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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 통일교 총재가 오늘(9월 3일) 새벽 세상을 떴다고 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 죽음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돈도 권력도 명예도 한 사람의 죽음 앞에는 힘을 쓰지 못한다. 종교(통일교)와 사업(일화 등 여러 기업체)에 일가(一家)를 이룬 문선명이라고 하나 그것이 사회에 어떤 순 기능을 가져다주었는지는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죽음을 뜻하는 단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붕어'(崩御)는 '임금의 죽음'을 일컫는 말이다. 봉건시대 때에 자주 사용한 이 말은 임금의 죽음을 산이 무너지는 것과도 같은 정신적 충격에 비유한 데서 비롯했다. '별세'(別世)는 '세상과 이별한다'는 뜻에서 쓴 말로 죽음을 좀 높여 부를 때 쓰는 단어다. '사망'(死亡)은 '죽음'에 쓰는 보통 말이다. 죽는다는 뜻의 한자(死, 亡)를 두 번 겹쳐 사용해서 다시 살아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교회서는 죽음을 일컫는 말로 '소천'(召天)이란 말을 쓰고 있다. '하늘에서 부른다'는 뜻으로 이 말을 쓰고 있는 듯하나 '소천'이란 한자어만으로는 그런 뜻을 나타낼 수 없다. 동사 뒤에 오는 명사는 보통 목적어로 쓰여서 정확하게 풀이하자면 하늘을 부른다는 뜻이 된다. 하늘에서 부른다는 완결된 뜻을 만들자면 장소를 나타내는 어조사 '어'(於)를 '소'와 '천' 사이에 넣어야 한다.

언어는 습관이란 말이 있듯이 잘못된 것도 자주 사용하다보면 귀에 익게 되고 자연스러워진다. '소천'도 그런 의미에서 자기 자리를 확보해가는 듯하다. 언젠가 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한 독자가 질문을 해 왔다. '소천'이란 말이 자기 완결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소천하셨다'로 쓰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소'가 동사이고 '하셨다'도 동사이기 때문에 같은 의미의 동사가 두 번 반복해서 사용되는 유어반복(tautology)이어서 이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부연 설명을 한 적이 있다.

문선명 총재의 죽음을 몇몇 언론에서 '성화'(聖和)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처음 듣고 보는 단어여서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올려 있지 않았다. 통일교에서 죽음을 뜻하는 단어로 이 '성화'라는 말을 사용하는 모양인데, 이 단어는 죽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이다. '성'(聖) 자는 기독교에서 거룩한 사물과 현상에 붙여 쓰는 말이다. 이것은 기독교와 관련이 깊은 한자어이다. 영어로는 'saint'쯤 될 텐데, 거룩한 사람과 사물 장소 등에 주로 붙여 사용하고 있다.

이 거룩하다는 뜻의 '성'(聖) 자에 '화'(和)를 붙이면 '거룩하고 온화하다'는 뜻이 된다. 이 세상의 삶은 짧은 순간이요 죽음 뒤 천국 삶은 영원한 것이어서, 천국에 간다는 뜻으로 이 '성화'라는 말을 쓰는 듯하다. 하지만 이 한자 조합에서 죽음이란 뜻을 발견하기란 무리이다. '화'(和)라는 한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에 주로 사용되는 글자이다. '화목'(和睦)은 '뜻이 맞고 정답다'는 의미이고, '화기'(和氣)는 '온화한 기색'을 일컫는다. '화답'(和答)은 '정답게 주고받는 말'이고 '화해'(和解)는 '다툼을 그치고 감정을 풀 때 쓰는 말'이다. 어느 것 하나 죽음과 연결되는 뜻은 없다.

인간을 창조적 동물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찾아 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것은 역사 발전의 큰 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것도 만인의 동의를 얻어 낼 때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통일교에서 쓰는 죽음의 대체어(代替語) '성화'는 그런 점에서 근거 없는 언어유희(a play on words)에 지나지 않는다. 기왕에 사용되는 것 중에서 적당한 말, 아름다운 단어들이 있을 때는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언어 도의에도 맞다.

언어 사용에는 언론사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개인이나 단체가 자기 입장에서 만들어 쓰는 단어를 여과없이 씀으로써 국민들의 언어 사용에 혼란을 야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메사아라며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의 죽음 앞에 '성화'라는 단어를 놓고 시시비비를 논하는 것이 인간적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사실을 바로 잡는다는 뜻에서 한마디 하는 것이다.


태그:#문선명 사망, #성화, #통일교, #올바른 언어 사용, #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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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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