가 어떤 칼럼에 봤는데 성폭행 가해자 상담 때 대부분 '운이 없었다'고 말한다더라. 범죄자를 '특수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부터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규 : 흉악범죄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분명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새벽 2시에 PC방 가는 엄마, 부모는 누구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정상적인 보살핌을 받지 못한 집에서 범죄를 당하거나 범죄자로 자랄 확률이 높은 것 같기도 하다. 

한 : 저는 성미산 마을이라는 공동체에서 지내고 있다. 우리 동네라면 엄마 아빠가 없는 집 아이들을 대신 봐준다. 이게 그 마을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알게 모르게 안전망이 형성되는 것이다. 다른 집의 사정을 내가 알기 때문에. 그게 굉장히 튼튼한 울타리다. 나주 고아무개씨도 마을에 공동체가 형성됐고 자신의 터전을 잡을 수 있었다면 달랐을 수 있다.

규 : 피의자가 20대 초반, 게임만하고 친구도 없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 남들보다 범죄자가 될 가능성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이번 문제를 바라보는 에너지가 이런 쪽으로 맞춰져야 할 것 같다. 

김 : 성폭력은 가정환경이 불우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고대 의대나 진보신당에서 있던 사건들, 성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성폭력. 또 성기 삽입만이 성폭력이 아니다. 언어 등 이런 문제들을 같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일상화된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란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화학적 거세', '불심검문'... 폭력을 폭력으로 눌러"

이희동 시민기자가 "언론은 진실을 알린다고 하지만 피해자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희동 시민기자가 "언론은 진실을 알린다고 하지만 피해자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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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 '음란물' 이야기를 묻고 싶다. 음란물이 성범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동 : 저희 시대에는 청계천을 갔다. 당시 한창 인기 있었던 <천사들의 합창>의 히메나 선생님이 나온 포르노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당시 중고등학교 남자들의 로망이었다. 만 원 주고 사서 집에 오면 '뽀뽀뽀', '모여라 맛동산' 나오는 그런 일도 있었다(일동 웃음). 그러니까 지금 애들이나 그때나 방법의 차이,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보면 영향을 끼칠까?'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제가 어머니께 포르노를 봤다고 고백한 게 고등학교 때였다. 그때 어머니가 '포르노를 볼 수 있지만 그건 너무 과장됐고 남자 중심'이라고 하셔서 그 다음부터 안 봤다. 결국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 범죄의 원인으로 계속 말할 요소는 아니지 않을까. '포르노가 성범죄 원인'이라고 쓰는 기자들 외장하드엔 포르노가 없을까? 오히려 당당하게 돈 내고 성을 구매하고, 여성들의 술시중을 받는 사람들이 더 문제다.

김 : 저도 동의한다. 꼭 음란물이 아니어도 다른 매체도 있다. 선정적인 일부 웹툰이나 노래가사도 같은 맥락 아닌가. 오히려 음란물을 더 금기시하고 사회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게 문제 아닐까. 방금 어머니랑 음란물 본 경험 얘기했다고 하셨는데, 보통 가정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금기시되고 있다. 

한 : 저는 음란물에 따라 수위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영화처럼 스토리가 있는 것도 있지만, 가학적인 현장을 찍는 것 등등 여러 가지가 있지 않나. 후자는 일반 음란물을 보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규 : 스너프 필름 같은 경우는 범죄로 다뤄지지 않은가. 음란물 중에는 연출된 것도 있으니까. 

오 :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늘 '성적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남성의 성적욕구는 풀어주는 게 당연하다고 보는 문화가 있지 않나. 음란물을 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나꼼수> 비키니 사건 때도 이런 부분이 논란이 되었다.

