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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나 비주류 공간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나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변방의 게릴라' 기획을 통해 이들의 활동과 꿈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께 소개하는 두 번째 게릴라는 '무등산 풍경소리'입니다. [편집자말]
 '무등산 풍경소리'의 첫 노래손님이었던 가수 김두수. 풍경소리 10주년 공연에서도 그 처음처람 노래를 했다.
 '무등산 풍경소리'의 첫 노래손님이었던 가수 김두수. 풍경소리 10주년 공연에서도 그 처음처람 노래를 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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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5일, 광주 무등산 증심사로 가는 길엔 시나브로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시원하기로 유명한 증심사 계곡에선 서늘함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은 여름, 무더위에 매미는 짜증난 목청을 다듬었고, 어찌어찌 핀 백일홍꽃은 시무룩했다.

어두워진 무등산 초입을 대여섯 명씩 짝을 이룬 사람들이 느릿느릿 걸어간다. 그들의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하지만 얼굴엔 순한 미소가 흘렀다.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무등산 풍경소리 가는 길"이라 했다.  

광주사람들 가운데 무등산 풍경소리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무등산 풍경소리'는 공연 이름이자 공연을 주최하는 단체의 이름이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고 있는 맘씨 착한 사람들 이름이다.

이날은 무등산 풍경소리가 10주년을 맞이한 날이었다. 2002년 7월 첫 공연을 시작한 무등산 풍경소리는 10년 동안 1년에 10회씩 100회가 넘는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10년 동안 약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연을 함께 즐겼고, 10년 동안 안치환씨 등 200명이 넘는 가수가 출연했다.

그러니까 지난 2002년 어느 날이었다. 당시 증심사 주지였던 일철 스님이 남녘교회에서 사목하고 있던 임의진 목사를 조용히 찾는다.

일철 스님은 한국 불교 조계종 기획실장을 역임하고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상임대표를 맡을 정도로 사회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개혁 승려'였다. 임 목사는 잘 알려진 것처럼 시인이자 수필가로, 또 가수이자 화가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는 이다.

절친한 벗이었던 두 사람은 "무등산을 살리면서 종교 간에 화합하고 생태운동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무언가를 해보자"고 뜻을 모은다. 무등산을 지키기 위해 모인 광주지역 단체들로 구성된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무등산 풍경소리'였다.

구호보다는 노래로, 일회성 집회보다는 지속적인 모임으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노래와 이야기마당이 어우러지는 '문화공연'의 형식을 택했다. 임의진 목사의 얘기다.

"목사가 산사에서 열리는 음악회 사회 본 것은 한국 최초였을 것"

 일철 스님과 함께 '무등산 풍경소리'를 처음으로 연 임의진 목사가 '무등산 풍경소리 10주년 공연'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
 일철 스님과 함께 '무등산 풍경소리'를 처음으로 연 임의진 목사가 '무등산 풍경소리 10주년 공연'에서 노래를 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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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분이 깊은 가수 노영심씨에게 이런 구상을 이야기했더니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사례를 얘기해주면서 '노래만 있는 공연보다는 이야기가 함께 있는 콘서트를 만들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더군요.

무등산 풍경소리가 열리는 이 증심사 문화광장은 원래 아스콘이 깔린 주차장이었어요. 아스콘을 걷어내고 문화광장을 만든 것이죠. 무등산 풍경소리 1회 공연의 초대가수는 김두수 형이었고, 첫 이야기 손님은 소설가 한승원 선생이었어요. 풍경소리 첫회부터 일철 스님 돌아가시기 전까지 사회를 제가 봤는데 개신교 목사가 산사에서 열리는 음악회의 사회를 본 것은 한국 최초였을 겁니다. 이 때문에 한 개신교 주간지가 '절집에서 사회 보는 목사 임의진은 사탄'이라고 보도까지 했었죠, 하하."

'절집 마당은 물론 절밥까지 내주며' 자신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내주었던 일철 스님은 안타깝게도 무등산 풍경소리를 오래 함께 하지 못했다. 다시 임 목사의 얘기.

"일철 스님이 어느 날 부르더니 '내가 곧 세상을 떠날 것 같은데 날 지켜달라'고 말씀하세요. '이 분 혼자 있게 만들지 말아야겠다, 잘 모셔야겠다' 다짐했죠. 스님 암 치료기금을 모으려고 <산>이라는 앨범도 냈구요, 우정을 지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는데 풍경소리 일 년이 되던 2003년 8월에 입적하고 마셨어요.

오늘이 무등산 풍경소리 10주년이고, 내일은 일철 스님 기일이에요. 풍경소리 공연이 열리는 무대 옆에 있는 부도 대신 작은 돌비석을 세웠구요. 아집과 자만, 욕심이 가득한 세상에서 일철 스님의 고스란히 다 내어주는 마음이 오늘까지 이어져 풍경소리 10주년이 된 게 아닐까요."

