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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실소유주 논란이 일었던 강남 도곡동 땅 문건을 직접 봤던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은 지난 2011년 11월 풀려날 때까지 2년간 서울구치소 등에서 살았다. 구속됐을 당시 그에게 씌워진 핵심 혐의는 '미술품 강매'였다. 세무조사를 받는 업체들에 부인이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그림 등을 사도록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미술품 강매로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는 주요 공소사실들에 무죄를 선고했다. 

안 전 국장이 지난 2009년 11월 긴급 체포되어 '징역 2년, 추징금 4억 원'이라는 최종 판결을 받기까지는 1년 6개월이 걸렸다. 앞으로 6개월을 더 감옥살이해야 하는 그에게 주변사람들은 가석방을 신청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신청하지 않았다.

"가석방 신청을 한다는 것은 법원의 판결을 인정하고 선처를 바란다는 뜻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4년에 걸친 국세청의 사퇴 압박과 감찰, 불법감금, 구속 그리고 감옥살이의 고난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국세청과 검찰이 씌워놓은 모든 혐의로부터 진정으로 결백했고, 내 자신에게도 떳떳했기 때문이었다." - <잃어버린 퍼즐>, 236쪽

"진경락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원망하는 말을 자주 했다"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이 쓴 <잃어버린 퍼즐>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이 쓴 <잃어버린 퍼즐>
ⓒ 초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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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전 국장은 서울구치소에서 공무원들만 모아놓은 혼거방에서 생활했다. 그곳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50년 지기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과 민간인 사찰 의혹의 핵심인물인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 거액의 다단계 사기로 구속된 주수도 전 제이유그룹 회장 등을 만났다.

특히 안 전 국장은 같은 행정고시출신인 진경락 전 과장과 수차례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진 전 과장은 지난 2010년 8월 민간인 사찰 혐의로 구속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비망록인 <잃어버린 퍼즐>(초이스북)에서 "진경락을 구치소에서 만났을 때 그가 구속상태에서 검찰수사를 받고 있던 시기인데도, 크게 걱정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내가 보기에는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 같지 않게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면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1심에서 예상하지 않았던 실형을 선고받자 극도의 심경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희생함으로써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최종석 전 행정관의 연결고리를 끊어주었고, '윗선'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는데 애초의 약속과 다르게 감옥살이를 하게 되니 토사구팽 당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잃어버린 퍼즐>, 243쪽

안 전 국장에 따르면, 진 전 과장은 구치소에서 "최종석이 민정수석실의 지시를 받고 장진수에게 시킨 것이지 나는 아니다"라고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지시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장진수가 밖에서 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청와대와의 고리를 끊기 위해) 나에게 지시받은 것으로 이야기한다"며 장진수 전 주무관을 원망했다고 한다. 그가 가장 많이 원망했던 곳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었다.

"ㄱ민정비서관이 최종석에게 증거인멸 지시를 내렸다는 얘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ㄱ변호사(전 청와대 법무비서관)가 자신의 증인신청을 막는다며 변호사도 믿지 못하겠다면서 자신의 후배 변호사를 따로 접견하기도 했다." - <잃어버린 퍼즐>, 243쪽

<오마이뉴스>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여기에 나오는 "ㄱ민정비서관"은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현 부산지검 제1차장검사)이고, "ㄱ변호사"는 강훈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현 법무법인 '바른' 대표)이다. 김 전 비서관은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지시 의혹을 받고 지난 6월 검찰의 비공개 소환조사를 받았고, 강 전 비서관은 1심 재판에서 진 전 과장을 변론한 바 있다.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주장에 따르면, 강 전 비서관은 장 전 주무관에게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것을 진술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강 전 비서관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탄원서를 보내자 특별접견이 시작됐고, 세 가지 회유책 제시"

진 전 과장은 지난 2010년 11월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구속됐을 때만 해도 "감옥은 한번 경험해보는 것에 불과하다, 금방 나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그는 예상과 달리 실형을 선고받자 이렇게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이 나를 보호해준다고 해놓고는 이럴 수 있느냐? 가만 있지 않겠다. 청와대 수석들을 법정에 세우겠다."

게다가 국무총리실은 1심 판결을 근거로 진 전 과장을 파면하기 위해 중앙징계위에 출석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진 전 과장은 "민간인 사찰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사찰 증거 인멸은 장석명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지시했다"고 적은 탄원서 형식의 진술서를 중앙징계위에 보냈다. <잃어버린 퍼즐>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 '진영'(진경략은 진영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에서 챙기지 않아 실형이 선고된 데 불만이 있던 차에 해임까지 시키려 하자 그는 '중요한 사실을 출석해서 다 불겠다'며 변호인들에게 통보하는 한편, 탄원서를 보냈다고 했다." - <잃어버린 퍼즐>, 246쪽

그런데 진 전 과장은 안 전 국장에게 "내가 중앙징계위에 보낸 탄원서를 청와대에서 빼돌렸다"고 호소했다고 한다(4월 2일자 <진경락 '사찰폭로' 탄원서, 청와대가 빼돌렸나> 기사 참조).

"면회실에서 만난 진경락은 자신이 보낸 탄원서가 중앙징계위원회로 가지 않고 청와대로 빼돌려졌다며 이럴 수가 있느냐고 내게 하소연을 했다. '자기들은 다 빠져 나간다'며 민정수석실을 원망하는 말을 자주 했으며 중앙징계위에 보낸 탄원서에도 그러한 내용을 썼다고 했다. 그러던 중에 그 탄원서가 청와대로 전달이 되었는지 그때부터 진경락에게 특별면회가 이어졌다." - <잃어버린 퍼즐>, 247쪽

탄원서 제출 등 진 전 과장의 '정권 압박'에 청와대 등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안 전 국장이 비망록에서 전한 대로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고위층 인사들이 동원돼 그의 특별접견에 나선 것이다. '청와대 수석 증인 신청'과 '중앙징계위 직접 출석'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특히 특별접견에 나선 이들은 그에게 '세가지 회유책'까지 내놓았다.

