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남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사랑받고 있고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걸 자랑하기 바쁜 것 같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을 보더라도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 놓여있는 학생이 되레 좋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아침을 집에서 먹는 게 아니라 꼭 도시락을 싸 가져와 친구들 앞에서 먹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런 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자식을 사랑하고 있다는 표현을 자식에게 좋고 비싼 것을 해주는 것으로 드러내려 한다. 유모차는 최소 150만 원이 넘어야 하며 내 아이의 돌잔치만큼은 '특별하게' 해야 한다.
돌잔치·결혼식이 '가족 행사'라고요?
지난 2009년, 나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많은 갈등과 합의를 하는 과정을 겪어 왔다. 결혼 당사자의 생각과 방법으로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끊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길어야 1시간, 대부분 20여 분도 안 되는 결혼식. 이런 결혼식인데도, 결혼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 못 하는 문화가 너무나 이상했다. 주례 선택에서 결혼식 입장까지 어느 하나 당사자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물론 사회 저명한 인사가 아니어도 두 사람을 잘 이해해줄 수 있는 분에게 주례를 부탁드렸고, 두 손을 맞잡고 동시 입장을 했다).
어느새 이런 풍조는 결혼식을 넘어 돌잔치까지 연결된다. 태어나기도 전에 돌잔치 장소를 예약해야 하고, 좋은 뷔페가 나오는 곳을 선택해야 하며, 돌잔치 이벤트를 위해 유명한 사회자를 섭외해야 한다.
게다가 결혼식보다 더 화려한 드레스를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입혀야 한다. 결국 이 모든 게 어색한 돌잔치 주인공은 여지없이 울음보를 터트린다. 평소 내가 입던 옷, 평소 내가 보던 아빠·엄마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형화돼 있는 돌잔치를 하지 않으려 하면 주변에서는 큰일이 난 것처럼 한마디씩 건넨다.
"그래도 밥은 줘야지", "그래도 애 돌인데, 돌상은 차려줘야지","축의금도 안 받는다고?""에이... 그게 뭐야""좋은 게 좋은 거지..."아기는 주목받지 못하는 돌잔치아이가 1년 동안 잘살고, 그 삶 속에 함께한 부모가 가까운 친지·정겨운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돌잔치. 하지만 요새의 '돌잔치'는 계약업체에 따라 다른 치장과 색다른 뷔페 음식만 있을 뿐 너무나도 천편일률적이다.
돌잔치 장소에 입장하기 전에 화려하게 꾸며놓은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과 로또 같은 번호표, 각종 초와 장식, 아이의 성별에 맞춰 꾸며 놓은 화려한 돌상, 값비싼 장소 대여료와 뷔페 음식... 이렇게 '최적의 상업화'된 돌잔치를 보며, 어쩌면 아기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소중한 자리가 아닌 업체(자본)가 만들어 놓은 가식적인 틀에 부모들이 족쇄마냥 끌려가고 있는 것 아닐까.
돌잔치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돌잡이'다. 그렇지만 돌잡이를 자세히 보면 주인공은 1년 동안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가 아니라 사회자인 것처럼 보인다. 화려한 언변과 상황에 맞는 재치 있는 행동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만 두게 만들어 버린다. 단지 부모님과 아이는 뒤에서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할 뿐. 아이가 주인공이 될 때는 돌잡이를 하는 순간뿐이다. 1분도 채 되지 않는 그 시간 말이다. 게다가 주인공에 대한 배려도 전혀 없다. 사회자의 일정에 맞추려면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서라도 돌잡이를 해야 한다. 도대체 누가 주인공인지 종잡을 수 없다.
돌잔치의 대안을 고민하다
딸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주변 사람들이 "돌잔치 안 하느냐"고 물으면 나와 내 아내는 늘 "고민 중"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업체·장소) 예약 안 했으면 못할 텐데..."라며 당사자들보다 더 조바심을 낸다.
우리는 이런 조바심이 만들어낸 돌잔치보다, 아내와 딸, 그리고 나를 포함한 세 식구의 1년을 추억할 수 있고, 우리의 생생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더불어 세 식구를 아껴준 사람들이 참여하고 즐기며 쉬어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대안을 고민했다. 아기의 돌날(8월 25일)을 약 1개월 앞두고 우리는 기존의 상업화된 돌잔치에서 벗어나 당사자의 이야기와 삶, 초대받은 손님들이 객(客)이 아닌 적극적 참여자로서 함께할 수 있는 '돌사진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돌사진전'이라 해서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돌사진전을 성사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사진 확보'. 다행히도 그 첫 번째 관문은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약 1년 동안 찍어 놓은 사진이 3000장 정도 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것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식구 세 사람(나·아내·딸)이 함께한 시간이 많았고, 서로 찍으며 웃고, 즐거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결정적으로 육아를 '고통' '희생'의 다른 이름으로 생각한 게 아니라 '즐거움'과 '성장'의 시간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부부와 아기의 이야기가 있는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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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사진전의 생생한 현장 하드보드와 이젤을 이용한 사진전시 모습 |
| ⓒ 김광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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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을 치르기 위한 두 번째 관문은 바로 '장소 섭외'. 어디서 돌사진전을 열 수 있을까를 결정해야 했다. 전제는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 많은 사람이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찾았다. 이런 조건을 갖춘 공간이 우리 주변에 참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일반적인 갤러리는 비용 부담이 생기므로 제외. 사회적 기업에서 운영하는 세미나실 등은 대여 기간이 짧기 때문에 제외.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심 끝에 잡은 첫 번째 장소는 바로 '동네 가족공원'이었다. 비용이 들지도 않고, 열린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간이 너무 넓어 사진전을 할 수 있는데 한계가 따른다는 점과 공공시설에서 함부로 각종 집기를 설치하는 것은 문제라는 점이 걸렸다.
