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전기가 없는 나의 공간을 상상해보자. 냉동실의 음식들은 모두 녹아버리고, 당장 컴퓨터를 켤 수조차 없다. 캄캄한 방안에서 책이라도 읽으려고 치면 촛불이 얼마나 많이 필요할까? 핸드폰은?

전기를 공급해 주는 자와 이를 유지하는 자의 관계

ⓒ sbs 제공

관련사진보기


전기세만 잘 내면 전기를 쓰는 데 지장이 없는 세상이다. 우리는 한 번쯤 높은 전봇대에 올라 전깃줄을 보수하는 헬멧을 쓴 노동자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한국전력(이하 한전)이 그 전기를 공급하고 관리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므로 당연히 그 노동자는 한전의 정규직 노동자로 여긴다. 이들이 한 달에 1명 이상씩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선 기억하자. 

헬멧을 쓰고 전봇대 위에서 일하는 그 노동자들은 전기원이라 불린다. 공급될 전기를 각 가정과 각종 건물에 무사히 연결시키기 위한 배전설비의 설치, 보수, 운영에 이들이 없다면 전기 사용은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이들은 한국전력 소속이 아니다.

전국의 1200여 개(2011년 기준)의 전기공사업체의 소속으로, 상용 또는 일용직의 형태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다. 한전이 배전설비관련 사업을 발주하면 이를 수주한 전기공사 업체들이 전기원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관리하게 된다. 결국, 전기를 공급하는 자와 유지시키는 자는 여러 차례의 하도급을 거쳐 만나지만, 이들은 직접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이다.

2만2900 볼트 전기선에 흐르는 사연

2만2900 볼트 전류는 언제나 전기선을 타고 흐른다. 여기서 포인트는 '언제나'다.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전기원들은 전력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일하게 된다. 왜, 이들은 위험천만하게 전류를 흐르게 해놓고 일을 할까?

2012년 3월 전기공사협회 회장의 인터뷰를 보자.

"한전이 지난 1994년부터 원가절감이라는 이유로 배전작업시 시행해 온 직접활선공법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직접활선공법은 작업자의 감전과 추락위험성 등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아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포함해 국제적으로 사용을 지양하고 있다. 배전공사 현장에 작업정전제로화 및 감전 제로화를 위해 시급히 간접활선 및 가송전공법으로 전환하는 게 시급하다." - '실적 부풀리기 등 허위신고업체 등록취소' 전기에너지 뉴스, 3월 24일자.

안전에 관한 의무가 있지만, 거의 지키지 않는 그들마저 공법이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안전사고 위험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알리면 하면 폐업을 감수해야 하는 업체의 현실로 인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전기원 노동자에게 남게 된다. 제대로 된 산재 통계하나 갖고 있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24%의 원가절감의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직접활선공사로 인한 원가절감 효과는 24%라고 한다.)

그런데 점입가경이다. 2005년 한전은 '직접송전공법(전선이선공법)' 이라는 신기술을 도입하게 된다. 한 업체에서 개발한 기술을 한전에서 사들여 전체 현장에 도입하게 된 것인데, 현실에서는 전선이 좁은 간격으로 설치되어있어 신기술 사용 시 감전사고 등이 더 발생하는 실정이고, 특히 신기술 사용으로 인한 산재 처리가 되면 다음 입찰에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이 또한 산재신청이 어려운 실정이다.

'해야 한다'는 있으나 '왜 안 해?'를 안 함, 산재유발자가 된 한국전력

거기에,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또 어떠한가? 한전의 '무정전 배전공사 시공업체 관리절차서'를 보면, 총 23조까지의 규정 중 10조부터는 전부 안전관리에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전기원 업무에서 안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함은 한전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규정만 만들어놓고, 사고가 나면 패널티를 줄 뿐 예방을 위한 관리감독은 전혀 없어, 이는 업체들의 안전에 대한 무관심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전은 그동안 전력업체 선정기준 추정 도급액은 늘리되 상시보유 노동자는 늘리지 않아 소규모 업체의 폐업을 유도하며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적극적으로 양산해왔다. 그로인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일용직으로, 다단계 최하층으로 편입되어 일을 하게 된다. 안전을 넘어 생명으로부터 계속 멀어지는 이동이다. 이 과정에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이 전무하니 필연적으로 재해율은 늘어만 간다.

