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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우리 공원묘지에 있는 만해 한용운 선생 부부의 합장묘
 망우리 공원묘지에 있는 만해 한용운 선생 부부의 합장묘
ⓒ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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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꼭 6년 전인 2006년 8월 15일,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만해 한용운 평전>(시대의창 펴냄)을 출간했습니다. 책 출간을 계기로 그 며칠 뒤 김 전 관장과 지인 몇이서 만해 선생의 묘소 참배를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처음엔 독립유공자인 만해 선생의 묘소는 응당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을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은 틀렸습니다. 놀랍게도(?) 선생의 묘소는 망우리공원 묘지에서 다른 무덤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미처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게 됐습니다. 망우리공원묘지가 소위 말하는 공동묘지가 아니라 우리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서깊은 장소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날 저는 그곳에서 책에서나 봐왔던 역사인물들의 묘소를 접하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단 독립운동가나 유명 정치인뿐만이 아니라 학자, 문인, 작곡가, 대중가수, 여류명사 등 누군가 일부러 구색을 갖추기라도 하듯 실로 다양한 인물들이 그곳에 누워 있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가 마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더군요. 

그곳을 다녀온 후 저는 유사한 묘소들에 대한 탐방(探訪)을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서울 마포구 양화진 한강변에 있는 '외국인묘지'였습니다. 지금은 '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로 명명된 묘역 입구의 교회 옆에는 영국인 베델의 묘소가 있었는데 그 감회란 참으로 남달랐습니다. 베델은 구한말 항일지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주역(발행인)으로서 양기탁, 신채호, 박은식 등 항일언론인들과 함께 통감부의 언론탄압 속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항일의 필봉을 휘둘렀습니다. 사옥 입구에 '개와 일본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내걸었다고 하니 그 기개를 알만도 합니다. 

 베델 선생 99주기를 맞아 지난 2008년 5월 1일 마포구 양화진에 있는 외국인묘지 내 선생의 묘소에서 참배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베델 선생 99주기를 맞아 지난 2008년 5월 1일 마포구 양화진에 있는 외국인묘지 내 선생의 묘소에서 참배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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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인들에겐 <신보>는 커다란 자랑이요, 긍지였습니다. 당시로선 거의 유일한 언로(言路)였던 만큼 일반 국민들은 물론 고종황제도 이 신문을 아꼈습니다.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면서 발행인 베델은 두 차례에 걸친 재판을 받은 후 1909년 5월 1일 고문 후유증으로 사거(死去)하자 선생의 부음을 전해들은 고종황제는 "하늘은 무심하게도 왜 그를 이다지도 급히 데려갔단 말인가!"라며 애통해했습니다(참고로, 선생은 196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추서받았습니다).

베델 선생 묘소 바로 앞에는 헐버트 박사의 묘소가 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분으로, 1907년 이준 열사 일행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로 파견될 때 사전 참가계획부터 입국까지 진행시키고 또 현지에서 각국 외교관과 언론의 협조를 끌어냈던 분입니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으로 8·15 광복절 행사를 위해 내한한 박사는 입국 일주일 만에 86세를 일기로 한국에서 서거했습니다. 평소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라는 박사의 소망에 따라 이곳에 안장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수유리입니다. 4·19혁명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4·19국립묘지'는 오래전부터 유명한 곳이자 정부가 관리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수유리 일대에는 망우리 공원묘지처럼 '나홀로' 있는 명사들의 묘소가 적잖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준 열사의 묘소를 들 수 있습니다. 1907년 고종황제의 명을 받아 이상설·이위종 선생 등과 함께 밀사로 헤이그에 파견돼 활동하던 선생은 현지에서 순국해 현지에 묻혔다가 1963년 서울 수유리 묘지로 이장되었습니다. 현재 묘역이 단장돼 있다고는 하나 외로이 잠들어 있습니다.

