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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디 작아도 꽃이 갖춰야할 모든 것을 다 갖추었습니다.
▲ 병아리풀꽃 작디 작아도 꽃이 갖춰야할 모든 것을 다 갖추었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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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상으로 입추가 지난 지 두 주간이 지났고, 내일(23일)은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있는 처서(處署)입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는 속담이 있는데, 올해는 가뭄과 폭우도 모자라 국지성 호우가 이어지니 우리네 밥상에 올라올 먹을거리가 걱정됩니다.

세상의 근심걱정을 다 내려놓고 잠시 머리를 쉬고 싶어 이맘때 피어나는 '병아리풀꽃'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여러 곳에 피어있겠지만, 먼 길을 갈 때에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 안전장치란, 지난해에 그를 만났던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화사한 꽃이 아니더라도 꽃입니다.
▲ 왜솜다리 화사한 꽃이 아니더라도 꽃입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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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풀꽃보다도 먼저 얼굴을 보여준 것은 '왜솜다리'라는 꽃입니다. 약간은 다르지만, 우리가 흔히 '에델바이스'라고 부르는 꽃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강원도로 여행을 가면 한계령 휴게소 같은 곳에서 에델바이스를 드라이 플라워로 만들어 팔기도 했습니다.

언제부턴가는 상술에 개체수가 줄어 금지되었지만, 그것보다는 키가 훌쩍 크긴해도 사촌격인 왜솜다리입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 자주꽃방망이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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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체가 제철을 맞아 하나 둘 피어나고 있습니다.
▲ 솔체 솔체가 제철을 맞아 하나 둘 피어나고 있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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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꽃에 하얀 쌀밥 두 톨이 보이시는지요?
▲ 며느리밥풀꽃 보랏빛 꽃에 하얀 쌀밥 두 톨이 보이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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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꽃들은 보랏빛이 많습니다. 황제의 색깔이기도 하지만, 고난을 상징하는 색깔이기도 하지요. 병아리풀꽃을 만나러 간 길, 가을 꽃들이 그들보다 더 화사하게 피어나 눈길을 끕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해마다 그 개체수가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것들도 점점 인간과 거리감을 둡니다. 그리고 그렇게 점점 인간에게서 멀어지다가 어느 날,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더는 인간과 더불어 살기를 포기'한 것이지요.

인간의 한없는 욕심은 그들의 영역을 훼손하고, 자기 혼자만 소유하겠다는 소유욕은 그들을 삶의 터전으로부터 작은 화분이라는 무덤으로 옮겨버립니다. 제대로 키우지도 못할거면서, 자기의 소유욕을 그들을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합리화시키는 것이지요.

차마 다 열지 못하는 입술을 가진 꽃입니다.
▲ 병조회풀 차마 다 열지 못하는 입술을 가진 꽃입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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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훌쩍 커서 가을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리는 꽃입니다.
▲ 개미취 키가 훌쩍 커서 가을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리는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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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꽃의 향기는 피어난 줄기의 길이보다도 더 멀리 퍼집니다.
▲ 칡 칠꽃의 향기는 피어난 줄기의 길이보다도 더 멀리 퍼집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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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보랏빛 꽃만 담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보랏빛 꽃이 정말로 많습니다. 지난 봄부터 꽃을 피우고 싶어 얼마나 그 몸이 근질거렸을까요? 그 인내, 그 참음이 고난의 빛을 간직하게 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숲 속에서 그들과 조우하다 더위를 식히려고 계곡에 발을 담갔습니다. 이 맑은 물이 흘러흘러 강으로, 바다로 가는 것입니다. 가는 길목마다 생명을 피우니 생명의 젖줄이 되어 온 생명을 살리는 귀한 일을 하는 것이지요. 그 일을 하려면 맑아야 하고, 맑으려면 끊임없이 흘러야 합니다.

물은 흘러야 맑고, 맑아야 살립니다. 그것이 물이 본성인데, 그 본성을 박탈하고도 여전히 맑은 물이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인간들입니다. 흐르는 물, 흐르는 강을 막아버림으로 생기는 재앙은 고스란히 인간이 먼저 받을 것입니다.

혹시 '오리'가 보이시는지요?
▲ 진범 혹시 '오리'가 보이시는지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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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범을 만났습니다. 가만 보면 오리를 닮았지요. 본래의 의미는 아니지만 '진짜 호랑이', 그러니까 병아리 만나러 왔다가 호랑이를 만난 격입니다. 모양새는 오리니, 오리도 만났고, 며느리도 만났습니다. 이 모든 꽃들을 하나 둘 꿰어줄 바늘꽃도 만났습니다.

꽃이 지면 기다란 열매가 마치 바늘을 닮았습니다.
▲ 바늘꽃 꽃이 지면 기다란 열매가 마치 바늘을 닮았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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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을 때에는 소중한 것을 잘 모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곁에 있는 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내 곁에 있지 않기 때문에 아주 먼길을 달려 병아리풀을 만나러 간 길, 병아리풀 피어나는 곳이 삶이 터전인 이들에게는 그곳이 일상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일상은 그들에게는 열망하는 곳일 수도 있겠지요.

병아리풀 피어나는 그 깊은 숲에서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토목공사 공화국,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을 못 견디는 나라, 결국엔 제 입으로 들어갈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곡 곳곳에 널린 쓰레기들을 보면서 갈 때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깨닫지 못하는 우둔함을 봅니다.

그래도 여전히 피어나는 가을 꽃, 아직도 그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실날같은 희망의 끈이라도 놓아서는 안 된다고 다짐을 합니다.


태그:#병아리풀꽃, #왜솜다리, #진범, #병조회풀, #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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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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