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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1741)을 맞아 성기 나이 서른이 되었다. 이 해에 그는 초명인 식(植)을 북(北)으로 개명했다. 그리고 '칠칠(七七)'이라는 자(字)를 더 만들어 쓰기로 했다. 이름을 북으로 바꾼 것은 '植'(식)의 흙 토변(土) 두 개를 합한 것이고, 자는 '北'(북)을 둘로 쪼개 이를 멋대로 변형시켜서 '七七'(칠칠)로 한 것이다. / 이후부터 그림에 '崔北'(최북)과 자 '七七'(칠칠)을 병행하여 썼다." -116쪽
최북은 1712년(숙종38년)에 태어난 중인(中人)출신 화공이다
▲ 최북 호취응토도 최북은 1712년(숙종38년)에 태어난 중인(中人)출신 화공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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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표암 강세황 등 조선 후기 탁월한 그림을 남겼던 천재화가 네 분을 잇따라 장편소설로 썼던 작가 민병삼. 그가 다섯 번째 천재화가로 최북을 불러냈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라는 덧글이 붙은 장편소설 <칠칠 최북>(선 펴냄)이 그 책이다. 최북은 본관이 무주로 영조 때부터 정조 때까지 활동했던 외눈박이 화가다.

올해 탄생 300주년을 맞은 화가 최북(1712~1786)은 중인 출신이었지만 평생을 한 번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슬픈 삶을 마쳤다. 독특한 삶을 살고 있는 그는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괴이한 주벽에 성격이 오만한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런 성격 탓에 그림을 사러온 양반이 자신을 희롱하자 송곳으로 제 눈을 스스로 찔러 외눈박이가 되었다.
 
이 장편소설은 모두 59꼭지로 나뉘어져 있으나 꼭지에 제목이 없이 번호만 매겨져 있다. 읽어보면 번호마다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있다는 투다. 왜 그랬을까. 그래. 꼭지 제목만 보고 읽어보지도 않고 대충 넘어가는 독자들 마음을 작가가 이미 다 읽었기 때문에 일부러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세상 사람들과 어린 아이들이 '칠칠이'라 놀려

"최식은 몸을 오스스 떨며, 하얗게 시린 얼굴에 이불자락을 한껏 끌어 올렸다. 턱이 떨리고 이가 닥닥 갈리는 중에도, 며칠 전 산자락에 묻힌 어머니 생각을 하면 차마 드러낼 수 없는 엄살인 것 같았다. 땅이 꽁꽁 얼어붙어 깊이 묻지도 못했다. 그렇게 한 것이 어머니를 꼭 얼음 구덩이에다 내버린 것 같아 내내 가슴이 찢어졌다." - 9쪽

지금으로부터 300년 앞 문예부흥기 때를 뜨겁게 살아낸 한 화가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뿌리도 모르는 광기 어린 환쟁이라 손가락질했다. 어떤 사람들은 못 그리는 것이 없는 조선에서 으뜸 가는 화가라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랬지만 그 사내는 그저 스스로 뜻대로 붓을 들어 화폭을 채웠다. 먼 훗날 자신과 자신이 그린 그림을 알아볼 사람이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가 조선이 낳은 외눈박이 천재화가 칠칠 최북이다. 

이 장편소설은 칠칠 최북이 어릴 때 지녔던 이름인 최식이 땡겨울 어머니를 산자락에 묻은 뒤 한양에 있는 화가 허석을 찾아가는 것으로 문을 연다. 허석은 최식이 한양으로 오기에 앞서 양평에 살 때 '화필 잡는 법'을 배웠던 화사(전업화가) 한명기가 소개한 화가다. 최식 아버지 또한 호조 계사(종 8품 계산을 맡는 일)로 서화에 능했으나 갑자기 관복을 벗고 금강산으로 떠난 뒤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성기라고도 불리웠던 최식은 그때부터 허석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다. 오 년이 지난 뒤 고희를 앞둔 허석은 최식에게 독립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스승에게서 독립한 최식은 1741년 신유년이 되었을 때 이름을 최북으로 바꾼다. 칠칠은 이때 붙인 자(字)다. 최식은 칠칠이란 자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어린 아이들까지 '칠칠이'라고 놀려대는데….   
             
금주령 내리자 상가 돌며 곡하고 술 얻어 마신 최북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표암 강세황 등 조선 후기 탁월한 그림을 남겼던 천재화가 네 분을 잇따라 장편소설로 썼던 작가 민병삼. 그가 그 다섯 번째 천재화가로 최북을 불러냈다.
▲ 민병삼 장편소설 <칠칠 최북>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표암 강세황 등 조선 후기 탁월한 그림을 남겼던 천재화가 네 분을 잇따라 장편소설로 썼던 작가 민병삼. 그가 그 다섯 번째 천재화가로 최북을 불러냈다.
ⓒ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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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은 술 마실 방법을 짜내던 중에 묘안 하나를 찾았다. 상가를 찾아가는 수가 떠오른 것이다. 비록 금주령이 내려지기는 했어도, 다행히 상가나 제사가 있는 집에서는 술을 쓰도록 했다. 그러나 극히 제한된 것이라 겨우 음복주 정도만 허용한 것이다. 만약 그 술을 마시고 저자를 활보했다가는 그 즉시 포도청에 연행되어 치도곤을 맞았다." - 277쪽

철저한 방외사(세속을 초월한 선비)였던 최북은 평생 자유주의자로 살았지만 스스로 그린 그림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에 닿았다. 그 자부심이 너무 지나쳐 때론 오만으로 비쳐졌고, 사람들은 광기로 여겼다. 최북이 사람들 눈에 광인으로 비쳤던 것은 기인적인 행동도 있었지만 대부분 주벽 때문이었다.

