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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계의 희망은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책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2012년, ‘콘크리트 디스토피아’ 서울 곳곳에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함께 '집밥'을 먹고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는 것부터, 아이를 같이 키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까지. 반세기 전 간디의 정신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례를 통해 마을이 왜 희망인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6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신사2동 팔각정에서 산새마을 주민 주최로 '별이 빛나는 영화제'가 열릴 가운데, 마을 주민들이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모인 주민들에게 비빔밥을 나눠 주고 있다.
 6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신사2동 팔각정에서 산새마을 주민 주최로 '별이 빛나는 영화제'가 열릴 가운데, 마을 주민들이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모인 주민들에게 비빔밥을 나눠 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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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와서 밥 드시고 가세요."

서울시 은평구 봉산 중턱, '산새마을'에서 '호객행위'가 벌어졌다. 같은 동네에 살지만 인사만 하고 지내던 이웃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마을 활동에 관심이 없는 이들을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무슨 일이에요?"라고 물으며 그저 지나가는 주민도 있지만 "배고프네"라며 와서 밥 한 끼 먹는 주민이 더 많다. 그러면 '물건' 소개가 시작된다. '산새'가 많아 산새마을로 불리게 된 마을에는 지은 지 30년이 넘은 노후 주택이 많고 50~60대 중장년층 비율이 높다.

"오늘 영화 보는 날이잖아. 집에서 TV만 보지 말고 나와서 영화 한 편 보고 가. 박해일 나오는 <최종병기 활>이야."

6일 오후 7시 서울 은평구 신사2동 산새마을에서 '별이 빛나는 영화제'가 열렸다. 지난 8월 이후 두 번째다. 행사는 영화 관람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함께 밥을 먹으면서 마을 활동에 뜸했던 이웃들에게 마을의 소식을 전한다. 지난 3일에는 명패를, 4일에는 환경 수세미와 비누를 만들었다. 마을 활동을 처음 접한 주민들은 이런 식으로 마을에 점점 관심을 갖게 된다.

산새비빔밥 먹고 공짜 영화 보자!

6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신사2동 팔각정에서 산새마을 주민 주최로 '별이 빛나는 영화제'가 열릴 가운데, 영화를 관람 하기 위해 모인 주민들이 비빔밥과 수박을 함께 나눠 먹고 있다.
 6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신사2동 팔각정에서 산새마을 주민 주최로 '별이 빛나는 영화제'가 열릴 가운데, 영화를 관람 하기 위해 모인 주민들이 비빔밥과 수박을 함께 나눠 먹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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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호객 행위의 '미끼'는 산새비빔밥이었다. 콩나물, 오이, 무채, 당근, 계란을 넣은 비빔밥에 고추장과 참기름도 듬뿍 들어갔다. 후식으로 잘 익은 수박도 준비됐다. 8통, 9통 주민들이 50인분의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밥통이 열리고 배급이 시작되자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밥 한 그릇 먹고 놀다 가기도 했다.

호객행위에 걸린 임정순(48)씨는 신사2동 8통에 들어온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았다. 비빔밥을 먹던 임씨는 8통 통장 진정임(62)씨의 잔소리를 듣는다. 진씨가 "집에만 있지 말고 매주 마을 회의도 나오고, 국악 수업도 들으란 말이야"라고 말하자 임씨는 "뭐 아는 사람도 없고, 재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며 밥만 먹고 자리를 떴다. 영화 관람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난해 6월 '두꺼비 하우징'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된 산새마을은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마을공동체 만들기'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국악 교실도 열고 텃밭도 가꾸고 영화제도 열지만 아직까지 주민들의 참여를 높이는 게 쉽지 않다. 활동에 참여하는 주민은 10~20명에 한정된다. 때문에 "놀이터 짓고, 노인정부터 만들면 마을이 달라도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시설 하나 짓는 데 '억억'하는 예산이 나오기도 힘들고, 마을 사람들의 관계망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의견이 많다. 산새마을은 신사2동 5~9통 주민들을 아우르려고 하지만 현재는 8, 9통 주민들 중심으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주민들의 자발적 동력 없이 마을 일을 억지로 밀어붙이기는 힘들다. 마을 회의나 활동에 관심을 유도하는 게 먼저다.

천만 관객 <도둑들> 보자는 마을 사람들, 배급 어려워 DVD로

6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신사2동 팔각정에서 산새마을 주민 주최로 열린 '별이 빛나는 영화제'에서 마을 주민들이 영화 '최종병기 활'을 관람하고 있다.
 6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신사2동 팔각정에서 산새마을 주민 주최로 열린 '별이 빛나는 영화제'에서 마을 주민들이 영화 '최종병기 활'을 관람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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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최종병기 활'을 관람하기 위해 모인 마을 주민들이 해가 지면서 날씨가 쌀쌀해지자 돗자리로 무릎을 덮고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영화 '최종병기 활'을 관람하기 위해 모인 마을 주민들이 해가 지면서 날씨가 쌀쌀해지자 돗자리로 무릎을 덮고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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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홍보는 요란하지 않다. 마을 곳곳에 세워진 전봇대에 영화제를 연다는 간단한 전단지를 붙였을 뿐이다. 간단하지만 주민들에게 쉽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다. 때문에 평소 마을 활동에 관심이 없던 주민들도 호기심을 갖고 행사장에 나왔다.

이날 영화는 김한민 감독의 <최종병기 활>로 선정됐다. 지난 영화제에서는 중장년이 중심인 산새마을의 '고객'을 고려해 1968년도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을 틀었다가 흥행에 실패했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이미 본 영화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영화를 선정할 때는 마을 회의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물었다. 놀랍게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입에서 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한 <도둑들>을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집에서 TV를 즐겨 보시던 분들이라 최신 트렌드를 꿰뚫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영화관에서 상영 중이라 산새마을 간이 스크린까지는 배급이 어려웠다. 대신 <최종병기 활>이 낙점돼 DVD로 보급됐다. 8통, 팔각정에 스크린이 설치됐고 정자 앞 공터에 돗자리가 깔렸다.

영화 스크린은 허술했지만 화면을 바라보는 주민의 눈은 반짝거렸다. 유현규(59)씨는 "집 앞에다가 스크린 만들어 놓고 영화 틀어주니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강성구(71)씨도 "나이가 들어 혼자 집에 있을 일이 많다"며 "처음에는 자꾸 나오라고 해서 귀찮았는데 이제는 먼저 나와 있고 다음에는 또 어떤 영화를 틀어줄지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태그:#산새마을, #마을공동체, #두꺼비하우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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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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