"당시 진경락은 '내게 특별면회를 온 사람들이 2심에서는 나를 반드시 출소시키고, 출소 후에는 대통령과 독대하게 하고, 대기업 상무 이상의 직급으로 취업시켜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 <잃어버린 퍼즐>, 247쪽

앞서 <오마이뉴스>는 지난 4월 14일 '진 전 과장을 자주 접촉했던 A씨'의 입을 빌어 진 전 과장이 "내가 민간인 사찰과 관련된 진실을 공개하려고 하자 정권 쪽에서 ▲2심에서는 꼭 내보내준다고 MB가 약속했다 ▲나가면 MB와 독대시켜주겠다 ▲삼성·LG·현대의 상무급으로 취직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폭로 말리려 MB 독대-대기업 취업 등 제안했다"> 기사 참조). 물론 청와대는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임태희 전 실장이 직접 부인을 찾아와 위로금 전달했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자료사진)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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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은 1심 판결 이후인 지난 2010년 9월께 임태희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진 전 과장의 부인을 직접 찾아와 위로금을 전달했다는 점이다.

"진경락이 면회온 부인이 해준 얘기라며 뜻밖의 사실을 알려줬다. '(2010년 9월) 추석 무렵 임태희 청와대 비서실장이 직접 행정관을 대동하고 (진경락의 부인을) 찾아와 위로금을 전달하고 갔다'고 해서 '받지 말고 돌려주라 했다'는 것이었다. 진경락의 말처럼 비서실장이 직접 찾아와 위로금을 전달하려 했다면, 그 자체가 청와대 개입으로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이다." - <잃어버린 퍼즐>, 244쪽

안 전 국장은 "진경락과 임태희 전 비서실장은 한번도 같이 근무한 적이 없는데 총리실의 과장이 구속되어 있는데 청와대 비서실장이 위로금을 전달했다?"라며 "뭔가 수상쩍다"고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임태희 전 실장은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최종석에게 10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주며 가족들에게 고기라도 사서 주라고 했다"며 "그 100만 원을 최종석이 대략 서너 가족에게 나줘준 것 같은데 그걸 입막음용 금일봉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입막음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최종석 전 행정관을 시켜 전달했다는 임 전 실장의 해명은 "직접 찾아와 전달했다"는 진 전 과장 부인의 전언과는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그의 측근인사로 분류되는 이동걸 고용노동부 정책보좌관이 장 전 주무관에게 4000만 원을 건넨 사실까지 드러났다. 청와대에서 입막음에 나선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다 전 과장은 지난 2011년 4월 2심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에 2년'을 선고받고 8개월의 감옥살이를 끝냈다. 청와대 등 정권에서 내놓은 '세 가지 회유책' 가운데 하나("2심에서는 꼭 내보내준다")는 이루어진 셈이다. 

"진경락에게 들은 얘기들로 미루어보면, 증거인멸을 지시한 것은 민정수석실인 것 같고, 검찰과도 조율이 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약속을 받은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서 민정수석실로부터 듣고 기대햇던 바와 다르게 일이 흘러가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배신감이 들어, 내게 원망을 늘어놓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나머지 두 가지 제안에 대한 성사 여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잃어버린 퍼즐>, 247쪽)

진 전 과장으로부터 '세가지 회유책' 이야기를 전해들은 직후 안 전 국장은 다른 감방으로 옮겨야 했다. 그는 "대개 공무원 방에 있는 사람들은 상고심이 끝날 때까지 한방에서 지내는 게 관례였는데 갑자기 관례가 바뀐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을 다시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윗선 개입' 의혹을 밝히기 위해 진 전 과장의 서울구치소 특별접견 기록을 검토했다. 진 전 과장이 구속된 지난 2010년 8월부터 집행유예로 풀려난 2011년 4월까지 작성된 진 전 과장의 특별접견 일지를 서울구치소로부터 넘겨받아 분석한 것이다.

진 전 과장의 특별접견 일지에는 청와대·국무총리실 인사, 변호사, 정치인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검찰은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로 인해 '윗선 개입' 의혹도 축소되거나 은폐됐다.   

"천신일 회장, 환자복 입고 환자동에서 생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된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자료사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된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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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에는 소위 '범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일반 재소자들이 보기에 특별 대우를 맏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 범털도 두세 가지 부류가 있는데 정부에서 고위직 공무원을 지냈거나 재벌총수를 포함한 기업가 등 부자, 그리고 폭력조직의 보스를 말한다. 그런데 내가 본 바로는 돈이 많은 부자가 진짜(?) 범털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절친'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세무조사 무마 등의 청탁과 거액의 금품으르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내가 있는 서울구치소에 들어왔다. 천신일 회장은 그곳에서도 특별대접을 받았다. 단 한 번도 다른 재소자들과 같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보통 접견할 때는 같은 대기실에 모여 기다리다가 각자의 접견실로 가도록 돼 있는데 대기실에서도 그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항상 교도관과 별도의 대기방에서 담소하고 있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신분이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환자복을 입고 환자병동에서 생활했고 아예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나 삼성병원에 입원해 있다 들어오기도 했다. 대통령이 구속되었다 하더라고 그런 특별 대접을 받았을까? 구치소 안에서도 엄연한 신분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며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 <잃어버린 퍼즐> 248쪽


태그:#안원구 비망록, #진경락, #민간인 사찰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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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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