동 : 남성의 성욕도, 여성의 성욕도 풀어줘야 한다. 그런데 여성의 성욕을 표출할 기제가 우리 사회에는 없고, 남성의 경우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사회분위기가 여성은 성욕에 대해 쉬쉬하고, 남성들은 동지의식을 갖고 '같이 성매매를 했으니까 우린 하나야' 식의 사회 분위기가 있는 거다. 남자의 욕망을 표출하는 게 당연하냐고 물었을 때 잘못 분출하는 게 아니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표현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규 : 외국에서 살다온 친구 얘기를 들어보면 10대 때 연애하고 성행위하는 게 자연스럽더라. 우리는 할 수는 있어도 몰래 한다. 아무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외국의 경우 우리보다 야동을 덜 보는 것 같다. 제 생각엔 야동 보는 남자는 행복하지 않다. 연애를 해야지(웃음). 

오 : 화학적 거세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 같다. '남자들은 참지 못한다'라는 이유로 물리적 거세 이야기까지 나왔다.

한 : 다른 것보다 저는 대책으로 불심검문으로 이야기가 나온 게 정말 말이 안 된다. 이게 정말 이명박이 할 수 있는 짓이구나.

동 : 정치적으로 잘 짜여지는 것 같다.

김 : 응보와 교화는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뭔가 잡히지 않는 분노만 있다. 폭력 자체를 거부하는 문화가 아니라 폭력을 폭력으로 덮는 사회로 가려는 것 같다.

한 : 중요한 말씀이다. 폭력 자체에 화두를 두고 그걸 어떻게 없애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고민해야 하는데 계속 응징하는, 더 큰 폭력으로 막으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폭력은 여러 가지 형태다. 관공서 가면 머리 조아리는 것, 그것도 폭력이다. 일반 시민들은 정치인이 나타나면 위압감 느끼고. 이런 게 너무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힘의 서열을 당연시한다. 사회 전체의 인문학적 고민이 필요하다. 정말 바꾸기 힘들고 오랜 시일이 걸리겠지만 이제부터라도 해 나가야 한다. 집에서 아이들 교육시킬 때 '니가 힘 세다고 누군가를 괴롭히면 정말 비겁한 일이다'라고 가르치고, 성폭력 같은 게 얼마나 비열한 일인지를 정확히 짚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성폭력, 방점을 찍어야 하는 건 '성'이 아니라 '폭력'"

오 : 마지막으로, 성범죄를 막기 위한 대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김 :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든다. 한 번쯤 구조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폭력, 성 문화에 대한 인문학적인 고민 그런 것들을. 그냥 정책 하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부터. 이렇게 이야기하는 자리도 시작 아닌가.

규 : 성범죄는 '권력 차'의 문제라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성적인 게 아니라 폭력, 권력의 문제라면, 저는 남자라서 자꾸 남자 입장에서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잠재적 피해자라고 늘 생각한다면 뭐라도 할 것 같다. 권력차를 넘어서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 : 저는 공동체가 답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건 정말 멀고 먼 길이다. 일단 <오마이뉴스>에 바란다. <오마이뉴스>에서 고아무개씨의 이번 사건 1보를 전하면서 제목에 '술김에'라는 고씨의 표현을 그대로 갖다 썼더라. 아쉬움이 들었다. 성폭력 등 강력범죄가 발생했을 때 기사에서 어떤 시각을 견지했으면 좋겠다. 또, 제가 마을에서 1318모임을 한다. 저는 성인들이 할 수 있는 건 결국 교육이라고 본다. '때리지 마라'는 말을 계속 듣는 아이와 '싸울 바엔 니가 한 대 더 때려라'는 말을 듣는 아이는 다르지 않을까.

이 : 계속 나온 이야기인데, 성폭력에서 방점 찍어야 하는 건 성이 아니라 폭력이다.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행위. 우리가 성에만 집중하다보니까 돈이 많으면 여자를 사도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성범죄를 논의하는 공론의 장이 화학적 거세, 물리적 거세가 아니라 각자의 불편함, 여성은 늘 밤길을 조심해야 하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가 되는 것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부터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태그:#나주 성폭행, #성폭행, #성폭력, #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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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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