그래서 두 번째로 생각한 공간이 바로 '학교'였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 말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이 마음에 들었다. 학교는 어떤 것을 상상하고 꿈꾸더라도 받아줄 것 같은 공간이었다. 또한, 사용 허락을 받는 것도 큰 제한 없이 진행됐다. 결국 학교 교실에서 돌사진전을 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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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사진전의 생생한 현장 돌사진전 주인공인 아기와 아기와 함께하는 손님들 |
| ⓒ 김광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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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의 세 번째 관문은 '사진 정리'였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3000여 장의 사진들... 이것을 어떻게 정리해야 참석한 사람들과 1년간의 생생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우리는 딸이 자라온 시간별로 정렬하는 성장 사진첩이 아닌, 스토리가 스며있는 주제별 정리법을 택했다. 그리고 주제별로 짧은 이야기를 함께 덧붙이는 방식을 택했다. 우리는 사진마다 찍은 날짜와 함께 당시의 느낌을 적은 라벨을 붙여 참석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다.
우리는 돌사진전을 준비하면서 행사의 주인공인 아기와 사진전을 찾아온 손님에 대한 배려에 초점을 맞췄다. 대부분의 돌잔치에 가보면 정작 그 날의 주인공인 아기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어 힘들어하는 모습에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엄마나 아빠가 아기를 계속 안고 돌아다녀야 하고, 정작 아기를 보러온 손님들은 바쁜 일정과 이벤트 행사에 쫓기느라 아기 얼굴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기가 편안하게 쉬고 놀 공간, 손님들과 마주하며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자는 것. 교실 가운데에 돗자리를 깔고, 커다란 볼풀(Ball Pool)을 설치해 아기가 편하게 놀고 쉬면서, 손님과 두런두런 앉아 교감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옆 교실에 수유실과 아기 쉼터를 마련, 아기가 자거나 조용히 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천 원의 기적', 아기는 생애 첫 기부를 했다
어떤 사람들은 돌잔치의 성공 여부를 '맛있는 뷔페'로 판단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먹은 만큼 축의금도 적지 않게 들고가야 하는(물론 축하의 의미도 있지만)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초대장을 만들 때부터 '정말 맛있는 뷔페도, 화려한 장식도 없는 돌잔치'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며 '축의금 대신 입장료 1000원을 받겠다'고 전했다.
사진전에 온 분들 모두 부담 없이 세 식구가 1년간 지내온 모습을 공유하면서 아기와 신나게 놀고, 쉬다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돌사진전이 끝나고 거둬들인 입장료 수입은 총 10만1300원. 가히 1000원의 기적이라 부를 만했다. 봉투 안에 부담스럽게 담겨져 있는 5만 원, 10만 원이 아니라 1000원이 모여 10만 원을 만든 것이다. 이 수입은 딸의 이름으로 하는 첫 기부가 될 예정이다. 기부자인 딸의 의사가 직접적으로 반영된 것은 아니지만, 여성이고 미래에 노동자가 될 것이기에 '한국여성노동자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돌사진전은 절대 쉬운 게 아니었다. 품도 많이 들고 준비 기간도 짧지 않았지만, 준비한 사람과 참여한 사람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자리였음은 확실했다. 특히 학교라는 장소의 특성 때문인지 수많은 학생들이 들렀는데, '학생 할인'(?) 없이 모두 입장료 1000원을 들고 왔다.
아내랑 돌사진전을 준비하면서 딸을 알고, 인연이 있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연락을 돌렸기에 조용한 사진전이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막상 시작되고 나니 에어컨도 없는 교실은 금방 열기가 오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그럼에도 참여자 모두가 생판 모르는 진행자에 의해 수동적으로 참여를 강요당하는 것이 아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아기의 성장 스토리에 웃으며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
이런 행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렇게 해야만 하는' 돌잔치가 아니라 당사자들이 고민하고 결정하고 준비하면서 의미를 되새기는 돌잔치로 1년 살이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이 스며있었다.
딸의 첫 번째 사진전. 두 번째 사진전은 아직 계획이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이름으로, 또 다른 방식으로 대안을 고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