2000년이후 한국전력 배전현장 연도별 산재처리 현황 전기원의 재해는 고압으로 인해 팔다리가 잘리거나 화상, 추락시 척추 손상 등 중대재해가 대부분이며,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르는 심각한 상황이다.(이미경의원실 제공)
▲ 2000년이후 한국전력 배전현장 연도별 산재처리 현황 전기원의 재해는 고압으로 인해 팔다리가 잘리거나 화상, 추락시 척추 손상 등 중대재해가 대부분이며,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르는 심각한 상황이다.(이미경의원실 제공)
ⓒ 전기원

관련사진보기


재해분석을 통한 배전선로 활선작업 공종별 위험지수 평가 그래프 90일 이상의 재해손실 일수의 노동자들이 전체의 62%로 절반이 넘게 차지하는 사실은, 그만큼 전기공사업의 재해강도가 크고, 위험한 작업임을 나타낸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보고서 캡쳐)
▲ 재해분석을 통한 배전선로 활선작업 공종별 위험지수 평가 그래프 90일 이상의 재해손실 일수의 노동자들이 전체의 62%로 절반이 넘게 차지하는 사실은, 그만큼 전기공사업의 재해강도가 크고, 위험한 작업임을 나타낸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보고서 캡쳐)
ⓒ 한국전기산업연구원

관련사진보기


결국, 한전이 전기공사 업체에 제시한 기술로 인해 노동자들은 94년부터 1차 안전위협, 05년부터는 가중된 안전위협에 시달리게 되는 것도 모자라 대량의 구조조정 위협까지 시달리게 되었다. 한 달에 한명 이상이 죽고, 하루에 한명 이상은 재해를 당한다. 그 재해마저 중상 및 사망자가 다수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전기원들은 한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도급업체 노동자일 뿐이다. 한전은 정말 전기원 노동자의 수많은 재해에 책임이 없는가? 필수업무를 담당하는 이 중요한 노동자들이 왜 한전 노동자가 아닐까?

하청이 더 많이 죽는 게 당연해 졌다?!

언제부턴가 산재사망 기사를 보면 하청노동자인지, 원청은 어디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지난 8월 14일 경복궁 옆 미술관 화재사건으로 인해 사망한 4명의 노동자 중 3명도 하청노동자였다. 대기업이 무재해로 인해 산재보험료를 오히려 더 적게 내는 현실을 감안하면 위험한 업무들은 거의 하청업체로 넘겨졌음이 확실하다. 그로인해 기존의 원청, 도급업체가 지던 안전에 대한 책임이 하도급업체로 넘어갔으나, 결국 안전에 대한 책임은 비정규·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말았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 한전은 관리지침, 기술지정 등으로 모든 업체들을 관리하고 있다. 노동에 대한 지배력은 여전히 한전에 있는 것이다. 한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철로 보수공사를 하다가 사망한 수많은 하청노동자,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 심지어 대학등록금을 마련해야 했던 이마트 하청업체 노동자 등 이제 업종을 가리지 않고 하청노동자들이 죽고 있다. 그리고 이들 노동의 장소적, 물리적 통제권은 여전히 그 구조의 가장 꼭대기에 있다. 원청, 도급업체, 발주처에 안전책임을 지워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여러 차례 살핀 바와 같이 실제 주요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처벌실태를 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게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청노동자의 사망은 원청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4명이 죽어도 100만 원의 벌금을 내면 그만인 '이마트'가 과연 앞으로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겠는가? 경복궁 옆 미술관 화재로 4명이 죽어도 대국민 사과한다고 언론플레이는 하면서 정작 사망한 하청노동자의 유족은 거들떠도 안보는 'GS건설'은 정말 이 일과는 무관한 것인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도급업체, 발주처의 책임있는 안전관리가 세계 1위의 산재 사망률을 낮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어버린 산업구조 속에서, 제도적으로 그 책임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시급하다. 당근은 제발, 채찍과 함께 사용하길. 국민은 정전에 대비할테니.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노동건강연대 기관지 '노동과 건강'에 함께 발간될 예정입니다.(9월 초 발간 예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