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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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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 아이파크몰의 번잡스런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마지막 남은 백 쪽 가량을 단숨에 읽어버리고서 엉엉 울었다. 즐겁게 대화하고 커피와 망고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얼굴을 온통 찡그리며 멈추지 못하고 읽다가 마스카라가 번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엉엉 울었다.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많은 '강력추천'을 받은 책이고 그만큼 좋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정확한 작품이었다.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로 완벽히 표백된 세상

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를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표현한다. 아직 정복해야 할 땅이 남아있던 천 년 전의 장수나 독립시킬 조국이 있었던 백 년 전의 독립운동가와 달리, 오늘날의 이십대가 이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책은 G세대니 P세대니 하는 말들만 많았지 제대로 인정할만한 이름조차 아직 갖지 못한 오늘날의 이십대를 '표백 세대'라고 명명한다. 우리가 이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 걸맞게 표백되었으며, 어른들이 하기 싫은 귀찮은 일들을 대신 하기 위한 값싼 노동력에 불과한 운명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시급을 오천 원도 못 받으면서 커피숍이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며 그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몇 년씩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보라. 이십대인 나는, 자존심이 상하기에 앞서서 작가의 정확한 현실 인식에 대해서 무조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왜 사는가. 보탤 것 없이 새하얗게 표백된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우리 이십대는 무얼 하고 싶어 사는가. 유엔 사무총장이 꿈이에요. 유엔 사무총장 하면 뭐 하는데. 훌륭한 대법관이 되고 싶어요. 대법관 되면 뭐 하는데. 어차피 우리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이미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는 세상인데. 유엔 사무총장이다, 대법관이다, 그럴싸해 보이는 장래희망 따위도 결국은 그 하얗게 표백된 세상 속에 'TO'가 생겨야만 이루는 꿈이다. 그래서 그런 거창한 '장래희망'들 따위는 '7급 공무원'이라거나 '교사'라는 장래희망과 사실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이야기는 이 완성된 세상에서 주어진 역할이나 완수하며 살아가기는 너무나 무의미하다고 느낀 세연이 '자살선언'을 한국 사회에 퍼뜨리며 벌어지는 내용이다. 완벽한 외모와 학점, 학교 홍보대사라는 '스펙'에 삼성에 특채로 합격했을만큼 부족함이 없는 그녀의 죽음은 주변에 충격을 주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죽기 전 주변 친구들을 포섭하고 미리 시나리오를 구상하여 오년 후 그들이 충격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따라 죽게 만든다.

소설 속 '자살선언'과 '김예슬선언'의 오버랩

출판이 2011년 3월로 돼있다. 아마 저자는 2010년 3월의 김예슬선언에서 조금 아이디어를 얻어 이 책을 쓰지 않았나 생각한다. 책에는 작가의 말이든 추천사든 어느 곳에도 김예슬이 언급돼 있지 않았으나 나는 그렇게 보았다.

김예슬선언은 선언이었고, 어른들이 균열 없이 완벽하게 쌓아둔 탑에 돌을 던지는 일이었다. 소설 속의 자살선언도 그렇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돌멩이가 아닌 목숨을 던졌다는 것이다. 자퇴가 아니라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김예슬선언이 있었던 이후, 기사를 쓰기 위해서였는지 그저 궁금해서 그랬던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무튼 김예슬선언 카페라는 것에 가입해 게시물들을 살펴본 일이 있었다. 돌멩이들은 열심히 연대하며, 견고하고 완벽해 보이기만 하는 그 학벌사회라는 상아탑에, 경쟁제일이라는 강철탑에, 빚쟁이 세대라는 자신들의 초라함에 열심히 몸을 내던져 작은 흠집이라도 내보려 애쓰고 있었다.

그 중 몇몇은 실제로 자퇴를 했을 것이다. 휴학하고 지방 집에 내려가 글 쓴답시고 찌질대고 있던 나도 조금 고민했을 정도니까. 베르테르 효과처럼, 자퇴를 했다가 한 학기 후, 일년 후 재입학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김예슬선언에 대한 대다수 이십대의 반응은 기실, '냉소'에 가까웠다. 너야 고대 갈 정도로 공부 잘 했고 똑똑하니까 학벌 없어도 잘 먹고 잘 살 건가 보지. 유명해져서 좋겠다, 글빨도 좀 있던데, 그 '스펙'인지 '스토리'인지 가지고 어디 원서 쓸래? 운동권 마일리지 쌓니? 심지어는 너 대신 그 학교 입학하고 싶었던 사람 입장을 생각해봐라, 다른 경쟁자 제치고 고대 들어갔으면 열심히 끝까지 다녀주는 게 패배자에 대해서도 예의다… 라는 둥.

그 냉소적인 사람들을 마냥 비난할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의 말도 틀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그레이트 화이트 빅 월드에 무사히 편입되고자 부단히 스스로를 표백시켜온 그 냉소자들의 논리가 이 세상에는 더 들어맞는다. 일례로 '지잡대생'들의 자퇴는 신문에 나지도 않는다. 고대쯤 돼야 세상도 관심을 가져주고,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일필휘지의 선언문을 쓸 글솜씨는 있어야 자소서 붙고 '취뽀'도 하는 것이다.

가장 슬픈 것은 그 사건을 지켜보면서도 재수, 삼수 하면서 그놈의 고대 들어가겠다고 절치부심하는 수험생들이, 김예슬의 지지자보다 더 많지 않을까 하는 현실이다. 니가 포기한 그 고대 못 들어가서 안달인 다른 사람 입장은 생각 안 하냐, 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최근에 먹고 살아 보겠다고 학원강사 알바를 뛰게 되면서 더욱 몸으로(특히 소염 작용 하는 트로키제를 먹어 가며 간신히 제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목으로) 실감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서울시내 버스에 언제부터 그렇게 '인강' 광고가 많았던가?

"왜 사는가?" 우리가 삶으로 답해야 할 질문

<표백>에서, 자살선언 사이트인 와이두유리브닷컴은 묻는다. 왜 사는가? 이 완벽하게 하얗고 깨끗한 세상에 네가 더할 수 있는 색깔 따위는 아무것도 없는데 왜 사니? 차라리 죽자. 새빨간 핏방울이라도 거기 한 점 남겨보자. 아주 쉽게 트집잡고 반박할 수도, 혹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는 논리이다. 오늘날 이십대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더욱 쉽게 입을 떼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라고 너무나 쉽고 촌스럽게 헤픈 선언조로 말해버리고 싶지는 않다. 디스이즈더리즌닷컴의 게시판을 채우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3년 안이라면 더 좋을 것이고, 그렇게 빨리가 아니라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이다. 삼십년이 지났는데 디스이즈더리즌닷컴을 개설조차 못했다 해도, 사실은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그 시간 동안의 치열한 고민들이, 모두 그 이유로 남을 테니까.


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한겨레출판(2011)


태그:#표백, #장강명, #한겨레문학상, #김예슬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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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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