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제목에는 참 고맙게도 '초식남'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지만, 사실 전 풀보다 고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음악도 고기처럼 씹고 뜯고 쓰면서 듣지요. 음악은 중요한 단백질원이니까요! 당신이 원하는 음악칼럼이 있다고요? 따라오세요! 아마 멀리가진 못했을 겁니다. 후후! [편집자말]
 델리스파이스의 새 EP 앨범 '연(聯)' 재킷

델리스파이스의 새 EP 앨범 '연(聯)' 재킷 ⓒ 뮤직커밸


종종 사람들이 궁금해 할 때가 있다. 내가 이어폰을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이유에 대해서. 그도 그럴 게 음악을 듣기 시작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내 목에는 항상 이어폰이 걸려 있었다. 매점에 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체육시간에도 어김없이. 솔직히 집에서도 오디오 대신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가 많다. 누가 들으면 시끄러우니까.

이쯤이면 도착증 중에 어느 한 질병을 의심해야 할 만큼의 과도한 집착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순결한 취향이기에 그냥 고치지 않은 채 살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목에는 어김없이 이어폰이 걸려있다. 귓속에는 '반 헤일런'의 신보가 울려 퍼지고 있다.

친구들이 날 보며 그린 낙서를 보면 내 모습은 딱 두 가지 특징으로 축약되곤 했다. 작은 얼굴에 힘겹게 걸친 안경, 그리고 목에 걸린 이어폰. 지금은 이어폰을 목에 걸고 다닌다는 걸 유별난 특징으로 꼽진 않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다닌 10년 전만 해도 귀에 항상 이어폰을 끼고 살았던 친구들이 그렇게 많진 않았다. 이렇게 멋지든 '찌질'하든 10년간 고수해온 나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는 전 국민 스마트폰 시대와 함께 이어폰이 대량 보급되면서 차별성을 잃고 말았다. 흑흑.

아무튼 내가 이어폰을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이유는 간단하다. 항상 음악을 듣기 위해서. 언제나 같은 음악을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음악을 좋아한다. 특히 그 분위기에 맞는 음악들을 찾아 듣는 게 좋다. 추억은 언제 어디서나 예고 없이 찾아오니까. 평소 다니는 길거리의 풍경, 하늘의 색깔, 바람의 냄새에 따라서 그 분위기에 맞게 바로바로 플레이리스트를 바꾼다. 그 순간을 음악으로 포장하고 싶어서다. 언제든 그 때를 떠올릴 때 그 음악이 생각날 수 있도록.

특히 추운 겨울이나 손을 담그면 동상에 걸릴 것만 같은 시린 하늘의 가을날, 혼자 이어폰을 끼고 찬바람을 맞으며 걷는 걸 좋아한다. 그때 느껴지는 희뿌연 하늘, 칼 같은 바람이 주는 을씨년스러움과 몽환적인 음악이 섞이면 뭔가 이 세상에 나 혼자 동떨어진 기분이 든다.

과거의 여인들이 나에게 준 상처들과 '이제 난 뭐 먹고 살지'라는 생각이 보너스로 떠오른다. 이런 상념이 들 때마다 켄트(Kent)의 '더 킹 이즈 데드'(The King is Dead)와 서태지의 '제로(Zero)'는 꼭 찾아 듣는다. 햇살이 저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래, 솔직히 청승이라고 해도 할 말 없다.

델리스파이스 새 앨범을 듣다..."이건 내 얘기잖아?"

 델리스파이스

델리스파이스 ⓒ 뮤직커밸


지난 주 새로 나온 델리스파이스의 새 앨범 타이틀곡 연(聯)을 들으면서 그들 역시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햇살이 저무는 오후/ 코끝이 시리던 바람/ 그래 넌 없었지.' "오 마이 갓!", "이건 완전 내 이야기인데". 그들 역시 추운 겨울에 거리로 나와 청승을 떨고 있었던 걸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러길 바랐다.

노래는 겨울의 을씨년스러움을 반복적인 피아노연주와 백워드매스킹 샘플로 스케치하듯 그려낸다. "하늘로 훨훨 날아가겠지/ 기약 없는 약속도 필요 없는 곳/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있는 설봉을 넘어"라고 말하는 김민규의 보컬은 여전히 편안하고 몽롱하다. 그들의 음악이 언제나 그렇듯 곡의 전개는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고 기타 톤은 감칠맛이 넘친다.

전작에서 시도한 일렉트로닉과의 접목은 이 앨범에는 없다. 수록곡 '레인메이커'와 '공사중지명령'에 신스 사운드가 부분적으로 들어갔을 따름이다.

언제나 맛있는 음악을 하는 그들이지만 그들이 표현해내는 맛은 전작들과 사뭇 다르다. 돌풍을 몰고 왔던 1집 앨범이 매콤한 향이 나는 '맛있는 양념'이라면 신작은 퇴근하고 나서 마시는 맥주 한 캔의 그 쌉싸래함과 닮았다고 해야 할까.

솔직히 나는 치킨 마살라 맛이 떠오르는 1집보다는 퇴근길 캔 맥주와 새우튀김 안주가 떠오르는 지금의 신작이 더 좋게 느껴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꼬들꼬들한 라면에서 탱탱 불린 라면으로 자연스럽게 갈아타듯이, 입맛도 취향도 은근슬쩍 세월에 따라 바뀌는 것 같다.

델리스파이스 차우차우 고백 앨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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