4·19 국립묘지, 효창원...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애국선열들이 잠들어 계신 곳

 수유리에 있는 이준 열사 묘역
 수유리에 있는 이준 열사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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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리는 망우리에 비해 단일한 편입니다. 주로 애국선열들의 묘소가 집중돼 있습니다. 수유리아카데미하우스 뒤편 산에는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부통령을 지낸 성제 이시영 선생, 일제 때 독립운동가 변호를 맡았으며 해방 후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 심산 김창숙 선생, 해공 신익희 선생, 유림 선생, 동암 서상일 선생 등을 비롯해 광복군 합동묘소도 있습니다. 그밖의 명사로 정치인 출신의 김도연, 양일동 선생 등의 묘소도 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삶을 기록하자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애국선열들이 이곳에 잠들어 계신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제가 찾은 곳은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가 있는 효창원입니다. 흔히 효창원에는 백범 묘소만 있는 걸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곳에는 또다른 독립운동계의 '별'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우선 백범 묘소 아래 '3의사 묘역'은 백범이 환국 후 일본에 있던 윤봉길·이봉창·백정기 3의사의 유해를 봉환해 와 손수 만든 묘역입니다. 3의사 묘역에는 후일 유해를 찾을 것에 대비해 안중근 의사의 가묘(假墓)까지 만들어 두었습니다. 백범은 생전에 안 의사 유해봉환을 추진했으나 이루지 못했는데 순국 100년 지난 지금도 우리는 후손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3의사 묘역 인근에는 임정요인 세 분을 모신 묘역이 또 있습니다. 백범보다 먼저 임시정부 주석을 지냈고 임정의 원로로 기둥 역할을 했던 석오 이동녕 선생을 비롯해 임시정부 군무부장(현 국방장관)을 지낸 조성환 선생, 임정 비서장을 지낸 동암 차리석 선생 등이 이곳에 묻혀 있습니다. 임정요인 묘역은 이곳 말고도 동작동 국립묘지에도 있는데, 동작동에 묻힌 분들은 적어도 1950년대 주로 이후에 돌아가셨거나 아니면 근자에 중국 등지에서 유해를 봉환해온 분들입니다. 현재 효창원은 사적지로 지정돼 용산구청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용산구 효창원에 있는 '3의사 묘역'은 해방후 환국한 백범 김구 선생이 조성한 것으로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비석이 없는 왼쪽 끝은 안중근 의사의 가묘.
 용산구 효창원에 있는 '3의사 묘역'은 해방후 환국한 백범 김구 선생이 조성한 것으로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비석이 없는 왼쪽 끝은 안중근 의사의 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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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 '망우리 공원묘지'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망우산 일대 83만2800㎡의 공간에 조성된 이 묘지는 일제시대인 1933년 5월 경성부립묘지(현 서울시립묘지)로 출발했습니다. 당시 경성(서울)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이 주로 묻히던 공동묘지였는데 1973년 공간이 부족해 매장을 중단시킬 때까지 40년간 총 2만8500여 기의 묘지가 조성됐었습니다. 이후 한동안 공동묘지로만 인식돼오던 이곳이 1992년부터 경내에 산책로를 내고 새롭게 단장하면서 지금은 서울시민들이 즐겨찾는 대표적인 휴식공원으로 탈바꿈한 상태입니다.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 가운데 하나가 '페르라쉐즈'인데요, 이곳엔 프랑스의 유명인사들이 묻혀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단지 그들의 묘지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예술 조각품 등을 전시하여 홍보함으로써 전 세계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가꾸기 나름으로는 망우리 공원묘지가 이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독립운동가나 유명 정치인뿐만이 아니라 시인 박인환, 소설가 계용묵과 김말봉(여), 화가 이중섭과 이인성, 작곡가 채동선, 대중가수 차중락 등 예술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재처럼 천편일률적인 연보비만 세울 것이 아니라 좀 더 개성있는 공간으로 꾸밀 필요도 있습니다.

