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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2001년3월 청와대를 방문, 김대중 대통령과 건배를 하고 있다. <뉴스위크>는 김대중 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조국의 운명을 바꾼 트랜스포머'로 선정했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2001년3월 청와대를 방문, 김대중 대통령과 건배를 하고 있다. <뉴스위크>는 김대중 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조국의 운명을 바꾼 트랜스포머'로 선정했다.
ⓒ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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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도 불구, 평생 조국의 민주화에 헌신한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한국 정치사상 첫 '여야 간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내며 1998년 2월 취임한 김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한국을 아시아 금융위기의 나락에서 구출해 내는 데 성공했으며,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 포용정책을 통해 남북한 간 관계개선에도 기여했다. 평생을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로 불렸던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 글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임기중 조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혁을 이뤄낸 지도자 11인을 선정하면서 김 대통령을 소개한 내용이다. <뉴스위크>는 이들을 '트랜스포머(transformer)'라 불렀다(여기에서 '트랜스포머'란 영화에서처럼 비행기나 자동차로 변하는 변신로봇이 아니라,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을 뜻한다).

이 기사는 2009년 8월 18일 김 대통령이 서거한 뒤 1개월여 후인 9월 23일 유엔 총회 개막을 앞두고 게재됐다. 여기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덩샤오핑(등소평) 전 중국 국가 주석, 헬무트 콜 전 서독 총리,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등이 포함됐다.

김대중은 조국을 어떻게 변혁시켰나

김대중 대통령은 <뉴스위크>가 평가한 것처럼 세상을 바꾸었고, 나라를 변혁시켰다. 그렇다면 김대중은 어떻게 나라를 변혁시켰을까.

변화는 정권교체로 시작됐다.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 간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했다. 1997년 정권교체는 특별한 사건이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야당에서 여당으로 정권이 옮겨가는 일은 민주사회에서 흔한 일이지만 불행히도 한국 정치는 그렇지 못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집권 여당세력의 지배는 당명을 바꿔가며 계속됐다. 그 고리를 깬 것이 김대중이었고, 1997년의 정권교체였다.

김대중 정권에서 비로소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치가 시작되었다. 거리에 최루탄과 화염병이 사라졌다. 노동자들의 정치활동이 보장되고, 여성들의 권익은 신장되고, 사회진출은 크게 높아졌다. 3년여의 산고 끝에 국가인권위원회가 탄생했다. 국민들은 이제 마음대로 말할 수 있었고,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시민들의 자율성과 책임감은 더욱 높아졌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이다.

정부는 항상 자신의 과제를 안게 마련이다. 김대중 정부에 다가온 첫 과제는 전임정부들의 관권경제 정경유착이 원인이 돼 발생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일이었다. 아마도 이때의 위기를 이겨내지 못했다면 우리나라는 정치적 경제적 혼란에 이은 안보위기를 겪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김대중 대통령의 진두 지휘 아래 금융, 기업, 공공, 노동 4대 분야의 구조조정이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이 과정은 위기 앞에서 지도자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김대중은 이렇게 해서 나라의 위기를 벗어나게 했다.

김대중의 IT와 이명박의 4대강

2008년 7월 동교동 자택 응접실에서 김대중 대통령
 2008년 7월 동교동 자택 응접실에서 김대중 대통령
ⓒ 김대중평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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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정보화 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탁월한 성취다. 인터넷, 모바일 사회로의 진입은 단순히 통신수단의 진화라는 측면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어떤 현상도 지식정보화, IT혁명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지식정보화가 대한민국 사회와 국민생활을 변혁시킨 변화, 그 가치의 크기는 측량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위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발전과 진보의 바탕이 될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김대중 정부의 지식정보화 정책에 들어간 돈은 10조 원 내외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초고속통신망 등 정보인프라를 확충하는 사업에 많은 돈이 들어갔다.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에 30조 원이 투입됐다. 수십조가 투입되는 국가정책은 적어도 10년, 20년 국민생활에 편익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 정보화, IT정책은 그것을 달성했다. 4대강 사업이 과연 그만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가.

김대중 정부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문화와 복지를 체감했다. 김대중 정부에 들어와 '한류'가 시작된다. 1998년 한일정상회담 이후 일본에서 시작된 '한류'는 전세계로 확산되었고, 노무현 정부에 이어 지금까지 그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문화가 세계에 확산된 적이 있었는가.

또 김대중 정부는 역대 정부 최초로 복지국가의 기틀을 잡았다. 4대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기틀을 마련해 사회안전망이 정비되었다.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국가가 생활을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법'이 실시되었다. 복지는 인권처럼 시민의 권리가 되었고, 국가의 의무가 되었다. 부족했지만 이런 방향이 만들어지고, 그 길이 뚫린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남북화해정책)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비롯, 금강산-개성관광, 이산가족상봉, 남북한 주민의 왕래와 교류 등 과거에는 상상활 수 없는 일들을 가능하게 했다. 지난 60여 년 동안 대립과 갈등의 시대는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바뀌었다. 국민들은 '다시는 전쟁은 없겠지, 이렇게 하다 보면 통일의 날도 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김대중 대통령이 이끈 '국민의 정부'는 나라를 변혁시켰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남북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국민들이 체감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크게 부족하고 일부는 시작에 불과했지만, 첫 걸음이 천리길을 가게 하고, 용기 있는 첫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2002년 12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되며, 김대중 정부처럼 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국민의 선택이 낳은 결과였다. MB 정부 들어와 보여준 퇴행들, 즉 민주주의 후퇴, 서민생활의 고통, 남북관계의 위기 등과 비교할 때 김대중 정부의 성취는 더욱 뚜렷해진다.

12월 대선, '트랜스포머' 대통령은 누구인가

이런 변화는 그냥 온 게 아니었다. 김대중의 40여 년간의 단련과 준비가 있었다. 시대와 국민의 열망을 놓치지 않으려는 김대중의 '서생적 문제인식',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 성공시킬까 하는 '상인적 현실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라를 변혁시키는 것이다. 양극화 해소, 비정규직, 청년실업, 일자리, 재벌개혁 등 경제 민주화의 과제, 보육, 의료, 급식 등 보편적 복지의 과제, 지역균형발전, 안정된 주거생활 등 내정개혁의 과제들, 특히 남북관계 회복, 6자회담 복원, 주변국과 외교정상화 등 외교 국방에서의 여러 과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런 과제들이 머리와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있고, 또한 자신의 스케줄 속에서 해결책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야말로 조국을 변혁시키는 '트랜스포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나라를 변혁시킬 만한 능력, 자신감,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 변혁의 방도와 비전을 갖춘 사람을 찾고 있다. 변화의 과제가 무엇이고 변화가 지향하는 목표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지도자를 찾고 있다.

3년 전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은 그런 지도자였다. 서거 3주기를 맞아 김대중 대통령이 조국과 국민들 앞에서 보여준 비전과 철학, 지략과 리더십을 돌아보아야 할 때다. 12월 대선에서 김대중을 이을 '트랜스포머' 대통령을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몫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최경환은 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한 마지막 비서관이었으며, 지금은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겸 대변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대중, #트랜스포머, #최경환, #12월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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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한 마지막 비서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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