그는 평생 혼자 살면서 오로지 술과 그림에만 기댔다. 그가 늘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붓을 놀려 먹고 산다'는 뜻으로 그 스스로 '호생관(毫生館)'이라는 호를 지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는 결국 술을 마시기 위해서 그림에 매달렸다 해도 결코 빈말이 아닐 정도였으니, 그 시대 사람들이 그를 어찌 보았겠는가.

최북은 술에 따른 일화를 많이 남겼다. 금강산을 기행할 때는 술에 취해 '천하의 최북은 마땅히 천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며 구룡연에 뛰어들기도 했다. 술값이 없어 집 울타리를 뽑아 술과 바꿔 먹기도 했다. 금주령을 내리자 상가(喪家)를 돌며 상주 대신 곡을 하며 술을 얻어 마셨다. 그래도 결코 비굴한 때가 없었고, 현실과 적당히 손잡지 않았다.
       
작가 민병삼은 "9세기에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른 광기를 부렸다고 한다"고 최북에 따른 말문을 연다. 그는 "그로부터 약 1세기 반 전에 조선에서는 화공(畵工) '최북'이 송곳으로 자기 눈을 찔러 스스로 외눈박이가 되었다, 그로 인해 최북이 광인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그는 결코 광기를 부린 것이 아니었다"고 귀띔했다.

한 천재화가가 살아낸 삶을 통해 본 우리들의 자화상

"'저런 고얀 환쟁이를 봤나. 그림을 내놓지 않으면, 네놈을 끌고 가 주리를 틀 것이야.' / '낯짝에 똥을 뿌릴까 보다. 너 같은 놈이 이 최북을 저버리느니, 차라리 내 눈이 나를 저버리는 것이 낫겠다.' / 최북이 침을 퇴퇴 뱉고는, 필통에서 송곳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양반' 앞에서 송곳으로 눈 하나를 팍 찌르는 것이 아닌가. 금세 눈에서 피가 뻗쳤다. 비로소 그가 놀라 말에 오르지도 못한 채 줄행랑을 쳤다. 눈에서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 283쪽

최북은 1712년(숙종38년)에 태어난 중인(中人)출신 화공이다. 그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화공들 대부분은 중인 출신이었다. 그때는 사대부에서 화공들을 환쟁이로 멸시하던 시대였다. 최북이 스스로 눈을 찌른 것도 결국 그림에 대한 자긍심 때문이었다. 최북은 그림을 구하러 온 거만한 양반이 자신을 멸시하는 태도를 보이자, 오히려 그를 능멸하며 송곳으로 눈을 찔렀던 것이다.

최북은 그처럼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그림 그리기를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탁월한 작품들인 '초옥산수草屋山水' '조어산수釣魚山水'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 '관폭도觀暴圖' '금강전경도金剛全景圖' 등 수많은 작품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시(詩), 서(書)도 잘했던 그는 생애 마지막 날에도 술에 취해 주막에 그림 한 폭을 던져놓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눈 속에 파묻혀 이 세상을 떠났다. 최북 탄생 300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작가 민병삼 장편소설 <칠칠 최북>은 조선 후기 중인이라는 신분을 지니고도 탁월한 그림으로 양반과 이 세상에 당당하게 맞섰던 화가 칠칠 최북이 살아온 이야기다. 이 책은 술을 너무나 좋아했고, 기이한 행동을 보였지만 아무리 생활이 힘들어도 잘못된 현실과 절대 손을 맞잡지 않았던 한 천재화가가 살아낸 삶을 통해 지금 이 들쭉날쭉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비추고 있다.   

작가 민병삼은 충남 대전에서 태어나 1970년 <현대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중단편집으로 <고양이털> <가시나무집> <다시 밟는 땅> <터널과 술잔 금관을 찾아서>가 있으며, 아동소설로는 <조선의 화가> 3권 -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이 있다.

장편소설로는 <그 여름 날개 내리다> <피어라 금잔화> <님의 향> <랭보와 블루스를 추고 싶다> <내겐 너무 아름다운 여자> <서울 피에로> <여우와 탱고를> <나비는 보리밭에 앉지 않는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등이 있다. 한국소설문학상, 동서문학상, 유주현문학상을 받음.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칠칠 최북 - 거기에 내가 있었다

민병삼 지음, 도서출판 선(2012)


태그:#민병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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