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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손학규 후보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여기서 '저녁'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것은 일에서 벗어난 '여유시간'이 아닐까 싶다. 그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도 있고, 취미활동을 할 수도 있겠다. 봉사활동을 하거나 자기계발을 하거나 그냥 쉴 수도 있다.

'저녁'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은 우리 사회가 여유시간 없이 살아 가는 삶에 지쳐있고, 그만큼 그것을 원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회가 돈에 대한 욕망을 통제할 수 있을까

오후 7시면 문을 닫는 상점.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한 일로 보일 수 있지만, '저녁'이 중요한 사회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오후 7시면 문을 닫는 상점.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한 일로 보일 수 있지만, '저녁'이 중요한 사회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 오마이뉴스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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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6개월 정도 살았을 때의 일이다. 크리스마스였는데, 콜라를 사러 나갔지만 문을 연 가게가 한 곳도 없어 결국 콜라를 사지 못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동네 상점들은 오후 7시면 모두 문을 닫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문을 닫더라도 나는 장사를 해서 돈을 벌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분명 나올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돈을 벌면 결국 다른 사람들도 크리스마스에도, 오후 7시 이후에도 문을 열 수밖에 없다. 축구장에서 맨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일어서면 그 뒷사람도 어쩔 수 없이 일어서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듯 '저녁이 있는 삶'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돈을 더 벌겠다고 분주하게 움직일 게 아니라 저녁을 원해야 한다. 정확하게는 저녁으로 상징되는 다른 것, 여가시간이나 가족, 사람들과의 관계, 자기계발 같은 것들을 더 욕망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사교육 열풍도 같은 이치로 설명된다. '나는 사교육을 시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모두 사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내 아이만 뒤떨어질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시키게 된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수준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른 것을 선택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 사교육 열풍은 내 아이를 경쟁의 앞줄에 세우는 것을 욕망하기 때문이 아니라 맨 뒤로 쳐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경쟁에서 이겨야, 아니 적어도 뒤처지지 않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교육은 그 어떤 정책을 내놔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이 사라지지 않으면 온 가족이 저녁을 함께하는 삶은 원한다고 해도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녁'을 위한 삶의 조건

사회의 욕망구조가 이른 시일 안에 변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분명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중요하다.
 사회의 욕망구조가 이른 시일 안에 변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분명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중요하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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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행복한 저녁을 원한다면 먼저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막연히 돈이 많은 삶을 동경하게 되고 '저녁'보다는 돈을 택하게 된다. 비록 돈이 있다 하더라도 나의 행복과 욕망의 실체를 모르면 주체적으로 돈을 활용하지 못한다. 돈을 쓰면서도 내가 정말 잘 쓰는 것인지 자신이 없어 불안하고 두렵다. 스스로의 의지와 욕구로 돈을 통제하지 못하니 늘 돈에 끌려다니고, 삶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잃게 된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도 돈을 욕망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경쟁에서 이겨 더 많은 돈을 가져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사회 대다수 군중들의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것은 사회적 동물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의 욕망구조가 이른 시일 안에 변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분명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돈이 아닌 '저녁'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도 분명 많이 존재할 것이다. 돈이 아닌 저녁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회의 변화도 앞당겨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지영 시민기자는 생활경제상담센터 '푸른살림'에서 교육활동가 및 생활경제상담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푸른살림 카페 : cafe.naver.com/goodsalim)



태그:#시간, #돈,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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