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링컨: 뱀파이어 헌터> 포스터

영화 <링컨: 뱀파이어 헌터> 포스터 ⓒ 이십세기 폭스코리아(주)


지금도 장신에 속하는 190cm 거구에 파란만장한 삶을 산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후대인에게 여러가지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매력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링컨이 뱀파이어 헌터로 평생을 살아왔고, 흑인 노예들을 뱀파이어의 위협에서 구해내기 위해 남북전쟁을 일으켰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영화 <링컨: 뱀파이어 헌터> 원작 소설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의 저자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가 꾸며낸 허구 설정일 뿐이다.

한 권의 책으로 집약되었지만, 비교적 링컨의 일대기가 잘 조화된 이 방대한 픽션 소설이 어떻게 2시간 분량의 영화로 압축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예상대로 영화는 원작의 주요 설정과 기본 틀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전개된다.

링컨(벤자민 워커)와 뱀파이어지만 링컨을 시켜 인간을 위협하는 뱀파이어를 제거하는 헌터로 살고 있는 헨리 스터져스(도미닉 쿠퍼)가 최후에 맞서 싸우는 강적 아담(루퍼스 스웰)은 원작에 전혀 없던 인물이다. 다만 영웅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악당이 있어야 한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공식을 꿰맞추기 위해 새로 창조된 설정이다.

 영화 <링컨: 뱀파이어 헌터> 한 장면

영화 <링컨: 뱀파이어 헌터> 한 장면 ⓒ 이십세기 폭스코리아(주)


링컨이 뱀파이어 헌터가 된 과정도 다르다. 원작에서 링컨은 뱀파이어에 의해 어머니를 잃은 후, 서서히 뱀파이어 헌터가 되기 위해 만발의 준비를 해왔다. 반면 영화 속 링컨은 헨리를 만나서야 비로소 뱀파이어 헌터로서 모습을 갖추었을 뿐이다. 그 이전까지는 복수심에 활활 불탄 애송이에 불과했다. 원작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독자들에게는 여러모로 할리우드 입맛에 맞게 엉성하게 변화된 극적 요소들이 불만으로 다가오긴 하다.

미국인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지도자 링컨을 감히 뱀파이어 헌터로 설정한 원작 소설도 적잖은 비판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 원작보다 링컨이 뱀파이어 헌터로 활약하는 계기와 과정에 대한 설득력과 개연성이 떨어지는 스토리는 <링컨: 뱀파이어 헌터>가 안고 있는 패착 중 하나다.

그럼에도 터무니없이 흘러가는 이야기 전개를 압도하는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액션 연출. 강도 높은 액션 뿐만 아니라 뱀파이어 헌터이자 지도자.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이란 여러 삶의 무게를 진 링컨의 깊은 고뇌까지 섬세하게 드러낸 벤자민 워커의 인상적인 연기는 역사 왜곡만 난무한 졸작으로 남길 영화를 볼 만한 작품의 반열로 올려놓는다.

특히나 링컨이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뱀파이어를 쫓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수 백 마리 말들과 함께하는 전투신과 영화 막판 불구덩이 속으로 돌진하는 기차 위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관객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스토리만 기대하지 않는다면, 티무르 베크맘베토프가 선사하는 시각적 효과만으로도 만족하면서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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