지난 2009년 수필가 김영식씨는 '망우리 비명(碑銘)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라는 부제를 단  <그와 나 사이를 걷다>(골든 에이지 펴냄)를 펴냈습니다. 이 책은 망우리공원에 묻혀 있는 유명인사 40인의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저자가 3년간 망우리공원 현장답사를 하고 여기에 자료조사와 유족들의 인터뷰까지 곁들여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발로 쓴' 망우리 답사기인 셈인데요, 앞에서 언급한 사람들 이외에도 야구인 이영민, 만해 한용운,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 의사 지석영, 도산 안창호, 죽산 조봉암 등 우리 현대사의 거목들에 대한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 있습니다.

'근대 역사·문화 공원'으로 탈바꿈할 계기 마련

 망우리 공원묘지에 있는 시인 박인환 연보비
 망우리 공원묘지에 있는 시인 박인환 연보비
ⓒ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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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일본인도 두 사람이 묻혀 있어 눈길을 끕니다. 한 사람은 한국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아사카와 다쿠미. 그는 조선총독부 농공상부 산림과에서 조선의 산림녹화에 힘썼고 개인적으로 조선의 민예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그는 조선을 진정으로 사랑해 우리말을 하고 우리옷을 입고 생활했으며, 죽어서도 조선의 땅에 묻히길 소원해 결국 이곳에 묻혔습니다. 해마다 그의 기일이면 일본에서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에 묻힌 또 한 사람의 일본인은 한반도에 처음으로 포플러와 아카시아를 심은 사이토 오토사쿠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이곳이 의미가 깊은 것은 소파 방정환, 위창 오세창, 만해 한용운, 설산 장덕수, 죽산 조봉암 선생 등 항일 애국지사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도산 안창호 선생은 1973년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으로 이장). 여기에 범주를 좀 더 넓히자면 서양의학의 선구자인 지석영, 언론인 출신의 호암 문일평과 설의식, 반민특위 조사부 제1부장을 지낸 이병홍, 민족대표 33인 출신으로 나중에 친일로 변절한 박희도 등도 기억할만한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살아생전의 직업과 출신, 위상에 관계없이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혹은 위아래에 자리를 잡고서 함께 안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곳 지명 '망우리(忘憂里)' 글자 그대로 말입니다.

엊그제 올 광복절을 앞두고 반가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습니다. 문화재청은 13일 수유리에 있는 이준 열사 묘소를 비롯해 서울지역에 산재한 독립유공자 묘역 7개소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습니다. 이준 열사 외에는 손병희 선생(우이동), 이시영·신익희 선생(수유리), 안창호 선생(도산공원), 김창숙 선생(수유리), 한용운 선생(망우리) 등입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30일간의 등록 예고 기간에 수렴한 이해 관계자와 각계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애국선열들의 묘소를 국가에서 관리하게 됐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간 '공동묘지'로만 인식돼오던 이곳들이 '근대 역사·문화 공원'으로 탈바꿈할 계기가 마련된 셈입니다. 특히 망우리공원묘지의 경우 주변경관과 어우러져 더욱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수년 전 남한산성 자락에 있는 조용수 선생(전 <민족일보> 사장)의 묘소 참배에 동행한 적이 있습니다. 조 선생은 5·16 쿠데타 직후 간첩으로 몰려 희생됐는데 최근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명예도 회복됐습니다. 그밖에도 우리 근현대사의 주역들이 이 땅 곳곳에 이름도 없이 묻혀 있는데 이번 애국선열 7위 묘소의 문화재 지정을 계기로 전국에 산재한 역사인물들의 묘소를 국가가 챙겨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물병 하나 달랑 들고 망우리 공원묘지를 한번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만약 어린 자녀랑 동행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절로 우리 현대사 교육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진실의 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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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언론사에서 근무했고, 친일청산 등 역사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평소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갈망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