무등산 풍경소리가 각별한 것은 가동할 수 있는 문화자원이 빈약한 지역에서, 노래와 이야기를 무기로 10년 넘게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는 데 있다. 운동조차 유행 따라 하는 시대에 끈기와 지속성은 고루하고 답답한 화석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 한 번 많이 모았다고 세상이 하루아침에 변하던가. 되레 세상은 열사람 스무 사람이 일 년이고 십 년이고 꾸준히 어설프게라도 꿈틀거려야 미동이라도 하지 않던가. 20회 무등산 풍경소리부터 10주년이 된 103회 공연까지 사회를 보고 있는 최명진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20회 무등산 풍경소리 공연부터 사회를 맡아오고 있는 최명진 목사. 그는 풍경소리를 벤치마킹하려는 이들에게 "자신만의 원근법을 가지라"고 충고했다.
 20회 무등산 풍경소리 공연부터 사회를 맡아오고 있는 최명진 목사. 그는 풍경소리를 벤치마킹하려는 이들에게 "자신만의 원근법을 가지라"고 충고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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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풍경소리도 시작이 그러했듯 운동성 경향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누군가를 계몽하고 가르치려 들지 않으려고 인위성을 많이 배제합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러움이 주는 편안함을 느껴야 동화되는 법이죠.

무등산 풍경소리가 들려주는 시와 노래가 마치 새소리처럼 바람소리처럼 몸에 조용히 들어가서 삶을 확 바꿀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죠."

이렇듯 '몸에 조용히 들어온 풍경소리'를 접한 이들은 다시 풍경소리의 자원봉사자가 되어 100회 넘는 공연을 만들어 왔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무등산 풍경소리는 1회부터 103회까지 비용을 지불하는 실무 스태프가 한 명도 없다. 모두 자원봉사자다. 풍경소리의 울림을 몸 안에 받들고, 그 여운을 이웃과 함께 나누려는 사람들이다. 10년 넘게 매회 공연 때마다 15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이름 밝히기를 끝내 거부한 한 자원봉사자는 "능력도 문제가 안 되고, 시간도 문제가 안 되고 문제가 되는 것은 오직 애정뿐"이라고 했다. 애정이 있기 때문에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고 정작 자신은 이것이 '봉사'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제가 비록 무대에 오르진 않지만 제 공연을 제가 준비해서 친구들과 함께 즐긴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신나죠."

"정치인들이 이 공연에 와서 보고 배우고 갔으면 좋겠어요"

무등산 풍경소리는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와 원불교 등 4대 종단이 함께하고 있다. 4대 종단이 10년 세월 100회가 넘는 공연을 함께 준비하고 치러내고 있다는 것도 전례가 없는 초유의 일이다.

이번 여름에 증심사 주지로 부임한 연광 스님은 "절집 마당을 계속 내줘서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일에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어떤 일을 10년 동안 해오는데 어려움인들 없었겠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0년, 100회 넘도록 무등산 풍경소리가 종교간 계층간 화합에 기여하며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진 분들이 계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죠. 증심사와 저는 행복한 징검다리 역할을 계속할 수 있어 기쁘구요.

정치인들이 이 공연에 와서 보고 배우고 갔으면 좋겠어요. 서로 어떻게 사랑하는지, 사랑은 또 얼마나 서로를 아름답게 만드는지 싸우지만 말고 무등산 풍경소리에서 배우고 갔으면 좋겠어요."
  
무등산 풍경소리의 첫 시작을 함께 했던 김인주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본부장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코끝이 찡해진 채 "지금 가장 그리운 분은 일철 스님"이라고 말했다.

"무엇이든 오래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10주년이에요. 어느 환경운동사에도, 어느 공연사에도 없는 기록입니다. 4대 종단이 함께 모여 생명과 평화를 함께 노래하고, 숱한 자원봉사자들이 아무 대가없이 10년 넘게 공연을 만들어 오고 있잖아요. 참으로 대견한 일입니다.

그 물꼬를 트신 분이 일철 스님이신데 딱 일 년 무등산 풍경소리 지켜보고 가셨어요. 살아계셨다면 세상의 변화를 위해 더 큰 일을 많이 하셨을 분인데 너무 아쉬워요. 부디 풍경소리가 처음 시작처럼 순수하고 소박하게 이어져 갔으면 좋겠어요."

 무등산 풍경소리 10주년 공연 포스터. 최명진 목사가 디자인했다.
 무등산 풍경소리 10주년 공연 포스터. 최명진 목사가 디자인했다.
ⓒ 최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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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풍경소리가 자리를 잡아가자 여기저기서 흉내 내는 곳이 많아졌다. 최명진 목사는 이런 움직임에 충고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10년 동안 100회 넘게 이어오다 보니 무등산 풍경소리의 역사가 생겨 버렸어요. 그러다 보니 카피하려는 곳도 많아졌고요. 하지만 자기 지역 안에 있는 자생적 문화구조를 들여다 보지 못하고 살려내지 못하면 흉내 내기는 언젠가 실체가 없이 사라지고 말아요.

제가 사진 등 이미지 작업을 하고 또 가르치기도 하는데 제일 강조하는 말이 '나 자신을 중심으로 원근법을 만들어라'에요. 지역이나 지방, 변방이 자기중심적 사고를 못가지면 말 그대로 '변두리 변방'이 되고 말죠. 그리고 다른 지역의 성공한 모델의 영향을 받더라도 자기중심성이 없으면 영향 받지 않는 것보다 못한 꼴이 돼서 지속성이 없어지고 시도했던 실체가 사라지고 말아요."

최 목사의 이야기처럼 무등산 풍경소리는 자신만의 원근법으로 10년을 이어왔다. 20년, 30년이 지나서도 그 맑고 소박하고 낮은 원근법으로 무등산 풍경소리는 세상과 소통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등산 풍경소리의 운명이고 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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