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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농민들이 수확한 홍고추를 사려는 사람들
▲ 부여 5일장.(끝자리 수가 0과 5로 끝나는 날) 부여의 농민들이 수확한 홍고추를 사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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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부여는 고추가 붉게 익어 가는 계절이다. 흔히 고추는 청양이 유명한 걸로 알고 있지만 알맞은 일조량과 백마강변의 비옥한 토양, 우수한 농업 기술로 생산되는 부여 홍고추의 유명세도 만만치 않다.

고추가 붉게 익어가는 계절이(7월 초~12월 초) 오면 부여의 5일 장에는 전국에서 모여드는 고추 상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홍고추 장은 새벽 6시~8시 사이에 반짝 열렸다 파한다. 이것은 아마도 홍고추를 파는 농민들이 새벽 일치감치 홍고추를 내다 팔고 나서 다시 고추 밭으로 홍고추를 따러 가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홍고추를 사려는 사람들과 파는 사람들의 치열한 눈치 작전
▲ 장날의 눈치 작전 홍고추를 사려는 사람들과 파는 사람들의 치열한 눈치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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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가 이루어지는 장터에는 치열한 눈치 전도 한 몫 거든다. 특별히 부여의 홍고추 장이 서는 시기에는 부여 군청 경제 진흥과 직원들이 나와서 교통정리를 한다.

부여의 5일장에는 개인적으로 고추를 사러 오는 사람도 있지만, 전국의 5일장을 돌며 고추를 수집하는 도매상들이 더 많다. 심지어는 아래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이 부여에서 고추를 사서 현지 고추로 둔갑시켜 파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부여 5일장에 나온 홍고추 부대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홍고추 부여 5일장에 나온 홍고추 부대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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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고추 연구회 회장 송기석(57) 씨에 의하면 부여 고추의 특징은 김치를 담갔을 때 매우면서도 감칠맛이 나고 선별이 잘 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부여의 고추로 김치를 담갔을 때와 다른 지역의 고추로 담갔을 때의 미묘한 맛의 차이 때문에 부여 5일 장에 고추를 사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든다는 것이다.

김치 맛의 8할은 고춧가루와 배추의 맛에 달렸다는 사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또 고추를 생산하는 농민들이 일일이 병든 것을 골라내는 수고와 정성을 담았기 때문에 부여의 홍고추가 입소문이 많이 났다고 한다.  유래없는 폭염과 가뭄으로 부여 고추 재배 농민들의 속도 타들어 갔지만, 올해 홍고추 시세는 초기에는 4500원까지 치솟았다가 현재는 3000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부여군에는 고추 농사로 4천~5천 만 원의 연 매출을 올리는 농가들이 많다. 10여년 전, 우리도 고추 농사를 시작으로 귀농 첫해를 맞이했다. 동네 어르신을 스승 삼아 1천 여평의 밭에 고추를 심어서 열심히 수확을 하고 내다 팔았지만 우리 손에 남은 결산 보고서는 80여 만원이었다. 당시에는 홍고추 값도 쌌고 고추 농사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해 인건비 지출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도 고추 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고추 농사법을 익혔더라면 억대 농부의 대열에 끼지 않았을까?  

홍고추를 따는 사람들.
▲ 고추밭 홍고추를 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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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 시작한  SBS 드라마 <신의> 한 장면에는 어느 날 갑자기 현재에서 고려 말로 끌려간 주인공 김 희선이 고려의 음식이 싱겁다고 고춧 가루가 들어 간 김치는 없느냐고 투덜거리는 장면에서 공민왕과 최 영 등이 의아한 표정의 짓는 장면이 나온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고추는 임진왜란 전후로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로 전해졌다. 그래서 고려 시대에는 '고추'라는 어휘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부여 사람들의 홍고추를 먹는 법은 독특하다. 씹었을 때 입안에서 톡 터지는 새우젓에 홍고추를 찍어 먹는다. 처음에는 그 특이한 조합에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한 번먹어 보면 매콤달달하고 아삭한 홍고추의 과육과 잘 발효된 새우젓의 맛에 중독되고 만다.

무더위에 찌개를 끓여 먹기에 부담스러운 여름날 점심 반찬으로 그 보다 좋을 수는 없다. 진간장에 홍고추와 풋고추를 잘게 썰어서 파와 다진 마늘을 넣은 것을 한 숟가락 떠 호박잎쌈에 싸서 먹으면 입안에 감도는 청량감과 감칠맛에 감탄사가 나오게 된다. 여기에 홍고추를 갈아서 담근 열무김치와 새우젓에 홍고추를 찍어서 밥 한 그릇을 든든히 먹고 아이들 학비가 되고 용돈이 될 홍고추를 따러 밭으로 가면 무더위도 한발 물러서는 힘이 솟는다.

홍고추가 익어가는 밭에 한줌 햇볕이 머물고 있다.
▲ 홍고추가 익어가는 밭 홍고추가 익어가는 밭에 한줌 햇볕이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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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백과에 의하면 홍고추에는 비타민C가 사과보다 23배, 키위보다 4배나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 성분이 많다. 미국 인터넷매체인 허핑턴 포스트는 최근 '최고의 건강식품' 20가지를 선정해 소개했는데 그중에 고추가 포함되어 있다.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은 당뇨와 암을 퇴치할 뿐만 아니라 살을 빼주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가뭄과 폭염에 이은 태풍 '볼라벤'으로 지금 부여의 고추밭에도 위기가 닥쳤지만, 부여 5일장은 여전히 설 것이고 부여의 농민들은 오늘도 고추를 따고 있다.

여름날 점심은 홍고추에 새우젓을 찍어 밥 한 숟가락 뜨고 진간장에 다진 홍고추로 싼 호박잎에 또 한숟가락을 먹으면 무더위를 물리치는 기운이 솟는다.
▲ 홍고추로 차린 소박한 밥상 여름날 점심은 홍고추에 새우젓을 찍어 밥 한 숟가락 뜨고 진간장에 다진 홍고추로 싼 호박잎에 또 한숟가락을 먹으면 무더위를 물리치는 기운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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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홍고추, #캡사이신, #새우젓, #부여5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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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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